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
[커버스토리 '동성혼의 현장' #2]
모두의 결혼이 되려면 : 한가람 웨딩플래너 인터뷰
1. <퀴어 커플을 위한 결혼식의 모든 것 : 퀴어 웨딩 A - Z> 2. 퀴어 웨딩 플래너가 경험하는 성소수자 혐오 3. 퀴어 웨딩과 헤테로 웨딩의 차이 4. 야외, 스몰, 프라이빗, 파티 웨딩 5. 결혼식 관습에 드러나는 성별이분법과 남·여 젠더 위계 6. 퀴어 웨딩의 성별 비순응 7. 이경-하나 커플 결혼식과 퀴어 웨딩 플래닝 8. 퀴어 웨딩에 얽힌 아우팅 방지와 커밍아웃 경험 9. 퀴어의 다양한 결혼식, 가족이 아닌 당사자간의 결합 10.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 중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의 경향 11. 동성혼의 욕망, 경사와 세레모니에 대한 욕구 12. 성소수자 외 사회적 소수자의 결혼에 대한 상상과 실천 13. 대중운동으로서 동성혼과 서비스 산업으로서 동성혼 14. 퀴어에 이르러 비로소 새로워지는 결혼의 속살 15. 서비스 노동의 관점에서 본 웨딩 산업 16. 퀴어 소비자의 낯섦과 퀴어 노동자의 강점 17. 결혼의 퀴어링, 퀴어 대중과 퀴어 소비자의 만남 |
“두 사람의 안정적인 관계로 결혼이 유일한 건 아니다. 이미 많은 남녀가 혼인증명서 없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결혼보다 동거를 더 선호한다. 아울러 2001년부터는 독일에서 동성끼리도 권리와 의무가 따르는 합법적인 결혼을 할 수 있다. 독일보다 앞서 '동성 결혼'을 허용한 국가도 있다. […] 과거에는 결혼이 무엇보다 부양제도, 경제적 필요, 생존전략의 성격을 지녔다면 현재는 두 사람 사이의 질적인 영광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동성커플이 결혼을 시도하고 그들의 관계에 결혼이라는 도장을 찍고 싶어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회의 발전에 맞춰 계속해서 진화한다.” - 알렉산드라 블레이어, 한윤진 옮김, 『결혼의 문화사』, 재승출판, 2017[2015], 6, 266쪽. |
10.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 중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의 경향
터울 : 적지 않은 성소수자들이 동성혼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는데, 그 욕구가 대체 어떤 내용을 갖고 있고 어떤 속살이 있는지를 파헤쳐 보는 것이 오늘 인터뷰의 목표이기도 하거든요. 단행본 서문에도 쓰셨지만, 결혼이 이렇게 가부장적이고 낡은 제도인데 왜 퀴어인 우리는 이 결혼을 이렇게 욕망하는가, (웃음) 그 욕망의 내용이 대체 뭔가를 한번 탐구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한국은 아직 동성혼 법제화가 안돼 있잖아요. 그래서 혼인증서를 받기 위해서 이제 괌이나 외국에서 해당 증명을 받는 경우들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한국에서 통용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그런 증명들을 왜 그렇게 욕망을 할까, 이런 것들이 좀 궁금해지더라고요.
한가람 : 우선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이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워딩을 내걸었잖아요. 전 그 워딩이 상징하는 바가 많다고 봐요. 아직까지도 그게 유효하다고 보고 있고. 이 유효한,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왜 못하지? 라는 부분에서 좀 불만이 있고,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결혼 적령기가 되고, 점점 주변 헤테로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들을 보고 예쁘게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저런 미래가 나한테 있을까, 라고 계속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퀴어들한테 결혼 적령기가 무슨 의미가 있지, 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는데, 저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게 유효하다고 봐요. 왜냐면 현재 퀴어 당사자들도 자기 주변에 퀴어 친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무수히 많은 헤테로 친구들이 있고, 그들과 관계맺는 그런 다양한 관계망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들을 보고, 애를 낳는 모습들을 보고, 저 모습이 과연 나한테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아직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는데, 과연 나는 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라는 것들을 그 나이쯤에 굉장히 많이 고민하게 되시는 것 같아요.
나한테도 저런 미래가 있으면 좋겠다, 나도 안전하게 누구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지켜주고, 영원이라는 그 관계가 헛될 수 있더라도, 그 영원이라는 관계를 꿈꾸고 싶다는 것은 모두의 욕망인 것 같아요. 그것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상상되는 것 같고. 그게 저는 인간의 부족한 상상력 가운데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제도라고 봐요.
터울 : 그게 굉장히 친숙한 각본이기는 하죠. 물론 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성소수자들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성소수자들도 적잖이 존재한다는 것들이 요즘 잘 드러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럼에도 왜 그렇게 괌까지 가서 결혼 증서를 받는가는 좀 궁금하더라고요. 그게 정말 어떤 서류나 증빙에 대한 욕구일지, 물론 실정적으로는 한국에서 안돼도 다른 나라에서 혼인 관계를 인정된다는 측면이 있을 텐데, 어떤 경우는 저 커플이 해외에 딱히 많이 나갈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 증서를 욕망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깔린 욕구가 뭘까, 그런 궁금증이 일기도 하더라고요.
한가람 : 제가 이 산업에 있는 당사자로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되게 가볍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현재 퀴어 웨딩이 일종의 패션 같다고 보는 측면도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 눈앞에 뭐가 바로 보이는 게 없고 상상되지 않으면 욕망하지도 않는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보다 많이 퀴어 웨딩 하시는 분들이나 해외에서 혼인신고 하시는 경우를, 인터넷상으로나 어디든지 생각보다 많이 접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정보가 공유되고 있고, 그러면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봐요. 실제로 눈에 보이고 있고, 방법들도 계속 제시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퀴어 웨딩의 수요량이 점점 늘고 있거든요.
이게 저는 하나의 불꽃을 지피는 어떤 누군가가 있었고, 그것들이 마치 패션처럼 통용되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 욕망에 대해서는 이걸 욕망한 사람들도 스스로 이걸 내가 왜 욕망했지, 라고 처음부터 상상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가부장적이고 낡은 제도라는 인식도 저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이걸 욕망하고 실제로 결혼한 다음에야, 내가 이걸 왜 이렇게 하고 싶었을까, 그런 건 그 이후에 찾아오는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이걸 왜 하고 싶은지가 먼저가 아니라, 오히려 이걸 원하고 욕망했으니까 그 다음에 따라오게 되는 생각과 느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터울 : 이 '패션'이라는 부분이 퀴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랑 연결될 텐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여쭤보기로 하고요.
성소수자들이 모두가 결혼을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근데 어떤 소수자들은 매우 강렬하게 결혼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부당한 욕망 같지는 않아 보이고요. 그런데 성소수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유독 결혼을 좀더 욕망할까, 그런 궁금증은 들더라고요. 옆에서 관찰하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한가람 : 저는 사실 MBTI를 그렇게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사람을 그렇게 몇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없다고 보는 사람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요즘에 이게 유행이다 보니까 웨딩 상담을 해오시는 모든 고객들한테, 저는 어차피 마케팅을 하고 서비스직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걸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좋아하시니까.
되게 재밌는 인사이트인데, 대부분의 퀴어 커플 고객들이 I예요. 내향형. 저는 이게 왜 그럴까 되게 많이 고민해 봤거든요. 그리고 꼭 퀴어 커플 고객들 오시면, 저는 스스로 자료를 아카이빙하기 위해서라도 그분들의 성향을 되게 많이 물어봐요. 그러니까 이게 섹스 포지션 성향이 아니라, 어떻게 친구들이랑 노시는지, 친구들은 어느 부류가 되게 많으신지, 라고 물어봤을 때,
터울 : 인간관계에 대한 성향을,
한가람 :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물어봤을 때, 퀴어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엄청 많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비중이 굉장히 적은 편이에요. 저한테 오시는 퀴어 커플, 퀴어 웨딩을 하시는 당사자들은 대부분, 그냥 쉽게 말하면 둘이서 되게 조용하게 연애하시는 분들. 둘만의 관계의 울타리가 되게 중요하고, 더 많은 커뮤니티에서 엄청 활동을 하지는 않고 둘의 울타리가 굉장히 중요하신 분들이, 보통 퀴어 웨딩을 많이 욕망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왜 그럴까라고 고민을 해봤을 때, 이제 그런 분들은 우선 물질적인 조건으로 우선 동거를 하시고요. 대부분이 동거를 하시고, 같이 동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면 우리 그냥 결혼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미 결혼한 것처럼 살고 있는 거 아니야? 그분들은 이미 부부 관계인 거예요. 다른 헤테로의 경우에는 결혼을 하고 가족들의 인정을 받고 집을 차리고 쭉쭉 간다면, 퀴어 커플의 경우에는 이미 부부 관계로 살고, 이게 남들이 봤을 때 헤테로 커플이 결혼하는 거랑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아? 그럼 결혼식도 한번 고민해 보자, 사는 게 먼저고 결혼이 나중에 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터울 : 흔히 말하는 사실혼이죠.
한가람 : 그렇죠. 그래서 사실혼 이후에 결혼을 욕망하셔서 실제로 하시는 분들도 되게 많고. 그래서 저는 어떤 사람들이 결혼에 몰입하는지, 퀴어 분들 중에, 라고 했을 때, 커뮤니티에서 엄청나게 활동을 하는, 그렇게 외향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보다, 좀 둘에 집중해서, 인간관계의 방향성 자체가 서로에 집중돼 있는 분들, 그리고 이미 사실혼처럼 같이 동거하시는 분들한테 그런 비중이 굉장히 많다, 라는 저의 인사이트가 있었어요.
터울 : 인권단체 입장에서는, 커뮤니티라는 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개념이잖아요. 가령 게이가 있는 어느 곳에서나 게이 커뮤니티가 있다고 얘기할 수가 있을 텐데, 단체 입장에서는 주로 가시적인 커뮤니티를 볼 수밖에 없어요. 종로·이태원 이런 식으로, 그래서 친구사이 사무실도 종로에 있는 것인데요. 하지만 말씀해주신 것이 늘 숙제죠. 게이 커뮤니티가 종태원이 다가 아니라는 건 친구사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여기에 나오지 않는 게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상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거기에 대한 실례들을 얘기해 주신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런 부분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종로·이태원의 흔히 말하는 유흥 문화, 술 문화, 거기에 살짝 인권이 더해진, 그런 형태들이 어떤 분들에게는 커뮤니티로서 불충분한 부분이 뚜렷하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그 분들은 어떤 커뮤니티나 관계의 필요를 가지는가를 생각했을 때, 그에 대한 중요한 옵션 중의 하나가 동성혼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보통은 장례식 같은 데서 많이 약력을 이야기하지만, 조사 말고 경사에도 좀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꼭 결혼식에 집어넣지 않더라도." (웅) |
11. 동성혼의 욕망, 경사와 세레모니에 대한 욕구
터울 : 이경-하나님이 행성인 웹진 인터뷰를 하신 걸 봤는데, 거기에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성소수자들 중 일부가 결혼에 대해 갖는 강렬한 욕구를 살펴보니까, 이게 단순히 결혼이어서도 있지만, 성소수자들이 뭔가 피해나 슬픔이나 장례식같은 매개가 아니라 좀 포지티브한 형태의 잔치를 향유하고 그런 계기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얘기였는데요. 혹시 이런 부분들에 대해 실제로 웨딩 현장에 있으시면서 감지하신 부분이 있을지 궁금해요.
만약에 결혼과 관련된 욕구 중 하나가 그런 '경사'에 대한 필요라고 한다면, 사실 그 계기가 꼭 결혼이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요. 외려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는 거죠. 가령 생활동반자 선포식도 있을 수 있고, 비혼 선포식도 있을 수 있겠고요.
한가람 : 음…… 이제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헤테로들한테도 마찬가지고 퀴어들한테도 마찬가지인데, 굉장히 비싸고 많이 소모적이고 좀 거대한 행사이긴 하거든요. 그래서 이 사이즈를 좀 줄여서, 커플들한테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 정도는 그래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행사, 그리고 비혼들에게 해당되는 비혼식의 경우에도, 결혼식이라는 큰 비용이 많이 드는 행사가 아니더라도 좀 가볍게, 프레시하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식으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성소수자 커플들, 실제로 오래 연애하고 있는, 아니면 오래 연애하지 않더라도 둘이 좀 우린 진짜 너무 잘 맞아서 오래오래 만날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웨딩 촬영은 진짜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되게 많거든요.
터울 : 식은 안 하더라도,
한가람 : 식은 안 하더라도. 되게 부러워해요. 헤테로들이 결혼하는 거 보면서, 메이크업 한 거 보면서 너무 이쁘다, 드레스 너무 이쁘다,
터울 : 그렇죠, 게이들 바디 프로필도 찍는데 그걸 못 찍을 이유가 없는 거죠, 사실은.
한가람 : 네, 게이들이 바디 프로필 진짜 많이 찍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신부 화장 보면서 주위 분들이 많이들 놀라세요. 신부 화장은 정말 극단적인 메이크업의 끝판왕이거든요. 그걸 보면서 내 친구가 저렇게 예뻤어? 저 드레스 너무 예쁜데, 나도 저런 거 한번 해보고 싶다, 라는 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실제로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그래서 그것에 대한 욕구를 결혼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촬영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도 있고.
게이 커플의 경우에도, 제대로 된 의상을 입고 제대로 된 콘셉트를 하고 메이크업도 제대로 받고 커플 촬영을 했을 때, 굉장히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올 수 있거든요. 실제로 제 친구들한테도 그런 사진들을 보여주면, 너무 꿈꾸지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얘기를 많이 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촬영 상품들 같은 걸 좀 고민하고 있고요.
비혼식은 아직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비혼식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람들이 비혼식이라고 했을 때 그건 도대체 뭘까, 그러니까 비혼이란 건 대충 알고는 있지만 그걸 식으로 풀어낸다고 했을 때, 그 형태란 도대체 뭐지, 그게 가능한 형태인지, 그럼 비혼식 한 다음에 만약 결혼하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는 굉장히 다양한 논쟁이 있을 것 같고요. 한편으로는 이런 걸 벗어나서, 비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그걸 증명하고 공시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워딩의 식이 없을까, 어떤 다른 방식의 행사가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해 상업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하면 이걸 돈이 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터울 : 재밌는 지점이네요. 이게 세레모니라서 의미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엔터테이닝 해야 되는 거니까,
한가람 : 사람들이 이걸 욕망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되게 중요한 거니까. 비혼들한테 어떤 재미있는 개인적인 세레모니, 행사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꼭 결혼이라는 엄청 거대한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제 생활동반자법, 아니면 유럽에서는 PACs, 한국에도 PACs 같은 형태가 들어온다면, 이들한테는 좀 어떻게 가벼운 느낌의 결합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같은 것도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실제로 퀴어 커플 중에서도 그냥 파티 형식으로, 정말 가벼운 느낌의 결혼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한번 진행해 보면서, 이게 나중에 우리한테 올 수 있는 시민결합 형태의 식이 될 수도 있겠네, 라는 것도 저는 상상하고 있는 편이에요.
터울 : 사실 그런 세레모니라면, 굳이 결혼이든 생활동반자법이든 둘 중에 어느 쪽인가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결혼이 굉장히 크고 거대한 세레모니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까닭에 너무 욕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서 한사코 싫다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그러면 이 세레모니에 대한 욕구를 풀 수 있는 굉장히 다양한 어떤 툴이나 형식들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수행되고 있는 동성결혼과 웨딩 플래닝 가운데 이미 묻어 있는 힌트들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점에 대해 잘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12. 성소수자 외 사회적 소수자의 결혼에 대한 상상과 실천
터울 : 성소수자 외에도 장애인, 이주민, 이런 사회적 소수자 그룹들에서도 어떤 그들만의 결혼에 대한 욕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경우 역시 성소수자가 그랬던 것처럼 비장애인·헤테로·내국인 결혼식과 같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들이 좀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혹시 계획하시거나 좀 경험하셨던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 우선 저는 이 부분을 되게 하고 싶긴 한데, 아직 제대로 했다거나 많은 경험이 있지는 않은 편이에요. 특히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한 그런 웨딩 시스템을 계속 고민하고 있긴 한데, 아직까지 장애인 커플의 결혼식을 해본 적은 없어서, 아직 상상만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전제하면 좋을 것 같고요.
우선 웨딩 산업의 장애 감수성 부분에 대해 좀 계획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저도 실제로 시민사회단체에서 상근자로 일도 했었고, 주변에 장애인권단체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걸 웨딩 산업이 풀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여기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접근할 수가 없겠다, 여기 웨딩홀은 화면이 없어서 청각장애인분들이 진행하기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좀 이런 식으로 계속 보면서 그런 것들을 체크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나중에는 연구사업이나 정부 지원 사업을 받아서, 웨딩 산업에서 장애 감수성이 제도적 장치로서, 꼭 의무적으로 돼야 되는 그런 법이나 제도들을 만들어가는 것도 너무 좋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 커플, 이주민들의 경우에는, 저는 이제 국제 커플 결혼하시는 분들은 몇 분 있었는데요. 저도 이번에 진행하면서 알았는데, 보통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의 커플은 실제로 결혼하는 데 그렇게 큰 걸림돌이 별로 없어요. 결혼 비자도 절차만 딱 갖춰지면 빨리빨리 허가가 나오는 편이고, 문제가 없는 편인데,
이제 우리나라보다 GDP나 좀 이런 지표들이 낮은 나라, 후진국이라 우리가 쉽게 부르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비자 나오는 것 자체가 되게 오래 걸리더라고요. 비자 서류를 다 준비해도 그 나라는 현재 위험 국가고, 아니면 나라의 정치 상황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난민이 위장 결혼하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더 많은 서류를 가져와라, 라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서 좀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거나, 이런 사례들도 있어서, 저런 게 당사자들은 많이 힘들 수 있겠구나, 그런 불편한 부분도 있겠구나라는 걸 좀 많이 목격한 편이에요.
터울 : 네, 이런 부분들이 고려되어서 관련 프로토콜이 충분히 준비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당장 이런 지원자나 고객들이 안 계시더라도, 이런 부분들이 나름대로 고려되고 있고, 그게 웨딩 사업 안에서 일정한 언어와 절차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성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앞으로 그런 방향의 활동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아내구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첨예하게 부딪치는 문제는 역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였다. 구타는 구타당하는 아내들이 가정을 파괴하지 않으려 할수록 지속되는 특성 때문에 구타 문제의 해결은 기존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나 제도에 대한 근원적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구타남편이 스스로 구타를 멈추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구타의 종식은 아내가 가정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아내구타 문제 전문가들의 조언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온존시키는 가족주의 이데올로기 및 제도의 해체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처럼 아내구타 문제는 우리 사회에 가족가치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현숙·정춘숙, 「아내구타추방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 엮음,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한울, 1999, 175~176쪽. |
"[서울에서 열린 2019년 일가 아시아]컨퍼런스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둘째날 열린 가정폭력(DV)·파트너폭력(IPV) 세션이었다. […] 성소수자의 가정폭력(가폭)의 경우 당사자가 피해자인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파트너폭력은 (당연한 얘기지만)성소수자가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 […] 대만 통즈 핫라인(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에서도 파트너폭력에 대한 상담을 받는데, 이에 대해 2009년부터 대만의 여성단체인 현대부녀기금회(現代婦女基金會, 1987년 설립)와 연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성단체의 가폭 사례 중 성소수자의 사례의 비율은 아주 낮은데, 2014년 0.39%에서 2018년 0.92%로 다소 증가하긴 했다고. 그럼에도 성소수자 인구비를 고려했을 때 보고율이 매우 낮은 편인데, 성소수자 전문 상담 단체가 아니라는 한계와, 폭력을 당해도 피해 보고를 꺼리는 점이 모두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고. 이 문제가 이 세션의 핵심 논제였다. 더불어 대만은 알다시피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었는데, 이는 자연히 부부와 관련된 가폭 법률이 동성커플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앞으로 사례 보고가 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커버스토리 'ILGA ASIA 2019' #3 : 젠더·섹슈얼리티의 다양한 전선들, 욕망 지도와 성소수자 가정폭력」, 『친구사이 소식지』 110, 2019.8. |
13. 대중운동으로서 동성혼과 서비스 산업으로서 동성혼
터울 : 이제 마지막 챕터로 넘어가려고 하는데요. 이건 어찌 보면 인터뷰어인 저와, 인터뷰이인 가람 님의 입장이 좀 다르다면 다를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아요. 이 인터뷰는 동성혼과 생활동반자법이 서로 싸우고 경합하는 이슈가 아니라 둘 다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의제의 일환이고, 둘 다 퀴어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가운데 기획되었어요. 실제로 커뮤니티 안에 동성혼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결혼이 아닌 제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둘 다 존재하는 상황이에요. 비율상으로 거의 반반이 나오는 편이고요.
그래서 동성혼이 만일 개인의 욕구로만 해석되고 전개된다면,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결혼을 둘러싼 이 모든 복잡한 맥락이 사적인 세계에서 모두 고려될 필요는 없을 수 있죠. 그 모든 맥락을 충분히 숙지한 채로 개인이 결혼을 욕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리 결혼이 제도적인 욕망이라는 비판이 있다 할지라도, 내 사적인 세계에서 그걸 추구하는 것이 문제이거나 죄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동성혼을 운동의 언어로 만들려고 한다면,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는 동성혼을 원하는 사람과 안 원하는 사람을 둘 다 조망하는 가운데, 양쪽 모두에게 유의미할 수 있는 동성혼 운동의 언어와 전략을 만들어가야 되고, 실은 그렇게 해야 "모두의 결혼"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는 거죠.
더군다나 성소수자 커뮤니티 바깥에 있는 연대 단체를 생각했을 때, 그들의 입장 가운데 이 동성혼이 뭔가 운동적인 의제로 유의미하게 가닿을 수 있도록 설득되어야 하는 과제도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그게 미진했다면 앞으로 그렇게 만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운동적인 입장과 거기에 필요한 고려들이 있고, 이것이 곧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대중운동을 고민하는 방식이기도 할 텐데요.
그런데 가람 님께서는 웨딩 산업에 들어가 계시는 서비스 제공자, 서비스 노동자의 입장에서, 퀴어가 포함된 소비자를 만나는 입장에 서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 두 입장 사이에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차이와 간극에 대해 혹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 이 질문 너무 어렵다. (웃음) 우선 저는 여기 웨딩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솔직히 산업의 입장에서는 큰 상관이 없어요. 혼인 신고를 하든 안 하든 결혼할 사람은 어차피 계속 하고 있고, 그리고 혼인 신고가 안 된다 하더라도 저희 웨딩 시장 쪽 입장에서는 똑같이 결혼식하고 똑같이 촬영하고 똑같이 다 하는 거고, 어차피 신혼여행 똑같이 가는 건데, 다른 점이라면 신혼여행 가서 혼인 신고까지 하고 온다는 점 정도밖에 없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벌 돈은 똑같이 버는 거고, 문제될 건 하나도 없는 건데,
오히려 시장 입장에서는 점점 이런 소비층이 늘어나서, 이 소비층이 유의미하네, 이런 소비시장에 실제로 계속 사람과 돈이 들어오니 여기에 좀 더 집중해도 되겠네, 라는 것이 저희는 중요한 거라서, 시장 쪽 입장에서는 동성혼이라든가 생활동반자법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소비시장으로 편입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솔직히 동성혼이 법제화된다 하더라도, 동성혼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시장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얼마나 이 고객층이 늘어나서 얼마나 이게 돈이 될 것인가가 시장 입장에서는 중요한 것 같고.
이제 저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예전에 시민사회단체에서 운동을 했던 입장으로서 이 맥락을 이해하기 때문에 또 고민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결혼 제도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낡은 제도이고 가부장적인 제도인지는 이미 알고 있고, 동성혼 운동이 지금 가지고 있는 한계나 비판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어요. 인지하고 있는데, 그럼 그 낡은 제도를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한테 더 나은 제도,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나 어떤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가의 논쟁이 있다고 할 때, 어느 쪽이 더 먼저 가야 되냐, 어느 프레임을 잡아야 되느냐는 싸움은, 이게 1~2년 된 싸움과 논쟁이 아니라 그 옛날 김조광수·김승환 결혼, 또 그 이전부터 계속 있었던 의견 갈등이었고, 그러면서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이 생기는 생산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있어왔던 논쟁이기 때문에, 저는 뭐 그런 논쟁은 그냥 앞으로도 있을 법하다고 봐요. 또 거기서 어떻게 제도가 움직이고, 어떻게 제도의 향방이 가느냐에 따라서 또 달라지는 거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그리고 동성혼을 원하는 퀴어 대중과 원하지 않는 퀴어 대중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자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생각이 있냐 없냐, 알고 있느냐, 이걸 인지하고 소비하느냐라는 문제는 그렇게 전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제 입장에서 보면 저는 제 퀴어 웨딩을 홍보할 때 인권단체 쪽에 홍보하지 않거든요. 저는 이걸 홍보할 때 정말 대중적인 커뮤니티 위주로 홍보해요. 저는 심지어 레즈비언의 경우에는, 레즈비언들의 데이팅 어플이 아니라, 레즈비언들의 일상이나 업소 정보를 공유한다거나, 뭐 이런 생활적인 커뮤니티 어플이 있어요. 전 거기에는 광고를 실어놨어요.
저는 그래서 행성인이라든가 친구사이라든가, 이런 데는 광고를 애초에 실어놓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좀 편하게 그냥 접근할 수 있고, 이런 게 있네 저런 게 있네, 좀 생활적으로 왔다 갔다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에는 프라이드 웨딩을 홍보해 놓았는데요.
터울 : 그렇죠, 대중이라는 걸 그렇게 최대한 허들이 낮게끔 구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더 널리 조망하고 바라보는 방향도 중요하죠. 그런데 거기에 더해 인권단체의 입장에서는 뭔가 하나를 조금 더 얹기를 원하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비판 의식이 조금 있었으면 좋겠고, 비혼이 왜 존재하는지도 알았으면 좋겠고 하는 바람이 있죠. 제가 볼 때는 그것들이 둘 다 '대중'적인 요소고, 양쪽 모두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거든요.
어찌 보면 행성인이나 친구사이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대중이고 커뮤니티인데, 그들에게는 사실 자원과 언어가 많은 편일 수 있죠. 상대적으로 더 가시화돼있고. 그런데 이제 또다른, 존재하지만 가시화되지 않고 운동단체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대중과 커뮤니티가 분명 있을 것이고요. 기존의 인권단체를 매개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외에 그런 사람들의 존재와 욕망을 포착해는 것도 아주 중요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비단 산업이 아니라 대중 운동의 차원에서도요.
그리고 한편으로 운동단체 입장에서는, 거기에 뭔가 조금이라도, 비혼의 의의를 안다든지, 연대 단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알기를 바라는 것, 그런 것도 실은 대중의 입장과 심급의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이것 둘 다가 대중의 속성일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제 생각인 거고요.
지금 웨딩 업계 현장에 계시면서 퀴어 웨딩을 상품 다양성의 맥락으로 설명하고 계신데, 한편으로 이 상품 다양성의 맥락으로 따낼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것도 되게 많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를테면 결혼을 다양하게 만든다는 것, 아까 얘기해주셨듯이 퀴어 결혼식이 헤테로 결혼식과 꼭 같지가 않고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 그 다음에 세레모니의 차원에서 보면 사실 결혼식이 아니라 다른 식들이 생기는 것이 말씀하셨듯이 산업 입장에서 나쁠 게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고민들이 중요하겠다, 그런 자본의 입장에서도 이런 진보들이 가능하겠다, 그런 생각이 좀 들어서요.
한가람 : 거기에 추가 의견을 말하자면, 저는 시장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해주셨던 운동적 입장은 운동적 입장인데, 이 시장에 있는 저희의 경우에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돈이 되는 사람이고 시장에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냐, 소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냐가 되게 중요해요.
결혼식장은 지금 사양 산업이거든요. 점점 지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 산업이에요. 그런데도 심지어 레드오션이에요. 너무 레드오션이라서 경쟁자가 너무 많고, 계속 떨어져 나가고, 그런데 결혼하는 인구는 점점 줄고 있고. 출산율도 줄고 있어서 미래가 보이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퀴어들의 결혼, 아니면 아까 말했던 비혼이나 시민결합과 관련된 새로운 상품들이 있을 수 있는 거고. 저는 이런 건 굉장히 돌파구라고 봐요. 시장이 어떤 새로운 시장 영역을 발견한다는 건 큰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이 소비 시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거든요.
이런 식으로 저는 시장도 포섭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시장을 포섭한다면, 저는 제도라는 것은 시민사회라는 제3섹터가 있는 거고, 시장이 있는 거고 정부가 있는 거잖아요. 이게 유기적으로 계속 움직였을 때 어떤 제도가 빠르게 변화한다고 보기 때문에, 좀 그런 식으로 같이 움직이면 더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동성혼의 경우에는, 실제로 이미 있는 결혼식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고, 시민결합이나 비혼의 경우에는 다른 활로를 열어줘서, 이런 상품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라고 열어줘서 시장을 계속 포섭하고 가능성을 만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해서 이 제도를 바꾸는 데 함께 하자, 라는 식으로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터울 : 말씀해 주신 것이 운동의 유일한 방법론일 수는 없겠지만, 여러 방법론 중에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되고요. 또 운동의 입장에서도 그런 부분들과 어떻게 협상하고 같이 뭔가를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동성 커플에게는 결혼 고민이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놀라운 경험이다. […] 동성 커플은 오랫동안 아웃사이더처럼 느껴 왔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이성 커플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자기 성찰과 협상 이상이 수반되었다. 게이나 레즈비언이 결혼하기로 결심할 경우 그들의 동반자들은 때때로 단지 법적 지위가 바뀌는 것 이상을 경험했다. […] 결혼을 사적인 선언으로 만들고, 세부적 내용, 특히 동성 파트너의 선택을 개인화하는 것은 동성 커플의 결혼을 조잡하거나 고지식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 결혼이 구식이거나 고지식하다는 생각은 동성 커플이 자신들의 이성애자 형제자매나 친구로부터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동성 커플의 결혼 결정을 방해했지만 많은 동성 커플들이 자신들만의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진정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 개인의 결혼이 이러한 걱정을 해결할 수단으로 보였다." - 리 배지트, 김현경·한빛나 옮김,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민음사, 2016[2009], 53, 55, 88, 97쪽. |
14. 퀴어에 이르러 비로소 새로워지는 결혼의 속살
터울 : 사실 제가 웨딩 플래너를 모셔놓고 굳이 비혼 얘기를 계속하는 이유도, (웃음) 저희가 운동단체이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친구사이가 비혼주의 단체랑도 연대를 하고 있다 보니, 이런 질문에 대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와 더불어 아까도 얘기했듯이 결혼이라는 게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모두에게 환영받는 옵션이 아닐 수 있음을 전제로 깔고 가야 되는 부분이 있어서, 뭔가 그런 것들을 의식한 상태로 동성혼에 대한 우리의 운동적 언어를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건 어찌 보면 대중운동의 차원과 연대의 관계 속에서 마땅히 고민해야 되는 바라고 생각되고요.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우리의 결혼은 기존의 문제적인 결혼이랑 뭔가 좀 다르다', 에 대한 언어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웨딩 산업이라는 건 결혼'식'만 고민하면 되는 입장이잖아요. 어찌 보면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웨딩 산업이 책임을 질 이유는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를테면 결혼한 뒤에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적인 고민은 '그럼 우리의 결혼은 그런 문제적인 결혼과 어떻게 다른가', 그런 메시지일 거라고 봐요. 사실 오늘 인터뷰에서도 그런 얘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긴 했던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진행해오신 성소수자, 퀴어 결혼이 기존의 결혼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에 대해 혹시 생각나시는 바가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가람 : 흔히 웨딩홀 중에 퀴어 결혼 맛집이라 불리는 곳들이 있어요. 어쩌다 보니까 퀴어 결혼을 너무 많이 하고, 입소문이 많이 나고 트위터에 계속 올라오고 하면서, 매달 한두 번씩 꼭 퀴어 결혼식을 진행하는 예식장들이 몇 군데 있어요. 그 때 이곳 실장님들이 항상 저한테 말씀해 주시는 건데, 저희는 이거 하면 너무 재밌어서 일주일이 행복하다고,
터울 : 아 정말요? 그 사람들이요?
한가람 : 네, 너무 행복하고 너무 재밌다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이런 말들을 해 주시거든요.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는다, 까지는 말은 못하겠어요. 그런데 퀴어 결혼이 그곳 현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한테 새로운 뭔가를 계속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방향도 있구나,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 사람들한테 이런 걸 조심해야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감수성을 계속 늘려주는. 이건 1차적으로 너무 기본적이고 당연한 범위의 일이기도 할 테고요.
그리고 이 퀴어들이 시장 내 소비자 그룹으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사람들이 되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은 있어요. 실제로 제가 협회에서 웨딩 플래너로 교육받을 때 회장님이 해외 사례를 많이 얘기해 주셨거든요. 해외에는 폴리아모리 결혼식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교육 마무리에 얘기하셨어요. 우리에게는 이 산업이 점점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우리는 더 많은 상상을 해야 되고 더 많은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된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저는 원래 폴리아모리를 알고 있던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터울 : 그 얘기를 여기서 들을 줄 몰랐던 거군요.
한가람 : 네, 여기서 들을 줄 몰랐어요. 저는 순간 인권단체에 온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뭐지? 저게 지금 60이 넘은 헤테로 시스젠더 남성의 입에 나온 소리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놀랐던 적이 있었고. 그래서 시장이라는 건 되게 예민하게 이 소비 시장에 반응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업계가 생각보다 유의깊게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 굉장히 집중해서 보고 있다, 그래서 성소수자 한두 커플이 결혼한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 라고 하지만, 그 업체 하나하나의 다양한 경험들이, 이건 도대체 뭐지? 이 사람들 또 왜 이렇게 재미있어? 라는 식으로 어떤 하나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또 이게 어떤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터울 : 일반 결혼 시장이 사양 산업이라는 건 퀴어들이라면 크게 관심 없을 부분일 수도 있을 텐데, 시장에 계신 분이라면 너무나 절감하게 되는 부분일 것 같네요.
한가람 :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것도 재밌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춤정장 업체에서 레즈비언 고객들을 되게 좋아하세요. 요즘은 사람들이 정장을 점점 안 입거든요. 사람들이 점점 캐주얼한 걸 좋아하고, 정장 입는 직장도 많이 줄어들고. 그런데 레즈비언들 중에서 특히 부치분들, 정장을 입고 엄청 만족해하세요. 왜냐하면 그 부치분들이 매일 저한테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나는 그 여성복의 가슴이나 골반을 강조한 느낌이 너무 싫고, 그래서 남성복을 사려고 하면 또 팔길이가 안 맞고, 위아래 길이가 너무 안 맞는다고, 기장이 너무 안 맞아서 꼭 수선을 맡기게 되고, 수선 맡겨도 약간 애매할 때가 되게 많다, 그런데 맞춤 정장의 경우에는 내 몸 사이즈에 딱 맞춰주고, 예를 들어 내가 가슴을 더 넣고 싶다거나 엉덩이를 안 보이게 하고 싶다거나 한다면, 그걸 다 맞춰줄 수 있어요. 그래서 레즈비언 부치분들이나 논바이너리분들의 경우에는, 정장을 맞춰서 딱 입었을 때,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처음 입어본다고 엄청 만족해하시고,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그 테일러분, 정장 업체 테일러분들도 너무 감사하다고, 이렇게 좋은 얘기해 주시는 분은 진짜 오랜만에 본다고, 너무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시장에서 퀴어들이 하나하나 좀 더 의미 있는 소비자로서 등장할 수 있는 여지와 기회가 많다는 것들을, 이런 사례에서도 잠깐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터울 : 그러게요, 생각해보면 그런 세레모니라는 기회가 없었으면 그런 정장을 맞출 일이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퀴어들의 새로운 욕구들이 끊임없이 가시화되고, 그것들 중 일부가 시장으로 편입되는 건 퀴어 당사자 입장에서 아주 중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얼핏 가부장적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할 것 같은 남성 중심 조직에서 그래도 이경이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한 덕분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2004년 9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준비위원회 발족에도 참여하고, 2015년 7월 민주노총 내규 개정 때 가족수당 대상에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동성 포함)'를 포함시키는 등 노동자이자 여성 성소수자로서 이경의 노력은 끊임이 없었다. 그 후 사실혼 관계에 있는 커플들이 가족수당을 많이 신청한 결과만 놓고 봐도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 친구사이+가구넷, 「우리 관계를 반으로 자를 수 있나요 : 레즈비언 커플 ‘이경과 하나’ 이야기」, 『신 가족의 탄생 : 유별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이야기』, 시대의창, 2018, 187~188쪽. |
15. 서비스 노동의 관점에서 본 웨딩 산업
터울 : 질문이 두 가지가 남았는데요. 이 웨딩 산업이라는 것도 사실 서비스 노동인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든 아니든 고객으로 오신 분들에게 뭔가를 맞추는 게 너무 당연한 거고, 성소수자임을 넘어 기본적으로 고객의 예민한 피드백이 예상되는 고도의 서비스 노동이란 맥락이 거기에 깔려 있는데요. 특히 최근에는 소비자 주권을 내세워 소위 '진상'을 부리는 사례도 있고, 그래서 혹시 이런 사례를 경험하신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를테면 퀴어 고객들 중에도 진상이 있었는지, 아니면 헤테로 고객들 가운데 이런 진상을 부려서 힘들었다든지, 그런 사례들을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가람 : 우선 퀴어 고객들은, 제가 안 겪어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웨딩 업계에 퀴어 고객들은 진상이 진짜 없는 편이긴 해요. 진상이라 부를 게 없고 다들 너무 착하신 분들이 많이 오시기도 하고. 왜냐하면 퀴어 고객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본인이 서비스 소비자임에도 굉장히 저자세를 취하시는 경우가 많으세요. 내가 이 상품을 구입하고 내가 이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혹시 이렇게 하는 게 실례가 아닐까요, 혹시 제가 이렇게 하면 원래 안 되는 건데 해주시는 거 아닌가요, 라고 본인이 혹시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닌지, 애초부터 양해를 구하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그러니까 당당한 소비자가 아닌 거예요.
터울 : 어찌 보면 되게 안타깝네요.
한가람 :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는 이제 중간자 입장으로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고 중간에 조율을 하는 입장이긴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게 소수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성의 안타까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퀴어 고객은 진상이 대부분 없는 편이에요. 상담받을 때도 그렇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그렇고, 죄송할 게 아닌데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하시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래서 좀 안타깝다, 오히려 좀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고요.
보통 진상들은, 그것 이상으로 너무 당당해서 생긴 소비자가 많은 것 같아요. 이건 내 권리고 너무 당연한 건데 너 왜 안 해줘? 이런 식으로 권리 이상의 것들을 요구하시는 분들. 그래서 제가 경험한 바로 퀴어들은 진상이 거의 없는데, 헤테로들 중에는 너무 당당하게 말도 안 되는 걸 권리로 요구하시는 분들이 좀 있고, 그런 차이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쉽게 말하는 진상의 경우에는, 저희를 거의 AI 대하듯이 취급하는 분들. 그러니까 저희도 사람이고, 보통 콜센터 직원한테 뭐라 하는 거랑 비슷할 것 같아요. 대면해서는 보통 그렇게까지 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는데, 제대로 대면 상담하기 전에, 온라인이나 유선으로 상담받고 싶다, 견적을 알고 싶다고 하면서, 거의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바구니 담고 빼고 가격 확인하듯이, 이런 식으로 저희를 취급하시는 분들이 좀 있으세요. 이런 분들은 저 스스로 좀 멀리 해서 고객으로 안 받는 편이긴 한데, 이런 식으로 저희 서비스 노동자들을 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런 분들은 웨딩 고객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진상인 분들일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이건 최근에 들은 사례인데, 자기 결혼할 때 헤어 메이크업 숍에서 대기하게 했다고, 촬영 때 대기하게 했다고, 본 식 때 한 번이라도 1분 1초라도 대기시키면 소리 지르겠다고 하셨던 분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이 이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고,
터울 :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거군요. (웃음)
한가람 : 네, 그리고 일부러 불만인 것들을 모아서 인터넷에 올린 다음에, 내가 이렇게 올렸으니까 이거 내리려면 내 서비스들을 같은 가격에 더 높은 급의 업체로 바꿔달라, 이런 블랙 컨슈머의 사례도 주변에서 들었어요, 최근에. 그런 식으로 뭔가를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니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 문제 삼아서 그걸 기사화시킨 다음에, 샵을 때려부순다고 막 엎지르고 수백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고. 웨딩 업계가 고객들의 후기와 입소문들이 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역이용해서 뭔가를 뜯어내려는 그런 사례들도 종종 발견되고는 있어요.
터울 : 네, 이런 문제를 대할 때마다 웨딩 업계를 비롯해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시는 분을 노동자라 부르고, 그분들의 경험을 노동 인권과 결부시켜서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16. 퀴어 소비자의 낯섦과 퀴어 노동자의 강점
터울 : 게다가 이런 세레모니의 경우는 인생에 한번 뿐일 경우가 많고, 그럴 때 사람들이 있는 까탈 없는 까탈을 부리기가 되게 쉽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업계의 서비스 공급자로서 그런 것들을 잘 처신하고 적절히 소화하는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사실 웨딩 산업뿐 아니라 게이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 노동에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속이 썩어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이런 걸 버텨내는 마음의 근육이라고 할까요? 그런 내공을 갖추게 되신 비결을 좀 여쭙고 싶습니다.
한가람 : 기본적으로 이게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좀 글로벌 스탠다드인 것 같아요. 퀴어들이, 특히 게이들이 서비스 노동을 정말 유능하게 잘하고, 심지어 그렇게 해서 업계의 높은 위치까지 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서비스 산업에서 특히 게이들이 되게 많고 센스가 있다고 많이들 알려져 있잖아요.
제가 생각할 때 서비스 노동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어떤 페르소나를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소비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이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어떤 페르소나를 가지고 어떻게 대응하느냐, 이게 중요하다고 보는데. 저는 퀴어들은 이미 항상 스스로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내가 아우팅 당하지 않으려면, 혐오받지 않으려면, 이 상황에서 나를 숨길 수 있으려면, 다양한 위치와 관계 가운데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저는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안타깝지만 적어도 서비스 산업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서비스업을 하게 되면, 아까 말했듯이 흔히 진상이라 말하는 고객들도 많이 마주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혐오를 겪어본 사람들은 그걸 맞닥뜨리면서 오는 내성 같은 것이 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실제로 혐오를 대응하는 방법뿐 아니라 혐오를 미리 예상해서 피하는 방법까지도, 퀴어들은 거기에 대해 확실한 센서를 가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보통 이런 서비스 산업의 경우에는, 솔직히 텃세 문화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여기에 들어와서 버티는 것 자체에서, 이 업계 생산자들끼리도 텃세라는 게 있어요. 심지어 저는 청담동, 압구정 이런 쪽에서 서비스 산업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기가 강한 분들이랑 일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원래 인권단체에 있을 때,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물론 많은 경험을 했지만, 특히 그 중에서 세월호 단체인 4.16연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 때 거기서 마주했던 무수한 혐오들, 정말 저를 죽일 듯이 대하는, 저를 진짜 막 어떻게든 해먹으려고 바라보는 그 무수한 혐오의 현장에서 먹고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들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 (웃음) 그 후에 오게 된 웨딩 업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좀 귀여워 보였던, 그런 경험과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터울 : 예를 들면 세월호 관련 현장에서 어떤 경험을 겪으신 걸까요? 모르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 테니까, 그 현장이 얼마나 엄혹했는지에 대해,
한가람 : 보통 세월호 단식 현장이라 많이 말하는데, 광화문 광장에 농성장이 차려졌었어요. 거기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시면서 특별법을 요구하셨던 과정이 좀 길게 있었는데. 거기 현장에 와서 일베나 보수 단체,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와서 일부러 저희 앞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항의한다거나, 시위장 근처에서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찬송가를 계속 틀면서 저희한테 욕을 계속한다거나, 하루 종일. 밤에 몰래 와서 그 농성장을 부순다고 찾아와서 막 흔든다거나. 뭐 이런 다양한 사건들이 많았어서, 좀 그런 데서 생기게 되는 내성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까 퀴어 운동을 포함한 운동 단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진상들을 평소에 많이 보고 사는 셈이네요.
한가람 : 그래서 저는 예전에 퀴어퍼레이드 때 퀴어 트럭을 지키는 일을 했었는데, 거기에 발탁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너는 세월호 쪽에서 활동했으니까 이런 거 잘할 거다, (웃음)
터울 : 이미 역치값이 너무 높은 거군요. (웃음)
한가람 : 역치값이 매우 높다, 그 혐오를 대응하는 방법, 혐오를 바로 쳐내는 방법, 이런 것들에 굉장히 적응과 단련이 많이 돼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터울 : 네, 비결을 잘 들었습니다.
▲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2013.9.7. 광통교. @김대현
"어떤 결혼은 착취적이고 파괴적이지만, 또다른 결혼은 지지적이고 보람차다. 우리가 후자와 같은 결혼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온함과 상호의존을 얻을 기회라는 것이야말로 결혼과 가족생활이 갖는 호소력의 주된 요소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모든 욕구가 결혼으로만 집중되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 이성애적 결혼이 사회규범에 의해 지나치게 특권화되면서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매력 없는 것이 아니게 되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 성패턴을 따르는 대신 조롱과 배척을 무릅쓰는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면, 동성애가 그토록 유별나고 게토화되지 않을 수 있다." - 미셸 바렛·메리 맥킨토시, 김혜경·배은경 옮김, 『반사회적 가족』, 나름북스, 2019[1982], 54~55, 154쪽. |
17. 결혼의 퀴어링, 퀴어 대중과 퀴어 소비자의 만남
터울 : 질문을 이제 하나만 남겨놓고 있는데요. 앞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웨딩 플래너로서 품고 계신 포부와 전망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한가람 : 저는 성소수자 대상 웨딩 플래너로 처음에 일했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이 사람들한테 좀 더 특별한 결혼식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 사람들이 더 특별하게 대우받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에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 업체를 가거나 어디 상담을 받을 때나 뭘 할 때, 대표님과 실장님께서 두 분 너무 예쁘셔서 특별히 이렇게 해 주신대요, 라는 쪽으로 많이 얘기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이 바뀌었던 계기가 있어요. 어느 고객님께서 저한테 고맙다는 후기를 쫙 카톡으로 전해주시면서, 퀴어인 내가 이렇게 소비자로서 당연하게 뭘 누려봤던 적이 처음인 것 같다, 저번에도 다른 데 상담을 갔었는데, 정말 저는 다른 사람이랑 하나도 구별하지 않고 내가 퀴어라는 걸 인지하지도 못하게 너무 상담 잘해주셔서, 맞다, 나 지금 레즈비언 커플이었지, 이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때 깨달았던 게, 내 고객들이 어떤 특별한 대우를 받기보다는, 너무 당연한 소비자로서, 내가 퀴어란 것도 까먹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고 좋은 촬영이었다, 너무 좋은 결혼이었다, 이런 식으로 인식되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걸 통해서 느낀 건, 저한테 지금 오신 고객들, 그리고 앞으로 저한테 오실 많은 퀴어와 다양한 소수자분들이, 나의 이런 소수자성을 잊고, 소수자성을 까먹을 정도로 그냥 너무 아무렇지 않고 너무 당연하고, 그냥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는 그런 경험들을 계속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어떻게 하니까 나도 하고 싶어졌다, 이런 걸로 물론 시작했겠지만, 끝나고 나니까 야, 해보니까 너무 재밌어, 너무 괜찮고 추천할 만 해, 너도 한번 해봐, 그냥 좋은 거니까 한번 해봐, 라고 주변에 추천할 수 있는 그런 당연한 의미의 경험들을 계속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선순환해서 뭔가 계속 좋게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특별한 감동이라거나 너무 의미 있는 느낌이라서, 라기보다는, 별 거 아니던데, 야 너무 재밌던데? 그 결혼식 가봤어? 너무 즐겁던데? 좀 이런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만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적인 부분을 얘기하면, 이런 고객들을 만들어가는 것 외에도, 이 웨딩 시장이 성소수자 시장의 가능성을 앞으로 더 많이 목도하고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그게 동성혼이든 생활동반자법이든, 웨딩 업계가 현재로서 비혼을 찬성할 것 같지는 않고, (웃음)
터울 :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어떻게 좀 계속 고민을 해주시고요. (웃음)
한가람 : 네, 비혼주의 자체가 웨딩 시장에 어떤 큰 이익을 주지 않는 이상 아직은 잘 모르겠고요.
생활동반자법이든 동성혼이든, 웨딩 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 있다고 한다면, 시장이 먼저 움직이는 식으로 이끌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시장이 점점 발견되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가 외쳐온 가족구성권 의제에 대해 나중에는 "야 동성혼, 그거 우리한테 너무 도움 되는 거 아니야? 우리의 새로운 시장이야, 그러니 정부 너희도 이 제도 빨리 바꿔", 그런 식으로 시장이 먼저 발벗고 움직이고 목소리 낼 수 있는 그런 역할을 제가 그래도 조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그 어떤 시발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터울 : 사실 핑크 머니를 납작하게 이해하기가 쉬운데, 핑크 머니와 사회의 관계와 역동에 깔린 두터운 맥락들을 잘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핑크 머니가 자본이어서 가지는 한계도 분명 있지만, 자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뚜렷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운동 단체와 서비스 공급자·노동자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질문을 드렸어요. 그래서 운동으로서 동성혼과 산업으로서 동성혼 사이에 간극이 있고, 동성혼을 원하는 퀴어 대중과 동성혼을 원하는 퀴어 소비자도 서로 완전히 같을 수는 없고 조금씩 다를 테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고, 거기서 우리가 대화하고 제휴하고 뭔가 함께 꿈꾸고 같이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확인한 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동성혼과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서로 제로섬 게임처럼 싸우는 이상한 구도가 아니라, 퀴어의 입장에서 그 두 의제를 모두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가람 : 이 업계에 서비스 생산자로서 있다 보니 드는 생각이 또 있는데요. 웨딩 업계를 비롯해 서비스 생산자들을 위한 교육도 운동과 업계가 같이 한번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페미니즘 운동의 경우에, 요즘 페미니즘 단체랑 연예계가 많이 교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연예인들의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페미니즘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서 담당 연예인들이나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시켜준다거나, 이런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나중에 점점 기회가 되고 가능성이 열린다면, 동성혼을 비롯한 여러 이슈의 운동 단체와 서비스 생산자들 사이에 서로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도 운동이 제도 운동끼리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점점 방향을 만들어서, 실제로 이 생산자들과 운동가들, 연구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컨퍼런스라든가, 토론회같은 장이 만들어진다면 뭔가 좀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지 않을까, 좀 더 열어놓고 그런 다른 활로도 한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터울 : 네, 어쩌면 이런 노력들이 수반되고 그것이 실현될 때, "모두의 결혼"이란 말이 그에 걸맞는 의미와 실천의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모두의 결혼이란 말이 논쟁적인 어구이긴 하지만, 그게 지금 여기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상이라고 했을 때 의미가 새로워지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이경-하나 커플의 기사와 인터뷰에서도 계속 나왔던 얘기가, "모두가 결혼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결혼을 원하고, 좀더 우리다운 방식대로 결혼하고 싶다"는 메시지였거든요. 오늘 얘기해 주신 사례들도 우리답게, 퀴어답게 결혼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단서들이 조금씩 묻어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가람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