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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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1]
2023년 하반기 교육프로그램
'벌거벗은 Q – 기후정의와 퀴어' 후기
솔직히 얘기하자면 저는 한동안 ‘기후위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위기’라 느낄 만큼의 상황을 겪은 적도, 주변 사람들 중에 그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도 못 들어서 그랬지요. 하지만 연일 뉴스에서 계속 나오는 참혹한 소식들이 – 폭염, 가뭄, 홍수, 태풍 등이 - 쏟아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외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취약계층일수록 그 피해는 더 심각하다니, 성소수자인 저로서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마침 9월 23일에 세계 기후행동의 날을 맞아 ‘923 기후정의행진’이 있다고 해서 참여했습니다. 애정하는 교육팀원 진석과 함께한 행진은 직접 박스를 이용해 피켓을 만들고,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는 주제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번의 행진이 얼마나 효과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세’라고 답하겠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모여 힘이 되리라는 믿음이 좀 더 생겼습니다. 그와 함께 기후위기에 맞서는 ‘기후정의’가 더욱 궁금해졌고, 우리네 퀴어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하반기 정기 교육프로그램 주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 <923 기후정의행진> 참여 사진
교육은 총 두 차례 진행됐는데, 첫 번째는 지속적으로 SNS에 기후위기 관련 포스팅을 올리며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이송희일 감독님께서 교육해주셨습니다. 접하기 힘든 전세계 정보들을 속속들이 알려주는 감독님의 강의는 두 시간 동안 쉴새 없이 계속됐는데, 놀랍게도 참여한 분들 모두 자리를 한시도 뜨지 않고 집중해서 들으셨어요. 그만큼 찰진 이야기들이 넘쳐났습니다.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가면 수분이 7% 증발한다는 얘기(극한호우!), 450만년 전 이산화탄소(CO2)와 지금의 CO2 농도가 비슷하다는 얘기(온실가스!), 전세계 10%의 고소득자가 50%가 넘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는 얘기(탄소불평등!) 등이 이어져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1.5도를 기억하라’와 ‘하수구의 여왕들’이 마음에 와닿았는데요. 모든 기후정의의 기초가 되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채택된 “21세기 말까지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성명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A.I.에게 언제 1.5도 상승하는지 물어보니 2028년이라고 했다는 설에는 헛웃음만 나오더라구요. 하수구의 여왕들은 자메이카의 퀴어들(주로 게이들)이 차별로 인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도 하수구의 환경을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행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자연스레 기후정의는 곧 퀴어정의와 맞닿아 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좀 더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해 일상에서의 실천에 주목하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스스로 ‘환경운동 하려다가 성소수자 운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기용님이 준비해주셨는데요. 소수 정예의 인원이 알차게 모여 당차게 목소리를 내는 자리였습니다. 먼저 기용님이 왜 우리가 기후정의 운동과 함께 해야 하는지를 풀어주었는데, 재난 앞에서 제도 밖의 존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이 겪는 상황(재난 시 가족으로 분류 안됨, 이분법적 성별분리된 공간을 강요 받음, 의료 지원에서 맞닥뜨리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 등)이 절절히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그곳에서 기후정의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대화하고 직접 종이박스로 나만의 슬로건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저마다 퀴어스러운 문구들로 종이박스가 아름답게 채워졌습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슬로건이라니, 기후정의와 퀴어가 얼마나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답니다.
이로써 올해 기획한 교육프로그램이 모두 끝났습니다. 특히 마지막 교육프로그램 ‘기후정의와 퀴어’의 만족도와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이송희일 감독님과 심기용님께 감사드리며, 그 동안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냉철하게 친구사이 교육에 임하고 의견을 내준 모든 참여자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교육팀은 올해 ‘단단하게 확장하는 친구사이’라는 친구사이 기조에 맞춰 내실을 갖추면서도 외연을 확장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흥미롭고 솔깃한 교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친구사이 교육팀장 / 크리스
킹
글이 잘읽혀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