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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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1]
감사해서 준비한, 친구사이 감사제 후기
올해 친구사이 감사제는 매년 있었던 행사와 격이 달랐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다른 회원들도 비슷하게 공감하는 부분은,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동일하더라도 확실히 회원들을 위한 자리라는 주제로 제대로 행사를 했다는 것, 물론 제 생각이긴 하지만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대우 제대로 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짧은 시간이지만 행사 참여한 제 스스로가 뿌듯하고 자부심이 좀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행사를 기획한 기획단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년 30주년엔 어떻게 하실지 막막하실수 있겠으나, 행사에 오신 많은 분들을 보고 여전히 친구사이의 행보에 관심이 많아보여서 제가 다 좋더라구요~
내년의 전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진 모르겠으나, 늘 변함없이 친구사이에 있을 건 당연하고 또 할 수 있으면 도와드릴께요!
고급진 행사기획 너무 좋았어요~
이번 기획단 내년에도 또 해주세요~ 아주 똑똑이들~
친구사이 회원 / 완야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심장충격기를 가져다줄 것과 119에 신고를 부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아저씨!”, “거기 학생!”이라고 외치면 안 되는데, 보통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지목당하지 않으면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고 현장을 빠져나가기 때문이죠. 즉,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하려면 “양복에 빨간 넥타이 매신 키 큰 아저씨!”라거나 “‘청바지 입고 검은 가방 맨 단발머리 여학생!” 정도로 구체적으로 외쳐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사이가 이번 감사제를 통해 후원금 증액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목표(=추가 상근활동자의 활동지원)와 명확한 최소 증액 범위(=8,000원)를 회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모두가 필요성을 느끼지만 어느 통 큰 재력가가 대신해주었으면 좋을 이 부담스러운 수입 증대의 과제가, 친구사이 회원들이 한 달에 점심 식비 한 번만 아껴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니! 저는 마트에서 파는 사과가 비싸졌다고 애석해 하면서도 한동안 고정되어 있던 제 후원금의 상대적 가치가 인플레이션의 파도 속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더라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지냈죠. 그게 감사제 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사실 문자를 통해 감사제에 대한 안내를 처음 받았을 때에는 당일 KTX를 타고 서울을 들렀다가 다시 빠져나와야 하는 일정을 상상하면서 ‘이거 그냥 가지 말까?’하는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원들로부터 지금보다 더 큰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친구사이가 회원들에게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니 그 저의(?)가 무척 궁금했지요. 놀랍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의 한 비스트로 내부 공간을 꽉 채웠고,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규모의 행사를 아무나 쉽게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터, 행사를 이끌어가는 스태프는 물론 행사에 참여해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참석자 모두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준비된 여러 영상을 보다가 문득 친구사이가 ‘성소수자 관련 제도 개선에 앞장을 서는’ 인권단체임은 물론이요, ‘커뮤니티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고 ‘성소수자 문화/생활 컨텐츠를 디자인하는’ 인권단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친구사이에는 이를 실행할 저력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 제가 정회원으로서 후원을 하고 있다니! 저도 모르게 느낀 자긍심의 절정 때문인지, 이 대안의 공동체가 곧 가슴 벅찬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던 감사제였습니다.
인권(人權)을 뜻하는 영단어 human rights에서 right라는 단어가 ‘올바른’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비록 사람마다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를지라도 인권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그 자체로 옳고 정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무(無)로부터 이뤄질 수는 없겠죠. 맹자는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정당한 이상을 꿈꾼다 하더라도 일정한 생업과 재산이 없으면 달성하기 힘든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회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요컨대 친구사이의 가치와 비전을 우리 생전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활동하는 우리의 손발 못지않게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적절히 채워진’ 지갑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처음 후원을 시작했던 8년 전부터 지금까지 정기모임과 각종 소모임, 교육 및 문화 행사에 활발히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참여한 몇몇 모임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열정을 불사르는 멋진 게이들이 도처에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회원들의 이야기와 거기에 담긴 생각을 통해, 세상은 상아탑에 갇혀 있던 제가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넓으며 무지개처럼 다양한 삶들이 우리 사회에 켜켜이, 그리고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물론 대한민국에 친구사이가 아니더라도 게이로서 동질감을 나눌 수 있는 집단은 많을 것입니다. 친구사이에 후원한다고 하면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거의 반사적으로 듣는다는 회원들의 각종 증언을 모아 고찰해보면, 친구사이는 대한민국의 다양한 게이 집단들 중 조금 특이한 부류에 속하는 것은 일견 맞아 보입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명멸하는 다양한 게이 커뮤니티 중에서도 여전히 친구사이를 믿고 지지하는 이유는, 친구사이가 하루아침에 쌓아 올릴 수 없는 다년간의 인권운동 경험을 토대로 게이 커뮤니티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발전시켜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옳고 정당한 것을 옹호하던 그 역사적 뿌리로부터 마땅히 올바르고 정의로운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은 순리이니까요.
저는 감사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친구사이는 다채롭고 굳세며 활발하고 감각적이라는 사실에 공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유일무이한 커뮤니티를 더욱 멋지고 풍성하게 가꾸어 나가는 것은 활동가들과 임원들만의 책무가 아니라 회원 모두의 몫이겠지요? 이날 친구사이에서 구체적인 목표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했으니 이제는 감사제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이 호응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시 모르죠, 다음 재정보고에서 정기후원회비 자릿수가 8자리로 늘어날지?
(사진 : 광훈)
친구사이 회원 / 빠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