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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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32
: '해피 투게더' 영화모임(6.10.) 참가자 후기
‘다시 시작’뿐인 90년대 퀴어의 사랑
– 영화 ‘해피투게더(춘광사설)’ 감상문
1. 외로운 본성
두 남자가 있다.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침대에서 서툴고 과격한 몸짓을 나눈다. 사랑이기보다 본성이 이끄는 몸짓이다. 아휘는 아름답게 빛나는 이과수 폭포 전등을 보며, 보영과 함께 폭포를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투게 되면서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휘는 홍콩으로 돌아가기 위해 BAR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는 도중에 서양 남자에게 기대 BAR로 들어오는 보영을 마주친다. 아휘가 가진 지독한 외로움은 보영에 대한 시기와 책망으로 이어진다. 한편 보영 또한 남자들과 어울리면서도 묘한 외로움을 느낀다. 두 사람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관계를 시작한다. 담배 한 개비를 통해 서로 입을 맞추고, 각자가 내뿜은 연기는 공기 중에 뒤섞여진다.
2. ‘시작’만 있는 텅 빈 관계
아휘는 보영과 동거를 시작한다. 아픈 보영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 보영과 생활을 시작한 아휘는 일하는 공간에서도 조금 더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된다. BAR일을 그만두고 요리를 다루는 음식점으로 직장을 옮긴다. 보영의 애정 공세에는 선을 긋지만, 보영이 원하는 산책을 함께하고 서로 몸을 맞대며 춤도 나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진 감정과 경험은 명명되지 못하는 ‘텅 빈 무엇’이다. ‘두 남자에게도 사랑으로 명명되는 관계가 가능할까?’, ‘두 남자의 동거가 이성애의 동거처럼 연애로 불릴 수 있을까?’, ‘만약 연애일지언정 이 연애의 끝은 무엇일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 던져져 있다. 두 남자의 관계는 명명할 수도 끝도 알 수 없다. 오직 ‘시작’일 때만이 의미가 발생한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이 대사가 영화를 관통하는 이유이다.
3. 황망한 종착지와 들을 수 없는 퀴어의 목소리
그러나 끝을 모르는 관계는 불안하기만 하다. 관계를 매일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관계는 시간이 쌓이면서 필연적으로 익숙한 ‘과정’이 된다. 이과수 폭포라는 종착지에 도달하려 했기에 헤어졌던 두 사람은 관계를 명명하게 되는 순간 서로에게 불안해하며 끝내 충돌한다. 결국 아휘는 보영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홀로 이과수 폭포를 찾았다. 그러나 폭포는 아휘의 집에 있는 그림처럼 아름답지 않다. 폭포수를 집어삼키는 어두운 종심은 황망하다. 아휘는 폭포수에 홀딱 젖은 채, 자신의 곁에 보영이 없다는 현실을 인지하며 여행을 마친다.
장은 아휘와 함께 요릿집에서 일하는 동료다. 장은 아휘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보영)인 것을 눈치챈다. 아휘는 자신에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공놀이도 함께해주는 장에게 점점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장은 아휘와 잠자리를 나누지 않고, 끝내 아르헨티나의 최남단인 우수아이아로 떠난다. 아휘는 그런 장을 보며 명명될 수 없는 또 다른 관계의 허망함을 느낀다. 장은 아휘에게 녹음기를 건넨다. ‘너의 목소리를 녹음해. 너의 슬픔을 땅 끝에 묻어줄게.’ 하지만 아휘는 흐느낄 뿐 말하지 않는다. 장이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자신의 슬픔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4. 90년대 퀴어 서사와 오늘의 ‘해피투게더’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함께(투게더)이기에 행복(해피)하지도 않다’라면서 아쉬움을 털어낸다. 오늘날 시선에서 세 사람의 어긋나는 로맨스는 답답하다. 하지만 영화 상영으로부터 20여 년의 터울이 주는 이해불가능은 영화의 제목처럼 ‘해피’와 ‘투게더’를 이루기 위한 시간이었기에 갖게 되는 감정이다.
오늘날 퀴어들은 자신을 가시화하며 사회적 성원권을 획득해가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퀴어도 탄생했다. 문학만 보더라도 퀴어이기에 특유의 유쾌함이 넘쳐 흐르고(박상영), HIV/AIDS 등을 사랑으로 해석하며 혐오와 왜곡된 인식을 허문다(박선우). 최근 논의되는 생활동반자법은 모두에게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퀴어에게는 연애로 한정된 관계를 넘어서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다. 이과수 폭포처럼 황망하기만 했던 종착지가 아닌, 빛이 보이는 끝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의 명명을 넘어 관계의 권리를 구성하고 있는 오늘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퀴어의 해피투게더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읽당 당원 / 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