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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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언니의분장실 두번째 공연, <레라미 프로젝트> 회원 후기
결말을 알고 보는 공연은 과연 다른 반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친구사이 소식지 30주년 전시회 <흘리는 연습>에서 진행된 언니의 분장실 낭독공연 <레라미 프로젝트>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만큼 공연 시작 전부터 결말이 나와 있었다. 공연 소개 글에도 레라미 라는 마을에서 동성애자인 매튜 쉐퍼드라는 한 청년이 구타와 고문을 당한 뒤, 6일 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한 극단이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를 토대로 만든 연극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 순간 매튜 쉐퍼드가 살길 바랐다.
공연은 흘리는 연습 전시회 공간에서 이루어졌는데 특이한 것은 무대와 관객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공연이었다. 처음 언니의 분장실 출연자들이 입장하실 때 무대에 같이 모여서 시작하실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관객석에 준비된 자신들의 자리로 들어가 공연을 시작한 후에 인터뷰 역할 중 자신이 맡은 인물의 대사가 나올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 대사를 낭독해주셨다. 처음에 입장하신 언니의 분장실 출연자뿐만 아니라 관객석에 미리 앉아있었던 출연자가 일어나서 인물들의 대사를 낭독했다. 인터뷰는 단원들, 마을 사람들, 사건의 목격자, 사건의 가해자, 재판, 이렇게 점차 좁혀가서 극의 몰입도를 더 높일 수 있었다.
두 명의 가해자의 무참한 폭력으로 누군지 조차 모를 만큼 얼굴이 엉망이 된 매튜 쉐퍼드는 기둥에 묶인 채 우연히 길을 지나던 목격자에게 발견된다. 병원에 옮겨진 그는 결국 사망하고 그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다. 중간중간 매튜 쉐퍼드의 상태를 알려주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가 살길 간절히 바랐다. 걱정하는 부모님 품에 돌아가 주기를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한 사건에서 그의 대사가 나오기를 바랐지만 끝내 그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각각의 다양한 인물들, 종교, 직업, 너무도 다른 인물들의 입장과 신념은 매튜 쉐퍼드의 죽음을 여러 각도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다양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보이는 혐오와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의 대사,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에필로그는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질문을 남겼다. 탄탄한 대본과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과 소통을 한 언니의 분장실 노력 덕분에 공연을 보는 내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이런 공연을 만들어주신 친구사이와 언니네 분장실 측에 감사드린다.
친구사이 회원 / 윤
지난 8일 친구사이 소식지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흘리는 연습>> 에서 "언니의 분장실"팀의 '레라미 프로젝트' 낭독회가 있었다. '레라미 프로젝트'는 1998년 미국 와이오밍 주에 있었던 21살 대학생 매튜 쉐퍼드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울타리에 묶인 채 폭행당하고 사망에 이르렀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실제 주민들을 인터뷰하여 이 연극을 완성한다. 연극은 대학 연극동아리 학생들이 이 연극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작가가 연극을 만든 과정과 사건의 생생함을 전달하였다.
낭독극이 시작되고 매튜가 그날 밤 술집에서 마주친 아무개 혐오자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하는 부분부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평화로운 마을 레라미'에서 홀로 '행복'만을 찾던 매튜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밤새 방치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성소수자 당사자인 '언니의 분장실' 회원들이 친구사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을 바랄 뿐인데 그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답답하고 슬펐고, 그 이야기를 30년간 어떻게 해왔는지 모아둔 공간에서 몇 달간 준비한 작품으로 생생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숭고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매튜이지만, 실제 매튜의 대사는 채 10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인들의 이야기에서 매튜는 그저 인류애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않으며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던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을 보며 그런 매튜가 왜 그런일을 당해야 했을까, 그때 매튜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매튜의 유가족은 '매튜는 자신의 죽음으로 또다른 사람이 죽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라 말하며 피의자의 사형을 바라지 않는다는 선처아닌 선처를 호소한다. 수많은 일상의 혐오를 당하면서도 혐오세력의 깨달음을 바랄 뿐 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으면서도 나는 맞아 죽으면서 까지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혼란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매튜에게 벌어진 일에 더욱 슬펐던 이유는 비단 우리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기만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으로 인해 겪어야하는 '소수자 스트레스', 그 말 만으론 다 담기지 않는 진득하고 지긋한 트라우마와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안에서 부터 죽게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고등생물인 인간에게 숨과 음식만으로 살아있음이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의 분장실팀은 이번 낭독극에서 또한번 낭독의 힘과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대본을 보며 진행하는 낭독은 관객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각자가 일인 다역을 맡아야 함에도 각 캐릭터의 개성과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중년 여성에 대한 탁월한 연기를 보며 역시 감성을 공유해야 연기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감정이 북받쳐 많이 울었다고 들었는데, 눈물 없이 관객들에게 극을 전달한 팀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전하고 싶다.
연극은 실제 본 사건이 발단이 된 미국의 혐오 반대 운동과 그 안의 해학을 보여주며 마무리 된다. 언니의 분장실 팀은 현재의 시대성을 놓치지 않고 이를 혐오정치가 낳은 한국의 정치 국면과 그 안에서 혐오 반대를 외치는 우리의 모습과 접목시키며 극을 마쳤다. '레라미 프로젝트'의 이야기가 1998년의 실제이고 여전히 2025년의 실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공연이었다.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준 <<흘리는 연습>> 팀과 '언니의 분장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친구사이 회원 / 윤하
(사진 by 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