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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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5]
2023 책읽당 제8호 문집 "티켓 투 패밀리" 발간 기념 낭독회
2023년 11월 4일 토요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독서 소모임 책읽당은 제8호 문집 "티켓 투 패밀리"를 발간하고 이를 기념하는 낭독회를 개최했습니다. 총 열다섯 명의 당원들이 문집에 글을 실었습니다. 문집을 기획하며 필진들에게 처음 던진 주제어는 ‘n살의 나’였습니다. 주제어의 영향인지 자기고백적인 에세이가 많이 담기게 되었으나,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쓴 소설도 있었습니다. 매년 발간되는 책읽당 문집의 특별함은, 전문 작가만이 아닌 평범한 게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모아내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 책읽당 제8호 문집 "티켓 투 패밀리" 완성본
낭독회는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열다섯 명의 저자 중 열두 명이 무대에 올라 각각 자신이 쓴 글의 한 꼭지를 낭독했습니다. 각자 선정한 PPT 화면과 배경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낭독회 분위기를 다채롭게 꾸며주었습니다. 행사 중간에는 책읽당의 왕언니 크리스 당원이 진행하고 올해 처음 나온 당원들이 답하는 책읽당 Q&A 토크쇼도 있었습니다. 각자가 올해 느낀 책읽당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낭독회 공연장 입구(좌), 인터미션 때 토크쇼를 위해 세팅된 무대(우)
올해 문집과 낭독회에 참여한 몇몇 당원들의 소감을 소개합니다.
문집과 낭독회는 올해 처음 책읽당에 참여하면서 가장 기대했고 기대 이상의 활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부원들 덕분에, 또 함께해주신 작가님 덕분에 글에서 숨겨진 제 이면을 발견하였고 또한 저의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문집 활동에 이어 진행된 낭독회에서는 직접 ppt와 낭독을 준비해가며 다시 한 번 제 글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렇게나 재밌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각설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매우!
책읽당 당원 / 성이름
이번에 책읽당 2023년 낭독회 편집팀에서 디자인을 진행한 나연우라고 합니다. 낭독회에 참가하면서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트관련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북 커버 디자인과 행사포스터 등은 처음해보는 일이라서 긴장을 많이 했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다양한 아트 레퍼런스를 참고해서 책 디자인과 포스터를 무사히 완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자란 부분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처음 해보는 북디자인등이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거기에 다른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낭독회 자체도 너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좀 많이 긴장되고 그랬지만,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진행도 너무 매끄러웠고, 전반적인 행사의 만족도도 일년 중에 저에게는 가장 높았고,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여러사람들의 도움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행사인 것 같고, 다음에도 더 즐겁고 좋은 낭독회를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읽당 당원(문집 편집팀원: 디자인 담당) / 나연우
근묵자흑이랬다? 책 읽는 사람들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한 번 책이란 걸 읽어보고 싶어졌지. 실제로 상당 기간 상기돼 있었어, 꽤나 꾸준히 밀려오는 재미에 한껏. 내향적인 내가 왜인지 과다분비된 도파민 덕에 지난 겨울부터 내리 달려왔다. 사실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여름방학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지. 할 마음이 정말 1도 없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기는 할까? 지도작가가 훈남이고 꽤 똑똑하며 자상하다는 게 큰 메리트였다만, 정말 글 쓸 욕망은 샘솟지 않았다? 주제는 이미 알고 있었어, N(미지수)살의 나. 언제였지? 길을 걸어가는데, 문득 참여도 안 할 글쓰기 모임이 스치듯 생각났지 뭐야. 생각난 김에 선심 쓰듯 생각해봤어. 나에게 쓸 만한 N살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냉소를 뿜으려던 순간 헉 하고 어떤 날이 생각났지. 그러고 보니 넋두리가 아닌 어떤 형태로 따로 출력해 본 적은 없었어. "순식간"에 적어봐야겠다! 적어 보고 싶다! 적어내야 할 것만 같다! 는 맘에 휩쓸렸다. 그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여름방학보다 훨씬 달콤한 유혹. 자 이제 시작이다. 쓸 건 생겼는데, 얘를 어떻게 조리해야 하나. 피비린내 나는 치정극이 좋지만, 내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필력이 없으므로 담백하게 갈피를 잡았다. 훅 써내려가며, 혹은 콱 막혀서 며칠을 골치 아팠던 것마저도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즐거움이었다. 매듭을 지으려고 끙끙 앓았던 건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지.
꽂히는 마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참 유용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 하나로는 유지하기가 어렵지만, 내게는 몇 가지 장치가 남아있었다. 멋진 지도작가의 존재가 좋은 양분이었고, 글쓰기 모임의 동지들! 아, 이 사람들 글빨 뭐야. 타고난 건지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 감정마저 즐거운 자극제였지. 이번 문집은 질 좋은 토질에, 고급 양분으로 이룬 텃밭이라 느낀다. 사과도 있고, 어릔지도 있다. 빠나나야 당연히 있지. 키위도 있었던 거 같다. 각양각색이라, 말그대로 퀴어하다. 읽어내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두리안을 맛볼 수도 있을 거야. 물론 냄새만 맡고는 시니컬하게 비평을 해댈 사람이 있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그게 내 알 빠야? 뀨잉.
지난 일 년이란 시간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로 정리됐고, 그때 주고받았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잉크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며 부끄럽기도 하다. 수많은 활자가 쌓인 광산을 야금야금 파먹어 가다 보면 또 알아? 명왕성에 도착할지!
책읽당 당원 / 우주로
이번 낭독회는 2023년 책읽당을 마무리하는 행사였습니다. 비단 문집과 낭독회만이 아닌, 올해의 책읽당 활동 전체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해준 당원들도 있었습니다. 올해 열성당원으로 활동한 분들의 소감을 아래에 옮깁니다.
이쪽 모임에 관련해서 떠도는 여러 유언비어들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는 유언비어가 대다수다. 그럼에도 정확히 아는 것도 없고 관련 모임이 처음이라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갔다. 결과는 뭐...걱정 놓고 다니고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생각도 들어보고 처음 알게된 책도 보며 이런 생각도 있구나 싶다. 뭔가 스캔들같은 거에 엮이지 않아서 아쉽지만(사실 조용히 무난하게 생활해서 다행이지만), 재밌게 교류하는 인연들을 만들 수 있는 책모임이었다.
책읽당 당원 / 케투
읽어내려간 문장만큼의 우정을 약속하며 –2023 책읽당 소감
책을 읽고 싶어 나온 곳이 아니었다. 서른둘 의정부에 있는 게이 가라오케를 매주 찾았다. 여럿이 앉는 테이블도 있었지만, 홀몸으로 방문한 나는 사장형들과 대화를 나누는 Bar에 착석했다. 10년 다닌 대학에서 유일하게 터득한 ‘배운’ 사회성(?)으로 대뜸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말을 걸었고, 차츰 인사 나누는 사람들도 늘었다. 사장형과 알바형이 바쁠 때면 내가 Bar 안쪽에 들어가 손님들과 술잔을 기울기도 했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혼자였다. 내 자리는 의정부 모임이 한창인 테이블이 아니라, 변함없이 혼자 온 손님이 앉는 Bar였다.
이쪽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일상에서 안부를 묻고, 퇴근하고 술 한 잔에 남자 얘기 실컷 하다 헤어지는. 게이로 살면서 짊어졌던 고민을 털어내고, 여름이면 같이 바다도 보러 떠나는. 그쯤 친구사이 홈페이지에서 책읽당 소식을 염탐했다. 여러 소모임 중 괜히 만만해 보인 게 책이었고, 책 읽는 게이였다. 그런데도 지하철 타고 종로3가역에 내려 책읽당 모임 장소인 사정전에 들어가는데 반년을 주저했다. 올해 책읽당 첫 모임이였던 책(부지런한 사랑, 이슬아)에서 ‘부지런히 사랑하자’라는 문장이 새해 다짐이 돼서야 모임 자리에 나갈 수 있었다.
이제 책읽당과 딱 1년이 된다. 읽은 책의 문장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술과 함께 새벽까지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종종 떠올라 미소를 짓게 해준다. 책읽당 내 몇몇 만담꾼들 덕분에 한주의 피곤함을 날렸고, 때로는 눈물 찔끔하게 해주는 위로도 건네받았다. “우리 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며 나의 초조함을 덜어준 언니가, 집 천장에 물이 샜을 때 감전돼서 죽을까 걱정해주는 동생이 생겼다.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3차 가자고 졸랐던 나를 받아준 형들이, 가만히 자기 어깨를 내주었던 오빠도 있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도 찡한 마음을 공유했고, 투덕거린 적도 있지만 그조차도 애정이라고 전해주고 싶은, 문장만큼이나 뭉클하고 고운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났다. 이들 덕분에 미지의 종로에 이방인 위치에서 벗어나, 나의 종로에 게이로 성장했던 한 해였다.
책읽당을 만난 것이 올해 가장 잘한 일이자, 훗날에도 후회 없었던 선택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해에도 여기서 만난 이들과 꾸준한 우정을 쌓자고 약속하고 있다. 때로는 사랑이라 불리기도 했고, 질투이기도 했던 우정 말이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낯선 곳에 들어온 이를 ‘도망가지 않을 정도’로 반갑게 맞이해주고 싶다. 내가 받아온 고마운 애정이 그에게 전달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조금 더 단단한 관계로 서로가 얽히고설켜, 지친 마음을 버텨낼 수 있는 ‘우리’의 책읽당을 기대해본다.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 루리, "긴긴밤", 12쪽
p.s 언니들, 내년에도 언니 옆자리에서 술병 까고 있을게요! 올 한해 고마웠습니다.
책읽당 당원 / 람
나에게 책읽당은 언젠가부터 한 사람의 서사 없이는 생각하지 못할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독서와 감상과는 거리가 먼 내가 책읽당을 접한 건 순전히 전 남친의 영향이었지만, 그 얇디얇은 연결고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 사람의 따듯한 깊이가 퍼뜨린 파동 덕분이었다. 그는 쓸모없다고 치부되는 것들에도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당당함에 기꺼이 휩쓸리고 싶었다!
자신만의 의견을 내세우기는커녕 수립할 줄도 모른다는 열등감이 차오를 때마다, 그는 나의 속을 헤집어 장난스럽고도 사뭇 진지하게 ‘이게 너의 가능성이야!’하고 꺼내 보이곤 했다.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게 책읽당의 힘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게 되었다. 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서니, 나도 한번 책읽당을 통해 그들이 경험하는 이해와 감정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올해 가장 큰 수확은 책읽당인 듯하니, 내년엔 이 귀하디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겠다!
책읽당 당원 / 참둘기
2023 책읽당 활동을 돌아보며…
1년 전, 한 해를 돌아보는 10대 뉴스를 정리했고, 나름 독서를 통한 성장에 뿌듯해 하고 있었다.새해를 맞아서 더욱 야심찬 독서 목표를 세웠고, 달성을 위해서는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할만한 책모임을 찾다가 누군가(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한)의 추천으로 친구사이 소모임인 책읽당을 알게됐고, 바로 친구사이부터 가입해서, OT 참석, 정기모임까지 마치고, 당당하게 책읽당 2월 첫모임에 나갈 수 있었다. 그날 일기에는 “너무나 좋은 모임을 알게 된 것 같다. 총재님, 홍보담당님 신입이라고 살뜰이 챙겨주시고, 회원들 모두 맑고 친절함에 감동"이라고 썼다. 그 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다음 책 <H마트에서 울다>를 읽기 시작할 정도로 바로 모임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봄에 진행한 피크닉과 가을 영화모임 등 딱 3번만 빼고는 다른 일정들을 조정하면서 모두 다 참석했다. ‘이 나이에 어찌…’라고 생각했던 여름 엠티는 물론이고, 글쓰기는 딴세상 얘기라 여기던 내가 문집 작성과 낭독회까지. 올 한 해 힘겹고 어려운 일들이 연속됐지만, 한 달에 두번은 책읽당 식구들을 만나 깊은 얘기를 나눈 덕에 ‘힐링'하면서 이겨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 잘 차려진 밥상을 너무나 맛나게 즐긴 한 해를 보낸 걸 감사해 하고 있었는데, 바로 내게 새로운 밥상을 차릴 ‘영광‘이 주어질 줄이야. 총회 날 추천을 받고서는, 사랑하는 모임에 제대로 보답한다는 마음과, 더욱 자랑스러운 모임으로 만들겠다는 야망까지 올라와서 손을 번쩍 들고 ‘내가 해보겠소'라고 외쳤다. 내 년 한 해, 내가 받은 것을 얼마나 많이 돌려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고 “한 해동안 잘 먹었으니, 다음 밥상은 내가 차리겠소”라고 당당히 나서 주게 되지 않을까?하고 바래본다.
2024년 신임 책읽당 총재 / 빅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