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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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흘리는 연습' #2]
소식지팀장의 변
: 내 닫힌 소유물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
1.
글 지어내길 좋아하는 인문학도들 사이에서, 글 한 장을 쓰기 위해 남의 글 천 장을 읽어야 하는 역사학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인문학을 참칭한 안팎의 온갖 개소리들에 환멸이 들 즈음이었다. 한 미디어에 빠졌다면 그 미디어로 도달 가능한 높은 경지를 꿈꾸게 되고, 내게 역사란 글의 무람하고 외잡한 속성을 적절히 압운해주는 학제였다. 남의 글 천 장을 읽고 쓰는 한 장의 글은 그렇게 쓰이지 않은 글과 분명히 구별되는 양감과 무게를 갖는다.
역사학자는 수천 장의 남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는 나도 역사 속 사료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친구사이 소식지였다. 2014년 소식지팀에 처음 들어갈 때, 만들어진지 4년차 되었던 온라인 소식지의 모든 기사 서지를 모은 호별총목차를 만들었고, 친구사이 20년사 사업에 참가하면서 오프라인 소식지도 같은 요령으로 작업했다. 글을 쓰기 위해 먼저 남의 글을 성실히 읽는 근면은 반드시 그에 값하는 보상을 가져다준다.
그 4년차 총목차가 어느새 15년차가 되고, 친구사이 20년사는 소식지 30주년 기념 전시로 바뀌었다. 돈 한 푼 안받고 글 쓰고 남의 글 매만지고 교열 보는 일을 7년째 하면서, 돈을 안받는 일이기에 맛볼 수 있는 보람과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쓴 글로 출판사를 낀 두 권의 단행본을 냈고, 수 편의 논문을 쥐었으니 세상 사람이 말하는 이문에 딱히 모자라는 일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들을 통해 이쪽 판에서 늘상 떠도는 말과 주장들의 패턴을 익히고, 그에 대해 앞서 고민했던 글들 가운데 오늘을 조망하는 눈을 가진 것이겠다.
글과 아카이브의 힘이란 게 그러하다. 개소리들 가운데 미래에 대한 예언을 저도 모르게 흘리고, 그때엔 진리라 믿었던 것이 수년이 흘러 누구보다 앞질러 낡기도 하고, 그 가운데 내가 어디로 발뻗고 나가야 하는지를 교차 검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남의 과거를 읽기만 하거나, 오늘의 운동을 따라가기만 할 때는 알기 어려웠던 것들을 이 공짜 글을 쓰고 만지면서 배우고 익혔다. 한국의 퀴어 단체 소식지 아카이브에 이리 많은 예술가들이 붙어 작업하는 것이 시종일관 덜 면구스러웠던 이유다.
나는 근면하게 남의 글을 읽었고, 그를 통해 근면하게 내 공짜 글을 썼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배움을 가져다 주었는지 대체로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한 효능감은 부끄럼 없이 믿는 편이고, 그것은 누구도 훼멸할 수 없는 내 삶의 존엄이다. 매달 소식지를 만들고 과년도 소식지를 읽는 일은 힘들었지만, 돈 한 푼 안 받고 한 그 일 가운데 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을 얻었다. 그것은 이 짧은 글로 채 담을 수 없는 어떤 풍요와 범람의 경험이다.
2.
2,240편의 글을 읽고 <흘리는 연습판>에 들어갈 145편의 글을 고르고, 그중에 <아카이브 테이블>에 인쇄해 올릴 32편의 글을 다시 추리는 일은 힘들었다. 필연적으로 무엇이 더 가치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기록된 역사는 기록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 무덤 위의 휘파람이다. 그 작업이 즐거웠을 리 없다.
내 직업이 역사학자고 역사 연구지만, 나는 연구가 즐거워서 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를 그 자체로 즐거워서 연구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남의 과거를 함부로 파헤쳐 이거 신기하지 하고 들이미는 인간은 도굴꾼이지 연구자가 아니다. 남의 과거란 그만큼 신성한 것이다. 또 연구와 공부가 즐거워 몸둘 바를 모르겠는 사람들의 생활 세계에 대한 감을 믿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재미와 즐거움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연구보다야 술 퍼먹고 노는 게 훨씬 재밌고, 연구자가 연구와 강의로 만나야 할 이들 또한 그런 사람들이다. 연구는 즐거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몹시 필요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하는 것이다.
남의 과거뿐 아니라 내가 직접 쓰고 수합한 과거 글들 또한 신성하다. 2018년 인천퀴퍼 사태, 2020년 킹클럽 코로나 팬데믹 사태, 2022년 임보라 목사 서거, 같은 해 내가 아는 활동가 두 명을 3~40일씩 굶기고도 결국 차별금지법 통과를 못 이뤄낸 마지막 단식 정리 집회의 기록, 2024년 비상계엄 사태 때 모든 욕지기나는 감정을 뒤로하고 수합한 수십 수백건의 성명들, 그밖의 수많은 기록들, 질문들, 눈물들, 상념들.
그렇게 피로 쓴 글을 제발 좀 읽어달라고 거진 부르짖어 온 소식지 역대 기사들을 모두 읽은 후에, 그것을 추리고 추려 인쇄해 깔아놓은 것을 사람들이 적잖이 앉아서 읽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사람이 살면서 내가 내심 바라던 풍경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드문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글은 글 읽는 사람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진실로 내 젊음을 살라 매만진 글들을 읽어준 모두에게 고맙다.
3.
박사학위 따고 박사후연구원으로 빡세게 살다보면, 저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살기로 했으니 부럽다든지, 좋아하는 일이니 그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을 종종 듣는다. 틀렸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연구가 필요해서 하는 거지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해 선택했으니 감수할 부분이 분명 있고 그에 따른 보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지가 좋아서' 저러고 사는 팔자 핀 인생으로 이 바닥 생활을 요약하는 건 부당하다. 학술판은 그런 대책없는 마인드로 버틸 수 있는 바닥이 아니다.
아카이브도 그렇다. 남의 글 닦아읽고 매만지고 하는 일을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겠거니 여기던 사람을 이 작업을 하면서 많이 만났다. 틀렸다. 이 노가다에 가까운 일은 즐거움보다는 오욕칠정의 복마전으로 점철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만진 아카이브에 적잖이 훼손된다. 이걸 다 보고 다 매만진 사람의 속이 멀쩡할 리가 없다. 저 글들이 함부로 앗아가고 함부로 내뱉은 내 영을 어디서도 수습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나는 때로 저 아카이브 앞에 참혹하게 외롭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가진 의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납득했을 바로 그것이다.
물론 아카이빙 작업이 아무런 애착 없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작업의 과정 모두가 나의 한량없는 애착 가운데 '좋아서' 하는 일로 오인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남이 해놓은 가치있는 일을 정리된 형태의 글과 사진으로 옮겨 싣는 것은, 일견 손에 닿듯 쉬운 일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 및 활동과 내가 급진적으로 관계맺는 일이다. 말하자면 나는 아카이브 자체에 애착이 있다기보다, 그것을 통해 얻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애착이 있다.
내가 여태껏 게이커뮤니티 사람들과 관계맺은 방법들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내가 인터뷰한 사람의 활동을 충분히 공부한 다음 그것을 통해 인터뷰 기사를 성실히 낸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인터뷰이와 두터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인간다운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한 경험은 진실로 나에게 살맛을 준다. 내가 하는 아카이빙 작업은 대체로 썩 훌륭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다. 나는 종종 희떡번떡해도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내 옆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건 과거의 내가 얼마간 그리 공들여 세팅해둔 결과고, 그것이 때로는 나에게 큰 힘이 된다.
그 관계의 일부를 이렇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은 인생에 몇 번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전시 마지막 날 전시회장을 오래도록 눈에 담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렇게 내 일과 관계에 대한 보람을 대접받을 기회는 앞으로 자주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 전시가 끝나면 나는 또 일거리가 쌓인 내 방 안 고적한 나의 세계로 향하는 거라고. 연구를 하고 아카이빙을 할 때 내내 마음먹은 것처럼, 그 일을 하는 시공간 속의 나는 이런 문채빛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은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아도 삶 가운데 지속되는 활동이고, 그래야만 그 투실투실한 노동을 통해 인생에서 가끔 이런 복락을 볼 기회가 생긴다.
4.
친구사이 30년의 역사가 없었다면 쓸 수 없었을 전시장의 글을 소개하며 긴 소회를 마칠까 한다. 친구사이가 있었기에 한국에서 게이란 말은 미국과도 일본과도 대만과도 태국과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닫힌 의미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충분히 안 채 정체성 기반의 운동을 할 수 있었고, 후발 주자의 커밍아웃 전략 위에 연대라는 가치를 선발 주자보다도 빠르고 두텁게 접목할 수 있었다. 인간들을 두루 차별하지 말자고 단식한 두 명 가운데 한명이 게이인 것은 스톤월 항쟁의 본거지인 미국에서도 좀처럼 있어본 적이 없는 사건이다. 그 근거있는 자부심 위에 써내린 글들이고, 그렇기에 그간의 내 소식지 활동을 포함한 이 전시는 명실공히 친구사이의 운동적 자산이다. 그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닫힌 소유물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친구사이에서 익힌 '나'와 '(게이)정체성'을 다루는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 <흘리는 연습> 중 김대현, “별 별 별 별 별 별” 문구 (2.는 심기용 집필, 6.은 김대현/심기용 공동집필, 2025.1.16. 확정)
1. 감정의 아카이브
사건은 감정이 타래진 총체이고, 아카이브는 그 감정들이 모두 잠든 수장고입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고, 있던 것에 새 이름을 붙이는 운동 안에는 그에 값하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때 그 속에 있는 무언가를 믿고, 모두가 나를 부정할 때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믿고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2. 일상을 유지하는 힘
외부의 시선과 낙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하루를 살아야했기에 마음을 모아 보금자리를 마련해왔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우리의 터전이 태풍의 눈일지언정 놀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서로를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아왔습니다. 그것으로 세상이 바뀌겠냐는 비아냥에도, 살아남아 일상을 유지하는 힘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3. 사랑을 둘러싼 정념
때론 사랑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어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사랑도 섹스도 아니라고 남들이 말할 때, 내 사랑과 섹스는 그럼 무엇인지를 더 열심히 논쟁했습니다. 누군가를 끝내 밀치지 않아도 되는 식의 사랑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고 내가 가진 쾌락에 합당한 말을 어찌 지을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싶었고, 우리는 늘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4. 세상에 선보이기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기쁘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 기쁨과 괴로움을 딛고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은 늘 긴장 속에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그 속에서 내가 변하는 체험이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었습니다. 커밍아웃이란 말을 누구나 갖다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속에 도사린 쨍한 통증과 빛나는 눈부심까지 함부로 갖다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맨얼굴로 거기 있었습니다.
5. 얼떨결에 어울리기
드러낸 맨얼굴로 또다른 맨얼굴들을 만났습니다. 남으로 만나 서로를 식별하는 일은 언제나 짐작한 것 바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아픈 실수도 있고, 기적같은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얼떨결에 함께 있던 이들은, 나를 알아주고 서로를 알아봐준 일을 오래 기억했습니다. 무섭고 낯선 남을 만날수록 그보다 낯선 나를 매번 마주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을 또다른 맨얼굴이었습니다.
6. 미래에 대한 열병
우리는 잘될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잘될 것을 꿈꿔왔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은 때로 하릴없고 정처없지만, 잘될 거라는 낙관 아래에는 세상에 신음하던 기억이 있고, 그 신음 가운데 미래로 향한 열망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열망 가운데 우리는 미래를 꿈꾸었고, 그 꿈의 기록은 예언으로 남았습니다. 열병을 품고 무언가를 남기는 한, 신음하는 현재 속 미래는 우리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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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영 기획, 친구사이 소식지팀 자료 제공, 《흘리는 연습 : 1994년 시작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를 돌아보며》, 2025.2.7~2.16. @윈드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