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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44 : 2024 지보이스 정기공연 후기
2024-11-04 오후 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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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0월 

[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44

: 2024 지보이스 정기공연 후기

 

 

 

1. 2024 지보이스 정기공연 <공연 제목이 ‘사랑’이라구요?> 

 

지난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6시 도봉구민회관 하모니홀에서 2024 지보이스 정기공연 <공연 제목이 ‘사랑’이라구요?>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우리의 일상과 그 속에 얽혀 있는 수많은 감정과 관계를 노래에 담으며, 보다 나은 미래와 지속가능한 터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지난 3개월가량, 끝까지 열심히 달려와준 지보이스 단원들과 휴식단원 및 친구사이, 퀴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노력과 도움으로 총 400여명의 관객분들의 열렬한 성원과 환호를 받으며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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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김무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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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터울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 지보이스 자작곡 배경 및 후일담 1 : <독거미(獨居美)> 
 

올해 총 3개의 자작곡을 내놓았었다. 처음 노래를 냈을 땐, 가사, 멜로디, 곡의 구조 등등 뭐든지 난해하고 엉망이라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오기로 그중 2개의 곡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지보이스 정기공연 무대에 올릴 수 있을 만큼, 간신히 ‘노래’답게 다듬고, ‘노래’답게 불릴 수 있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노력했다.


“첫경험의 소감”에 대해서는 사적인 사유로 각설하고, 주변반응에 대해 떠올려본다. 완성된 자작곡을 직접 듣고, 불러본 후, 몇몇 주위사람들에게서 문의가 빗발쳤다.


—솔직히 이거 내 생각하면서 쓴 거지?  


아니, 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단순 농담이든 아니든, 대면으로 웃거나 비꼬듯이 혹은 비대면으로, 걱정인가 의심인가 분간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다만, 서로가 앞다투어 자신이 이 사연의 주인공이었으면, 하는 기대나 욕망을 쏘아붙이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와 책망인 건지 모를 눈초리를 따갑게 찔러대는 형세였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함축된 태도들을 당혹스럽게 받아내며, 그저 철저히 내놓아진 결과물에 겨누어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그동안 만나 왔던 친구들과 나의 이야기야. 


이 뭉뚱그린 해명이 모든 의혹을 무마시킬 수는 없을 테다. 따라서 당시에 쓴 작업 노트의 일부분을 공개해 본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놓은 것인데, 소설 같은 매력도 있어 그렇게 보이도록 ‘일부’를 선별하여 발췌하였고, 하나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도록 결말 부만 조금 각색하는 방식으로 엮어보았다. 뭔가 비법이나 알몸을 공개하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없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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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터울

 

 

 

• 싸게의 작업 노트 – <독거미(獨居美)> 中

 

 

거미는 내가 질색하여 마지않는 동물이었다. 낡아 빠진 우리집의 균열을 수시로 비집고 들어와서는, 툭하면 천장에 줄을 달고 불쑥 눈앞에 나타나는 악랄함에, 소스라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니까, 뭘 모를 시절에 한정해서.


그 뒤로 쭉,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싫겠지만, 생각해 보자. 우글우글 다닥다닥 박힌 눈알에, 각진 송곳 마냥 흐느적거리는 다리,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빵빵한 배가 복실복실 털로 뒤덮인, 곤충도 뭣도 아닌 불분명한 정체를. 

 

 

작년 9월쯤, 집 앞에 손바닥만 한 호랑거미가 나타났다.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혼자 사는 집의 옥상으로 올라가는 녹색 철제계단 난간에 집을 지었다. 그 육중한 몸집에 걸맞게 거미줄을 웅장하고 널따랗게 퍼트려놓고는, 백과사전의 <그림 자료 – 호랑거미>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듬성하게 엮어놓은 망사 위에 팔다리로 X자를 그리고 앉았다. ‘지나가지 마라!’라고 매섭게 노려보는 듯해서, 무력하게 멀찍이 서 바라만 보았다.


 그 와중에 다리 끝에 하얗게 지그재그로 그어 놓은 특징적인 무늬 끈장식이 볕을 담뿍 먹어 자글거렸다. 생각보다 예쁘니까 그냥 두자. 이대로 옥상은 포기하자. 혹은 자연의 순리와 거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여 아량을 베푼다는 식으로 결론지었다.

 
어차피 아무도 쓰지 않을 방을 한 칸을 내어준 셈이다. 워낙 허름한 구옥 옥상이라 안전사고를 우려해 [출입금지] 팻말을 달아 놓은 지 오래고, 천창에 빗물이 샌다 거나, 거기 있는 에어컨 냉각기에 이상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올라갈 일도 없었으니까. 또, 아무리 골몰해봐도 주변에는 목전에 비명만 지르고 줄행랑칠 남정네들의 속절없는 알맹이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막막함에 어딘가 머리 뒤쪽으로 시기와 질투가 뿔로 솟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그것들은 어디서든, 지들 맘대로 끈적하고 질긴 터전을 꺼낼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뿐이다. 보증금 대출에 갚아야 할 이자를 떠올리지 않아도, 집세나 공과금 같은 생활비에 위축되지 않아도, 집에서 종로까지 걸리는 시간과 차비를 아까워하지 않아도, 원한다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이나 커다란 궁전집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나?


(홧김이라, 거미에게는 전 애인 중 하나의 이름을 붙였다. 몰두해 있던 게임 캐릭터가 입고, 차고, 꾸미는 데에 날름 커플링을 팔아 치워먹은 파렴치한의 것이었다. 그러니 여기선 대강 X라 칭한다. 이편이 생겨먹은 것과 똑 닮아 찰싹 붙고, 안전하다. 그렇다고 하자.)

 

 

자포자기한 뒤로,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X에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되었다. 이미 기억 저편에 묻어져 있던 습관을 되살려 내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안녕. 난데없이 터트린 독백에 주변 이웃들이 흠칫 거리지 않도록 주의하여 읊조렸다. 다녀올게, 나왔어. 하루도 빠짐없이 혼잣말로 계속 말을 걸고 눈도장을 찍었다.


적어도 올가을만큼은, 간만에 되돌아온 X의 존재가 평화로써 달갑게 여겨졌다. 전임자 X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처세를 하다 보니, 후임자 X를 보면 마음이 놓여왔다. ‘호랑거미’ 말고 ‘호감거미’로 개명하는 게 어때? 덕분에 든든했어. 올가을은 모기도 별로 없었고, 가끔 날아드는 말벌들도 쫓아낼 수 있었어.

 

 

그날은 어떤 행사의 뒤풀이를 마치고 난 밤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X의 집을 향해 달음질했다. 다녀왔어. X는 여느 때처럼 양팔 벌려 반겨주었다. 시끌벅적한 속 안이 술김으로 북적거렸다. 오늘은 온종일 내년 단장 후보 출마에 대한 이슈로 둘러싸여 있었어. 선거가 예정되어 있긴 하지만, 분위기상 내가 단장을 맡는 건 확정됐다고 보면 되는 상태인데, 그래서 이러저러하고 그러저러한 심경이야. 하기 나름이겠지만, 많이 외롭고 고독한 미래가 다가올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겁이 나. 누구는 떠나고, 나는 남겨지고. 아니면 반대든. 너보다 그게 더 겁이 나. 잠시 신세와 한탄을 번갈아 늘어놓았다. 


X는 미동조차 품지 않은 침묵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순간, 칼바람이 사락 불었다. 날카로움이 겁박하듯 목덜미를 쓸었다. 여전히 옆구리가 시리다. 그때 밤바람이 갈비뼈 마디마디를 후벼 팠다. X의 마지막 마디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굳게 했다. 


새삼 겨울이란 계절이 도래했음을 떠올렸다. 맞아. 슬슬 들이쉬는 콧숨이 시리고, 찬찬히 내뱉는 날숨마저 뽀얀 실오라기를 뽑아내는 날씨였다. 덩달아 실토하자면, 나는 ‘이맘때쯤이면 X가 추위를 피해 도망갔겠지?’라는 희망을 품고서 계단 난간을 확인했던 거였다. 예나 지금이나, X는 나를 반기는 시늉조차 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나 혼자만 진심이었지. 아니,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야. 

 

 

하늘거리는 얇은 그물의 실오라기들 앞에서, 한기가 오들오들 온몸을 잡아 털었다. 엉겁결에 제정신마저 떨어낸 모양이었다. 나는 그토록 질색하던 거미집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허락 없이 며느리 집에 들이닥친 시어머니처럼, X의 그물집의 구석구석에 코를 박고 훑어갔다. 복수다, 너도 당해봐라. 아래쪽 어귀에 울퉁불퉁한 게 유난히 퍼석해 보이는 갈색 돌멩이들이 매달린 것을 보며 혀를 쯧 찼다. 저녁 먹고 난 찌꺼기를 저리 굴려두면 쓰나! 미간을 찌푸렸다가, 온돌조차 들지 않을 싸늘한 방바닥에 연민했다. 녹색의 철제바닥.


무심코 엷은 장판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실자락에 손끝이 닿기 무섭게 X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아, 미안. ‘잡아 먹힐 뻔했다’는 위기의식을 제쳐두고, 범한 무례부터 쳐내듯 손사래로 사과했다. 전처럼 소스라치지는 않았다.

 

 

X와 계속 마주하기도 무안했다. 집안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물을 한 모금 머금으며 한 번 더 생각해봐도, 감히 죄송스러운 입가로부터 턱을 타고 주르륵 물이 흘렀다.


X나 나나, 다 부질없는 인생이다. 대궐 같은 집이 있어도, 장소가 있어도, 깔아 놓은 데이팅 어플이 수두룩하여도, 진동을 울려주는 이가 전무한 것은 매한가지다. X가 먹고사는 짓거리도 생각보다 능동적인 삶의 양식은 아닐 테다. 녹록지 않은 삶일 테지. 한번 집을 짓는 데에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지 뻔한데, 하필 터를 잘못 잡아서, 혹은 계절을 잘못 태어나서, 또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아니면 어떤 정신나간 놈이 매일같이 다가와 초를 쳐대서, 웬만한 날갯짓의 웅웅거림을 기별한지 오래됐을 것이다. 날벌레와 나를 구별하지 못한 건 X의 주린 뱃속보단 내 잘못이 더 크다.


평생을 실망속에 들어앉아 있다 보면, 나처럼 혼자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거였어. 씁쓸함이 타고 오르는 목구멍을 잠재우려 몸을 씻었다. X에게는 나처럼 간간이 안부 연락해주는 가족이나 친구마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양치도 하고, 약을 먹고, 잠자리에 누워 온수매트에 전원을 올렸다. 띠리리리. 경쾌한 신호음으로 잘 준비를 마쳤다. 그치만, 여전히 머리에 뿔이 솟아 있는가? 베개에 기댄 뒤통수가 배겼다. 편히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달각거려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공평하지 않아. 혼자 살면서도 돈 걱정에 맘 졸이지 않아도 되는 건 축복이지, 안 그래?


스마트폰을 들었다. 구글 검색창에 [호랑거미]를 입력했다. 뭐 하나라도 흠이라도 찾아내려고 정성스레 발품 팔게 되는 혐오세력이 된 마음이었다. 실제로 거미를 ‘극혐’하기도 했고 말이다. 왜,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겉보기에 잘나가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신세 한탄을 하는 걸 보면, 배알이 뒤틀린달까? 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증을 도저히 못 참겠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당사자 모르게 사실을 훔쳐낸다. 이제 곧 12월인데, X는 어째서 포근한 틈으로 숨어들지 않는 거지? “X는 1년밖에 살지 못한다.”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걸까? 음식물 찌꺼기인 줄 알았던 갈색 돌멩이들은, “알집이다.” 맙소사! 저대로 내버려두면, 내년엔 집 밖이 거미로 득실거릴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니야? “수많은 유체(거미의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서로 잡아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자연에는 많은 천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성체가 되는 그것은 극히 일부 개체에 불과하다.” 안심은 되지만, 남 일 같지 않다.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던지듯 놓아버렸다. X를 마구 미워하려던 속내가 미어지기도 해서. 까만 천장위로 적록 잔상이 꾸물거리다 흩어진다. X도 태어나자마자 잔혹한 현실을 살아왔겠구나. 가족의 보살핌도 없이 금방 철이 들었을 만큼, 찰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왔구나. 측은함이 돌아 감싸며 갑갑하게 조여왔다. 더욱 꼬여버린 의문들을 타래 감듯 되뇌었다. 그 끄트머리로 전혀 그립지 않던 기억이 제멋대로 끌어올려졌다.

 

 

처음 종로에 나왔던 고등학교 몇 학년 즈음의 기억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쨌든, 툭하면 거미를 보고 난리부르스를 추었던 낡은 집에 살 적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당시 주말만 되면, 무턱대고 용돈을 달라 떼를 써서 서울에 올라왔다. DMZ에 인접한 강원도 북부에서 많게는 세네 시간이나 걸리던 구불길을, 나는 잘도 오고 갔다. 부모님은 걱정불평 하시긴 했지만, 일하느라 바빠서, ‘차라리 나가 놀다 오는 게 덜 걱정’이라 생각했고, 형은 대학 기숙사에서 알아서 잘 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중학교 시절부터 붙어 지냈던 절친만이, “주말에는 놀 사람이 없어서 심심한데 왜 자꾸 어디를 쏘다녀?”라고 물었을 뿐이다. 덧붙여서, 그의 물음에는 함묵하기로 했다. “혹시 몸을 팔고 다니는 건 아니지?”


이러이러한 끈질긴 만류를 무릅쓰고, 서울에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나러 종로 여기저기를 쏘아 다녔다. 어느 날은 처음보는 190이 넘는 거구에게 손모가지를 붙잡혀 끌려가기도 했고, 행색이 추레한 중년여성에게 연신 “예쁘다”, “잘 생겼다” 추파를 받으며 쫓기기도 했다. 그녀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려 금은방을 수차례 들락거렸을 땐,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뭘 훔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마땅한 절도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그의 억지에 못 이긴 채, 만져지기 싫은 부분까지 주섬주섬 수색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민증없이 받아주는 술집이 전혀 없어서, 탑골공원부터 삼청동을 지나 창덕궁 뒤편을 거처 종묘 인근으로 이어지는 밤길을 정처 없이 걸으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나마 마음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밤거리를 누비는 어린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열 명 안팎정도의 작은 무리는 주로 비슷한 나이 또래의 탈가정이나 탈학교를 선언한 청소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어느 범주에도 들지 않는 존재였지만, 어느새 그 패거리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중에 중학생 정도 나이의 한 아이와 곧잘 붙어 지냈다.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기억나지 않는다. 가명을 알긴 했지만, 사람보단 어떤 물건(‘X’와 음독이 유사한)을 지칭하는 표현에 더 가까워 도무지 입에 붙지 않았다. 누군가 야야,거릴때마다 서로를 향해 돌아보고는 말없이 인상을 찡그렸을 뿐이다. 

 

 

새벽이 깊어질 무렵이면, 우리 둘은 자연스레 무리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의 눈은 좀 더 보는 눈, 듣는 귀가 적어 보이는 어둠과 적막을 향해 이끌리는 불나방 같은 집요함으로 가득했다. 욕망조차 집어삼켜져 있었겠지. 그러니, 그렇고 그런 로맨스 따위는 의식하지도 못했고,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는 공교로운 동행자를 당연하다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매번 밤빛에 젖어 축 늘어진 눈빛을 기억한다. 절대로 그가 홀로 고립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그때, 무슨 기발한 발상이었는지 돌연히 그와 어깨를 부닥쳤다. 키와 덩치와 힘, 나이에 모든 면에서 밀리는 작은 몸집은, 저항 없이 경로를 벗어났다. 이내 응답하며 장난에 몰두하기로 결심한 천진난만한 얼굴이 보였다. 가소롭다는 듯이 찢어지는 미소가 하얗게 빛났다. 돌아올 보복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혼자사는 게 꿈이야. 독립해서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나를 들킨 뒤로 날 벌레취급 하는 아빠도 싫고, 아파트 계단이든 야외 화장실이든, 장소도 없이 탑질하는 놈들이랑은 더럽고 치사해서 못 붙어먹겠어. 선생도, 학교도, 친구라며 위선 떠는 전교생들도, 남자들 모두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많은데, 나는 혼자사는 게 꿈이라고!


답하기가 난처하여 뜨지 못한 눈을 겨우 떴다. 저 멀리 새카만 그림자만 우뚝 솟아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다시 소리가 들렸고, 그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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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이스 단장 / 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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