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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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나이듦' #1]
디어 마이 프렌즈 - 왕언니 '갈라'와의 데이트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언니들’이 걸어온 인생길에도 다양한 삶의 결이 여전히 빛나고 있지요.
아직은 낯설 수도 있고, 감이 안 올 수도 있을 거예요.
오늘 하루는 내일이면 어제가 되는 걸 알면서도, 지나가버리면 나이가 드는 것이.
그래서 문득, 이번 기회에 성소수자로서 나이듦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어요.
성큼 마주하는 언니들의 경험 속에 때론 심쿵하면서 절로 공감하게 된 순간들.
그렇게 언니들과 함께 한 이야기들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풍성하고도 생생한 자신의 삶의 풍경을 진솔하게 들려주신 언니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먼저 친구사이의 대표 왕언니 '갈라'님과의 데이트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크리스 : 언니! >_<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갈라 : 응 나야 뭐 잘 지냈지. 반갑네~
크리스 : 네 언니! 데이트 요청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제가 보니까 ‘커밍아웃 인터뷰’하신 지 딱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 같더라구요. 심정이 어떠셔요?
갈라 : 감회가 새롭네. 영광인지 알아야 되나? (웃음) 심정은 뭐 아무 느낌이 없어요. 그냥 놀러온 거지.
크리스 : 친구사이 올 때마다 놀러 온다는 느낌으로 오시는 거예요?
갈라 : 응 그렇지. 항상 예나 지금이나 그건 변함이 없어요. 친정집 오는 거 같은 느낌? 오~래 있다가 와도 그대로인 듯한. 그래서 참 좋죠. 사람들은 바뀌고 해도 다들 후배이니까 부담이 없지.
크리스 : 알겠습니다. 이번에 저희 소식지에서 데이트 요청 드린 게, 성소수자로서 나이가 든다는 거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눴으면 해서요. 그래서 우선 간단하게 여쭤보고 싶은 건, 언니가 스스로 느끼시기에 ‘내가 나이를 들었구나’라고 느끼시는지, 느끼신다면 주로 어느 때 그렇게 느끼시는지 궁금해서요.
갈라 : 평소에는 잘 모르지. 근데 옛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확 느끼죠. 그래서 요즘엔 사진 찍기 싫다니까. 사진은 거짓이 없어. 그 늙음이 확연히 나타나. 평소에는 모르는데 옛날 친구들이랑 놀러 가면 동영상을 찍었거든. 근데 그게 벌써 십 몇 년 전거라는 거지. 그럼 그때랑 지금이랑 피부도 달라. 그런 거 보면 가슴 한켠이 아련하죠. 해놓은 거 없이 나이만 처먹는구나. (웃음)
크리스 : 어후 넘 겸손하시다~ (웃음) 암튼 차차 얘기를 들어볼게요^^
크리스 : 나이 얘기가 나와서 이건 한번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사실 이쪽 바닥에서는 ‘어릴수록 유리하다, 젊은 게 대수다, 나이 먹으면 힘들어진다’는 말들이 있잖아요. 이런 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갈라 : 글쎄 왜 그런 말들이 있는지 모르겠네. 뭐가 힘든지 모르겠어요. 우리 때는 나이가 적었을 때 이런 문화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남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했지. 근데 이제 이쪽 문화들이 어느 정도 정착돼 가고 많이 이슈가 되고 하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지 않나. 결국엔 그것도 자기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런 건 있겠죠. 젊었을 때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나이 들어서 열정이 좀 식었다고 할까? 그런 건 좀 없지 않아 있지. 그런 것들 때문에 나이 먹으면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다른 이유는 좀 아니에요.
크리스 : 네 우선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말씀 감사하구요. 먼저 그 동안 성소수자로서 살아오신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자 해요. 언제 처음 본인의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자각하셨고, 그때 어떻게 대응하셨는지 해서요.
갈라 : 게이라고 느낀 건 초등학교 때? 일찍부터 알았던 것 같아요. 근데 나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 게이들은 다 혼자 고민을 했을 거예요. ‘나 혼자만 이러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죠. 그런 고민이 가시지는 않으니까 잊으려고 노력도 했고, 그러다가 내가 30대 초반에 공중파에서 ‘친구사이’ 단체와 관련된 방송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전화번호가 나와서 과감하게 전화 걸고 나온 거지. 좀 늦은 감이 있는데 그때는 대부분 20대 중후반의 사람들이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그냥 조금 더 늦은 거죠. 그 이후로는 정체성 관련해서 많이 깨닫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고민이 많이 없어졌어요.
크리스 : 그럼 ‘친구사이’ 나오시기 전에는 혼자 그냥 끙끙 앓으신 거예요? 어떤 점이 힘드셨는지...
갈라 : 그렇죠. 벽장 속의 게이인 건데 그 벽장 속도 거의 블랙홀 수준인 거예요. (웃음) 그땐 다 그랬을 걸요 아마. 근데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애. 이런 커뮤니티를 접하지 않거나 홀로 그냥 고민만 하다가 늙어가는 거죠. 절대 그럴 필요 없거든. 즐겁게 살아야지. 인생 얼마나 산다고. 나오기 전에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죠. 그땐 다 ‘호모’라고 그랬고, 대부분 숨기고 살았을 거예요. 내 나이 또래 중엔 억지로 숨기면서 결혼해 사는 사람도 있을 거야. 참 비참한 일이죠.
크리스 : 혹시 주변에 그런 분이 있으세요?
갈라 : 양띠 모임이라고, 몇 년 전에 나갔었는데 거기 유부남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재수없다고 했지. (웃음) 그러면 다 핑계를 대. 어쩔 수 없었다느니… 거기서 만난 친구 중에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한 애가 있어서 내가 난리를 한 번 친 적이 있지. 걔 지금 잘 살아 너무 혼자. 결혼 안 하고. 잘 살 수 있거든. 집안이 뭐 어쩌고저쩌고, 독자네 뭐네 다 핑계야. 지 인생 지가 사는 거지 부모가 살아주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제 열린 사고를 갖게 됐죠.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사진 (2006)
크리스 : 방금 얘기 관련해서 커밍아웃 인터뷰 보니까 35살 즈음 집에 커밍아웃도 하시고, 가출도 하셨다고 나와 있더라구요. 이후에 어머님의 강요에 못 이겨 정신병원이랑 한의원 신세도 지면서 굉장히 힘드셨다고 들었는데요. 근데 또 궁금한 건 그러면 오히려 막 위축되고 내가 은둔으로 지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커밍아웃 인터뷰까지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하더라구요.
갈라 : 전혀 위축되지 않았어요. 이걸 이기고 나가야만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지. 만약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다시 제자리야. 그럼 그 생활이 나아지겠어요? 절대 그렇지 않거든. 그래서 어쨌든 이것은 겪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의연하게 대처했죠 그 땐. 뭐라고 하든 내 자신을 부인할 순 없으니까. 커밍아웃한 이후에는 오히려 그런 고민을 안 했어요. 용기를 내서 했으면 끝까지 가 보는 거지. 그때 만약 되돌아섰으면 지금도 막 결혼해라 마라 그랬을 거라구.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야. 지금은 최소한 그러진 않잖아. 평생 숨기고 살 자신 있으면 그렇게 사는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밍아웃 전과 후의 삶이 달라져요. 생각들도 달라지고. 커밍아웃 후에는 더 용기가 있어지지. 그 다음에 하나둘씩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러면 내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는 거죠. 시간을 많이 가지고 어느 정도 간극을 줄일 수 있을 때까지는 노력을 하는 거지.
크리스 : 그럼 지금은 어머님이 받아들이신 거예요?
갈라 :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는 잘 못할 것 같은데, 부모들은 잘 모르겠어요. 자식이니까. 내가 부모가 아니어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그냥 혼자 사는가 보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근데 애인 있는 것도 아시니까. 그렇게 사는 거죠 뭐. 그것만 해도 많이 발전된 거죠.
크리스 :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하셨는데, 성소수자로서 나이를 먹으면서도 원가족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할 것 같은 거예요. 왜냐면 현재 국내에서는 동성 결혼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가족구성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원가족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게 좋을지 해서요.
갈라 : 그냥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가족은 가족이니까. 동생이고 형이고 누나고 관계는 그대로인데 뭐 변화가 있겠나.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애. 물론 인연을 끊겠다는 등의 가족도 있겠죠. 근데 그건 그때 당시 부모 입장에서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것들 때문에 그런 거지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형제나 자매 사이는 좀 다를 수도 있어요. 한 집 건너오잖아. 안 봐도 그만인 거지. 근데 부모는 아닌 거죠.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참여 중인 모습 (2013)
크리스 :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또 중요해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생활이잖아요.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막상 제가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보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막 많이 얘기하진 않더라구요. 쉬쉬하거나 아니면 굳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언니랑 좀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직장을 다니는 경우에는 점점 지위가 올라가면서 직장 내 상하관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기도 하고, 결혼적령기에는 또 결혼에 대한 압박도 있더라구요. 언니도 대기업에서 일을 좀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떠셨는지 해서요.
갈라 : 대기업에 다닐 때 좀 신경 쓰이긴 했는데, 뭐 지들이 내 부모도 아니고. (웃음) 왜 결혼 안 하냐고 그냥 툭툭 던지는 건데, 그거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봐요. 그냥 그건 남의 일인데, 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거지. 가십거리도 될 수 있고. 그거에 왜 다 일일이 신경을 써야 돼. 그래서 그냥 다 무시했어요 나는. 하거나 말거나 ‘네 제가 알아서 하죠’라거나, 때로는 그냥 ‘있는데 헤어졌어요’라고 둘러대는 거죠. 그거에 연연해서 스트레스 받을 거 없어요. 그리고 소개시켜 주지도 않으면서 왜 결혼 안하냐고 그러는지 원. (웃음)
크리스 : 근데 또 그런 얘기도 있잖아요. 사회에서는 결혼 안 한 사람은 승진도 어렵다고.
갈라 : 아, 물론 대기업에서는 조금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죠. 이게 좀 아이러니하긴 한데, 대리나 과장급은 결혼에 상관없이 승진 포인트만 쌓으면 그냥 돼. 그 다음부터는 정치 같은 걸 해야 되거든. 아부나 아첨을 한다거나 눈치보면서 일한다거나 하는 거지 결혼을 한다 안한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과장 이상 자리 한 군데서 그렇게 오랫동안 다닐 자신이 있나? 그 전에 짤려. (웃음) 왜 미리 십 몇 년 후의 일들을 염두에 두고 그 걱정들을 해. 웃기잖아. 그리고 부장까지 올라갈 수 있어? 올라가지도 못하면서 그런 걱정들을 해. 한 군데서 부장 자리 하려면 20년 이상 다녀야 하는데. 그건 능력이야. 절대 오판하면 안 돼요. 사회는 냉정한 곳이고 실력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니까. 그럼 뭐 애 둘 낳은 사람은 대리 시키고 셋 낳은 사람은 과장 시키고 하지 왜. 그게 게이들의 정말 크나큰 착오예요. 사회생활 먼저 해 보고 그런 생각해도 되는 거지.
크리스 : 역시 요즘 사회는 능력이 제일이군요. 하긴 요즘은 비혼도 많고 그러니까요.
갈라 : 정말 사회는 냉정해. 실력 없이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요. 어찌 보면 게이들의 편견이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거거든. 내 생각대로 사회가 돌아가나? 안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움츠리거나 ‘내가 이러니까 뭐 안 되겠지?’라고 미리 겁을 먹을 필요가 없어요. 해 보지도 않고.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아요 사회는. 염려 마시고 열심히 사회생활 하셔요.
크리스 : 네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언니가 회사 다니시다 그만두시고 사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직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쭉 일하시면서는 성소수자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서요.
갈라 : 전혀 없어요. 내가 보기에 사회는 사회인 거야. 나는 나인 거고. 그거를 사회에 결부시켜서는 절대 안 돼요. 괴리감을 뛰어넘을 수 없는 거지. 사회는 프로페셔널한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다니는 거지, 내가 게이라고 해서 뭐가 어떻고 이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사회에서는 내가 게이이거나 아니거나 다 같이 일하는 사람인 거예요. 고용주들은 나를 고용함으로써 얼마나 이익을 창출하느냐가 목적인 거니까. 일은 일인 거니까 프로답게 해야 되거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살지도 않고. 굉장히 독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야만 하고. 사업도 12년 정도 했는데, 정말 어려웠지만 그게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았어요.
크리스 : 그렇군요. 언니 말씀이 지금 일하고 있는, 또는 앞으로 일할 후배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갈라 :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잘 살아야 되잖아. 난 좀 걱정이 돼요, 사회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표출이 많이 된 지금 시기에는 보는 눈도 많아질 건데. 분명 이런 것들이 앞으로 연구도 되고 통계자료도 될 거잖아요. 성소수자들이 늘그막에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도 분명 얘기 나올 수 있으니까. 잘 살아야지. 근데 아무 것도 없어 열심히 살 뿐이야. (웃음)
크리스 : 한 가지 또 궁금한 건, 실제로 상담 사례 같은 경우에 보면 성소수자들은 집안이든 직장이든 차별을 당하거나 혐오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참 고민이 돼요.
갈라 : 그런 문제는 해결한다기보다 법제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개인적으로 해결한다는 건 되게 힘든 문제니까. 법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하는 거잖아요.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운동도 법과 관련된 거니까요. 법으로써 어떤 구속력이 정해져야만 부속적으로 다른 게 생기는 건데, 밑바닥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변화가 어렵거든. 지금은 인권에 관해서 얘기하는데, 더 나아가 법제화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성소수자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하고 법제화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노력을 더 많이 해야 되겠죠.
크리스 : 다음은 친구사이에서 활동하신 것에 대해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저나 좀 늦게 들어온 친구들은 언니가 어떻게 활동하셨는지 잘 모를 수도 있어서요.
갈라 : 친구사이 활동은 1998년도부터 시작을 했죠. 어느 일요일에 와서 처음 시작했는데, 뭐 한다고 하면 같이 으쌰으쌰 한다거나 모금 하면 모금통 들고 다닌다거나 포스터 같이 붙이러 다닌다거나 이렇게 처음에 활동을 했어요.
크리스 : 그때가 아까 그 32살에 데뷔하신 때부터인 거죠? 조금 늦게 데뷔하신 것 같아서요.
갈라 : 약간 늦었죠. 근데 뭐 늦었다기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웃음) 재밌었어요. 대부분 다 친구고 비슷한 연배고 했으니까. 몇 명은 지금까지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되게 특별히 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같이 있는 게 좋았고, 새로운 의식이 생겼고. 많이 배웠죠. 근데 그땐 동질성 하나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크리스 : 그 당시엔 직장인이셨을 것 같은데, 다니시면서 활동하시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갈라 : 토요일 일요일엔 쉬었으니까. 주말에. 회사에도 뭐 들키면 들키는 거지. 일부러는 안했지만.
크리스 : 근데 진짜 언니 관련 글 보면 언니 덕분에 분위기도 너무 즐겁고 좋았다고 그러더라구요.
갈라 : 그런 거 보면 진짜 고맙죠. 욕을 안 해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워. 근데 뭐 욕해도 괜찮지 뭐. (웃음)
크리스 : 이후에 마린보이, 지_보이스, 또 가족모임 등에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갈라 : 원래 마린보이를 먼저 했을 거고, 지_보이스도 시작했을 때 중간에 그만뒀다 들어가서 공연도 같이 했죠. 재우 보고 들어간 건데, ‘언제든지 나가도 괜찮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흐지부지됐고. (웃음) 근데 직장생활 하면서 일요일마다 그렇게 나와서 한다는 게 쉽진 않았죠. 한 6년 정도 했나요? 되게 재밌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고, 아련하죠. 어떤 인물들이 올해는 공연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기도 하죠. 맛있는 것도 싸들고 와야 되는데 그럴 여력이 없는 거야.
크리스 : 그래도 매번 공연도 보시고 하잖아요. 올해도 공연 보러 오셨고. 지_보이스 노래 중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낙원동 블루스>잖아요. 언니를 위한 헌정곡이라는 얘기도 있고. (웃음)
갈라 : <낙원동 블루스>는 참 애착이 있죠. 트로트 장르는 이 곡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좀 슬프죠. 되게 구성지고. 다음엔 밝은 트로트로 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중 소모임 '마린보이' 라인댄스팀에서 활동하던 모습 (2005)
크리스 :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하신 게 언니 삶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해서요.
갈라 : 비타민 같은 거예요. 사회생활 하면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잖아요. 그걸 푸는 방편일 수 있었죠. 그래서 열심히 나왔고, 시간이 허락돼서 나왔다기보다 난 시간을 만들어서 나왔지. 어떻게든 나가서 뭐 해야 되니까. 그래서 보면 시간이 돼서 나오는 사람들은 오래 못 나오더라구. 내가 시간을 만들어서 나오고 그에 관한 열정이 있어야 몇 년씩 하는 거지. 그러니까 뭐든 하려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줘야죠. 그리고 누구한테 보여지는 거잖아요. 처음 틀리면 내가 알고 두 번째 틀리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세 번째 틀리면 대중이 다 안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사명감이 있어야죠.
크리스 : 정말 좋은 말씀 해주신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사회생활에 대학원도 다니면서 평일엔 끝나고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친구사이 일을 매일 하고 있는 거예요. 소식지 기획하고 녹취 풀고 글 작성하고, 책읽당이나 모금/홍보팀 관련 활동도 하면 가끔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좀 지치는 거죠.
갈라 :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들면 너무 욕심을 많이 부리면 안 돼요.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역량만큼만 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1을 할 수 있는데 3,4,5, 이렇게 역량을 넓혀나가려 하면 어느 순간 지쳐서 0.5도 못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1 정도 하고 그 다음 2,3,4,5 이렇게 가야지, 그냥 열정만 가지고 하면 힘들거든 언젠가는. 자기 수준도 알고, 조금씩조금씩 넓혀가는 거죠. 그래서 신입 중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하면 좀 불안해. 저거 또 언제 안 나오나 이런 거니까. 그런 것들을 언니들이 잘 얘기도 해주고 격려해줘야지 그 친구들이 오래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크리스 : 말씀 명심해서 새겨들을게요. 근데 이제 그렇게 활발히 활동하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셨어요.
갈라 : 그건 이제 회사가 힘들어가지고 그러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큰 회사 다닐 때는 젊기도 했고 안정적이어서 그런 고민을 안 했는데, 나이도 들고 벌이도 시원찮아서 스스로 위축되는 거죠. 근데 이게 사람이 참… 비참해진다고 해야 되나. 내 주변 지인들은 다들 ‘언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위로해줬는데, 스스로 못 견디겠는 거야.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빚만 대추나무 연 걸리듯 걸려 있고, 이러니까 점점 놓게 되는 거지. 그때부터 이제 조금씩 그만 두고, 지_보이스도 못 나가게 되고 그랬어요. 얼마나 어려웠냐면 차비가 없어서 어디를 못 다녔어요. 집에 있는 중고서적을 팔아서 교통비를 벌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런 활동을 하기엔 너무 벅찼던 거죠.
다행히 집 근처에 재경이가 사니까 술을 많이 사 줬어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마음이 정말 고맙죠. 암튼 정말 많이 배웠어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도 더 많겠지만. 차라리 고생을 빨리 겪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걸 겪으면서 직업이란 게 정말 신성한 것이라는 걸 느꼈어요. 직업의 중요도를 알았고, ‘나는 참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걸 절감하며 스스로를 낮출 수 있었던 거죠. 아무 것도 가진 건 없지만 마음은 많이 커졌다고 할까. 이렇게 위안을 하는 거지. 좀 더 남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있고요. 암튼 한번 딱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겪고 나니까 내 스스로 멀어지더라구요. 첫째는 미안하기도 하고.
크리스 : 그렇군요. 이렇게 진솔하게 말씀해주시니까 감사하기도 하구요.
갈라 : 인제 창피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다 지나간 일인 거고, 앞으로 닥친다고 해도 뭐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건데. 한 번 실패한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우리 젊은 친구들한테 좀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찍 고생을 겪을수록 좋은 거죠. 물론 고생다운 고생을 해야겠지만. 그건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이 판단하는 거구요. 그러니까 나 스스로 뭐든지 결단하고 판단하면 안 돼. 주변 사람들 얘기들을 다 들어봐야 올바른 판단이 서는 거니까.
▲게이코러스 '지_보이스' 10주년 기념공연 <열, 애> 중 ‘낙원동 블루스’ 노래를 부르는 모습 (2013)
크리스 : 그래도 이후 2013 지_보이스 10주년 정기공연 <열, 애> 때는 게스트로, 2014 워크숍 <다시 만난 친구사이>에서는 ‘언니에게 물어봐’라는 토크쇼 코너에서 호스트로 뵀던 기억이 나요. 오랜만에 활동하시니까 어떠셨나요? 새로운 회원들도 많고, 특히 다 동생들이라서 감회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반면 세대 차 같은 것을 느끼셨을 것 같기도 하구요.
갈라 : 그땐 뭐 세대 차이라기보다 그냥 이쁜 거야. 다들 열심히 하고 그런 모습이 참 이쁘고, 참 잘 논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러면서 이런 친구들이 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했구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적게 벌거나, 또는 공부를 잘 하거나 못 하고를 떠나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산다는 게 제 모토인 거죠. 자기 정체성을 극대화시킨 나머지 그게 가림막이 돼서 다른 걸 못하게 되면 안 돼요.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이 조금 심약하다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고 열심히 놀고, 또 노후가 보장이 안 되니까 40대부터 준비를 해야 돼죠.
크리스 : 그렇군요. 노후 준비 관련해서도 이따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갈라 : 난 지금 슬슬 걱정이 돼요. 국민연금 붓고는 있지만 그게 또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건데. 그런 생각들이 막연히 스쳐 지나가는 거죠. 여기 있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잘 좀 이끌어주면 좋겠어요.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동생들을 위해 도움 줄 준비가 돼 있으니까.
크리스 : 또 이제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게 연애잖아요.
갈라 : 난 어후 연애 복은 지지리도 없어요. (웃음)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사람이 날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나는 실은, 그렇게 많이 외로움을 타진 않아요. 지금 만나는 애인도 나보고 성격이 참 독특하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있으면 있고 없으면 그만인 성격의 소유자여서 막 애걸복걸하거나 소개시켜달라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애. 연애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어요. 어찌 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일 자체가 소모적이라고 생각해서 한편으로는 포기도 했었고.
크리스 : 언니가 생각하시는 지금 애인과의 미래는 어떤가요?
갈라 : 그냥 잘 사는 거지 뭐. 모르겠어요, 직장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도. 돈 좀 모아서 제주도 같은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어요. 난 여기 서울에 살기 싫어요. 너무 각박하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여유로움을 찾아볼 수 없잖아요. 난 지금이라도 좀 여유가 되면 떠나고 싶어요. 너무 힘들게 사업하면서 어려웠던 시기를 겪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크리스 : 저는 곧 죽어도 서울에서 살고 싶거든요. 아직 고생을 덜 했나봐요. (웃음) 근데 연애 관련해서 ‘친구사이 활동하느라 연애하기 쉽지 않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거든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걸 벅차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또 활동하면서 연애까지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의견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셔요?
갈라 : 아무래도 첫 번째 이유가 커요. 인권단체에서 활동한다고 하면 뭔가 기가 쎄 보이잖아. 그러니까 범접할 수 없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노는 건 그냥 예사롭게 노는데 이 사람들은 부담스럽게 보는 거죠. 뭐가 있는 거 같고 배운 게 많은 것 같고. 개뿔 아무것도 없는데. (웃음) 근데 이제 의식이 다름을 인정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소개팅 같은 데서 ‘친구사이 활동한다’고 하면 일단 한 번 접고 보드라고. 근데 사실은 그냥 자기 식이 아니니까 아닌 거지. (웃음) 그리고 또 활동하면서 친구들을 사귀니까 별로 필요 없어보이기도 해요. 지들끼리 막 술 먹고 새벽 1~2시 넘어서까지 노니까. 근데 또 보면 해쳐 먹을 년들은 또 다 해쳐 먹어요. (웃음)
▲친구사이 하반기 엘티(LT) 때 참가 모습 (2011)
크리스 : 어후 언니랑 얘기하는 거 너무 재밌네요. 지금까지 살아오신 삶을 쭉 살펴봤는데, 그 동안의 삶의 여정을 좀 들어봐야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좀 여쭤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제 어느새 친구사이의 대표 왕언니이자 50대를 대표하는 언니가 되셨어요. 느낌이 어떠세요?
갈라 : 사실 별 생각이 없긴 한데, 좋은 거는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거예요. 왜 그 젊은 애들이 ‘꼰대’라고 하잖아요. 그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죠.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애 지금이. 의연하게 모든 그 대처하는 것들이 깜짝 놀랄만한 것들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성숙됐다고 해야 되나? 한편으론 좀 무뎌지기도 한 거죠. ‘아유 뭐 세상 이럴 수도 있는 거지‘라는 게 많아져서 더 편해졌어요. 근데 또 50살이 되니까 아까 얘기했듯이 노후 걱정이 이제 물밀 듯이 밀려오는 거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제 필요한 시기고, 좀 있으면 예전에 활동했던 친구들은 다들 50이 될 거 아냐. 되게 막연해요. 지금으로써는 그냥 직장 생활을 계속 하는 것뿐인데. 모르겠어요 그건.
크리스 : 그게 어찌 보면 그 전의 선배들이나 언니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걸 또 보기 힘드셔서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갈라 : 없죠 주변에 그런 사람은. 근데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50이 넘어가면 이런 고민 하지 않겠어요? 근데 그들도 나와 다를 바 없잖아. 집에 유산이 많거나 하면 걱정 없겠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소기업에 다니고 나이 들면 똑같은 고민을 할 텐데 방법이 딱히 없는 거예요. 그냥 소박하게 돈 모아서 사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주위에 박스 주우러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얘기가 남의 얘기 같지 않고. 그래서 국가적으로 우리나라가 노후를 어떻게 책임져 줄 수 있나도 고민해보고. 기껏해야 국민연금 외에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인생이 고민만 하다가 관 속에 가는 거야. (웃음) 인생 별 거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아등바등 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양팔저울 같기도 하고.
크리스 : 진짜 이게 사회적으로나 커뮤니티 내에서도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갈라 : 근데 이게 다분히 개인적인 것 같지만, 국가에서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근데 뭐 지금 정권에서는 최순실한테 물어봐야 되겠죠? (웃음)
크리스 : 어머, 우리 노후까지 비선실세한테 달려 있는 건가요? (웃음) 10년 전 커밍아웃 인터뷰 당시에 ‘미래에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꾼다’고 하셨어요.
갈라 :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그 동갑모임에 보면 나 포함 5명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제주도에 살거든.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가서 소박하게 집을 짓고 1층에는 카페를 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셰프를 해서 빵을 굽고, 2층에는 펜션을 하는 이런 꿈을 가지고는 있죠. 그리고 우리는 3~4층에서 살자는 계획도 있고. 근데 그걸 실현하려면 뭐니뭐니해도 결국 돈이잖아. 그래서 돈을 우리 60대까지 열심히 모으자는 계획은 세웠죠. 늘그막에 같이 살면 서로 의지하고 좋으니까. 애인과 친구는 또 다르거든. 애인이 없더라도 친구는 꼭 있어야 돼요. 그건 정말 필요해요 인생에 있어서. 내가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 친구한테 얼마나 감사해야 돼. 나는 그런 생각하면 참 복 받은 사람이죠. 친구들이 꽤 있으니까. 늙어서 외롭지 않은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지금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크리스 : 실제로 공동체 중에 ‘무지개집’이라는 주거공동체가 생겼잖아요. 한 번 가보셨어요?
갈라 : 갔었죠. 집들이 할 때 갔는데 열심히 고민해서 그렇게 사는 게 결국엔 꿈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거니까. 지금은 직장도 다 서울에 있다 보니 서울에서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 거기서 좀 살다가 여유가 되면 더 넓은 곳도 짓고 사는 게 얼마나 좋겠어요. 뭐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고 같이 모여서 산다는 것이 중요하죠. 또 나보다 못한 사람은 내가 안고 살 수도 있고, 나보다 많은 사람은 투자할 수도 있고. 내가 재밌게 해주면 되잖아.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모여야지. 서로서로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불편함을 좀 감수하고 살 생각을 해야죠. 실버타운 같은 경우도 일맥상통 할 것 같고. 거대한 꿈이라기보다 소소하게 그냥 내 곁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거죠.
크리스 : 그래서 언니가 꿈꾸시는 미래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어떤 모습인지, 어떤 걸 기대하고 계신지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했어요.
갈라 : 서울에서는 땅값, 집값 이게 미친 거잖아. 굳이 서울에 살 필요가 뭐가 있어. 그래서 좀 나가서 닭도 좀 키우고 달걀도 팔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냥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근데 이제 나이 들면 대부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럽게. 특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더 좋죠. 늙어도 수입은 있어야 되니까 수입거리를 좀 찾아야지. 뭐가 있겠어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소소하게 살다가 가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크리스 : 친구사이 빨리 지방에 지부 하나 내야겠네요. (웃음)
갈라 : OB(Old Boys)들 지방에? OG(Old Girls)인가? (웃음)
▲언니와 함께 익선동 골목에서.
달라진 익선동 골목을 거닐었는데, 언니는 연신
'어머 세상에, 여기가 이렇게 바뀌다니. 웬일이니~'를 외치면서
예전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삼켰다.
크리스 : 이제 마무리하려고 하거든요 언니. 장시간 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마지막 질문 드리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삶의 ‘롤모델’을 찾곤 하잖아요. 누군가는 언니를 롤모델로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에게,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갈라 : 롤모델은 무슨. (웃음) 음… 성소수자라고 해서, 그걸 특화시켜서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 돼요. 이게 엄연히 우리도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거기에 걸맞은 의식과 행동이 뒤따라줘야 돼요. 그걸로 인해서 스스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거기에 대한 부산물들은 본인 스스로 책임져야죠. 어떤 핑계를 댈 생각을 하지 말고요. 저보다 우리 젊은 세대가 누리기 참 좋은 세상이잖아요. 스스로의 능력을 잘 갈고 닦아서 좋은 사회의 일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주어진바 최선을 다해서 살아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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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좋은 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