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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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나이 듦이란?
올해 친구사이 마지막 공식행사는 교육팀에서 준비한 ‘퀴어의 돌봄은 남다르지’ 였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이면서, 돌봄을 수행하지 않는 존재로 보이는 퀴어남성들은 어떻게 돌봄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들여다 보는 자리였습니다. 이 문제의식의 시작은 가족구성권연구소의 <다양한 몸/관계의 돌봄 드러내기: 퀴어남성을 중심으로> 라는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친구사이는 이 연구가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면서도 퀴어로서 지속적인 삶을 이어가고자하는 돌봄의 실천을 잘 드러내는 중요한 연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12월 13일 연구에 참여한 김순남님(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으로부터 퀴어남성 돌봄실천과 돌봄을 통한 퀴어남성들의 정동에 대해서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26일에는 퀴어로서 돌봄을 실천하고 있는 김상백님(Bar Viva 운영), 남웅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을 초대해 토크쇼를 통해 오랜 돌봄의 과정을 들어보았습니다. 26일 토크쇼 현장에는 게이 커뮤니티의 다양한 세대들이 참석했습니다. 돌봄이 중장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이면서, 또한 우리가 앞으로 미래를 위해 함께 공부하고 실천해야하는 문제임을 확인했습니다. 자세한 후기는 내년 1월 소식지를 통해 공유하겠습니다.
당당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구사이는 올해 30주년을 맞아 “당당하게 나이 들고, 서로 돌보며 축하하자”라는 기조를 세우며 올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 까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조직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으로 이 시대의 다양한 불평등에 대응하고, 차별의 역사를 드러내며 변화를 위해 당당하게 나이들며 활동하는 우리를 더욱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기조였습니다. 6월에 친구사이는 언니네트워크와 함께 ‘퀴어 대환장 파티’를 열었습니다. 게이·레즈비언·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 모두를 대상으로 기획되었고, 드랙퀸 게이 아네싸, 트랜스젠더 퍼포머 색자, 레즈비언 코미디언 김연경, 트랜스젠더 코미디언 서연, BDSM 쇼를 선보인 Flowerbomb 및 Oliverr 등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으며, 파티 현장은 모처럼 정체성을 넘어 서로 어울려 노는 퀴어들로 가득했습니다.
올해 8월 30일에 있었던 친구사이 30주년 기념식 <794230>에서 축사를 전해주신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친구사이는 앞으로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지, 우리 커뮤니티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활동의 결과 억압이 줄어들고 성소수자의 권리가 신장될 수록 오히려 인권에 무관심해지고 개인주의화 되고 소비지향적으로 변하는 평범한 성소자들에게 좀더 다가갈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전과 달리 , 성소수자라는 하나의 이유로 결속하기 어려운 계층화의 시대에 또다른 전략을 부탁드립니다.
개화기 이후부터 많아진, 이성과 결혼하지 않은 나이든 성소수자들이 효과적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인권 신장과 앞으로의 커뮤니티 발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시기도 바랍니다.
김상백 (Bar Viva 운영) |
앞으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타오르는 때론 서늘해진 욕망과 성적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친구사이에 장공감이 한참 배워야 할 테지만 저희도 뭐 지지않을 자신 있습니다. 장애와 퀴어의 멈추지않는 사랑의 힘으로 욕망과 사랑이야기 더 많이 해봅시다.
우리는 사회의 정상성을 비껴가며 나만의 자부심과 욕망, 고통까지도 더 많이 “가진 사람들” 같습니다. 엉망 울컥 진창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커뮤니티가 세계이고 정치이며 급진적 변화의 시작입니다. 친구사이의 커뮤니티 활동을 보니 공감도 더 서로의 삶에 침투해 우리를 변화시킬 변태적 영향력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제도와 권력의 변화보다 더 빠르고 힙하게 우리는 서로 갈등하며 변화를 실험해 가봅시다.
모두가 존재 방식에 대해 자신이 정의하며, 사회 변화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그런 운동을 계속 같이해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자긍심은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사이이기에 가능합니다. 친구사이는 삶과 관계, 광장을 가로지르며 권력에 가장 민감하게, 권력의 정면을 향해 싸우지만, 우리는 결코 권력에 관심없는 도도하고 시크한 이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계속 함께 싸워나가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로 앞장서 주시면 저희도 부산하게 소란을 피우겠습니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
슈가: 좋았던 순간들이 참 많지만 인상 깊었던 순간이라면 같은 단원 형들이 트랜스젠더 남성인 저를 받아들여줄 때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게이들이 트랜스젠더를 만나고 교류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처음엔 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하셨는데 점점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해지시면서 저를 슈가로 대해주실 때 유독 감동받았어요. 저한테 따로 처음에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웠는데 이젠 알겠다고, 너덕에 세상이 넓어졌다고 해 준 형도 있었구요.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르더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열린 마음으로 교류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순간을 우리가 만들어냈다는 게 가장 기쁩니다.
도리: HIV에 감염한 후,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요. 가진사람들처럼 오프라인 중심의 모임에 나오기까지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모든 가진사람들 회원은 사회적 낙인의 생존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 회원들이 감염된 후 저희 모임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용기와 생존 이야기가 저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슈가: 친구사이에 크게 바라는 건 없고, 술말고 커피나 차를 마시는 모임도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밝은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애기하는 시간이 저는 너무 즐겁거든요.
도리: 사회적인 편견과 매체 부족으로 인해 오프라인 활동이 매우 중요한 시절이 있었어요. 친구사이가 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LGBT 커뮤니티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고,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많은 모임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현재 LGBT 커뮤니티에서 관계의 무게는 이전보다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사이의 활동이 30년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작지만 꾸준한 변화와 성장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리, 슈가 (친구사이 회원) |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묶여 있겠다는 의지, 연대의 감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당당하게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나 개인의 건강으로만 귀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지난 친구사이 활동의 역사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세상의 정상성에 비껴가며 우리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웃을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는 것, 서로의 고통에 좀 더 다가가는 것, 그러면서 본연의 우리의 자태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좀 더 당당하게 나이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성소수자로서, 차별에 저항하는 퀴어로서, 그리고 사람에 대한 무게를 무겁게 느끼고 견디는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나이들어 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년의 창립 31년째를 맞이하면서 앞으로 더욱 풍성하게 이야기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