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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호][활동보고 #2] 광장은 무력한가
2024-12-30 오후 17: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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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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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고 #2]

광장은 무력한가

 

 

 

광장은 무력한가?

 

 

1.


참담하다. 12월 들어 온종일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다. 제주항공(애경그룹) 7C2216편 여객기 폭발하며 179인이 사망했다. 유족들의 거대한 슬픔 앞에서 내 슬픔을 꺼내기도 민망하지만, 난망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고인께서 부디 평안하시길. 나와 내 이웃들의 삶이 거대한 주사위 게임 속에 던져진 기분이다. 운이 좋으면, 운이 좋지 않으면. 운이 좋지 않으면.

 

역사책 속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야밤에 맨몸으로 국회에 달려간 시민들과 스크럼을 짜고 군인들과 대치한 국회의 노동자들 덕분에 국회 점령을 막을 수 있었다. 그 밤 그 국회 안과 밖에는 내가 사랑하는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바이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계엄 해제가 의결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활동가로서 판단이 어려웠다.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군경이 움직였다. 이게 친위쿠데타고 내란범죄임은 즉각적으로 인지했지만, 무엇보다 믿기지 않았고, 즉각적인 시민 저항에 나서야 하는지, 계엄령의 공포에 압도되거나 또 고립되어 취약해질 수 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의 안전을 먼저 신경써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함께 있던 애인이 당황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에 우선 같이 친구사이 사무실로 달려가 비슷한 마음일 단체 회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사실 주변인들의 동요하지 말고, 상황의 흐름을 보자는 말을 듣고는 화가 났다.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에서 이미 국회의원 체포가 목적임을 추측할 수 있었고, 경각을 다투는 상황임이 꽤 명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목숨을 걸고 즉각적인 시민 저항에 나서자는 무책임한 말을 사람들에게 건낼 수 없었다. 자칫 공포를 조장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건지. 계엄에 대한 나의 무력함도 믿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국회에 도달하니 군인들이 국회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정문은 여전히 경찰들에게 막혀 있었고, 먼저 와 있는 성소수자 친구들이 보였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다만 추웠다. 국회 안쪽에 있던 내 비서관 게이 친구에게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며칠 뒤에 만난 그 친구는 스크럼을 짜고 군인 진입을 막을 때 옆에 팔짱 낀 남자 보좌관이 잘생겨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살아 있어서 할 수 있는, 표정은 비참한 농담이었다. 술에 쓰러진 이 친구를 택시 태워 집에 보내고, 술집 계단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국회로 달려갈 때, 이유는 모르겠는데 친구사이 깃발을 챙겼다. 8월 친구사이 30주년 기념식에서 사람들이 써준 축하메시지가 잔뜩 적힌 깃발이 있다. 그냥 회상하기로는, 그렇게라도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던 것 같다. 용기가 필요했고, 그 천조각이 위로가 됐다.

 

 

2.


계엄령이 선포되고 30분 뒤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는 트라우마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떨렸다. 내 인생 처음으로 아빠의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 한마디가 집에서 나오지 말란 말이었다. 아빠는 한때 공산주의자였다. 혁명을 믿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조그만 지역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빠는 무소속 시의원으로 두 번 당선됐었고, 지금은 양봉사업을 하며 지역 생태정치에 관심이 많다. 아빠는 항상 지식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점에서 단 한 번도 아빠와 감정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근데 그냥 전화만 한 것이었는데, 그가 얼마나 떨었으면 손까지 떨고 있음까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전화해줘서 고마웠지만, 난 이날 아빠가 함께 국회로 가자고 말해주길 바랐다. 실제로 내 애인의 어머님은 상황에 따라 국회로 달려가야 할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다. 사실 난 내 동료들도 함께 국회로 가자고 먼저 얘기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 밤에 나는 두렵진 않았지만, 죽을 것 같이 무력했다. 무력하다. 내란이 일어나고 헌정질서와 모든 이의 인권이 단 번에 짓밟힌 뻔 했는데, 탄핵소추안도 가까스로 통과됐고,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려 한 달 동안 내란수괴를 체포하지 못했고, 아직도 내란범들이 버젓이 정권을 쥐고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내란이 장기화되고, 무력감에 잠이 잘 들지 않는다.

 

이 무력감이 나에게 일깨워준 것이 있는데, 계엄으로 인해서 민주주의가 위기가 온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는 항상 비상사태의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거권이 있으므로 주권자의 체면을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대의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유력 정당의 공천권을 지닌 이들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494명에 이르렀다. 시민들이 거대 양당의 당권을 꽉 잡은 정치인을 견제할 수단은 거의 없다. 심지어 대통령 한 명이 192명의 국회의원이 결정한 사안을 무제한으로 거부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권위주의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이재명이라는 또 다른 성격의 권위주의자를 집권시키는 것이 분명 당면한 위기의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 위기를 만든 핵심 배경, 적대하고 인권을 짓밟는 혐오의 정치가 또 다시 힘을 키울 것이라는 위협은 여전히 남는다. 국민의힘을 내란죄로 해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그 명분으로 문재인 때처럼 소수자를 적대하고 지워낸다면 여전히 민주주의는 무력할 것이다. 내란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변호인은 성소수자는 보호하면서 내란세력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인격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버둥으로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만 봐도 지금 이 사태 핵심이 혐오 정치가 있다는 것이 꽤 명백한데, 정치권은 이를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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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계엄 선포 이례로 거의 매일 거리와 광장이 열리며 또 한 가지 내 무력감을 자극하는 일이 있는데, 적지 않은 2030 남성들이 표현하는 세계관이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불법 계엄에 반대하면서도 광장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가까운 2030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하는 말이 “나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계엄 당일에 비트코인이나 주식 변동을 보며 낄낄거리거나,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신경도 거의 쓰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최근에 남성들 중 자신의 부모세대에 비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락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성에게 적대적인 경향도 더 크다는 논문을 본 적이 있다. 이들에게 정치적 효능감보다 사회경제적 비교의식이 훨씬 그들의 세계관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꽤 확실한 것 같다.

 

청년 남성들이 소수자에 대해서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크다고 알려져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남성의 적은 남성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성은 단일하지 않다. 남성성 내부의 위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찐따새끼’가 되는 식이다. 오타쿠여서도 안 되고, 비만이어서도 안 되고, 섹스를 안 해서도 안 되고, 동성애자여서도 안 된다. 다른 남성들도 착한 척하지 않고 사회경제적인 지위를 확보하려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길 바란다. 그게 말하자면 ‘차가운 자본주의’다. 이게 그들의 핵심 세계관이라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왜 입에 거품을 물고 ‘페미년’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된다. 남성사회 내부적으로도 서로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관계인데, 자신의 남성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귀찮은 방해물이거나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자신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동체와 연대에 대한 감각과, 그 연결됨이 가지는 가치에 일말의 공감도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무력감이 12월 동안 나를 덮쳤다. 우리는 또 다시 이재명이라는 권위주의 정치인에게 의지한 채 이 사회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사회가 붕괴될 수준의 위기에 처했어도 자신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도 못 받고 있어보이는 사람들과 앞으로 어떤 사회적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3.
 

광장은 무력한가. 국회와 정부가 광장의 얼굴을 하지 않은지 정말 오래 됐다. 2030 여성이 민주주의 구한다고 언론과 정계에서 찬사가 쏟아지지만, 당장 국회에 2030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집권하든 상관 없이 혐오받고 탄압받던 노동자와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난민, 농민들이 윤석열 퇴진 싸움에 선봉에 서 있다. 하지만 국회는 벌써부터 조기대선 전까지는 광장의 요구라도 논쟁적인 사안은 다룰 수 없다고 밝힌다고 한다. 정말 이 나라의 정치가 광장을 담을 수 있을까. 광장의 무력함은 필연인가.

 

사실 그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빠르게 조직된 광장에서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단호하게 금지하고 있다. 시민발언에서 연대의 가치를 설명하는 감동적인 발언이 매번 쏟아진다. 남태령에서 농민들과 트랙터가 경찰의 폭력에 막혔을 때, 누구 할 것 없이 달려가 결국 경찰의 산성을 넘어섰다. 그 다급한 현장에서도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면서 우리가 연대해야 하노라고 밤새 여러 명이 연설하던 것도 모두의 기억에 남았다. 윤석열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1600개여 단체의 연합체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을 대표하는 공동의장단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호림 집행위원도 있다.

 

성소수자운동에서 즐겁게 집회하던 문화가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 문화와도 이어졌고, 수 년 간의 투쟁에서 무지개행동 이름으로 연대하던 힘이 이번에 열린 광장에서 매번 ‘무지개존’ 대오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광장에서는 “성소수자 차별도 윤석열도 없는 사회”,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라고 적힌 피켓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뛰어온다. 올 해 송년회를 거리와 광장에서 하겠다고 했을 때, 기꺼이 응해준 친구사이 회원들이 “윤석열 퇴진해”, “성소수자 만세”라고 된 무지개 대형피켓을 들고 무지개 대오 제일 앞에서 행진해주었다. 무력할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일지도 모르지만, 이왕 무력할 거면 우리가 더 낫게 무력해보면 될 일이라고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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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감동적인 연대의 순간의 핵심은 효능감이다. 송년회 뒤풀이에서 회원 철민이 계엄 선포 후에 너무 무섭고 힘들었는데 기용이가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고 해주어 고맙고 힘이 됐다는 말을 나누줬다. 나는 즉각적인 시민 저항에 나서지 않았던 내 판단을 계속 자책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서 그 날 행동에 어떤 정답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서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됐다는 사실이 내게 힘이 됐다. 정치가 우리에게 어떤 효능감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서로의 효능감이 되어줄 수 있겠구나. 어떤 집단과 대화가 안 통할 거라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해야 하며, 연대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비토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연대의 경험을 확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미 어떤 종류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의 효능감이 되어주기 위해 연습하며 정치적 힘을 길러온 흐름과 깊이 연동돼 있다. 평등문화 약속문을 읽는 것이 다소 작위적이더라도, 매번 읽던 그 습관이 지금 대규모 집회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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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구사이는 이번 국면에서 게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우리가 색다른 남성성/비남성성이 되어보자고 제안하며 커뮤니티 구성원과 업소 사장님을 설득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고, 윤석열 퇴진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과정이 되었다. 이태원 HE'S 사우나의 사장님은 전화를 여러 번 하시며 내용을 정독하시고, 공동제안자가 되겠다고 나서주시기도 했다. 우리가 만들어왔던 터전의 저력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무지개 깃발 아래에서, 우리가 서로의 효능감이 되어주며,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며, 국회와 정부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의 원칙을 갱신하며 싸워보자. 광장이 정치와 단절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꾸준함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우리의 살아 있는 생동감과 효능감으로 역동한다. 제도가 주는 무력함에 지지 말자. 더 낫게 실패하자. 더 낫게 무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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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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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