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4월 |
|---|
[활동스케치 #2]
책읽당 모임 후기
: 사람이 장애를 이야기할 때
<그래, 엄마야>를 읽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종종 합니다.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자극적이고 생경한 설정일수록 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 설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쾌함을 남길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그래서 설정을 꾸밀 때에 나름 긴 고민을 하는 편입니다만, 사실 그건 이미 정한 설정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일이 기억하고 다시 꺼내어 반성하는 일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많이 피곤한 일이거든요. 어떤 계기가 없다면 평생을 반성 없이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새삼스러운 고백입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에는, 세상을 떠난 게이 아들의 장례식에서 아들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도 담겨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있을 때 ‘게이는 괴물’이라고 아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스스로를 ‘괴물’로 취급하게 된 사연을 일기에 적습니다. 저는 이 아버지에게 아들을 ‘괴물’ 취급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아들을 낳기로 했던, 그만큼 소중하게 여긴 아들이 무엇이라도 ‘괴물’ 취급할 리 없다는 설정을 만들었습니다. 진부하지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설정대로 이야기는 만들어졌지만, 나름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분류하고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저울질하는 일은 아닌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아이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아이를 포기한 부모를 비난할 수 있는지.. 결국 어떤 의미도 제 3자가 결론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당사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가부장제의 편견에 젖어있는 아버지라는 인물의 생각이라고 보면, 다소 불쾌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설득력도 있다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별 무리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다른 이야기를 생각하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게이인 걸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부모님께서는 저를 낳으셨을까요?
생각하는 것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아마 안 낳으셨을 것 같았거든요. 만약 낳으셨다고 해도, 그 시기 그런 분위기에서 저는 태어나는 것이 좋았을까요? 혹시 어릴 때부터 게이를 치료하기 위해 전문 병원 같은 곳에 다니지 않았을까요? 더 엄격하게 남자다운 성격을 교육받았을까요? 아니 도대체 그런 검사는 왜 하는 걸까요? 그런 검사 자체가 차별인 건 아닌가요? 정확하게 알 수나 있나요? 그리고..
그럼 장애 검사는 왜 하는 걸까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저의 고민이 너무 얕았던 건 아닌지 겁이 났습니다. 이렇게나 개인적인 질문을 마치 거대 담론인양 건조하게 다룬 것만 같았습니다. 이러한 ‘담론’ 자체를 지켜보는 장애인과 그의 어머니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포기했던 부모에게는 이러한 ‘담론’을 지켜보는 것이 어떤 경험이었을까요? 역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좀 더 섬세하게 고민하지 못했던 후회가 남아있었고, 그 후회가 이 책을 만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저의 부끄러운 기억이었습니다.
▲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오월의봄, 2016.
덕분인지,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장애를 가진 아이를 안심하고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에 박힌 대로 적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합니다. 이 책에는 그렇게 공허한 문장으로 끝맺고 싶지 않게 하는 기록이 빼곡합니다. 어머니들은 어떤 사상가가 아닙니다. 지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경험을 위주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사람이 당사자의 입장을 들어보게 합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의 어떤 부분은 서로 같고 어떤 부분은 또 다릅니다만, 그래서 오히려 일관성 있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기에 모성신화, 가부장제, 장애에 대한 편견, 유리천장, 소득 불균형, 인간성을 경시하는 성과위주의 교육현장, 님비현상 등의 사회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니, 의심의 여지없이 영락없는 이 시대 이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인터뷰를 기록하는 형식 덕분일지는 몰라도,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장애’ 보다도 ‘장애’를 가진, 그리고 그런 자녀를 가진 개인의 삶에 집중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장애’라는 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로 인용해왔습니다. 매우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어떤 장치로 ‘장애’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애’를 이렇게 일괄적이고 큰 분류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면 그 안에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의 삶을 매몰시키기 쉽습니다. 사람에게 장애는 개인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졌다는 것도 역시 개인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제가 성소수자인 것도 저의 한 부분일 뿐이고요. 스스로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개인이 살아가는 데에도 작게 크게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성소수자에게도, 장애를 가진 개인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진 개인에게도 그러한 도움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어떤 분류가 한 사람의 존재를 상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장애'를 이야기할 때,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장애를 ‘아픈’ 거라고 말하는 어머니들이 많았다. 비장애인으로 살 수 있기를 혹은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는 기대겠지만 장애는 병이 아니지 않은가. 재활‘치료’라는 표현이 아픈 상태를 전제하거나 완쾌를 지향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 장애를 ‘낙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재활은 치료라기보다는 장애라는 특성을 가진 이들에게 맞추어 제공되는 교육과정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 비장애를 가른 채 진행되는 데서 나아가 모든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과정을 기대하는 건 너무 이른가.”(125쪽, 이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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