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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기고] ‘비상계엄’, 그 긴 밤을 불안으로 지새웠을 당신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2024-12-06 오후 16:05:29
109 2
기간 11월 

 

[기고]

‘비상계엄’,

그 긴 밤을 불안으로 지새웠을 당신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12월 4일 아침, 유독 친구사이 동료들의 안부를 묻고 싶었어요. 불안과 당혹 속에서 긴 밤을 견디며, 그래도 안도와 함께 찌뿌둥한 일상을 시작했을,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한숨짓고 있을, 나의 동료들이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함께 비상계엄을 이겨낸 밤

 

2024년 12월 3일 저녁 10시 30분쯤, 오랜만에 후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형, 비상계엄이라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죠. 순간, ‘드디어 전쟁이 터졌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도 그렇거니와, 정권의 위기 탈출에 있어 안보만큼 활용하기 쉬운 의제가 없기 때문이었죠. 비상계엄이 발령될 정도라면 국지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황급히 대통령 담화를 시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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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12. 3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6분 남짓한 대통령 담화를 들으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이유로 1) 잦은 정부 관료의 탄핵소추안 발의, 2) 사법부에 대한 겁박, 3) 국가예산 처리 지연으로 인한 국정 마비를 들었습니다. 헌법 제77조 ①항에 명시된 ‘전시·사변’과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일 때야 비상계엄 선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애초 성립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통령의 정책추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정치적 협상력을 발휘할 일이지, 전국민을 겁박하며 계염령을 선포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특히 군사독재 시절 계엄이 초래했던 일상에 대한 통제, 사법살인, 국가폭력, 그리고 1980년 광주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간직한 한국 사회에서, 야밤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심각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행위였습니다.

 

문득 퀴어를 공산주의 혁명분자로 취급했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창호의 발언이 떠올랐어요. 비상계엄 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던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듀얼-모니터에 여러 개의 단톡방을 차례로 켰어요. 연구자, 활동가 단톡방과 책읽당을 비롯하여 이쪽 친구들 단톡방이었어요.

 

우리는 상황을 공유하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에 대응해갔어요.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계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이 지금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을 공유하며 불안한 마음을 다소 가라앉혔어요. ‘전군 비상경계 및 대비태세 강화 지시’, ‘국회출입 금지’, ‘계엄사령부 포고령’ 등의 속보와 서울 시내에 장갑차가 배치되고, 공수부대가 국회의 유리창을 깨며 진입하는 장면 등을 공유하며 상황을 함께 지켜보았어요. 누군가 <미친 거 아닌가>, <나라 꼴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나>라는 탄식 섞인 쪽지도 올라왔어요.

 

무엇보다도 서로의 안전과 안부를 챙겼어요. <정치색은 달랐어도 이 방에서 나눴던 이야기는 비밀로 하자>라는 식의 은근 신경 쓰이는 말도 있었지만. 험난한 시국 앞에 서로가 진심으로 무탈하기를 바랐어요. 또한,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있었어요. <내가 굵은 목소리 낼 때가 온 건가>, <영화 <서울의봄>을 실사판으로 보게 될 줄이야!>라는 식의 농담을 나누며, 잠시 미소짓곤 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명을 단축하고 있다>는 말에서 대통령의 겁박에 위축되지 않는 용기를 느꼈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우리끼리 더욱 복닥거리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자>라는 위로도 나눴어요. 그쯤 친구사이에서도 <우리가 연결돼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주었지요. 대통령은 몇 마디로 평온했어야 할 겨울밤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우리는 서로의 말에 기대 혼란을 수습하는 질서를 구성했어요. 단순 비교할 수 없겠지만, 서로의 안부와 용기를 챙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노력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을 1980년 5월 광주의 밤이 떠올랐어요.

 

12월 4일 새벽 1시 1분, 재적의원 190명 중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아래 결의안)이 통과되고서야, 160분 동안 이어진 두려움과 불안을 내려놓았어요. 누구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는 게 고마웠어요. 저는 국회의 결정을 대통령이 받아들이기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어 대통령 공식발표가 있던 새벽 4시 30분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했습니다.


 

퀴어답게 민주주의를 시작할 시간

 

전 국민에게 공포와 충격을 선사한 대통령의 비상계엄사태를 두고 정국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다행히 국회의 신속한 대응과 민주주의 수호를 바라던 시민들에 의해 비상계엄의 폭거를 멈춰 세웠지만, 만약 비상계엄을 멈추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끔찍한 상상을 쉽게 떨쳐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담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가 언급한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은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내부의 적으로 옮겨놓고, 이로써 사회를 통제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특정한 적이 실재하기보다, 적을 규정함으로써 적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몇 년 전 코로나 시국 때, 게이 커뮤니티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낙인하여 혐오와 차별을 조장했던 경험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문하는 우리에게 ‘종북 게이’라는 표현을 통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던 보수세력들이 떠오릅니다. 특정한 존재를 적으로 규정하여 사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지요. 적어도 이 문제가 게이(퀴어) 커뮤니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동료 시민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폭력에 대해 우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서슴없이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무장된 무력으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침탈하고, 이로써 한국 사회를 87년 이전으로 회귀시킨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사태는 명백히 위법 행위이자 ‘내란 행위’입니다.

 

내란죄 적용에 대해 법리적 다툼이 일어날 소지는 있으나, ‘무엇을 내란으로 규정할 것인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감각에 달려있기도 합니다. 내란죄는 대통령 임기 중에도 구속·수사가 가능합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만이 아니라, 내란에 동조한 자와, 내란의 주범을 지키려는 자,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금 ‘계엄’을 역사 아래에 묻어둘 수 있습니다.

 

더하여, 민주주의의 붕괴가 열어놓은 열망의 장에서 앞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동료들과 나누고 싶어요. 내란죄로 대통령의 구속되거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미래 말고도, 각자의 소망이 담긴 미래가 있겠지요. 정국을 풀어가는 방향을 두고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도 의견이 다를 텐데요.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이전과 다른 세상을 위한 다양한 의제를 광장으로 모아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가 깊이 공명하길 바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저는 비상계엄을 꺼내든 권력을 감금하는 것으로 이 싸움이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가 이전과 다른 세상을 열어가는데 마중물이 되고,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12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야5당 비상시국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동지들이 함께 자리했는데요. 전장연 동지들이 준비해 간 <장애인도시민으로이동하는시대로> 피켓을 들자 민주당 당원들이 피켓을 내리라고 강요했고, 현장에 있던 동지들은 욕설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전장연 동지들은 굴하지 않고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켓팅 실천을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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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12. 4 국회에서 열린 야5당 비상시국대회와 전장연 피켓투쟁 (출처: 전장연)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민주주의라면, 과연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퀴어,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대의를 앞세워 광장의 동지들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상처 주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미래는 대통령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것보다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나의 삶과 동료들의 삶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전과 다른 세상을 열겠다는 투쟁의 광장에서부터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에 주도면밀하게 맞서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민주주의는 집권세력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변화로 이뤄져야 합니다. 

 

8년 전, 광장의 촛불이 정국을 규정했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세월호참사 가족들과 민중총궐기 투쟁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백남기 농민이 앞장섰으며,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촛불을 밝혔습니다. 당시 ‘거국내각’이니 ‘책임총리제’니 정치적 타산에 매몰된 여의도 정치는 거대한 분노로 타오른 광장을 목격한 뒤에야 눈치를 보며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습니다. 

 

다시 광장으로 나서기 위해 두툼한 옷과 운동화를 준비합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 혼인평등법과 나아가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쟁취한 세상,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바라며 광장으로 나섭니다. 많은 이들의 온기로 이 겨울을 버텨봅시다. 아니, 우리의 온기로 미래를 채워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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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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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1 2024-12-16 오후 20:32

‘민주주의의 붕괴가 열어놓은 열망의 장에서 앞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동료들과 나누고 싶어요.’ 글을 읽으며 이 부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광장에서 탄핵을 외치면서도 뭔가 풀리지 않은 답답함이 있는데 그게 아마 위에서 언급한 부분에 대한 욕구인 것 같아요. 

 

2016년과는 확실히 달라진 광장의 풍경들을 목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탄핵 이후 펼쳐질 세상은 어떤 곳이어야 할지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들을 나누고, 숙의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댓글을 남깁니다. 람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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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_ 2024-12-18 오후 22:25

비슷한 답답함을 안고 광장에 함께 있었네요. 2017년, ‘나중에’라는 한마디에 무지개 깃발이 무대 뒤편으로 밀려났던 경험 때문인지, 회원님이 가진 답답함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 광장을 수놓는 무지개 깃발과 퀴어-페미니스트를 비롯한 소수자 주체들의 목소리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해요.

최근 부산집회에서 자신을 노래방 도우미로 소개했던 유진씨 발언이 인상적이어서 자주 듣고 있어요. 유진씨는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쿠팡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삶의 터전이자 일터인 용주골에서 쫓겨난 성노동자들, 지역·여성·퀴어를 향한 혐오 등 탄핵이 놓치고 있던 민주주의의 과제를 짚어냈는데요.

탄핵 이후의 광장에서 저는 일상과 사회의 변화를 촉진할 다양한 열망들을 듣고 싶고, 만나고 싶어요. 날이 점점 추워지네요, 건강 잘 챙기면서 광장에서 조우하길 기대하겠습니다.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앗,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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