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
[기고] 당신이 안겨준 세월로 한 걸음 더 내디뎌 보려고요
- 4·16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이 글은 디지털 시민 광장 '캠페인즈'에도 기고되었습니다. - 편집자 주 |
당신, 잘 지내나요?
10년이라는 묵직한 세월에 순간 먹먹함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안부를 먼저 묻고 싶었습니다. 봄과 함께 꽃망울 맺힐 때면 심장이 아려오고, 거침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애간장을 시꺼멓게 태웠을 당신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문제해결은커녕 여전히 매정한 국가에서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10년에 다다랐네요. 어찌할 바 몰라 눈물만 훔치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 싸웠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 2014년 4월 16일 저녁 7시 58분 침몰하는 세월호, 《한겨레》 2017.4.15.
2014년 4월 16일, ‘구조 0’
우리는 검은 바다에 쓰러져 있는, 그리고 끝내 침몰하는 세월호를 실시간으로 목격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짧았던 안도는 오보로 뒤바뀌고, 늘어만 가는 희생자를 보며 절망이 켜켜이 쌓였어요. 그래도 구조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대통령은 모든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고, 언론은 에어포켓 가능성을 설파했으니까요. 그때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거라고는 그들의 말뿐이었어요.
소위 골든타임이었던 당일 오전 9시 34분, 승객 476명을 구조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한 배는 ‘해경123정’ 단 한 척이었습니다. 선내에 진입하여 탈출하라고 지시만 내렸어도, 유리창만 내려쳤어도 수십 명을 살릴 수 있었을 테지만, 해경은 탈출한 선장과 선원을 싣고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오전 9시 39분에서 10시 25분까지 국가안보실(청와대)은 해경 상황실과 총 5회의 통화를 나눕니다. 국가안보실은 구조를 위한 지시·지원이 아닌 VIP 보고를 위한 영상을 촬영해달라 독촉했습니다. 그 사이 세월호는 선수만 남긴 채 바다 아래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사상 최대의 구조 작전을 펼치겠다던 국가의 말은 어선을 빌려 사고 현장에 직접 다녀온 가족들에 의해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족들이 지켜본 현장에서는 어떠한 구조 작업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에어포켓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실낱같은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 말고는 전부 거짓이었습니다.
배가 급격히 기울여졌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신고한 사람은 단원고 학생이었습니다(오전 8:52).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영상에는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나누고, 서로를 다독이며 두려움을 이기고자 했던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반복적으로 들립니다. 그때 단원고 학생 한 명이 말합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데’.
생존 학생 유가영님은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선내에서 자신을 끌어준 친구의 손을 잡고 간신히 갑판 위로 오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침몰 이후 수습과정에서 구명조끼에 달린 끈으로 서로를 묶었던 학생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얼어붙을 것만 같이 차가운 4월의 바다에서, 그들이 파국에 남겨진 우리에게 전한 것은 ‘희생’이 아닌 ‘연결의 온기’였음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 세월호참사 1주기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투쟁에 나선 유가족, 《연합뉴스》 2015.4.2.
3,650일 당신의 걸음
속수무책 무력감에서 환멸과 분노로 바뀌던 당신을 봅니다. ‘제발 구조해달라’는 간절함이 ‘내 새끼 살려내라’라는 절규가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진도체육관에서 벗어나 청와대로 가겠다며 당신이 떼었던 그 걸음이 10년을 지나 오늘에 이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어쩌면 2014년 4월 16일, 거대한 기만을 목격한 순간, 우리의 걸음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거리에서 농성을 시작했어요. 350만 국민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했지만, 국가는 꿈적하지 않았습니다. 사즉생의 각오로 당신이 곡기를 끊었을 때, 그 옆에서는 당신을 조롱하기 위한 ‘폭식’이 전개되었어요. 표현의 자유라는 갑옷을 두르고 조롱과 적대로 당신의 목소리를 굴절시키고자 했던 이들을 보며, 난파된 것은 세월호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책임 규명과 함께 배·보상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당신은 ‘OO팔이’라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잔인한 모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국화꽃 한 송이 올려두는 일이 차벽에 가로막혔고, 애도와 책임을 요구하는 걸음에 물대포가 조준되었던,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불심검문도 진행되었던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세월이었어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가 있는데도, ‘세월호를 바닷속에 묻어버리자’, ‘그만 슬퍼하라’ 등의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졌어요. 끝도 없이 추락하는 양심을 바라보며, 서러움만 삼켰던 나날이었습니다.
참사의 진실을 찾겠다며 나선 여정인데, 나아갈수록 진실과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구조에 실패한 국가는 진상규명을 방해하는데 유능했어요. 특별법을 통해 조사를 시작해야 했던 특별조사위원회는 대통령의 시행령으로 발족하기도 전에 손발이 묶였습니다. 국정원, 기무사, 정보기관은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진도체육관에 상주하며 당신을 미행했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했어요. 우리의 걸음을 주저앉히기 위해 당신을 국론분열·불순·종북 집단으로 매도했어요. 국가는 2014년 4월 16일 구조를 실패한 것과 함께 참사 이후 진실과 책임마저 훼손하고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세월호참사의 진짜 범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도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었어요. 어느 날 당신이 우리에게 전해준 말이 기억나요. ‘이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어도 나의 아이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도 다시는 나와 같은 아픔을 우리 사회가 겪지 않았으면 한다. 세월호 유가족이 마지막 유가족이 되고 싶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도 당신이 건져 올린 말은 ‘우리’였어요. 세상이 절망적일수록 서로를 더욱 연결하고자 했던 당신의 노력은 결국 수백만의 촛불을 밝혀 불의를 심판하는 데에 이르렀고, 깊은 바닷속에 묻혀있던 세월호를 끌어 올렸어요.
▲ 어둠은 빛은 이길 수 없다, 2017.
당신과 함께 다시 걸을 세월을 약속하며
사회적 아픔에 연대하는 자리에서, 주름이 한 줄 두 줄 늘어난 당신을 바라봐요. 멈추기는커녕, 당신은 한국 사회에 ‘생명 존중’, ‘안전 사회’, ‘피해자 권리’ 등의 새로운 언어를 조직하며, 숱한 사회적 죽음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10·29이태원참사가 발생하자 당신은 사고를 예방하고 사고 발생 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던 국가에 책임을 촉구했어요. 무엇보다도 세계인의 축제인 핼러윈을 즐기고자 했던 시민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돌리는 행위를 경고했어요. 모두가 비통한 마음으로 참사를 마주하고 있을 때, 앞장서서 사회적 애도와 성찰의 방향을 잡는 당신을 보았어요. 그래서 나는 ‘지난 10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범벅된 봄이에요. 비열한 정치와 형편없는 국가에서 위태로운 삶이 계속되고 있어요.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책임지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설령 저들에게 처벌이 내려졌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10년 전 그날에 멈춰 서버린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그들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2014년 4월 16일로부터 당신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오늘까지 걸어왔고, 내일로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버텨줘서, 아니 걸어줘서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진실로 향하는 길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어요. 기억이 옅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뒤로해도 괜찮아요. 당신과 나의 새로운 약속과 다짐들로 우리는 하루하루 기억의 겹을 쌓아갈 거에요. 잊지 않고 있어요. 다시 노란리본을 가방에 달고, 우리 4월 13일 오후 5시 30분 서울시청 광장에서 만나요.
<세월호참사 10주기 일정>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 4.16기억문화제
일시 :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장소 : 서울시청 앞
참고자료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4·16세월호참사종합보고서 본권Ⅱ>, 2022.
미류, "우리는 국가를 바꾸는 길 위에 서 있다 : 사참위 보고서와 분석자료집 읽기를 제안하며", 4.16연대 홈페이지, 2023.4.26.
유가영,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 세월호 생존학생, 청년이 되어 쓰는 다짐>, 다른, 2024.
친구사이 정회원 / 람
참혹하고 통렬한 상황을 극복하며
기억의 연대를 지켜나간 "당신"께
죄송스럽게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