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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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9
: 동성애는 문명처럼 옮는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대가 잘 끊기던 동물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의 진화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각각의 고인류들이 전세계로 이주해 지역별로 독자적인 인종을 형성했겠거니 여기지만, 오늘날 현생 인류는 약 10만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종이 전세계로 퍼졌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최근 통설로 자리잡았다. 이는 곧 그 전에 각 지역에 존재했던 고인류 토착종들이 거의 멸종하여 현생 인류로 유전자가 전해지기 어려웠음을 의미한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덕에 밝혀진, 호모 사피엔스를 제외한 고인류 중 현생 인류의 유전자 기여도를 가진 종은, 유라시아인의 경우 네안데르탈인 1~4%, 데니소바인 0.5% 정도로 극히 낮은 수준이다.
이렇듯 근연종이 없다시피한 인류의 특징을 생각하면, 세계의 고등 종교 경전에서 그토록 생육과 번성, 생식에 대해 집착했던 이유 또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신석기 시대 해안선이 지금보다 낮았을 시절,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고인류가 멸종한 원인으로 각각 9만년 전 일본 열도의 아소산 분화와 7만 4천년 전 수마트라 섬 토바 화산 폭발이, 유럽 지역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 멸종의 원인으로는 3만 9천년 전 이탈리아 캄피 플레그레이 화산 폭발이 지적된다. 때마침 빙하기로 생존이 쉽지 않았을 고인류들에게, 화산 활동으로 인한 추가적인 기온 하강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 것이다. 퀴어들에게는 거의 원수와도 같은 생식지상주의의 종교적 가르침이, 그 시절 인류에게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을 생존 방침이었다.
현생 인류에게 해안가의 따뜻한 기후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은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문제는 그 해안가의 위치가 구석기·신석기 시기에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며 변화무쌍하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1만년 전 서해는 다름아닌 육지였고, 이후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해 기원전 5천년경 한반도의 해수면은 지금과 비슷해졌다. 이러한 신석기 시대의 해안선 변화 추이를 알아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각 시기별 퇴적층의 도토리 관련 유적을 살피는 것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은 오늘날의 쌀에 비견될 주곡인 도토리의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조수 간만의 차가 있는 곳에 도토리를 놓고 바닷물에 2~3일 담가둔 뒤 섭취하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도토리 유구가 발굴된 위치를 통해 각 시기별 해수면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등기부도 콘크리트 건물도 없던 시절, 근대의 선적 국경이 확립되기 전의 선조들은 인간에게 살기 좋은 장소가 시기와 기후에 따라 변하고 그에 따라 보금자리를 옮기는 것을 상식으로 여겼다.
유구한 인종차별의 역사가 무색하게도, 인류는 현생 인류 단일종으로 지구상에서 종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인종'들끼리도 아무 문제없이 생식하고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것이 그 예다. 물론 그 단일종의 DNA에는 앞서 보았듯이 현생 인류가 아닌 다른 고인류에서 온 유전자가 포함된다. 현대인의 내장 지방 축적을 돕는 유전자 중 일부는 지금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왔다. 현대인의 골칫거리인 잘 빠지지 않는 지방이, 과거 몇만 년 전에는 고인류들이 종의 멸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 진화의 결과였다. 또한 유전자 풀이 좁은 현생 인류가 다른 고인류들을 압도한 원인으로는, 소규모 수렵 집단 생활을 고수한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하여 약 150명 정도의 인간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사회성이 꼽힌다. 고대의 종교 경전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간 사회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환멸, 현대 도시들이 안고 있는 병폐 또한, 그 시절 인류의 생존에는 필수적인 요건이었다.
한때 우리를 살게 했던 것이 이제는 우리를 죽게 만드는 것은 역사의 주요한 서사 가운데 하나다. 질적으로 좋은 인구를 만드는 데 합의해 자식 수를 한두 명으로 줄인 국민들은, 이제 질적으로 좋은 인구를 생산할 자신이 없어 자식을 안 낳기 시작했다. 자식을 적게 낳거나 자식을 안 낳는 마음 모두 실은 그 나름의 어진 사려 가운데 나온 것이다. 합계출산율 0.7은 현재 200명이었던 인구가 한 세대 반만에 25명으로 줆을 뜻한다. 화산도 아닌 인류의 자기 조정에 의한 인구 절벽을 이제와 새삼 재앙이라 말하기에는, 차라리 원래 멸종이 잦던 종의 일원으로서 그리 생소하지는 않은 명운이라 말해두는 편이 낫다. 그러니 절대로 멸종할 수 없다는 당위를 조금은 벗어나, 그 옛날부터 잘 멸종하던 종의 후예로서 거기에 걸맞는 자아의 상과 삶의 노선을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입양이 아닌 대리모에 구태여 기대는 이들을 제외하면, 퀴어야말로 생식으로부터 먼 멸종을 존재에 내장하다시피 한 사람들이다. 위패와 족보를 가지지 못한 우리를 뒤이을 사람들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매번 이쪽 업소에서 바람처럼 흘려보내는 사람의 정처럼, 마치 버섯의 포자마냥 무성 생식의 모양으로 피어나듯 생겨날 수도 있다. 우리는 해안가에서 몇백리 밖의 화산이 터지는 것을 보고, 나와 동료를 먹이고 돌볼 보장이 없어도 오늘 일용할 양식을 잡았을 고인류들의 후손이다. 그들의 삶을 배불렸을 활과 바늘과 화덕과 뗏목을 만드는 기술이 굳이 제 자식한테만 전하는 형태로 전승되었을 리 없다면, 현생 인류의 문명 또한 따지고 보면 혈통을 넘어 포자의 형태로 번진 것이다. 누군가는 나보다 나은 조건의 퀴어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퀴어의 프라이드를 발명해 퍼뜨린 것처럼. 문명도 프라이드도 비혈연 돌봄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다. 동성애가 옮는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농담이 아닌 비유일지 모른다.
* 이 글을 쓰는 데 다음의 책과 글을 참고했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사피엔스』, 김영사, 2023[2011].
이상희, 『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 동아시아, 2023.
장경섭, 『내일의 종언? :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 집문당, 2023.
스튜어트 홀, 임영호 옮김, 『인종은 피부색이 아니다』, 컬처룩, 2024[2017].
이상희, 「고인류학 연구의 최근 동향을 중심으로 본 인류의 진화」, 『한국고고학보』 64, 한국고고학회, 2007.
성춘택, 「수렵채집민의 이동성과 한반도 남부의 플라이스토세 말~홀로세 초 문화변동의 이해」, 『한국고고학보』 72, 한국고고학회, 2009.
황상일·윤순옥, 「해수면 변동으로 본 한반도 홀로세(Holocene) 기후변화」, 『한국지형학회지』 18(4), 한국지형학회, 2011.
김태호,우은진,박순영, 「고고유전학의 분석 원리와 최근 고유전체 연구 동향」, 『대한체질인류학회지』 31(4), 대한체질인류학회, 2018.
유용욱, 「중·후기 갱신세의 환경압과 동아시아 고인류의 분포 및 기술상」, 『한국고고학보』 127, 한국고고학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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