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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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6]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 참관기
지난 9월 27일, 행사 주최 단위인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 페이스북 계정에 업로드된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 행사 참관기를 친구사이 소식지에도 공유합니다. 소식지 업로드를 허가해주신 센터측에 감사드립니다. - 소식지팀 |
2023년 9월 9일 토요일 오후 2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 주최로 네팔, 대만, 일본, 태국, 한국 등 5개국의 패널이 참가하는 아시아 성소수자 컨퍼런스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가 개최되었습니다. 행사는 서울 글로벌센터 9층 컨퍼런스홀에서 진행되었으며, 참가자에게는 동시통역이 제공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독일 녹색당 소속 재단으로 출발하여 1997년 출범한 싱크탱크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 Böll Stiftung)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이주 문제와 퀴어를 포함한 성평등(젠더 민주주의, Geschlechterdemokratie) 문제를 주요 과제로 설정해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첫번째 발표로, "나이듦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를 표제로 대만통쯔(성소수자)핫라인협회(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 사회복지국장 치웨이 쳉(Chiwei Cheng)의 브리핑이 진행되었습니다. 대만은 주지하다시피 기존의 민법을 재해석한 사법원 석자 제748호 해석시행법(司法院釋字第七四八號解釋施行法)이 2019년 5월 17일 입법원에서 최종 승인되고 5월 24일 시행되어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 법제화가 달성된 국가인데, 그것의 발판이 된 것이 바로 2004년 6월 23일 제정·공포된, 성폭력 예방 및 퀴어 가시성 등의 교육 내용이 명시된 「성별평등교육법(性別平等敎育法」이라는 사실이 발제 서두에 지적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발제문은 성소수자 인권에서 성교육이 갖는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대만 전국의 성평등 교육 증진을 위해 힘쓰는 건, 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동성애 혐오를 뿌리 뽑는 최고의 수단이자 가장 근본적인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자료집, 8쪽)
또한 대만 중·노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통쯔 핫라인의 활동이 소개되었는데, 그중 단연 돋보였던 것이 이 단체에서 기획·발간한 2010년 중·노년 게이 남성 12명의 생애사를 모은 책 『레인보우 중·노년 남성 버스 : 동성애자 노인 12명의 청춘 기억(彩虹熟年巴士:12位老年同志的青春記憶)』, 2012년 중·노년 레즈비언 17명의 생애사를 다룬 책 『할머니의 여자친구 : 레인보우 중·노년 여성의 다채로운 청춘(阿媽的女朋友:彩虹熟女的多彩青春)』이었습니다. 대만 타이완 섬 계엄령 발동 시기(1949~1987)를 몸소 겪은 중·노년 성소수자들의 집단적 생애사 기록으로, 한국의 경우 수명의 노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몇몇 논문이나 영상 매체를 제외하면 유사한 작업이 아직은 실현된 바가 없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중·노년 게이의 경우, 그들에 대한 인터뷰가 가능했던 것은 '할머니(阿媽)'라 불린 한 노년 게이의 주선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분은 실제로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대만 각 지역 사회복지센터의 성평등 교육 출강을 하고 계신 것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통쯔 핫라인의 또다른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바로 대만 중앙정부와 시정부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의제 관련 협력 회의에 참여하고, 각 지역의 노인지원센터를 포함한 의료인, 사회복지사, 장기 요양 서비스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인 점에서, 이러한 단체 활동의 연계를 통해 인터뷰이 섭외가 자연스레 진행되었다는 점이 주목되었습니다. 더불어 사회복지 분야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진출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도 함께 절감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발표로, "침묵의 목소리 : 태국의 트랜스젠더 노년"이라는 표제로 아스트라이아 레즈비언 정의 재단(Astraea Lesbian Foundation for Justice)의 태국지부 파트너십 매니저 트랜스젠더 여성 후아(Hua, Nachale Boonyapisomparn)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이 재단은 LGBTI의 인권 증진을 목표로 1977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되었고, 2014년 인터섹스(간성) 인권 기금(Intersex Human Rights Fund)을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활동 반경이 LGBT+에 걸쳐있기는 하지만,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을 건 재단의 지역 담당자가 트랜스젠더 여성인 사실에서 새삼 많은 것을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발제문의 저본은 2021~2023년 태국보건증진재단의 지원으로 실시된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T-HAT: Transgender Health Access Thailand) 프로젝트'의 중·노년 트랜스젠더 당사자 인터뷰로 구성되었습니다. 태국이 미군 기지 주둔과 거기에 부대된 기지촌 형성, 그로부터 견인된 섹스 관광을 통해 관광 대국으로 성장한 면이 있는 만큼, 성매매에 종사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빈곤 문제가 내용 가운데 주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태국이 성확정수술(SRS)의 메카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태국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비싼 수술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은 울림이 있었고, 한국과 달리 태국에 법적 성별정정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 또한 함께 지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인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생존과 겪은 경험 자체가 그들의 “상당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 대목(28쪽), 한편 "가시성이 곧 평등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대목(29쪽)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고유의 질감을 잘 드러내준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인터뷰이들 몇몇이 언급한 "카토이(katoey, гะपทל)"에 대한 낙인에 눈길이 머물렀는데, 태국어로 '카토이'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소위 '끼순이' 게이를 함께 아우르는 용어로, 마치 한국의 '보갈'과 비슷한 범주의 어휘로 그 말에 얽힌 낙인이 양국이 서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세번째 발표로, "기존 법률 및 정책을 포함한 네팔의 LGBTAIQ+ 고령화 현황"이라는 표제로 미티니 네팔(Mitini Nepal) 사무국장 사리타(Sarita K.C)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미티니 네팔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로 2002년 창립되었습니다. 또한 네팔은 2023년 6월 대법원이 성소수자 커플 혼인 신고를 위한 "과도기적 메커니즘(transitional mechanism)"을 구축하라는 임시 명령(temporary order)을 공표함으로써, 성소수자 커플 결혼등록을 잠정 허용하는 사회적 진전을 이룬 국가이기도 합니다.
발제문의 저본은 SAGE(Services & Advocacy for GLBT Elders)의 네팔 지역 보고서로 구성되었습니다. SAGE는 1979년 미국 뉴욕에서 창립된 단체로, 설립 초기부터 노년 LGBTQ 이슈에 특화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네팔 지역에 거주하는 100명의 노인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보고서가 2023년 6월에 공개되었습니다. 인터뷰는 대면 및 유선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사 대상 노인 성소수자 중 68%가 트랜스젠더 여성 스펙트럼이었던 것이 이채로웠습니다. 또한 이 조사를 통해 국제 사회에 두루 알려지게 된 네팔 노인 성소수자 여성의 얼굴이 슬라이드로 소개될 때는 숙연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발제자께서는 네팔이 남아시아 국가들 중에 퀴어 친화적인 이미지를 지닌 국가로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별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네팔은 본래 군주제 국가였다가 2006년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2015년 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당시 헌법에 젠더 기반 차별 금지 조항이 명문화되었지만, 실정력이 크지는 않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네팔에서는 퀴어 차별의 문제를 넘어, 가족이 아예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당사자가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부터가 과제인 상황이 발제를 통해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2006년 노인복지에 기념비적인 입법인 「노인법(Senior Citizens Act)」 제정, 2018년 네팔의 사회보장법인 「사회안전법(Social Security Act)」 제정 등이 성소수자 노인복지 관련법으로 열거되었습니다.
네번째 발표로, "현재 일본의 성소수자 노년의 상황과 퍼플핸즈의 활동"이라는 표제로 '퍼플핸즈(Purple-Hands, パープル・ハンズ)' 사무국장 나가야수 시분(Nahayasu Shibun)의 발제가 진행되었습니다. 퍼플핸즈는 2013년 창립된 일본 노년 성소수자에 특화된 NPO법인으로, 발제자께서는 사업 대상이 주로 게이 중심인 점을 한계로 지적해주셨습니다. 또한 이와 연관되어 HIV 감염인 중·노년 게이에 대한 여러 사업들의 현황도 함께 소개해주셨습니다.
발제문은 퍼플핸즈에서 2015년 발간한 『(간병, 의료, 복지 관계자를 위한)노년기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지원 핸드북 : 독신생활, 동성커플생활, 의료방문, HIV, 성별전환((介護や医療、福祉関係者のための)高齢期の性的マイノリティ理解と支援 ハンドブック : ひとり暮らし、同性ふたり暮らし、医療面会、HIV、性別移行』의 내용 및 단체의 활동 소개로 구성되었습니다. 위 핸드북의 목차는 1) 성의 다양성, 2) 노년기의 성소수자, 3) 트랜스젠더, 4) 의료 면회·의료 설명, 5) HIV 감염증, 6) 성년후견제도 등으로, 이날 언급된 다양한 국가의 자료들과 더불어 한국어로 번역되면 유용하게 참조될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이 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인 LGBTQ를 대상으로 한 "노후강좌", 즉 인생설계강좌의 내용이었는데, "1) 신뢰할 만한 돈과 사회 시스템 관련 지식(저축, 사회보험, 민영보험, 부동산 등), 2) 결혼제도 바깥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유서, 후견인, 의료진술서 등 법적 문서 관련 지식), 3) 커뮤니티와 연결된 생활방식(장기 요양보험 및 독거노인 지원 시스템과 같은 정부 정책 및 시스템 공부"(65쪽)가 열거되었습니다. 발제자는 이를 강의 참석자가 맞아야 할 "지식 백신"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한편 이런 강좌에서도 섹스 얘기만 하려고 드는 게이들이 많다는 점, "신주쿠 니초메에서는 젊음과 근육이 크게 중시된다"(63쪽)는 대목에서 청중석의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발표로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나이든다는 의미"라는 표제로 작성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 활동가 한채윤님의 발제문이 제공되었습니다. KSCRC는 2002년 설립된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로, 안타깝게도 이날 채윤님이 모친상을 입은 관계로 해당 발제의 브리핑은 같은 단체 활동가이자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캔디님이 대신해 주셨습니다. 이 행사는 KSCRC에서 조직한, 성소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문단체로 2023년 발족한 '큐라이프센터'의 활동 소개와 더불어, KSCRC에서 그간 진행해온 두 편의 중·노년 성소수자 대상 조사의 결과보고서 공개를 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발제문은 채윤님의 경험과 더불어, 이 행사가 있던 2023년 9월 9일 함께 공개된 두 편의 보고서, 즉 『성적소수자의 노후 인식조사 보고서』와 『2023 제2차 성소수자의 노후인식조사 보고서』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조사 내용에서 주목되었던 것은, 두 조사 모두에서 성소수자들이 생각하는 노후 준비·지원을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로 주거정책이 압도적인 1위로 꼽힌 것이었습니다(77쪽). 이는 대국민조사에서 주거가 4위로 나타난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으로, 성소수자의 주거 문제가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걱정거리가 되고 있고, 앞으로 성소수자의 주거권이 운동의 주요 과제로 자리잡게 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발제문에서 노년 성소수자들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만나면서 "다시 벽장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대목도 큰 울림과 비감함이 뒤따랐습니다. "다시 벽장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은 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1958년 출범한 미국 내 은퇴자를 위한 협회)와 SAGE이 뉴욕에 거주하는 50세 이상의 성소수자 관련 자료 조사를 통해, 2021년 발간한 공동보고서 『격차 해소: 50세 이상의 LGBTQ 뉴욕 시민을 위한 솔루션(Disrupting Disparities: Solution for LGBTQ New Yorkers Age 50+)』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 보고서의 7쪽에는 조사 대상 노년 성소수자 중 34%, 트랜스젠더 및 성별 비순응 노년 성소수자의 54%가 집을 새로 구할 때 "벽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공포(fear having to re-closeting themselves)"를 느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생애 주기와 늙음에 따른 취약성의 경험 가운데 이성애자/동성애자·양성애자, 시스젠더/트랜스젠더 사이의 위계가 결코 지워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청중 토론 중 대만의 페미니즘·퀴어 백래쉬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만의 게이 활동가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는데, 자신이 교육 현장에 갔을 때 여성혐오적 욕설을 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그런 까닭에 교육 내용 가운데 꼭 여성 인권을 먼저 얘기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청중이 이성애자인 까닭이 있다고 언급하셨습니다. 더불어 자신이 젊었을 때는 여성운동에 대해 잘 몰랐고, 여성을 차별한 경험도 있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만난 여성 성소수자들과 그들과의 연대 속에서 여성의 경험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술회하셨습니다. 대만 동성혼 법제화의 성과 이전에 성평등 교육의 제도화가 선행되었다는 발제문의 내용에 걸맞는 수미쌍관의 언급이었고,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어떤 것을 놓치면 안되는지를 다시금 음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성소수자는 종종 '미래 없음'의 감각에 시달립니다. 벽장 속에 늘 있던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용케 빠져나온 사람조차, 나이가 들면 그 벽장에 다시금 들어가는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그리 갈라놓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간극에 많은 성소수자들이 지금도 고통과 모욕을 느낀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벽장 안과 바깥에 있는 성소수자들 모두에게 '미래가 박탈된' 형태의 과제 상황으로 경험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구조적 조건으로부터 해방되어 각자 늙어가는 행복을 거머쥐는 과제는 물론 버거운 짐이겠지만, 적어도 이날 이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통해 그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늙어 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벽장과 개인의 팔자에 재삼 기대지 않고, 여지껏 살아온 존엄을 지키는 가운데 지내온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늙고 함께 약해질 수 있는 인생의 단서를 그래도 어렴풋이 손에 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