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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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2023년 친구사이 교육팀 -
비정기프로그램 '찬란한 유언장' 후기
지난 4월 21일 금요일, 2023년 친구사이 교육팀 비정기 프로그램으로 ‘변호사가 알려주는 유언장 쓰기 – 찬란한 유언장’ 행사가 있었습니다. 3년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는 정말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셔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으시고, 많은 이야기와 함께 유언장 쓰기 체험 시간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유익한 교육 진행해주신 한가람 변호사님, 그리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참여자 중 몇 분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
게이의 숙명 : 찬란하게 죽기 위해서라도
‘게이’로 살면서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나만 해보았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혐오’가 된다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혹시 상대에게 나의 마음이 드러났을까 숨 막혔던 경험 말이다. 나의 사랑은 부서지기 일쑤였고 마음을 감추기 바빴다. 자신을 부정(당)하며 귀찮은 가면을 마련해야 했다. 내가 아닌 채 내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했던 어느 새벽에 ‘차라리 사라져 버릴까’ 혼잣말을 읊조렸던 적이 있었다. 종로3가 화려한 네온사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육중한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숱한 밤을 낑낑댔다.
“게이는 PRIDE지”. 이 강력한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종로로 나왔다. 그때 내가 가졌던 생동감이란! 최근에는 봄과 함께 익선동을 장악한 이성애 커플들이 그렇게 꼴 보기 싫었다. 술 먹을 데가 없나, 왜 우리 거리에서 흥청망청일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서른을 훌쩍 넘겨서야 남자 맛을 알았다. 종로 재미에 흠뻑 빠져 주말만을 기다리는데, 대뜸 “금밤에 유언장 쓰러 오지 않을래?”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유언장이 웬 말인가. 남자 곁눈질하기도 바쁜 금요일 밤에. 충만했던 끼가 꺾였다.
유언은 죽음 이후에 남기는 말을 의미한다. 망자는 듣는 이에게 유언을 남김으로써 죽어서도 삶을 조직한다. <찬란한 유언장>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죽음 후’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실제 애인도 없고, “저는 혼자 살 건데요”라는 거짓말을 익숙하게 늘어놓는다. 사실은 애인과 같이 늙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숨겨둔 것인데, 막상 유언장을 써보니깐 애인이 있어도 문제지만 없으면 더 문제였다. 나의 경우 불효자식이 되지 않고자 부모님 두 분보다 오래 살 예정이고, 형제자매도 없는 ‘외동’이다. 현행 제도상 가족 이외에는 사망신고는 물론 장례를 치르기도 까다롭다. 애인마저 없다면 쓸쓸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내가 남긴 재산 등을 처분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 애인이 없으면 재산을 넘겨줄 수 없어 문제다. 애인이 있어도 가족주의로 묶여있는 법정 상속 제도와 유류분 반환 청구권으로 인해 나의 재산을 애인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없다. 참으로 막돼먹은 상황이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 것이 죄가 되어 혼인 신고도 못 해 억울한데, 죽어서도 현세의 억울함은 계속된다. 게이는 법정 배우자에게 50%를 가산한다는 상속 권리에서 당연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차별에 도전하고 게이답게 살 권리를 고민하는 커뮤니티에 적을 두다 보니,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을 고민할 수 있었다.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게이라는 이유로 나의 뜻과 무관한 이에게 나의 마지막 조각마저 압수당할 수 있다는 현실이 잔인했다. 솔직히 물려줄 재산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향이 밴 유품과 함께 ‘이 주옥같은 세상 곁에 있어 주어 고마워’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겨주고 싶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혼인평등 실현 등의 요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이자, 죽음 이후에도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몫을 약속하기 위한 소중한 투쟁이다. 삶도 죽음도 찬란해야 한다면, 결국 우리의 숙명은 끈질긴 차별에 더욱 끈질기게 맞서는 것뿐이다!
친구사이 준회원 / 람
<찬란한 유언장 쓰기> 후기
‘유언장 쓰기’에 대한 소개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TV에서 보던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주변인들에게 편지를 쓰며 눈물 줄줄 흘리며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그런 시간을 생각했다. 언제나 삶에 대해 고민하지만 사실 그렇게 각을 잡고 돌아보며 그를 글로 남긴 적은 없기에, 그렇게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 편지를 써보면 기분이 새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신청했었다.
그런데 웬걸, 유언장은 생각보다 너무나 현실에 대한 것이고 내가 성소수자로서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한 수단 중에서도, 죽는 순간을 대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는 현재 파트너가 없어 특정인에게 내 재산 전부를 물려주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파트너와 사별하였을 때 둘의 관계에 법적 구속력이 없어 연인을 추억할 재산조차 주장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재산이 내 정체성과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면, 그만큼 자신의 사랑이 부정당하는 일이 또 있을까. 정체성이 제도의 영역 안에 들지 못한 우리는 우리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또 한 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한편, 유언장을 쓰면서 비루하지만 그래도 남겨질 나의 재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까 생각을 해보니 내가 어디에 힘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성소수자들이 사후 재산분할에 대한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힘 써줄 나의 커뮤니티,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앞으로 행복하기만 했으면 하는 내 조카들.. 모두 내 마음속의 보석 같은 존재들이고, 앞으로 또 어떤 보석들이 내 마음을 채우게 될지 기대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친구사이 재정팀장 / 윤하
<찬란한 유언장> 참여 후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언장이라 하면, 왠지 나랑은 크게 관련 없을 것 같이 느껴졌었다. 나이도 어리고(?) 죽는다고 딱히 남길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사이의 여러 가지 행사를 두루두루 다 참여한 나였지만, 코로나 이전에 연례행사처럼 진행했던 <찬란한 유언장> 쓰기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올해로 30살. 나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아님 세상이 흉흉하게 바뀌어서 그런 건지, 요즘은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로 내 또래의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고, 기상이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매일매일 죽음을 접하면서 산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내일이라도, 아니 이 글을 쓰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당장 죽게 된다면, 내 주변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도 한마디 남겨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유언장 쓰기 모임에 참여하였다. (3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남길 재산은 없다…)
게이인권운동단체에서 쓰는 유언장 쓰기라니…. 왠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눈물바다가 될 것 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너무 많이 울지는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민법 몇조가 이러한 내용이다 라고 변호사님이 설명해주시면, 참여자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요. 다양한 질문이 오고 간다. 참여자들의 뜨거운 열기에 미리 준비해둔 눈물은 쏙 들어갔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누구나 ‘아 이게 유언장 쓰기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양한 실제 사례와 예시를 통해, 꼭 필요하고 실용적인 정보들을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모임이었다.
내 죽음과 관련된 유언장을 쓰게 되면, 언젠가 찾아올 내 죽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싱숭생숭하고 슬플 줄 알았지만, 오히려 유언장을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당장 죽더라도, 남겨진 이들에게 내 뜻을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인 유언장. 내년에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참여해보시길 바란다.
(더불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찬란한 유언장 모임을 다시 열기 위해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
친구사이 대표 / 일지
<찬란한 유언장> 후기 : 소중한 나의 파트너를 위하여
생활동반자법이나 가족구성권법이 없는 현실에서,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온 나의 파트너이자 동반자를 떠올리며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동성커플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데 많은 불편과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부딪혔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몸이 아플 때 병원에서의 보호자 문제나 함께 노력해서 이루어가는 동산, 부동산을 포함한 법적인 문제 등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 여러 난관과 벽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지난 2개월 전 갑작스런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평소 남처럼 교류도 없이 살아가던 혈연의 가족들에게 나의 실질적인 가족이자 파트너와 아무것도 같이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나니, 이 부분을 그냥 간과하며 살아가는 것은 온전한 나의 삶을 부정당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유언장이라는 형태로 실제 현실 법의 테두리를 잘 활용하고 미리미리 준비해두어야 나의 사랑하는 파트너와 자신의 살아온 삶을 스스로 부정당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방법 중 하나로 참여한 <찬란한 유언장> 강연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유언장 이외에도 스스로의 삶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다른 방법들, 예를 들어 동성혼 법제화나 생활동반자법 등 우리가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족을 구성하고 합법의 울타리가 생길 때까지 노력하고 힘을 보태면서, 그 전에는 나름의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가야겠다고 다시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친구사이 고문 / 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