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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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제3회 문학상상상 당선작
: 혁이, "겨울 교실에서 배운 것"
당선 소감
올해 초 답답한 마음에 게이가 쓴 게이의 수필을 읽고 싶어서 온라인 서점을 애써 뒤진 적이 있습니다. 십여 년 전 청소년기에 활동가 정욜의 『브라보 게이 라이프』나 영화감독 김조광수의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를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나의 삶 위에 덧옮겨 보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하지만 십여 년이 흐른 현재, 두어 권의 에세이가 더해진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깨닫고, 어쩐지 있어야 할 문학의 공간이 비어 있다는 감각을 느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성소수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위태롭게 또는 굳건히 서서 소수자로서의 생활감각을 고백하는 다채로운 증언문학으로서의 수필의 가치를 믿고 있습니다. 영상 매체나 커뮤니티 글로는 드러나기 어려운, 수필만이 줄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의 연결을 통해서 소수자끼리의 연결고리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체의 유려함도 생각의 기발함도 부족한 투박한 글이지만, 학교 공간에서 게이 교사로서 근무할 때 느낀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임으로써 공백의 아주 작은 일부를 채워 넣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히려 서투른 수필이 현재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언젠가 성소수자 교사로서, 회사원으로서, 건설노동자로서, 학생으로서, 주부로서, 변호사로서… 수많은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서투르게 담아낸 수필문집을 읽게 될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 (퀴어) 문학사에 기념비적으로 남을 문집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담이지만 최근 친구사이에서 『김 대리는 티가 나』라는 수필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희망을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또 뽑아 주기까지 하신 문학상상 회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혁이 (2024.12.29.)
겨울 교실에서 배운 것
1. 신규 게이 교사 구보 씨의 일일(一日)[1]
담임 반
학생들이 제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끝에 걸린 가방을 들고, 옷걸이에 걸린 패딩을 걸쳐 입고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여 나가는 모습을 담임교사 구보는 물끄러미 보았다.
“어디 가니?”
“얼른 집 가서 놀아야죠.”
대답은 또렷이 들렸다.
종업식이라 어련히 일찍도 보내주겠건만 종이 치자마자 뛰쳐나가려고 교실 문 앞에 초조히 모여들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을 보니, 이별에 애써 무감하려고 마음 근육에 잔뜩 힘주었던 구보 씨는 제 자신이 퍽이나 어수룩하게도 생각됐다. 아이들을 보내고 교무실로 돌아가 푸념을 늘어놓자니 중년의 학년부장은 평소대로 총을 발포하듯 호탕하게 웃더니 짓궂게도,
“자기야, 아직 뭘 모르네. 내가 이십 년 교사 생활 해 보니까, 교사의 사랑은 늘 짝사랑이더라. 선생님이 신규라서 아직 교직을 잘 몰라.”
하며 ‘그지, 맞지’ 하며 단짝인 안 선생을 쿡쿡 찌른다. 생활기록부를 마감하고 있던 안 선생은 영 귀찮아하며 주춤주춤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교사의 조언이라면 조목조목 귀담아 들으려던 신규 구보 선생이었지만 이번에는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열여덟 살이라지만 마지막 작별인사에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나 싶어서 괜히 고깝고 섭섭하기까지 하다.
일찍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구보 씨는 담임 반이었던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기록을 들여다본다. 남들 눈에는 그렇게 예쁜 학생들도 아니고 사고도 돌아가면서 쳤다지만 학년부장 말마따나 연애편지를 보내는 것도 아닌데 애정을 꾹꾹도 눌러 담아서 썼다. 한 해 동안의 기록을 실록을 세초(洗草)하듯 정성껏 지워가며 억지로 가꿔낸 애정일는지도 모르지만, 누구는 감출 수 없는 인간적 가치를 지닌 학생이며, 누구는 어디에 내어 놓아도 한 점 부끄럽지 않을 학생이라며 끄적거린 평가서가 진심 없는 헛된 말은 아니었다. 또한 자신이 기록한 생활기록부를 통해서 구보 씨는 거꾸로 애정과 작별에 무감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중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애제자였던 호민이가 늘 투정 부리며 종업식 하면 밥 사달라고 그렇게 조르더니, 기어코 카톡이라도 보낸 걸까 하고 확인하니 낯익은 데이팅 어플 알림 메시지가 보인다. 매칭 탭에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종업식은 마쳤어요?’ 하는 K의 반가운 인사말이 보였다. 별안간 안도감이 느껴져 긴장감이 약간 풀렸다.
교직도
신임이었으면서 게이 데이팅 어플에서도 애티가 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럼에도, 매칭이란 걸 만든 이에게 평안 있으라. 엉망진창이 된 게이의 감정을, 감정의 뉘앙스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인연 없는 의사 전달 수단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이 씁쓸함이여.[2] 구보는 수 년 만에 데이팅 어플에 다시 접속하며 숱한 사람들과 ‘안녕하세요,’를 외쳤지만 워낙에 서툴러서인지 잘 되지는 못했다.
그런 구보 씨가 대화 중인 K는 게이 데이팅 어플에서 매칭된 지 열흘 정도 지난 사람이었다. 구보 씨는 자신이 연애나 만남 문제에서는 숙맥인 것을 느끼면서도, 스물아홉이라는 적지는 않은 성년의 나이, 그리고 A시에 발령받고 독립한 뒤로 비로소 성인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끼얹어져, 스무 살 초반의 어리숙한 소년기의 자신과는 한참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K와 우연스레 처음 ‘안녕하세요’를 시작할 때, 구보 씨는 간질거리는 행운감을 느끼면서도, 어른스럽게 부러 불행을 점치며 인연에 무게를 전혀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숙한 게이 어른은 무릇 인연을 가볍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스물아홉 해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얻은 현실 감각이었다. 그런 K와 대화를 나눈 지 어느덧 열흘이 넘어 있었다. 기실 연애 초보인 구보 씨로서는 이렇게까지 오래 대화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구보 씨보다 한 살 어린 K는 호기심도 많고 질문도 많은 편이었다. 사는 곳의 풍경이나 아시아 여행을 좋아한다면 어디를 가 보고 싶은지, 향수는 뿌리는지, 그렇다면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을 재빠르게 물어댔다. 구보 씨는, 막 진학한 중학생이 성격유형검사 문제를 신중히 풀며 자아 찾는 여행을 시작한 것마냥 답을 궁리하느라고 처음에는 도통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K는 질문 세례를 마치면,
“제가 향기에 예민한 편이라 오래전부터 조향(調香)이나 향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처음에 백화점에 갔을 때는···.”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곤 했다. 구보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편이었기에, 달아오른 K의 말에 적당히 응해주면서 꼭 담임반 학생들의 상담에 응하는 것과 같은 기시감과 안정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K는 과거 구보와 마찬가지로 대학교를 졸업 한 뒤 몇 해 동안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차였다. 비밀리에 공통점을 탐색하면서 구보는 K와의 대화의 방식과 흐름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아아, 좋네요.”
이를테면 구보는, K가 긴 호흡의 이야기를 끝난 후에 마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난 듯이 아아, 좋네요, 하고 읊조리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말 습관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 속의 구보 씨처럼, 구보는 자신에게도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펴들 수 있는 작은 대학 노트를 사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K의 습관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구보 씨는 세세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기 해마를 책망하며 그날 잠자리에 들었다.
구조적
아이러니가 있다면 게이들의 매칭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 구보 씨가, ‘감정의 뉘앙스’를 한껏 점프해서, 전국의 좌표평면 위에 놓인 게이들과 점이 아닌 곡선으로 이어지길 갈급해하는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보 씨를 비롯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K와의 인연은 K가 갑자기 매칭 탭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사유도 원인도 불분명한 채,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매칭 탭의 숫자가 하나 사라졌을 뿐이었다. 이제 아침마다 어플을 켜면서 안도감을 느껴야만 하는 귀찮음을 반복할 까닭도 사라졌고, 굳이 작은 노트를 사서 작은 해마를 탓하며 K와의 대화 일부를 채집해 둘 필요도 없어졌다.
구보 씨는 스무 살의 구보처럼 우울감에 침잠해서 며칠을 방 안에 드러눕지는 않는다. 도리어 또 다른 인연을 찾아 나설 K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기원해 보았다. K는 또 다른 구보 씨를 만나서 쉴새없이 질문을 던지고, 자신에 관해 되풀이 이야기하고, 아아 좋네요, 라는 말을 애면글면 반복하며 또 짝을 찾아 새처럼 날아갈 것이었다. 이유 없이 점으로 남은 자신처럼 K도 한 점으로 남았다고 생각하면 그 역시 자신처럼 외로운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한 학기 사이에 부쩍 철이 들었던 담임반 학생 호민이다.
「쌔앰, 방학한 지 2주 됐다고 벌써 저희 잊은 건 아니죠?」
「뉘신지요.」
「앗, 방학하면 선비초밥에서 밥 사주기로 하셨잖아요!」
토요일 저녁에 담임 학생이었던 호민이와 함께 식당에서 만나 밥을 사 주기로 약속하고, 구보는 얼른 전화를 끊고 거리에서 생각에 잠겼다.
구보씨의 한편에는 끊일 듯 끊이지 않을 듯 명멸하면서도 끝내 이어지는 일반적인 선(線)의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점이 점으로 남아 부호(符號)처럼 깜박이기만 하는 만남의 세계가 놓여 있었다. 흔들면서 자기는 안 흔들린다고 생각하며 남을 흔들어 놓고, 이름도 안 알려주고 부고(訃告)도 없이 호박씨 까듯이 무심하게 이어질 만남의 세계[3]에서, 구보 씨는 삶의 중심을 잡기가 무척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마다 작별하는 것이 당연한 직(織)을 업으로 삼으면서, 구보는 이반의 세계에서도 명멸하며 이어지는 인연이 있기를 다시 한 번 외롭게 상상해 보며 눈 내리는 거리를 집으로 향한다. 어쩌면 매칭이 한 번 더 이루어지더라도, 구보는 쉽게 자신의 욕망을 물리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4]
2. 생채기와 중상(中傷)
“왜요?”
하는 소리에 멈칫했다. 아, 대체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성소수자로 태어난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긍정하는 내용을 발표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득해야 할까, 타자를 혐오해서 되겠냐며 화를 내야 할까. 그도 아니면 ‘네 앞에 지금 서 계신 선생님이 바로 그 성소수자이시다.’ 하고 화끈하게 커밍아웃이라도 해 버릴까, 하는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결국 한숨을 짧게 내뱉고는,
“그냥 선생님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세특 써 주기 힘들어.”
하고 입시 제도의 권위에 기대어 적당히 넘어가 버렸다. 잔뜩 논박하려고 기대하던 낯빛이던 2학년 1반 조예은 학생도,
“…네에.”
하고는 뾰루퉁한 얼굴로 자리로 들어간다. 선생님과 격렬한 언쟁이 오갈까 눈빛을 반짝이던 학생들도 조예은 학생을 따라서 평소대로 돌아간다.
“야야, 차별금지법 소개하고 그거 반박하는 논리로 연설해.”
“됐어, 그냥 성소수자 인권 보호 방안으로 할 거야.”
“더럽다, 더러워, 안예은.”
하고 남학생과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만, 안 들리고 못 본 척 퉁 치고 넘어가 버린다. 안 그래도 보수적인 교직 사회인데 괜히 그런 말 말라며 나섰다가 게이 교사로 소문이 퍼지면 터진 둑을 막지 못하듯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입직하기 전만 해도 자신감 있게 오픈리 게이 선생으로 살겠다는 당찬 포부도 있었지만, 선진국인 영국이나 미국에서 성소수자임을 공개한 후 빈번하게 해고당하는 뉴스를 보고는 일찌감치 꿈을 접어 버렸다.
며칠 뒤 예은 학생은 준비해 온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 방안에 대해서 발표를 하기는 했지만, 발표를 듣는 내내 학급 학생들은 내 지적에도 키득키득거렸고, 예은이는,
“하지만 전, 성소수자는 아니고요. 이런 의견이 있다는 거지, 제 의견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끝내고 싶어요.”
하고는 애매하게 웃으면서 발표를 끝맺었다.
“자기 의견이 분명하지도 않은데 연설 주제로 채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교사로서 그 점이 아쉽네요.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는 연설은 논리 구조도 허약하기 마련인 것 같아.”
하고 총평을 내리기는 했지만, 어디서부터 수업의 공을 들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성소수자라는 주제는 하지 말게 해야 했었나 하는 생각에 미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수업과 평가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신중하고 점잖다는 주변의 평판만큼이나 달리 말하면 소심했고 나서지 못하고 주볏거렸던 나는 조그마한 저항의 방식으로 퀴어 문제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독서 수행평가에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포함된 『선량한 차별주의자』 같은 책을 넣는다거나, 학급문고에 내가 학창시절 때 사서 읽있던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 같은 퀴어 인터뷰집을 넣어 두는 식이었다. 전자는 읽고도 학생들이 설득되지 못하고 이해 못할 책이라며 투덜거리곤 했고, 후자는 먼지가 쌓여간 채 학생들이 거들떠보도 않았으니 결국은 나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어느 보수 단체가 본다면 성도착증 교사가 자신의 신념을 신성한 학교에 강요한다며 학을 떼며 언론 기관에 신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존재론적 가치에 ‘왜요?’라고 시도 때도 없이 반박해 대는 학생들에 견주어서는 소심한 저항에 불과했다.
한번은 교사용 도서관 신청도서 목록에 『무지개 성 성담소,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이들에게』나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같은 책들을 다른 수백 권의 책들 사이에 기입해 넣곤 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면 꼭 그런 책들만 쏙 빠져 있곤 했다. 보통 거절되면 거절의 사유가 적혀 있었지만, 사서 선생님은 꼭 그런 책들의 거절 사유란은 공백으로 두었다. 거절 사유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 아니면 할 말이 없을 만큼 황당해서 그런 것인지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삶의 형체를 지키는 데 일정한 정도의 항상성이 필요하다면, 성소수자로서 학교 현장은 매일 같은 항상성 붕괴의 위험으로부터 삶을 지켜야 하는 전장 같은 공간인지도 모른다. 어느 고문자의 수기에 따르면 극심한 고통를 한 번 가하는 것보다는 살갗과 근육 사이를 미세하게 파고드는 생채기를 잊을 만할 때쯤 계속해서 입히는 것이 훨씬 괴롭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혐오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만큼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별 일 아닌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역치를 넘길 때 나는 괴로워하곤 했다.
때로는 반대로 생채기가 아니라 큰 상처를 입히려 들이미는 학생도 있었다.
이제 막 졸업시킨 차호준 군은 담임반 학생 중 지독한 호모포비아 학생이었다. 사회 문제를 다룬 토의 시간에는 느닷없이 퀴어 찬반을 내세워서 “성소수자는 다 쏴 죽여야 돼.”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고, 주변에 들으라는 듯이 퀴어나 트랜스젠더 같은 단어를 욕설로 쓰며 목청을 높이거나, 외설적인 자세를 흉내낸 후 퀴어 축제라고 할 만큼 공연한 혐오의 정도가 심했다. 학급 분위기를 크게 저해하는 만큼, 예의 그 ‘소극적 저항’만으로는 도저히 지도할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불러서 크게 훈계하기도 했지만 호준이는,
“예예, 선생님 말씀은 성소수자 인권을 안 좋게 말하면 범죄고 혐오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네, 자제할게요.”
하며 하지도 않은 말을 퉁명스럽게 들먹이며 속을 많이 썩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지구과학을 담당하는 노년의 윤 선생님이 잠깐 할 얘기가 있다며 내게 속닥거렸다.
“선생님 반에, 차호준이라는 학생 있잖아요. 그 아이, 조금 특이하더군요.”
“공부는 곧잘 하지만 언행이 우려스러울 때가 있긴 해요. 그런데 왜 그러신가요?”
“아니, 제가 보기에 그 학생, 동성연애자임이 확실해요.”
“네?”
“얼마 전에 제가 초근 달 일이 있어서 저녁까지 있었는데, 선생님 반 교실에 차호준이랑, 누구더라···. 아무튼 어떤 남학생이 불을 완전히 꺼 놓고 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몰래 보고 있으니 차호준이 걔가 남학생을 제 허벅지 위에 앉혀 놓고 쓰다듬으면서 뺨을 비비적대는데···. 평소에 게이니 성소수자니 습관처럼 떠들어대는 것도 그렇고, 분명히 그 애, 동성연애자일 거예요.”
“······.”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알고만 계시고 학생한테 언급하지는 마셔요. 저도 말씀 드릴까 하다가··· 아, 징그러워라.”
윤 선생님 말마따나 차호준 군은 디나이얼 게이이기라도 했을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는 단계일수록 극단적인 호모포비아이기 쉽다는 말은 언뜻 들은 적 있지만, 진실은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일이었다. 학생을 불러서 퀴어이면서 퀴어를 욕했느냐고 물어보았댔자 솔직하게 답변할 리도 없었고, 어쩌면 퀴어가 맞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 단계인지도 몰랐다.
청소년 특유의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그래도 차호준 군은 담임교사로서의 나를 신뢰하고 곧잘 따랐다. 거의 학년이 끝날 무렵이 돼서 별안간 긴 상담을 하고 싶다고 교무실로 찾아오기도 했다. 자세히는 적을 수 없지만, 열다섯 살 무렵 어머니의 가출과 그 이후부터 지속된 아버지의 폭력, 여자친구와의 짧은 연애와 그때 느낀 무(無)성애적인 감각 등에 대해서 토로하며,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던, 제 청춘은 괴로움과 외로움, 그리움을 꼭짓점으로 지닌 삼각형으로 이루어졌다던[5] 한 시인의 말마따나 한참 답답함을 토로하다가 떠났다.
열렬한 호모포비아였지만 누구보다 나를 따랐던 호준 군은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연락해 왔다. 그때마다 반갑지만 씁쓸하다. 그가 퀴어라면 같은 퀴어로서 평생을 선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고, 퀴어가 아니라면 내가 퀴어임을 지각하는 순간 호준 군은 커다란 배신감과 함께 곁을 떠날 것이다. 호준 군의 메시지를 눈앞에 두고,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성소수자로서의 소극적 저항의 방식에 대해 염증을 느끼면서, 적극적인 퀴어 교육을 제도 교육에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극심한 갈증에 다다른다. 제도교육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병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할 기회를 갖게 하고, 소수자로서 끊임없이 괴로운 상처를 입거나 입혀가며 살지 않아도 되는 학교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이상주의를 마음속에 품고 산다. 언젠가는 나도 차호준 군의 마음을 순수하게 기뻐하며 맞이할 수 있기를, 또한 노년의 윤 선생님이 가시 돋친 말이 아니라 사랑의 축복을 내려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1]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一日)」, 1934의 형식이나 아이디어를 차용, 변주함.
[2] 김승옥,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1963에서 인용, 변주함. 원문은 「부호(符號)라는 걸 만든 이에게 평안 있으라. 엉망진창이 된 나의 감정을 감정의 뉘앙스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인연 없는 의사(意思) 전달수단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이 신기함이여.」이다.
[3] 김현, 「덧없이 덧없이 덧없이 쓰다 보면…」, 2023. 원문은 「흔들면서/자기는 안 흔들리고/남은 흔들어 놓고/이름도 안 알려 주고/들풀 사이로/물빛 찬란하게/부고도 없이/호박씨 까듯이//그 자리에서 보면/기차는 겨우 아름다운 다리를 지나가고/손 흔들 새도 없이」.
[4]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1934의 결말을 일부 차용, 변주함.
[5]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이 時代의 사랑』, 1981.
문학상상 / 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