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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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장에 나선 무지개 순례자들에게
▲ 2024. 12. 21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
1. 정의로운 시간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에 몸이 자꾸 움츠러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부풀어 오르는 12월입니다. 지난 주말(12.21~22), 서울 남태령에서 경찰차벽에 막혀 고립되었던 전봉준투쟁단이 28시간 만에 봉쇄를 뚫고 한남동 윤석열의 거주지까지 진출했습니다. 13대의 트랙터와 그 뒤를 따르는 수천 명의 시민들은 “투쟁”을 외치며 <다시만난세계>를 불렀고, <여성농민가>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었습니다.
16일부터 투쟁단은 ‘윤석열 체포’, ‘개방농정 철폐’를 주장하며 각각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출발했습니다. 트랙터 행렬이 막힘없이 경기도를 지나 서울로 진입하자, 경찰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해산하지 않을 경우 진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21일). 이 소식이 전해지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집회를 마친 뒤 남태령으로 모여들었고, 경찰의 침탈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밤샘 농성을 결의했습니다.
삼천만 모두가 잠들었던 그 새벽,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농민들과 함께 싸우는 이유와 저마다 바라는 미래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말과 응원을 불씨 삼아 영하 10도의 한파를 견뎌냈습니다. 현장에 가지 못한 시민들은 간식과 핫팩을 보냈고, 저체온증 응급환자가 발생하자 모금을 통해 난방버스를 빌려 지원했습니다.
내란수괴를 비호하기 바쁜 한 위정자는 위태로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걱정하기에 촉박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봉준투쟁단의 시위를 “난동”으로 헐뜯으며 “몽둥이가 답”이라는 망언을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집회·결사의 자유는 나의 권리이면서도 동시에 타자의 권리임을 분명히 하며,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는 권력에 맞서 “연대가 답”임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이른바 ‘남태령 대첩’이라 불리는 이번 투쟁이 많은 이들에게 경이로움과 감동으로 전해진 이유에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로 밀려났던 농민들의 투쟁을, 각자의 취약성을 가진 서로가 연대하며 끝내 지켜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봉준투쟁단의 폐정개혁안 10조에 담긴 “여성, 장애인, 이주민, 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철폐한다!”는 구호를 넘어 남태령에서 현실이 되었고, 이것이 농민의 생존과 존엄을 보장하는 일이자 정의로운 미래와 공명함을 입증했습니다. 농민이 지은 쌀을 먹지 않고 자란 사람이 없고, 무지개가 비추지 않는 하늘 또한 없습니다.
2024년 12월, 저는 온갖 억지로 우리의 일상을 망가뜨리려는 위정자들을 목격하면서도, 동시에 이에 굴하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동료들을 바라봅니다. 12월 3일 야밤에 벌어진 계엄이 실패한 후,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전복하고자 했던 내란세력을 엄벌하는 투쟁에 나섰습니다. 계엄군과 탱크를 동원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를 물리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한 무기는 발광하는 응원봉과 K-POP 떼창이었습니다.
7일 밤, 어두운 여의도를 가득 메웠던 빛의 행렬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행렬은 유년 시절 애정했고, 그만큼 저 자신을 투영하기도 했던 만화 속 정의의 요정(전사)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우리는 절망을 이겨내는 마법의 주문마냥, 변화와 사랑을 눌러 담은 K-POP 노랫말을 흥얼거렸습니다. 내란세력들은 이를 두고 “사회에 암약하는 반국가세력의 준동에 항전의지가 약한 시민들이 세뇌 당했다”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겠지만, 그 논리는 이 땅의 아이돌들과 K-POP을 사랑하는 해외 팬들까지 반국가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셈이니, 감히 언급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소원과 달리 첫 번째 탄핵안은 여당의 본회의장 퇴장으로 부결되었어요. 그다음 날 국무총리와 여당대표는 ‘위헌 시즌2’라 불릴법한 꼼수(질서있는퇴진)를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확인한 것은 패배와 절망보다 악당의 실체였어요. 기름진 웃음으로 반동을 보수로 치장했던 이들, 그들이 섬기겠다는 시민은 바로 우리가 아니라는, 그 특유의 솔직함을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내란동조 세력으로 규정했고,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부상한 응원봉을 마련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14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내란의 폭거를 멈춰 세웠습니다. 한시름 놓은 것도 잠시,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국회를 무력으로 침탈했던 내란범죄자의 직무 정지하는 것에 대해, 정족수(200명)를 가까스로 넘겨 안건이 가결(204명)되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 지당한 결정이 나오기까지, 4천만 국민, 7천만 한반도 거주민, 아니 전 세계 시민들이 마음을 졸여야 했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2. 광장의 무지개가 엮는 미래
지난 11월호 소식지 글(‘비상계엄’, 그 긴 밤을 불안으로 지새웠을 당신에게 안부를 묻습니다)에서 저는 동료들에게 ‘퀴어답게 민주주의를 시작할 시간’이라며 결의를 다졌지만, 솔직히 이 투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회의적인 마음도 있었습니다. 비상계엄(내란)이 탄핵으로 이어지고 수순대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저와 동료들이 어떤 사회를 바라는지 말할 기회조차 없이 ‘어떤 대통령을 선택할지’ 고르는 투표용지를 받고 끝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2017년 대선에서 민주주의자를 자처했던 이들이 우리의 존재와 사랑의 권리에 대해 ‘나중에’를 외쳐대며 묵살했던, 그 쓰라린 경험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그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회피하거나, “됐죠?”라고 응수하며 웃어넘기곤 했습니다. 혐오세력에 굴복해 차별을 묵인했던 자신들의 초라한 인권의식을 사과하기는커녕,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낯 뜨거운 고백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트랜스젠더로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싶다던 군인 변희수 하사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적폐청산’을 앞세우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한 일터와 장애인의 이동권 실현 등 동료 시민들이 바라는 일상의 변화를 외면했습니다.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24.12.11 부산 서면 탄핵집회, 자신을 노래방도우미로 밝힌 유진씨 발언문 |
광장에 나선 우리는 단지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산 서면 탄핵집회에서 유진씨는 일상에 깊이 스며들지 못한 민주주의가 남긴 삶의 상처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상처들은 박근혜 퇴진촛불 이후 8년 동안 우리가 목격한 아픔이자, 그때마다 되풀이했던 미안함과 분노로 남아있습니다. 무지개 깃발은 그 시간 동안 혐오세력에 맞섰고, 각자가 경험했던 차별을 타자가 겪었을 상처에 겹쳐가며 연대의 감각을 쌓아왔습니다. 이전과 달라졌다던 2024년의 광장은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게 아니라, 바로 이 기억들이 모여진 총합입니다.
평등을 향해 치열하게 싸웠던 지난 시간이 밑천이 되어, 광장은 이 사회에서 밀려났던 존재들을 위한 정치의 무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광장에서부터 혐오와 차별을 단속하며 안전하고 평등한 집회를 꾸리고자 노력합니다. 무지개를 비롯한 다양한 젠더를 상징하는 깃발을 나부끼며 앞으로의 민주주의에는 페미니스트와 퀴어, 나아가 소수자들의 인권이 실현되어야 함을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윤석열을 비롯한 차별주의자와 결별하는 일이자, 이전과 다른 사회를 열어가는 실천입니다. 형형색색 빛을 뿜어내는 물결은 ‘탄핵’이라는 촛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다채로운 열망과 이전과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합니다.
2024년 탄핵광장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안고 있다던 친구사이 동료의 말을 곱씹어봅니다. 그리고 뼛속까지 시려오는 아스팔트 바닥에서 서로에 기대 체온을 나눴던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이 광장의 끝에 이전과 다른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사랑이 존중받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감히 확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함께해온 이 겨울이 외롭지 않았던 싸움으로 오래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2024년 겨울, 나와 동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웠다고.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사랑을 키워냈다고, 몹시도 추웠지만 서로가 주고받은 온기 어린 안부 덕분에 따뜻했었다고. 2025년 새해에도, 광장에서 반갑게 인사 나누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셔요.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김초엽,「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 5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