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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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3]
가진사람들 기획전시 "낙서" 후기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은 2022년 한해 동안 낙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PL 각자가 가진 삶의 감각을 낙서의 형식에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2월 한달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오프라인 전시를 진행했고, 온라인 전시 사이트도 개설했습니다.
https://thehaves.cargo.site
오프라인 전시의 경우, 친구사이 회원들이 영위하는 공간 곳곳에 낙서 작품들을 비치해, 커뮤니티를 함께 영위하는 비감염인/감염인의 교차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무엇보다 친구사이 회원들 활동의 공간 속에서 감염인의 위치와 존재를 느끼고, 신경쓰이게 하는 것, “발에 채일지언정,” 다시금 그 위치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고, 2월 정기모임에서 전시를 보고 느낀 회원들의 소감을 듣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아래는 전시를 진행한 당사자로서, 그 의미와 소회를 전하는 오프닝 글입니다.
제가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을 만든 게 2015년인데요, 이때만 해도, 친구사이에는 감염인으로 두번째 커밍아웃을 하고, 회원들과 서로 마주하고 부딪히면서 활동하던 감염인이 한두 명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적었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물론 장난이긴 했지만, 감염사실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분이 마시던 물컵을 서로 안 쓰겠다고 하고, 닦아서 쓰려는 시늉을 했던게 용납되는 단체였지요. 감염인 당사자들이 활동하기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이 되는 부분이에요.
2015년에 ‘가진사람들’이 만들어지고, HIV 관련 꾸준한 활동을 하고, 친구사이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면서, 친구사이를 이끌어가던 친구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들었어요.
‘왜 HIV 관련 활동을 친구사이가 열심히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제가 감염인으로 커밍아웃하고 나서는, 친구라고 여겼던 친구사이 회원 몇몇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모두 없어졌습니다. 제 피해의식, 또는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망상일 수도 있죠. 어쨌든, 제 느낌이에요.
그렇다면, 이런 고민이 들어요, 그냥 커뮤니티 내에서, 그리고 친구사이 안에서 감염인인 걸 숨기고 친구사이라는 조직을 귀찮게 하지 않고, 주변의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게 맞는 건가? 사실 그렇게 하면 나도 편할 텐데 말이죠. 여기 계신 친구사이 회원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죠, 병걸린 얘들이 왜 저렇게 나대고, 권리를 요구하는건가?
그런데, 인권단체인 친구사이가, ‘여러분!! 게이인 거 숨기고, 조용히 혼자서 잘 사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편적인 인권은, 우리가 누구든, 그것이 정체성이든 성적 지향이든, 질병의 유무든, 그것을 드러내고 당당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보장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건 감염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이구요.
‘가진사람들’과 몇몇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은 그런 사회,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담론팀도 만들어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오픈테이블을 수년간 운영하면서 내면의 변화까지도 이끌어보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너무 지친다'였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야 하지?’ 그냥 눈치보지 않고 내 영역과 공간과 내 이야기를 주장하고 싶어서 기획한 것이 낙서 프로젝트였어요.
회원들이 친구사이를 영위하는 공간 곳곳에 가진사람들 회원들이 만든 낙서를 비치했고, PL의 존재를 눈치보지 않고 주장하려고 했던 것, 발길에 치이더라도, 누군가는 다시 그 곳에 우리의 존재를 가져다 놓는 것, 그것이 이 낙서 전시의 핵심이었습니다.
친구사이는 게이 커뮤니티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게이들의 존재가 이 사회에서 눈치보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 지난 30년간 싸워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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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기모임에 참여한 회원들 약 30여명은 4개의 작은 단위로 나누어져, 한달간 접한 ‘낙서’ 전시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고, 각자가 삶 속에서 느낀 소수자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별 발표를 통해, ‘가진사람들’이 낙서를 통해 존재를 알리고자 했던 “외침”에 대해, ‘친구사이’ 회원들이 어떤 “메아리”로 응답했는지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지만, 전시에 대한 소회보다는 전시를 명분으로 각자 삶 속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활동에 대한 고민들, 소수자 내 소수자에 대한 얘기, 이성애 중심적인 세상 속의 게이의 삶, 몸에 대한 얘기들, 어떤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발표를 통해 알게된 회원들의 이야기는, ‘가진사람들’의 “외침”에 대한 “메아리”가 아니라, 각자의 “외침”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외쳐야하고, 그 “외침”에 대한 “메아리”가 필요한 같은 소수자구나’, 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원들의 언어 속에서 여전히 감염인들을 ‘그 사람들’로 이야기하거나, PL로서의 목소리는 배제당한 ‘각기 다른 각자의 경험을 가진 개인’으로 타자화하는 경향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 같은 소수자끼리 꼭 그래야 할까요?
돌이켜보면, 친구사이 게이들이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고, HIV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판을 깔아주는 사람들은 결국 “가진사람들”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들이었고, 페미니스트 여성들이었고, 장애운동이었고, PL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로 타자화된,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깔아준 판 속에서, 친구사이는 인권운동을 확장해왔고,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삶을 나눌 공간을 만들어왔습니다. 분명 함께 구르며 갈등해온 서로의 역할과 세월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타자화는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의 숙제고, 모두의 “외침”에 대한 “메아리”일 것입니다.
가진사람들 / 나미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