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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소모임] 문학상상, 문학 한 숟갈 : 노년 여성이 그려내는 삶의 풍속화
2024-02-01 오후 17: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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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월 

 

[소모임] 문학상상, 문학 한 숟갈

: 노년 여성이 그려내는 삶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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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반에 반의 반》은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소설집이었습니다. 느릿한 카메라 워킹으로 한 편의 풍속화를 보여주는 듯한 소설, 연애 예능처럼 여러 등장인물들의 상호작용과 각자의 인터뷰 장면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 인간의 보편성을 주제의식으로 전달하는 소설, 또는 주제의식 따윈 없이 재미 일변도의 소설, 옆에 있으면 짜증날 거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루는 소설들이 실려있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 모든 작품들을 관류하는 하나의 소재는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입니다. 이는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작가의 어머니가 더는 당신의 얘기를 해줄 수 없을 때, 대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까닭일 것입니다. 이런 탓인지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따스한 봄볕 같습니다.

 

제가 가장 깊은 맛을 느꼈던 소설은 수록된 작품 중 표제작인 <반에 반의 반>입니다. 이 작품은 소설 쓰기에 관한 글이고, 작가가 소설에서 한 인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관해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평소 취재를 공들여 한 뒤에 소설을 쓴다고 합니다. 또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여 이 소설집이 탄생한 만큼, 인물을 어떻게, 또 인물의 이야기 중 어떠한 것까지 소설로서 집필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에 반의 반>은 작가인 ‘나’가 큰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얼마 전 할머니의 제사 날에 친척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 중, 가족끼리 계곡에 놀러갔을 때 할머니가 옷을 다 벗고 물 속에서 놀았다는 내용을 소설로 쓰면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갈비탕을 사줄 테니 한 번 들르라는 말을 합니다. 만나서 들은 큰아버지의 말은 할머니에 관한 특정한 내용을 꼭 쓰라는 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할머니의 자식들이 할머니에 관해 말하길, 가족들 밥은 굶겨도 떡은 지어서 먹어야 했던 양반이라고 했던 것에, 이것은 떡을 마을에 돌려 사람들의 인심을 얻어 장남을 죽음으로부터 구한 덕업이라고 해명합니다. 또한 할머니의 인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것, 그러한 인심 좋은 행위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지속되었다는 말을 참 열심히도 말합니다.

 

‘나’와 큰아버지는 갈비탕집으로 이동하여 갈비탕을 먹습니다. 큰아버지가 대접하는 갈비탕은 마구리뼈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살코기만 있는 갈비탕이었습니다. 갈비탕은 한 인물이 소설로서 다뤄지는 방식의 상징입니다. 보기 좋고 먹기도 좋은 살코기만 있는 갈비탕. 혹은 마구리뼈가 섞여 살을 발라내며 먹어야 해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뼈에서 우러난 진한 육수가 있는 갈비탕. 두 모습의 갈비탕 사이에서 ‘나’는 무엇이 더 맛있는 갈비탕인지 고민합니다. 내가 흠모하는 인물의 좋은 점만 그려내야 하는가, 아니면 조금 흉해 보일지 몰라도 인물의 인생을 더 진하게 전달하기 위해 정제되지 않은 모습도 서술해야 하는가. 어떠한 방식으로 인물을 그려내야 하는지 작가의 고민이 나타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는 작가가 할머니에 관해 쓰고 싶은 마음의 화신이 큰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큰아버지는 한 인물을 그려낼 때 인물 행동의 자세한 내막을 살펴야 한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에게 흉이 될만한 것은 숨기면서요. 가족들은 굶길지라도 주변에 떡을 돌려서 결국 가족을 구해내는 숭고한 정신에 주목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소소한 마음 씀씀이도 그려내라고 하지요. 마치 마구리뼈가 하나도 없는 살코기 갈비탕처럼 인물의 좋은 면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죠. ‘나’는 작가정신의 화신입니다. ‘나’는 마구리뼈가 섞인 갈비탕이 더 감칠맛이 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작가정신이 한 인물을 흠모하여 좋은 점만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승리합니다. 인물의 흉한 모습도 기꺼이 다루는 것이죠.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할머니는 친척들의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흰 속옷만 입고 계곡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할머니의 몸은 비록 보기에 예쁘지 않을 수 있지만, 계곡 물에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이 할머니에게로 가 비치듯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계곡물에서 물장구 치며 놀고 싶은 할머니의 아이 같은 욕망, 남들에겐 기이하게 보일 수 있는 할머니의 몸, 행동도 따뜻하게 그려냄으로써 인물의 서사에 감칠맛을 더한 것이죠. 마치 마구리뼈가 들어간 갈비탕처럼요. 이러한 작가정신의 승리는 이 소설집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소설집이지만, 인물을 그려낼 때 좋은 점 뿐만 아니라 악한 면, 좀스러운 면, 손가락질 받을 만한 면도 고루 그려내서 인물과 인생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죠.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 <반에 반의 반>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의 소설집을 읽으면 실린 단편들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반에 반의 반》은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회전목마를 타고, 범퍼카를 타듯이 전혀 다른 성격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작가의 유머도 한 스푼 더해져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들이 그려내는 유머가 담긴 삶의 풍속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읽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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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상 /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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