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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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39
: 노희경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은 애인을 버리고 귀국한 딸은 사사건건 자기 인생을 쥐고 흔드는 엄마가 괜히 밉습니다. 아니, 괜히 미운 게 맞나? 딸의 인생은 엄마의 것입니다. 바람난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삶을 버리기로 한 엄마는 그 전에 딸에게 농약 탄 야쿠르트를 먹이려 했습니다. 엄마는 딸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거구나. 왜냐하면 딸이 엄마의 것이니까. 딸은 그렇게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런 엄마가 장애인과 만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니 딸이 미치도록 사랑했던 애인을 버린 건 엄마 때문입니다. 엄마는 딸의 주인이고. 엄마가 장애인과 만나지 말라고 했으니까.
딸이 정말 미워했던 건 애인을 버리고 도망친 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괜히 엄마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딸은, 엄마가 더는 딸의 인생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말해야 했습니다.
“엄마, 왜 나 죽이려고 했어?”
엄마는 탁자에 유리병을 깨고 잔해를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자해하는 딸을 더는 지켜볼 수 없습니다. 평생 털어놓지 않으려 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로 하지요. 본인 없는 세상에 딸을 혼자 남겨둘 수 없었다고. 딸은 사실 어렴풋이 알면서 덮어놓고 살던 일을 굳이 끄집어냈습니다. 그래도 악다구니를 멈출 수 없습니다.
폭풍 같은 한 때가 지나가면 그저 오롯이 엄마 하나 딸 하나가 남아요. 진심들이 얼굴에 옷가지에 스며들어 서로의 눈에 밟힙니다. 그저 서로가 애틋하겠지요.
이제 엄마는 딸의 인생에 간섭을 줄이기로 했고. 딸은 애인에게 돌아가기로 합니다.
극본 노희경,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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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 사이, 누구라도 한 번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장면들이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몇시간이나 붙들어 둡니다. 결국 앉은자리에서 한 편에 1시간이 넘는 드라마 몇 편을 뚝딱 보게 만들 정도로.
가끔 기억에 남은 장면이 생각나 찾아보다가, 하염없이 다음 편 다음 편을 계속 보게 됩니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론 많은 사람의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어쩌면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본”입니다.
이런 인물, 이런 사건, 이런 대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책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살면서 마주치는 어떤 일이든 작가에게는 양분이라 합니다. 그렇게 믿는 이 작가는 대체 어떤 것들을 마주치며 살아온 걸까요? 가끔 궁금하던 차에 얼떨결에 책읽당을 통해 읽게 된 책이었습니다. 이런 책이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여기 실린 문자들이 작가의 전부를 녹인 글귀들은 아니겠지만, 손바닥이나 발바닥 정도는 찍어낸 듯합니다.
에세이는 보통 길이가 짧아요. 그래서 몰입할 수 있는 긴 호흡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작가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에세이야말로 온갖 생생한 것들의 집합입니다. 인간의 상상으로 만든 인위적인 것들이 아닌, 현실에서 꿈틀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온전히 담길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상상 이외에 하는 모든 일, 혹은 인간의 상상조차도 자연의 일부일 수 있다면, 아주 솔직하게 쓰여진 에세이는 자연이 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은 그런 에세이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책이에요. 그만큼 작가의 인생의 일부가 솔직하게 기록된 듯합니다. 필력으로 포장이야 했을 테지만, 꽃의 빛깔이 예쁘다고 그걸 꾸몄다 탓할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오래 전에 적은 글을 나중에 다시 보고 변한 생각과 변하지 않은 생각을 되짚어보는 구성도 재미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성장인지 퇴보인지 판단하는 것 마저도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변하는 것.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을 찾는 것.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 변하고 적응하는 것은 모든 생각하는 것들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자연이 적었다면, 당연히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하겠지요? 다행히 이 책엔 그런 부분이 종종 보입니다.
그 때 그 드라마의 어떤 인물이 이런 말을 하던데, 어쩌면 작가가 이런 일을 겪고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사를 썼나 보다… 하는 부분이 잠깐 잠깐 스쳐 지나갔는데, 메모를 해두지 않아 적을 수가 없네요. 작가의 드라마의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아끼는 분이 보신다면 분명 이런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제목에 분노하거나, 자조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여기저기 게시물에 첨부되어 돌아다녔기 때문에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희경 에세이 모음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제목이 힘이 있습니다. 저 같은 이들은 그저 제목에만 매몰되어 독서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모양이지만요.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이번 책을 읽고 모인 분들도 제목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왜 이 꼭지가 표제작처럼 되었는지 의문이나, 제목에만 매몰되었던 그 때의 감성으로 우스개 하나 던져놓고, 쓸데없이 긴 글을 줄이겠습니다.
“못 하는 것도 서러운데 유죄라니. 그렇다면 자수할 테니 형량이라도 줄여주시오!”
책읽당 당원 / 황이
박재경
오랜만에 잘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