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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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트랜스젠더·게이 모임 "산책연습"을 마치고
이 사업은 친구사이 커뮤니티 사귐 프로젝트의 하위 사업으로, 성인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길을 걷고 과제를 수행하며, 글을 쓰고 팀원과 공유하며, 격려와 지지를 받는 경험”을 통해서, 퀴어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인 트랜스젠더와 관계 맺기를 탐색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성별이분법적인 문화와 압력으로,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집 밖을 나가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고자 하였습니다.

1. 나는 무엇이고, 너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반시티 직업군 모임에서 만난 두 세 명과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3시간씩 통화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종로와 이태원 어딘가에서 주말을 즐기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몇 년간 이어진 이런 열정은 우리를 마치 단단한 끈으로 묶어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고립·은둔의 삶을 살았던 나에게 그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남’ 그 자체였습니다. 2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뜨거웠던 우리 사이가 부질없는 짓이었을까?” 왁스의 노래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도대체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성정체성 발달 모형으로 내 삶을 해석하자면, 자긍심의 단계에 너무 오래, 깊게 압도되었던 것일까요.
종종 그 친구들 생각이 나면 슬픔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고립·은둔으로 지내던 과거나, 친구사이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모두 받고(앞으로 받을 상은 노벨평화상 밖에 없음/망상 뿜뿜), 그것도 모자라 종로의 기적, 위켄즈에 출현한 자칭 배우인 지금도, 나는 나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어느 골목을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 찾을 수 있다면, 책을 많이 읽어서 발견할 수 있다면, 유명한 인사의 강연을 들어서 확인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요. 50대 초반 나이에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답답해서 울고 있는 내 모습만 확인했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허공에 그림만 그린 세월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제야 고개를 내려서 땅을 보고, 내 옆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저간의 사정을 진지하게 보고 듣고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너를 통해서, 너와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결국 나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없고, ‘너’로만으로도 존재할 수 없으며, ‘나-너’가 되었을 때 비로써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 나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은 과거에, 다른 사람은 미래에 머물러 있다면, ‘나-너’는 다시 나와 너로 분리되고 맙니다.
“바로 여기, 지금”, 퀴어 공동체의 이슈 현장에서 들리던 구호와도 비슷하네요. ‘나-너’가 되기 위해서 나와 너는 지금 현재에 머물며 서로를 온 마음으로 열렬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찰나가 지나면 더 이상 못 볼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나-너’를 추구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애를 써 본다면, 나에게 어떤 변화들이 찾아올까요? 산책연습은 현재를 발생시키기 위해서 ‘걷기’를 선택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빠지지 않도록 호흡에 집중하면서, 땅과 하늘과 자연과 사람과 동물과 연결된 나를 자각하는 작업을 글로 나누고, 격려하며 지난 일 년을 보냈습니다. 뜨겁지 않아도, 너무 엄한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안에서 연결되고 이어지며, 한 참여자의 소감처럼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에게 그 ‘온기’는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그저 고요하지만 따뜻한 느낌입니다.

2. 3기(상반기), 4기(하반기) 참여자의 경험
참여자들의 후기를 빠짐없이 모두 지면에 옮기고 싶어요. 너무나 소중한 말씀들을 해 주셔서요. 그러나 소식지 독자로서 긴 글을 읽는 어려움을 알기에 몇 분의 소감을 전하고자 합니다.
- 바빠서 산책시간이 짧기도 했고 생각보다 빠뜨린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일을 잠시 멈추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환기가 됐던 것 같아요.
-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걱정하고 염려하고 막연하게 자존감이 떨어져버릴 때, 호흡하며 걷기는 묵은 마음을 비워 새롭게 다시 생각해보며 맑은 마음으로 채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걷기와 호흡법의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 몇 달간 산책하며 달라진 것들이 있다. 나는 당연하지 않게 숨 쉬는 법을 배웠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내가 숨 쉬는 일은 당연하지 않는 일이고, 내가 걷는 일 또한 당연하지 않다. 우리가 당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나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올해 안에 병원에 가려고 한다. 진단명이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나의 이상함을 깊게 파묻고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걸 그만두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으려 한다.
- 한 주간을 돌아보는 것보다, 무언가 기억에 남을 글 한 조각을 써보는 것보다, 이 글이 또 다시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글쓰기 과제를 했던 것 같아요. 불안정한 나의 내면을 마주하고 공감해주셨을 모든 멤버에게 감사함을 전해요.
- 이전에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면서 결과적으로 더 피곤해졌던 것 같아요. 이전처럼 피곤하더라도 일상에서 되도록 걷거나 운동을 할 기회를 더 많이 탐색하고 산책을 하게 되면서, 특히 정신적으로 피곤할수록 걷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걸 모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숨쉬기를 하면서 제 몸의 움직임과 제 자신과 주변에 집중한다는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 몸 쓰기랑 담쌓고 퀴어 퍼레이드에 가면 행군(행진X)할 엄두가 안 나서 우두커니 부스만 지키는 젠더님들(분명 저 말고도 또 있으리라 믿어요), 산책연습 꼭 하세요.

3. 팀원들의 경험
-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특별한 고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리감이 좁혀진 것 같고 만약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 잘 들어줄 것 같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 늘 타인의 시선을 신경을 쓰고 살았던 시절이 나에게도 꽤 오랜 기간 있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여성스럽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만나는 트랜스젠더들이 참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고, 우리 앞에 나타나 준 것만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패싱’을 행복의 관점으로 봐야 하나? 혹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관점으로 봐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여성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그런 성별표현에 대해서 더 자연스러워졌다. 이전에는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서 나를 억압하려고 했던 것 같다.
- “과연 게이들에게 젠더 고민이 끝난 것일까?”라는 질문을 발견하였다. 시스젠더 게이로서 익숙하게 살고 있는데, 젠더에 대한 고민이라니, 앞뒤가 안 맞기도 한 것 같고, 복잡해질 것 같아서 망설여지기도 한데, 그래서 이 질문을 계속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퀴어란 익숙한 삶의 질서에 대해서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완전히 동화되지도 않고,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면서, 늘 변형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휘말린 날들>, 서보경 지음, 2023), 세상에만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퀴어 공동체 내부 구성원인 우리도 이런 질문을 계속 가져가야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에요.

4. 나가며
2021년 어느 추운 겨울날 에디, 기즈베, 맹보, 가한, 재경은 걷고 글을 쓰며, 트랜스젠더와 게이가 만나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 하며, ‘길’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그 때 손 편지의 감동이 여전히 콧등을 시큰하게 합니다. 2022년 "트랜스젠더와 함께 걷는 친구사이 : 길 프로젝트"로 1기, 2기 참여자와 경험을 나누었고, 2023년 "트랜스젠더·게이 모임 산책연습"으로 사업명을 바꾸고 3기, 4기 참여자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또 이름을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이름일지 아직은 비밀입니다. 3기, 4기 여러분 잘 지내시나요? 너무 감사하고 보고 싶네요. 내년에 꼭 함께 해요.
1기부터 4기까지 종결모임을 이끌어 주신 라이더님도 너무 감사해요. 어떤 인연이라도 이별은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한 일인데, 언제나 늘 편안하게 이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어요. 또 늘 분주했던 기즈베, 운동 게이로 태어나고 있는 가한, 내면의 고민을 한 껍질씩 벗겨나가는 모짜, 눈물 많은 마린, 휴식이 필요한 상민, 반려견을 사랑하는 규환, 요즘 더 예뻐지고 있고 늘 감사한 새벽, 우리 팀원들이에요. 너무 좋은 사람들 만나서 2023년은 인복이 터졌던 한해였어요. 어디 가지 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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