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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7 : 달호
2023-10-06 오후 18:28:00
955 0
기간 9월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친구사이 구성원 인터뷰입니다.

(기획의도 등은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page=2&document_srl=620205 참고)

인터뷰 대상은 친구사이(소모임, 사업팀 등 모두 포함)에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퀴어 당사자 모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께서는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인터뷰 신청 링크: https://forms.gle/h2BsEmMNBsoQko2e7

 

 

[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7

: 달호(소식지팀)

 

 

1. 나를 궁금해해준 소식지 팀장님
2. 대안학교: 관계의 원형
3. 사랑보다 먼, 우정보단 더 머나먼
4. C는 커밍아웃
5. 왜 슬픈 커밍아웃 후기는 없는 거죠?
6. 갈아넣는 연애와 차단하는 쾌감
7. 내 다르고 닳은 이름, 달호

 

 

  달호는 나와 같은 소식지팀원이다. 그는 지금까지 ‘내 불필요한 경험들’이라는 제목으로 여덟 편의 칼럼을 연재했다. 그의 칼럼에는 세심하고 남 눈치 많이 보는 사람이 게이기 때문에 보게 되는 험한 꼴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의 이야기가 글로 이미 드러나 있었기에, 특별히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를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올해 2월 소식지팀 모임에서였다. 그날따라 다섯 명이 다 모였다. 평소 사적인 얘기를 많이 주고받는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다 모여 근황을 이야기하다보니 나는 가족 얘기를 조금 했다. 달호는 나와 거의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공감해 주었다. 그에게서 긴 사연의 스멜(?)을 감지했으나 그 자리에서 풀 수는 없었고, 회의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그날 모임이 끝나고 달호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인터뷰할 사람이 떨어져 급기야 내부조달(?)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였으나(이것은 맞는 말이다), 어쨌든 인터뷰이(interviewee) 선정을 좀 다양한 소모임과 팀의 구성원으로 해보겠다는 명분을 갖고 달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달호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인터뷰는 3월 중순이었다. 부끄럽게도 그 결과물을 9월호(를 가장한 10월 초)에 내어놓는다. 바쁜 일상을 탓하고 내 탓은 하지 않겠다. 올해 안에 나온 게 어디냐며.

 

 

1. 나를 궁금해해 준 소식지 팀장님

 

플로우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호 제가 감사합니다. 약간 떨리네요.

 

플로우 일단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거는, 소식지에 글을 싣고 계시잖아요. 애초에 소식지 팀에 들어오시게 된 것과 왜 글을 쓰고 싶으셨는지가 궁금했어요.

 

달호 저는,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긴 한데, ‘게이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쪽(게이) 친구 무리가 있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는 않고요. 우리가 SNS로는 많은 게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게이들과 무리지어 다니면서 놀아야 될 것 같고, 흔히 얘기하는 패밀리를 갖고 싶었어요.

 

플로우 술번개라든가, 동호회라든가.

 

달호 네. 매 주말이 파티여야 될 것 같고. 군대에 있을 때 저는 처음으로 ‘게북’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플로우 게이 페이스북?

 

달호 네. 계정을 어떻게 타고 들어가다가 보니까, 게이들이 많은 거예요. ‘나도 전역만 하면 내 삶도 저렇게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역을 하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바로 알지는 못했고, 여기저기 가보긴 하는데, 내가 생각만큼 무리 안에서 잘 어울릴 수가 없는 거예요. 정말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려봤던 것 같아요. 처음 나갔던 책 읽는 모임에서 터울 형(소식지 팀장)을 알게 됐어요. 군대 전역하고 처음 나간 모임이었는데, 거기 터울 형이 있었고 형이 말을 많이 걸어줬어요. 그게 고마웠죠.

 

플로우 그때 친구사이도 오게 되신 거에요? 

 

달호 아뇨. 친구사이는 다른 계기로, 이 모임 저 모임 전전하다가 오게 됐어요. 친구사이 갔을 때, (다른 모임에서 만났던) 터울 형이 소식지 팀장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친구사이 모임에서 ‘어떤 활동에 관심이 있냐’, 하고 체크하는 게 있길래 소식지에 체크를 했어요. 터울 형이 바로 합류를 권했고, 저도 흔쾌히 하기로 했죠. 저는 오히려 터울 형은 ‘내가 글 쓴 걸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흔쾌히’ 받아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들어요.

 

플로우 터울 형도 궁했던 게 아닐까요? (웃음) 또 궁하다고 아무나 받아 주진 않아. 

 

달호 맞아요. 아무튼 그렇게 친구사이 소식지팀에 왔고, 글쓰는 건 원래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글쓰기 수업을 많이 했거든요. 흔한 거 있잖아요. 영화에나 나오는, 바람직한 국어 선생님. 사연이 있을 것 같고,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서 우수에 찬 눈빛으로. 시 쓸 것 같고.

 

플로우 문학소녀 같은.

 

달호 네. 그 선생님이랑 국어 시간에 글 쓰고 그걸 돌아가면서 읽고. 다들 울고불고…(웃음) 그러면서 글 쓰는 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안 쓰지만, 당시에는 그래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저는 또 인상적이었던 게, 글쓴이 닉네임 옆에 소개글에 ‘상쾌한 타협을 하겠습니다’ 라고 돼 있잖아요. 이게 어떤 마음으로 쓴 소개글인지 궁금했어요. 타협이 상쾌할 일은 잘 없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면 상쾌한 타협이 되는 건지도 궁금하고요.

 

달호 저는 어렸을 때 대안학교를 나왔어요. 학교에 굉장히 몰입해서 다녔고, 학교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노출을 많이 시키는 학교였어요. 그런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다 보니까, 매 순간을 투쟁처럼 살게 되는 거예요. 내 삶에서 선택해야 하는 건 사실 별 게 아니잖아요. 근데 매 선택을 내 신념을 지키냐,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냐,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도, 상사가 말을 좀 막 했어요. 그거 고치는 거 하나가 사회를 바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의 일상은 물론 중요하지만, 지나가는 일상이잖아요. 바꾼다고 또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제가 인생을 매 순간 그렇게 살아왔던 거고, 고달프더라고요.

 

플로우 말 한마디마다 싸우고 꼬투리 잡고 하는 게. 

 

달호 그렇다고 내가 사회운동 하는 것도 아니고, 인권단체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인생 제1의 목표는 내 입에 풀칠하고, 내 커리어가 제일 중요한데. 괜히 그 작은 일상에서는 타협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제가 게이고, 소수자로 살아왔던 경험이 이런 성격에 영향을 분명히 끼쳤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우리한테는 일상의 매 순간이 운동이어야 되는 게 있으니까.

 

플로우 그렇죠. 그런 부분도 있죠.

 

달호 의식적으로 인생을 ‘타협하냐 싸우냐’로만 살았을 때 고달파지고, 정신건강을 챙길 수가 없어지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상쾌한 타협을 이야기했어요. 어느 정도가 상쾌한 타협인지 나름의 기준이 있진 않아요. 삶의 모토처럼 갖고 있는 거죠. 제가 제 스스로를 또 궁지로 몰아넣을 때, 가급적 빨리, 상쾌하게 타협해도 괜찮다는 걸 좀 상기시키고 싶어서요.

 

플로우 공격에 대해 면역 반응이 나올 때마다, 진정제 같은 역할을 해주는 모토네요. 

 

달호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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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안학교: 관계의 원형

 

 

플로우 아까 대안학교 다니셨던 얘기를 잠깐 해주셨는데, 몇 학년 때부터 가신 건가요? 

 

달호 중학교 때부터요. 중고등학교 6년을 쭉 다녔죠. 가게 된 건 엄마의 욕심이었죠(웃음). 아빠가 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엄마가 혼자 저랑 형을 쭉 키웠거든요. 원래 엄마의 생존 터전은 교회였어요. 완전 보수 기독교인인데, 또 웃긴 건 그렇게까지 신념을 가진 보수는 아니에요. 한국 표준형 보수랄까? 이런 집들은 또, 내 자식은 특별하게 잘 교육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도 그랬죠. 그래서 대안학교를 보냈어요. 

 

플로우 잘 안 알아보고 보내신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달호 그러게요. 학교에서 계속 사회적 이슈를 계속 배우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나중에 친구들이랑 우스갯소리로 ‘내 주변 사람들만 있으면 녹색당에서 대통령도 나오겠다’하고 다니기도 했어요(웃음). 저는 그 학교에 엄청 몰입해서 다녔어요. 내가 속한 집단에 완전 저를 일치시킨 거죠.

 

플로우 내집단 의식이 확실하셨군요.

 

달호 네. 저는 그 학교가 저의 홈그라운드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거기에서는 운동 잘하고, 축구 잘하는 친구가 메인이 되는 게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중학교 땐 좀 겉돌았던 것 같기도 해요.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처음으로 아빠 얘기를 써서 그걸 읽었는데 잘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어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게 제가 인생에서 겪었던 첫 소수자성이겠죠. 내가 이걸 학교에서 모두에게 얘기하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시기는 온갖 게 다 상처인 시기잖아요. 학교에서는 내가 가진 상처를 남들에게 공유할 수 있고, 그게 무난하게 잘 받아들여지고, 심지어는 그걸 가치 있게 생각해 주는 분위기였던 거죠.

 

플로우 부끄럽거나 드러내기 싫었던 거를 드러냈을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인 거고, 그걸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었던 거네요. 

 

달호 맞아요. 

 

플로우 그때부터 알았어요? 게이라는 것도?

 

달호 (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건 태초부터 알았죠(웃음). 게이라는 말이나 개념을 알았던 건 아니고요. 어렸을 때는 내가 다르다는 거를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야동을 봤고, 그때부터 나는 여자들이 헐벗은 야동을 찾지 않게 되고, 오히려 남자들이 헐벗은…(웃음)

 

플로우 (웃음) 그렇죠. 완전 헐벗은.

 

달호 당시에는 연애라는 관계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뭘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랐고, 주변에서 남자가 남자랑 연애하는 걸 본 적은 없으니까. 사람들이 얘기하는 ‘이성적인 감정’이라는 거를 저는 꽤 오래 외면하고 살았어요. 성애적인 관심은 혼자 야동을 보면서 해소했던 것 같고, 제가 그 당시에 많이 갈구했던 관심은… 뭐랄까, 대중의 관심이었어요. 

 

플로우 아, 무대에 서는 느낌인가요?

 

달호 네. 무대긴 한데, 학교에서 학생회장 같은 거 하면서 충족되는 정치적인 관심이죠. 당시에는 그런 종류의 인생에 몰두했기 때문에, 누굴 (연인으로) 만나볼 생각은 못 했어요. 들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게이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누구든 만나보는 애들도 있잖아요. 호기심이 엄청난 친구들이요. 저는 그럴 생각은 전혀 안 해봤어요.

 

플로우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나요? 끌린다거나.

 

달호 아예 없던 건 아니에요. 당연히 동급생들 중에서 있었고. 다만 그때는 그걸 단순히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걔랑 유별나게 친해지고 싶다는 거지, 걔랑 어떻게 해서 한번 뒹굴고 싶은 것까진 아니었죠. ‘쟤는 다른 사람 말고 내 친구여야 되는데’,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청소년기에는 섹슈얼보다는 로맨틱에 가까운 게이, 아니면 소유욕이 있는 게이 정도로.

 

달호 그렇죠. 진지한 성격이고, 그걸로 주목받는 것 좋아하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 퀴어 영화는 또 엄청 봤어요.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시작해서, 아무튼 p2p 사이트에서 퀴어, 이반, 게이, 이런 검색어로 쳐서 나오는 온갖 것들을 봤죠. 당시에 한글 자막 없는 거 어떻게든 보겠다고 영어 자막으로 구해서, 영어도 잘 못하면서 꾸역꾸역 봤죠. 보다 보면 ‘당연히 나에게도 언젠가는 사랑이 오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달호에게 대안학교는 어딘지 모르게 겉돌던 자신이 진심으로 소속감을 느낄 만하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던 듯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맺어나가게 될 관계의 이상적인 모습을 얻게 된 곳이었다. 사뭇 진지하고, 자신의 아픔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것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느끼는 묵직한 연결감이 달호에게는 중요했다. 게이 소셜에서도 이런 관계를 찾으려 했고,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겠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염증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상쾌하지만은 않게’ 타협을 하고 있기도 했다.

 

 

3. 사랑보다 먼, 우정보단 더 머나먼

 

달호 제가 학창 시절을, 내가 속한 집단에 나를 완전히 일치시켜서 지냈다보니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걸 찾았어요. 그렇지만 찾을 수 없었고, 그게 옛날에는 절망감이었고, 지속적으로 우울했어요. 이제는 아니지만…

 

플로우 게이 판에서는 친구들을 사귀는 게 왜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달호 이유는 모르겠고, 제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에요. 제가 그나마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사람들하고 관계 맺기에 성공했던 사례들은, 같이 뭘 일할 게 있을 때였어요. 저는 요즘에 느끼는 건데, 잘 놀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항상 생산성 있는 걸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과 놀면서 가까워지는 게 잘 안 되고, 동기부여도 잘 안 돼요. 

 

플로우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놀 걸 만들 에너지가 없으신 거군요. 

 

달호 그러니까 나도 이상한 거죠. 친구가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같이 놀 생각은 안 하니까. 연인이든, 섹스 파트너든, 그건 성적인 끌림이 동기부여가 되잖아요. 아니면 연애 자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든. 근데 친구는, 친구를 갖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그러려고 게이들을 두 번 세 번 만나러 갈 동기부여가 잘 안 된다는 거죠. 특히나 지금처럼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때는 더 그렇고요. 

 

플로우 친구관계가 그렇게까지 해서 만들어야 되는 건가, 싶은 거죠.

 

달호 네. 친구라는 게, 내가 얘 당장 안 만나면 죽는 건 아니잖아요.

 

플로우 그렇죠. 보통 친구는 자연스럽게 세팅된 환경에서 알게 되는 사람들이긴 하죠. 내가 친구를 새로 사귀러 (서울에 안 사는데) 서울로 가겠다는 경우는 잘 없죠. 

 

달호 저는 회사 생활을 하는 가장 큰 저의 이유가 우울증 예방이거든요. 왜냐하면, 삶의 공백이 많아지면 생각을 많이 하는 타입이고, 욕심도 많아져요. 제가 가장 친구를 원했던 시기는 대학 마지막 학기쯤이었어요. 인생의 여백이 있던 시기여서 그 시기에 게이들하고 어울려 다녀야 될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보니까 굉장히 우울했어요. 친구를 사귀고 싶었고, 혼자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번진 거죠. 정말 삶에서 가장 강렬하게 원했던 거를 꼽으라면 이쪽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게이 베프, 게이 친구들과 늘 어울려다니는 생활이 허상이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 같아요.

 

플로우 그 시기에 유독 더 그랬던 건가요?

 

달호 군대 전역하고 직장을 갖기 직전까지, 그 시기가 게이 친구들을 가장 강렬하게 원했던 시기 같아요. 아직도, 제가 가장 엉망으로 썼다고 생각하는 글, 나한테만 의미가 있고 정리는 되지 않았던, ‘나의 드래그’라는 글이 있어요.

 

플로우 네, 읽었어요.

 

달호 그게 이쪽 친구를 갖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거든요. 제가 정말 강렬하게 원했던 만큼, 다시 읽어보면 그 글도 잘 정돈돼 있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한 번은 어떤 인권단체에서 하는 세미나에 갔어요. 어떻게든 (이쪽) 사람을 만나고 싶고 친해지고 싶으니까. 장소가 아마 프렌즈(게이 바)였던 것 같은데, 어디인지 못 찾겠더라고요. ‘나는 뭔 놈의 게이 바도 하나 모르나. 이쪽 친구가 있었다면 모를 수가 없는데, 나는 모르네.’ 싶어서 허탈했어요. 서울까지 나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왔으니까요. 이쪽 독서 모임에 나가는 것도 저한테는 매번 도전 같았어요. 무슨 대회에 나가는 기분. 오늘은 잘 해내고 왔지, 오늘은 아냐. 자꾸 평가하고. 매번 실패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어디든 편하지 않은 게 힘들었고, 힘을 계속 주고 있어야 하니까. 

 

플로우 우정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이런 노래 같이.

 

달호 네. 저의 결론은, 친구는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가 노력으로 친구를 쟁취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게이 커뮤니티에 들어오면서 이런 허탈함과 소외감을 처음 느껴본 것 같아요. 그리고 돌이켜보니, 친구 사귀는 게 자연스러웠던 학창시절에도 소외감을 느끼던 애들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인생에는 그런 사람들이 늘 있었구나. 그게 내가 아니었던 것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참 못난 인간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때도 학교 가는 것 자체가 매일 도전이었던 친구가 있었겠죠. 오늘은 잘해내고 말 겠다는 마음으로 갔다가, 늘 실패하고 돌아온 것 같다고 느낀 친구가 있었겠죠. 그렇다고 당시 그랬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건 좀 오만한 것 같고요. ‘나만 그런 건 아니었겠구나’ 정도.

 

플로우 게이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었던 거죠. 

 

달호 그렇다고 진심으로 내가 게이가 아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이상하게 한 번도, ‘다시 태어나면 게이로 살래, 스트레잇(이성애자)으로 살래?’ 라고 누군가 물어봤을 때, 흔쾌히 이성애자로 살겠단 말은 잘 안 나와요. 참 이상한 일인데 그렇게 돼요. 내가 이미 게이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애초에 지금 그렇게 살아온 내가 게이랑 스트레잇을 놓고 고민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이성애자로 사는 건 나한테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감이 없는 것 같아요. 막연히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데, 제 인생에 없는 걸 고를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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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는 커밍아웃

 

플로우 처음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셨나요?

 

달호 대학교 한… 3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 어플을 다운받아서 누구를 만나봤어요. 글에도 썼어요.

 

처음 번개했을 때 생각이 났다. 나라고 대단히 겁이 없어서 밤 열한시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 집을 찾아간 게 아니다. 협박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닌지, 괴담에나 나오는 일을 겪게 되는 건 아닌지. 한 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계속 새로운 최악의 수가 자동생성되었다. 앞뒤도 없이, 묶여서 거꾸로 매달리면? 의자에 꽁꽁 묶이면? 뭐 이런 대책 없는 걱정도 했다. 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인적 드문 오르막을 오르자, 누구 하나는 내 행방을 알고 있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때, 이쪽 친구는커녕 커밍아웃 경험도 없었다. 누구에게 알려야 좋을지 떠올리는 동안 난 이미 버스에서 내렸고, 무사히? 모르는 남자가 사는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다. … (중략) … 진짜 문제는 위험을 감수해도 딱히 대단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 게 아니란 거다. 나이는 정말 문제가 아니다. 어릴 때 나는 내가 바라는 바를 더 명쾌하게 남에게 말할 줄 알았다. 아직 경험이 없으니 그래도 감정적인 유대를 가질 수 있는 관계를 바란다던 내게, 그럼 열어놓고 한 번 만나보자고 열한시에 자기 집으로 오라던 서른 넘은 번섹남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런 목적’이었다고 밝히는 것으로 그 관계는 끝이 났다. 

ㅡ달호, 내 불필요한 경험들 #4

 

달호 애기 호모들 적당히 구워 삶아서 한 번 먹고 버리기 얼마나 쉽겠어요. 지금 나이 들어서 생각하면, 경험이 가지고 있는 위계가 대단하거든요. 

 

플로우 그래서 처음 만났던 분이 글(위 글 참조)에 썼던 분인 거죠? 처음 번개 가는데, 밤 열한 시에 모르는 남자 집 갔던. 

 

달호 네 맞아요. 그 사람이 처음 제가 했던 번개고, 첫 섹스죠. 섹스하는 순간만 놓고 보면 좋았는데, 섹스 앞뒤로는 모든 것이 구렸어요. 그래서 그 순간도 별로 좋게 기억되지 않는 느낌이에요. 그때 힘들었어요. 그걸 견딜 수가 없어서, 처음 커밍아웃을 했던 거고.

 

플로우 친구한테 커밍아웃했을 때 반응이 어땠어요?

 

달호 잘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제 얘기를 흥미롭게 들어줬죠. 제가 경험이 없으니까, 제가 어떤 사람이랑 자면, 다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죠. 연애할 상대를 그렇게 막 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플로우 당연히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달호 (커밍아웃한 친구) 걔한테, 이럴 때 어떻게 하냐고, 언제 괜찮아지냐고 묻기도 하고요. 그 친구는 연애를 좀 잘하는 친구였어요. 여하튼, 그 이후로도 한동안 연애와 번개를 구분 못 하고 지냈어요. 지금은 만남에 대한 명명도 잘 되고 선도 비교적 분명해졌지만, 모호하던 시절에는 많이 헤맸어요. 연애와 관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서, 이걸 잘 구분할 수 없는 상태인데 그걸 이용해먹는 개새끼들이 또 얼마나 많아요(웃음). 사람 마음 갖고 노는. 제 대학교 후배이자 친한 여사친이랑 연애 상담을 한번 한 적이 있어요. ‘OO아, 나 요즘에 만나는 사람이 있어’. 이러면서요. 이 사람이 날 갖고 노는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던 시절이었는데, 그 친구가 저보다 나이는 어린데 단호한 구석이 있어요. 연락한 거 딱 보더니, ‘오빠,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 라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플로우 친구가 현명하네요.

 

달호 걔는 지나가듯 한 말이어도,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가 됐어요. 상대방의 반응이 헷갈릴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고 한 번씩 떠올려요. 그리고 그 친구 말대로,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러지 않는다는 사실이 설득되면, 깔끔하게 포기해요. 여하튼 혼란스러웠고, 그 사람들도 뭐 그렇게 어마어마한 개새끼였겠어요. 저한테나 개XX였던 거죠.

 

플로우 그렇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알고, 누군가한테 된장인 사람이 나한테 똥인 경우도 많고. 

 

달호 맞아요. 그리고 저도 쓰레기 같은 짓을…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많이는 안 했어요. 난 내가 당한 만큼 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당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플로우 저울질해보면 그래도 당한 게 더 많군요.

 

달호 네. 명확한 건, 저는 그래도 자기 검열이 좀 심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남이 나한테 했던 싫은 짓을 내가 똑같이 남한테 하고 있을 때 좀 괴로워져요. 남들도 나처럼 괴로워할까 싶기도 하고요.

 

플로우 혹시 어떤 쓰레기같은 짓을…?

 

달호 오늘 (인터뷰 전에) 안그래도 떠올랐던 경험인데, 제가 옛날에 대만 갔을 때, 거기서 어플 돌려서 이런저런 친구들 만났어요. 그 중 한 명은 나랑 친구로 놀고 싶었고, 나는 걔랑 너무 자고 싶은 거죠. 그 친구는 나와 감정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데, 난 어떻게든 얘랑 자보겠다고, 너네 집에서 놀자고 하고, 은근히 계속 흘리고.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해요. 결국 자지도 못했어요. 걔가 잠수타고 끝났어.

 

플로우 그게 쓰레기인지 딱히 잘 모르겠어요. 왜 창피한지는 좀 이해가 가지만… 

 

달호 걔는 그게 얼마나 싫었겠어. 지금이면 안 그럴 것 같아요(웃음).

 

플로우 별로 쓰레기짓 아닌 것으로 하겠습니다(웃음). 식 되는 남자랑 자고 싶었고, 플러팅 해봤고, 잘 안 된 것 정도.

 

달호 누구를 만날 때, 저는 항상 ‘친구라도 될 걸’, 하는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중에 한 번은 어떤 형이 저를 좋다고 했고, 저는 그 형한테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했어요. 진심으로 친구를 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은 저를 그렇게 생각했겠죠. 저 새끼 지금 괜히, 자기가 갖긴 싫으면서 거절하기 뭐하니까, 좋은 사람 되고 싶다고. 아무튼 나는, 좋은 친구로라도 남고 싶다는 게 있었고, 그 사람한테 그걸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그 사람도 이해는 되고, 달호 님 마음도 이상한 마음 아닌 것 같아요. 오해하기 쉬운 코드로 얘기를 한 것뿐이죠. 누구 잘못인지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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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왜 슬픈 커밍아웃 후기는 없는 거죠?

 

작년 겨울의 소동을 떠올리자, 우선 엄마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나는 최근 게이작가들의 책을 사 모았다. 시중에서 살 수 없던 유성원씨의 책은 내 수집욕을 자극했다. 그러나 내가 산 많은 다른 책들처럼, 책을 손에 넣고 나서는 전과 같은 흥미를 유지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사놓고 아직 찬찬히 읽지 않은 책이었다. 박권사님께서 내 방을 청소하다 굳이 그 책을 읽은 거였다. 사랑을 믿지 않고 찜방에서 남자들 좆을 빠는 얘기도 읽었을 것이다. … (중략) … 엄마는 할 이야기가 있다고 식탁에 좀 앉아보라고 하시더니 대뜸, 이제 얘기 해봐, 그래서 너는 뭔데, 하고 물었다. 앞뒤 없는 질문에, 뭐가 뭐야, 하며 어물쩍 넘어가도 무리는 아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네 정체성이 무어냐고 재차 물으셨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누구냐고, 정체가 뭐냐고 묻다니. 엄마에게 나의 커밍아웃은 ‘내 아들이 내가 알던 그 아들이 아니게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사실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오래 전부터 내게는 엄마가 몰라 온 내 모습이 있었을 뿐이다.

ㅡ달호, 내 불필요한 경험들 #2. 박 권사와 비밀의 방

 

플로우 지금까지 쓰신 글로 보면, 어머님 박 권사님 얘기를 또 안할 수 없죠. 커밍아웃은 언제 처음 하신 건가요?

 

달호 아, 기억이 잘... 글에 보니까, 2018년 연말쯤인 것 같아요. 저희 엄마는 그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왜냐면 본인의 인생이 무너진 날이기 때문에.

 

플로우 그때 처음으로 커밍아웃하시고, 소식지 글에 나온 상황은 또 몇 달 뒤인 거죠?

 

달호 네. 그렇죠. (책을 보여주며) 이게 그 (엄마가 발견한 유성원 작가) 책이에요. 그 당시에는 서점에서 팔지도 않는 책이었고, 그래서 전시회까지 가서 이걸 샀죠. 사놓고 그냥 뒀고, 숨겨야 된다는 생각도 없었던 거죠. ‘왜 더 잘 숨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았어요. 저는 적극적으로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애초에 아닌 것 같아요. 의외로 대담한 부분이 있어요.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그게 비극을 낳을지는 몰랐고. 

 

플로우 갑자기 불러서 물어보신 거예요? 

 

달호 아마 그 전에 고민은 많이 했겠죠? 저는 가족들, 특히 엄마와의 친밀도가 큰 사람이거든요. 그렇다고 뭘 시시콜콜 다 얘기하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엄마랑 나랑 삶에 공유하는 게 커요. 서로를 삶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도 분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실제 생활을 엄마한테 의존한다기보다는… 게다가 진짜 닮았거든요. 제 친한 친구가, 제가 한참 독립을 하려고 할 때 저한테 ‘독립을 하면 진짜 내가 어떤지 알게 된다. 네가 모르지만, 부모님이랑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많다. 네가 혼자 살게 되면 진정한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라고 했는데, 저는 딱히 그러진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엄마랑 많은 면에서 닮았다는 걸 깨달았죠.

 

플로우 그래서 어머니께 말씀드린 그 이후에는…?

 

달호 커밍아웃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잘 없잖아요. 내가 그걸 어디서 들어보겠어요. 커밍아웃 이후의 이야기라는 거. 영화에서나 보죠. 그런 영화가, 바비를 위한 기도, 그 정도인데, 그것도 “영화” 잖아요. 사실 저도 몰랐어요. 이게(저의 커밍아웃이) 불러일으킬 후폭풍에 대해서요. 이게 엄마의 삶을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나는 몰랐고, 제가 그 당시에 얘기했던 이유는… ‘내가 이렇게까지 엄마랑, 서로가 서로를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내 중요한 부분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저는 이 생각 때문에, 사실 언젠가 커밍아웃을 하리라는 다짐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언제가 될지 정하진 않았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뿐이죠. 엄마가 먼저 얘기를 꺼내서 얘기했던 것뿐이죠. ‘맞아’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그 이후에 엄마의 삶은 피폐해진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플로우 후회가 되시나요?

 

달호 음…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다시 돌아갔어도 말은 했을 것 같고, 말을 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는 게 저한테는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엄마의 삶이 저렇게 피폐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거죠. 우스갯소리로는 ‘(커밍아웃) 안 했어야 돼’라고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그건 아니에요. 

 

플로우 어차피 달호님은 말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무너지지좀 마시지. 어머님이.

 

달호 좀 안쓰럽긴 해요. 그러니까… 전 한 번도 아빠가 없다고 해서 내가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엄마가 양육을 잘하셔서… 근데 오히려 요즘은 아빠가 있었으면 싶어요. 엄마가 좀 기댈 구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엄마가 안쓰러워서, ‘엄마 혹시 이 얘기를 할 사람이 있어?’라고 했어요. 전 (남들한테 얘기) 좀 하라는 거죠. 엄마는, 난 절대로 죽을 때까지 이건 무덤까지 갖고 갈 거라고. 죽을 때까지 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고, 엄마는 제가 친구들한테 (커밍아웃) 말하고 다니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뭐 자랑이라고.’ 이러면서. 

 

플로우 그 글 제목이 ‘박권사와 비밀의 방’이잖아요. 읽어보니 달호님의 실제 그 방은 전혀 비밀의 방이 아닌 거예요. 어머니도 계속 들락거리시고, 방 청소하다가 책 들여다보고. 그래서 저는 이 ‘비밀의 방’은 박 권사님 마음속에 있는 방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거든요.

 

달호 좋은 해석이네요. 저는 사실 1차원적으로 쓴 거예요. 그렇게 읽어주면 고마울 것 같고(웃음). 그게 저한테도 힘들었으니까. 진짜 고통스러웠거든요. 그 끝맺음을 아직 못 했어요. (실제 삶에서는) 제가 집을 나오면서 그 대장정이 일단락이 된 셈인데, 글로는 아직 못 썼으니까. 그 글은 언젠가는 아마 쓸 거예요. 

 

플로우 언젠가는 나오겠죠. 

 

달호 저는 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죽었으니까 솔직히 잘 모르거든요.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빠의 죽음이라는 걸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을 악바리같이 사는 스타일인데,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또는 피할 수 없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누군가의) 죽음이고, 죽음을 정의하는 방식이에요. 내 삶을 버티게 하는 많은 것들은, ‘이걸 내가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어’라는 생각일 텐데, 이게 없는 거예요. 커밍아웃한 나도 엄마에게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어떤 노력을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존재.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한테 이걸 받아들이게 할 수도 없고, 엄마도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게이라는 걸 바꿀 수 없고. 나한테도 엄마한테도, 그게 사망 선고 같다고 느꼈어요.

 

플로우 어머니가 (달호님이 게이라는 걸) 바꿔보려는 시도를 혹시 하신 적이 있나요?

 

달호 음… 직접적으로 그러진 않았던 것 같고, 또 제가 잘 잊어버려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시에 엄마도 시시때때로 저한테 장문으로 문자 테러를 했거든요. 못할 말 많이 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일상을 돌보지 않는 연애를 했고, 자주 밖에서 자고 들어왔어요. 연애했던 상대방이 주로 밖에서 자고 싶어 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그래서 외박을 했고, 엄마는 미치는 거예요. 그러면 또 카톡으로 테러하고. 나는 읽고 (집에) 더 안 들어가고. 카톡을 받았을 때 심장이 쿵, 하는 게 몇 번 반복되니까 안 읽고, 무시하고. 그때부터 카톡을 제때 안 읽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는데, 아무튼 나는 피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플로우 당연하죠.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달호 어떻게 잘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힘든 시간이었어요. 상투적인 말로밖에 표현이 안 돼요. 너무 힘들었어요. 집 들어갈 땐 어떻게 싸워야 되나, (엄마를) 무시하고 들어가야 되나, 하고요.

 

플로우 터울 형(소식지팀장)이 맨날 하는 말 중에, (뭔가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는 그것에 한창 빠져들어 있을 때가 아니고, 거기서 빠져나온 직후, 약간 거리를 두되 별로 멀지 않을 때 글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어머니와의 그 감정은 여전히 빠져 있으신 거라고 볼 수 있나요? 

 

달호 그건 아니에요. 이제는 엄마와의 물리적인 거리가 생겼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만큼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는 멀어진 상태예요. 다만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안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늘 짐처럼 있어요. 내가 엄마를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데리고 나간다든지, 엄마한테 영화를 추천해 준다든지, 책을 갖다준다든지, 엄마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것(성소수자의 삶과 관련된 것)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잖아요. 나도 노력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가 싫고 힘이 안 나요.

 

플로우 그 생각 너무 이해도 되는데, 사실 저도 하기 싫어요. 손 하나 까딱하기 싫고, 엄마한테 누가 시민교육 좀 시켜 줬으면 좋겠어요. 누가 알아서 손 붙잡고 부모모임에 데려가주던가, 본인이 제 발로 찾아가든가,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죠. 

 

달호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게 나라야? 나라는 뭐 하는 거야? (웃음)

 

플로우 그러니까요(웃음). 나라가 성소수자 부모들한테 왜 기초정보 제공을 안 하는거야?

 

달호 이런 건 제대로 만들어줬음 좋겠어요. 왜냐하면 엄마랑 내 삶이 이렇게 무너지는 게 엄마의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정말 사회 탓이잖아요. 이게 되겠나 싶고, 됐으면 벌써 됐겠다 싶어서…(한숨)

 

 

   커밍아웃 이후의 이야기가 잘 없다는 달호의 말에 동감했다. 또는, 널리 퍼져 나간 커밍아웃 이후의 서사가 감동적인 드라마 외에는 잘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나라도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소비하고 싶지, 내 현실일 것 같은 이야기를 찾지 않을 듯하다. 어쨌든 영화로, 언론 보도로 나와서 입소문을 타게 되는 건 감동 서사다. 그 안에는 애착이 있고, 갈등이 일시적으로 있으나 극복이 있고 참된 수용과 지지가 있다. 
  달호의 애달픔은 자신은 여전히 그 애착이 있음에도, 나 때문에 평생 고생한 것만 같은 ‘박 권사님’에 대한 사랑이 있음에도, 자신의 존재가 그를 무너뜨린 것 이후의 다른 서사가 좀처럼 붙지 않는 데서 온다. 우리에게는 가족 커밍아웃의 50가지 그림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참고: 커밍아웃 이후 가족의 다른 단면 ㅡ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3 : 가족의 재구성)

 

 

6. 갈아넣는 연애와 차단하는 쾌감

 

플로우 연애 얘기도 글로 많이 써주셨어요. 파국이 많으셨대서 얘기를 꺼내는 게 좀 조심스럽긴 한데,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오셨는지…?

 

달호 아까 말한 그 일상을 돌보지 않은 연애가, 한창 취업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했던 연애였어요. 일주일에 이틀 외박한다는 건 7일 중에 4일을 만난다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취준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못했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서, 그게 나한테 데미지를 줬다고 생각했죠. 사실 연애를 시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은 대화로 잘 풀어나갔어요. 저는 지금까지 만났던 애인들과 연락 못 할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 안부는 물을 수 있는… 서로 바빠서 연락을 잘 못하는 거지. 우여곡절이랄 것도 없긴 하네요.

 

플로우 주로 어떤 사람한테 끌리시나요?

 

달호 옛날에는 겉모습을 많이 봤죠. 그렇다고 제가 만났던 사람의 겉모습이 출중했다는 건 아닌데… (웃음) 우스갯소리로, 출근길에만 100번씩 사랑에 빠진다고.

 

플로우 맞아요. 왜 이렇게 잘생긴 남자 많아요? 저도 길 가면서 사랑고백 엄청 해요.

 

달호 지금은 잘 안 그러긴 해요. 오히려 길 가다 멋있는 사람을 봐도 ‘저 사람은 내가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거야.’ 하면서 정신승리해요. 실제로 (얼굴만 보고)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보니까, 나도 까다로운 사람이고 연애하면서 행복해지는 데 갖춰져야 할 조건들이 있고.

 

플로우 지금 만나시는 분과는 어떻게 끌리게 되셨어요?

 

달호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어플로 만났고, 무던한 사람이에요. 일단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외적으로도 사실 아직도 조금 설레요. 사귄지 1년이 넘었는데도. 남들 눈에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플로우 남들 눈치 안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달호님 마음이 중요하죠.

 

달호 대화하면 잘 들어주는 사람이란 게 제일 좋아요. 다만 사회적인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은 저랑 좀 달라요. 저는 완전 ‘걸스 캔 두 애니띵(Girls can do anything, 영미권에서 시작된 페미니스트들의 구호ㅡ작성자 주)’ 이거든요. 강철 페미니스트고(웃음). 애인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정도는 아니에요.

 

플로우 무던한 사람이 가진 양날의 칼 같기도 하네요.

 

달호 그걸 아쉬워한 적은 있어요. 사회 이슈에 같이 기뻐하고, 같이 분노하고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굳이 애인이 내 생각과 똑같이 생각해 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모든 삶의 필요를 애인에게서 채울 수는 없고, 대신 지금 애인은 차분하게 얘기하면 잘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자기 생각하는 걸 얘기해요. 기본적으로 대화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고 하는 건 없어요.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어요. 저는 많이 표현하고, 이 사람은 좀 표현이 잘 없고. ‘너도 뭔가 좀 해야 될 거 아니야’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방식은 자기 스타일이라도 상관없으니 뭔가 표현을 해줬으면 좋겠다 싶죠.

 

플로우 그 방식이 달호님한테도 통하긴 해야죠.

 

달호 맞아요. 최근에 애인한테 얘기했더니, 생각보다 피드백의 수렴이 빠르더라고요. 이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자네 마네, 사귀네 마네 하는 걸 별로 안 하고 싶어요. 예전 연애 때는, 마지막에 헤어질까 말까 고민할 때, ‘다음에는 이런 사람 만나야지’, 아니면 ‘다음에는 이런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최근에는 애인과 헤어질 생각을 할 때 한숨부터 나오는 거예요. ‘헤어지면 뭐가 달라질까?’ 또 그러면, 어플을 해서 누구 만나서, 지지고 볶고… 그게 전처럼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현 상태를 깨고 싶지 않아요.

 

플로우 그렇죠. 상쾌한 타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는…

 

달호 네. 저는 그 사람이 저한테 무조건 호응해 줄 필요는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막지만 않으면 돼요. 과거에 끌려다니는 연애를 많이 해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이 사람이 날 좋아하냐 아니냐’를 많이 신경썼어요. 어릴 때는 처음 나오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내 취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내가 욕심내는 사람은 보통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 날 좋아하게 만들 방법만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이 사람이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마음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요. 스스로 을이 되는 마음이죠.

 

플로우 정말 스스로를 갈아넣는 연애를(웃음).

 

달호 이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내 연애에서 중요했어요. 그건 지금도 중요해요. 다만 지금은 내가 행복한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아는 거지, 잘해주고 싶은 마음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기본적으로 누구를 만나서 사랑할 때, 이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 하는 욕구 자체가 강하다는 걸 깨달았죠. 옛날에는 그게 심해서 이상한 사람들한테 휘둘렸던 거고. 지금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명확하게 판단해서 그게 아닌 사람을 내가 먼저 차단할 수 있는 쾌감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를 섹파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나는 몸도 마음도 다 줘버린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는 기어이 끝을 보고싶었고, 왜 나랑 끝내고 싶은지 듣고 싶었고, 먼저 마음을 접더라도 그게 힘들었어요. 나를 하찮게 대하고 있다는 게 누가 봐도 느껴져야 마음을 접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최근에도, 지금 애인 만나기 전에 썸 타던 몸 좋은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몸이 좋은 사람한테 환장… (웃음) 아무튼 잘 안됐는데, 그 사람을 제가 먼저 차단하면서 느껴지는 쾌감이 있었어요. 

 

플로우 차단하는 쾌감을 알게 된 스스로가 맘에 드시는 거죠?

 

달호 그렇죠.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걸 가지고 엄청 평가하잖아요. 친구 사귈 때도 저는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내가 친구를 만나기 왜 이렇게 힘들까? 내가 좀 더 잘나고, 몸이 좋고 잘생기고 스타일이 좋은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랑 어울리고 싶어 했을까? 내가 그게 아니니까 영영 그렇게 될 수 없는 건가? 스트레스 많이 받았거든요. 무조건 내 탓을 했죠. 생각해 보면, 헤테로들은 중고등학교 때, 아니면 20대 초반에 연애하면서 다 겪는 일이잖아요. ‘그때 다 해봤어야 되는 건데, 왜 이제야 하고 앉아 있나.‘ 현타도 느끼고요. 

 

플로우 그러게요. 늦게 해볼라니까 더 어색하고.

 

달호 제가 최근에 여사친이랑 얘기하다가, 그 친구가 만나던 남자한테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걔가 그 와중에도 자기가 갑인 연애는 하기 싫다고 하는 거예요.

 

플로우 거울치료 당하신 거 아니에요? (웃음)

 

달호 그러니까요. (한숨)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 둘 관계에서 갑이 되라는 소리가 아니라, 적어도 너 자신에게만큼은 스스로 잘해줘야 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즐거움도 큰 거라고 얘기를 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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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 다르고 닳은 이름, 달호

 

플로우 원래 처음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마무리 질문이 됐어요. ‘달호’라는 닉네임의 뜻은 무엇인가요?

 

달호 저는 어렸을 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타입의 사람이었어요. 어느 순간 그게 촌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좀 쿨하고 싶은 거죠. 매 순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도 싫고. 상쾌한 타협이라는 것도 내가 어떤 것이든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좀 타협해도 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달호라는 이름도 별 의미 없어요. 의미에 대한 강박에서 거리두기.

 

플로우 아무렇게나 떠오른 이름이신가요? 

 

달호 아뇨. 그건 저 태어날 때, 엄마가 생각했던 제 이름의 후보긴 했어요. 아예 아무렇게나 생각난 건 아닌 거죠. 소식지 처음 시작하고, 첫 글 써서 보냈는데 터울 형이 사용할 이름이랑 소개 문구랑 사진을 보내라는 거예요. 당장 빨리 정해야 되는데,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달호’로 해서 보냈죠. 

 

플로우 원래 본명이 달호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 이름을 살려서 필명으로.

 

달호 그렇죠. 달호라는 이름도 그랬고, 제가 썼던 글의 제목들도 생각 없이 입에 잘 붙는 말로 아무렇게나 지었어요. 읽는 사람들이 의미를 붙여서 훨씬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C는 시리얼’도 사실은 말장난인데, 그 당시에도 그걸 읽고 의미를 생각해서 얘기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라 글 속에서 말이 되는 의미를 얘기해주셨고, 감사했어요.

 

플로우 네. 오늘도 수다 떨다 보니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또 뻔하게, 오늘 어떠셨는지 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달호 일단 준비를 잘해 주셔서…

 

플로우 준비를 해 오면 뭐 하냐고(웃음). 결국 이 얘기 저 얘기…

 

달호 원래 다들 이렇게 해요? 인터뷰할 때 보통 그래요?

 

플로우 전 그렇게 준비한 대로 치밀하게 가진 않는 것 같아요. 저도 굳이 mbti로 말하자면 P여서, 준비를 하긴 하는데 준비된 대로 잘 굴러가진 않아요. 그리고 오히려 준비한 걸 자꾸 생각하다보면 부자연스럽고 딱딱해져서, 정치인 인터뷰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본질이잖아요. 대화하는데, 앞에서 누가 얘기하고 있는데 ‘다음 질문 이거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제 상태가 싫기도 하고요.

 

달호 저도 오늘 편하게 얘기해서 좋았어요. 오늘 오시기 전에 혼자서 ‘오늘 말 잘해야지’ 하는, 되도 않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역시 뜻대로 되진 않았고…(웃음) 저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재밌거든요. 게이 소셜에 동화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죠.

 

플로우 그렇죠. 게이들이 심각한 얘기 잘 안 들어주죠. 게이들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달호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살아온 여정이 저한테는 중요하고, 나한테는 이게 노는 건데, 진지한 얘기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중요한 인간관계의 조건이니까요. 제가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저는 진지한 얘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캐릭터로 대상화되기만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오늘 인터뷰도 게이로서의 제 얘기를 맘껏 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어요.

 

  춤추고 남자 만나러 다니는 것 외에도, 자기 얘기를 좀 하고 싶은 게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달호의 마지막 말은 나의 원함이기도 했다. 친구사이를, 게이 커뮤니티를 조금씩 겪어 보며 드는 혼란은, 여기서 어디까지 나의 무거움을 얹어도 되는지 가늠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나만 사연 있겠나, 다들 하나씩 있겠지 싶은 생각으로, 폐 끼치지 말자, 분위기 싸하게 만들지 말자, 하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게이 커뮤니티에 적응한다는 건, 너스레 떨며 별일 없다는 듯 남자 얘기를 잘 늘어놓게 된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가 속할 곳에 대한 마음은 점차 접기도 하고, ‘상쾌한 타협’을 하기도 하고. 
  달호도 숱한 커뮤니티들을 마주하며 그렇게 마음을 접어온 듯했다. 진심으로 접은 기대도 있고, 여전히 원하지만 포기한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주제넘게) 바라는 게 있다면, 너무 자신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여전히 사람에 대해, 커뮤니티에 대해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글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달호의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일일이 찾아보지 마시고, 여기 싹 모아놨으니 쭉 읽어보시기 바란다. 생각 없이 지은 제목들이라고 하니 끌리는 제목부터 읽어보시고, 의미 부여는 여러분의 몫이다. 

 

 '내 불필요한 경험들' 시리즈

  #1 : 형과 헤어지는 일, K팝 노래가사 같았어 / #2 : 박권사님과 비밀의 방 / #3 : 아나키스트의 이불킥 / #4 : 주말 저녁 게이바에 방문한 000번 확진자 / #5 : C는 씨리얼#6 : 나의 드래그 / #7 : 치준생 치주노#8 : 맘 놓고 친절할 수가 없어

  

 

* 본 인터뷰에 수록된 그림은 모두 달호의 친구가 그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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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