기간 | 6월 |
---|
[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5
- 글쓰기 모임, <숨기는 글쓰기의 곤란함>
"읽은티"는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갖는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독서 모임 후기를
매월 친구사이 소식지에 기고하는 연재 기획입니다.
이번 달은 6월 3주에 걸쳐 진행 된 글쓰기 모임에 대한 후기를 기고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찾는 사람이 없다면 숨긴 것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숨긴 것이 드러나지 않고,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만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영민하고 끈기 있는 사람들이 결국 숨긴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
완벽하게 숨겨진 것은 완전히 없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아무도 그게 있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숨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상태로 완벽하게 숨긴다는 것은 가장 탁월한 역할 수행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숨기는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고민합니다. 숨기기는 해야겠는데 누군가 알 수 있도록 티는 내고 싶습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있는 듯 없는 상태를 고민합니다.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은 행간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그 공간에 뭔가 숨겨진 것 같습니다. 촛불에 그을려보거나 특별한 물을 뿌려보면 숨겨진 한 줄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숨기는 글은 이런 묘미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글 쓴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알아내어 글의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그들이 파악한 의미가 실제로 글 쓴 사람이 숨긴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글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숨기는 글을 쓰는 사람, 그리고 숨긴 것을 찾는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취향이라도 가진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의 종류는 무언가 숨기는 것이 미덕입니다. 나중에 글이 스스로 숨긴 것을 드러내지만 적어도 처음엔 알 수 없게 합니다. 찾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찾아 글이 스스로 드러내기 전에 알아채는 것을 즐깁니다. 그다지 똑똑하지 못한 제가 볼 때는, 머리 좀 쓴다하는 사람들의 괴팍한 유흥인 것도 같습니다. 다만, 재미를 위해 기술적으로 무언가 숨기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드러나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감출 수 없어 숨겨서라도 표현합니다. 가령, 나 자신을 숨기려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도, 내가 나를 없다고 취급할 수 없으니까요.
나 스스로를 숨기려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온전한 나를 완벽하게 숨기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 글은 설명문도 아니고 신문 기사도 아닙니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나를 부분적으로 드러냅니다. 거기에 온전한 나는 없습니다. 물론,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고 그 중 일부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글은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거기에 온전한 내가 없는걸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입니다.
그렇게 나를 숨긴 사람의 글은 무엇이 결여되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 나름의 소임을 다하여 어딘가에 기록됩니다. 동시에 많은 곳에서 사라집니다. 본래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부터 글의 생명은 쓴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완벽하게 숨긴 나의 모습으로 가만히 서서 숨긴 글이 부유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왜 숨기고 싶었는지, 왜 숨기면 안 되는 것인지, 정말 찾은 사람은 없는지. 무엇 하나 쉽게 끝나지 않는 고민입니다.
그러한 사유의 과정은 글 쓴 사람의 내력을 늘려주기도 하고, 글 쓴 사람을 깊은 감정의 골에 밀어 넣기도 합니다. 그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글 쓴 사람에게 그 과정은 좋기만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사람이 “숨기는 글에 대한 글”을 써보면 어떨까요? 거기에 어떤 곤란함이 있으며, 어떤 고민이 있는지 써보는 겁니다. 생각이 정리되고 더 흥미로운 글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숨기는 글에 대한 글”은 그 자체로 온전한 나를 드러내는 글이 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숨겼다는 고백만큼 나를 보여주는 글도 없을 테니까요.
“숨기는 글쓰기의 곤란함”은 2019년 책읽당 문집에 올릴 글을 모으는 글쓰기 모임이었습니다. 3주간에 걸쳐 다수의 글이 모였고, 거기엔 여러 가지 종류의 글이 있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숨겨졌는지, 무엇을 드러내었는지에 관심을 두고 글을 읽고 합평했습니다. 방식이야 여러 가지지만 어떤 글은 드러내고, 어떤 글은 숨겼습니다. 한국 게이 인권 운동 단체 친구사이의 소모임에서 펴내는 책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숨겨지고 혹은 드러납니다. “숨기는 글쓰기의 곤란함”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모임이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저는 굳이 그런 이름으로 시작하지 않았어도 결국 모두 그런 글을 썼을 거라고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어쩌면 숨기거나 드러내는 일은 우리의 숙명 같은 일이고, 그게 글에 묻어난 것뿐이니까요.
책읽당 참석 문의 : 7942bookparty@gmail.com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