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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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ㅈㄴㄸㅌㅈㅅ EP3:
Unholy
‘회식 후 노래방에 다녀왔다’는 고백이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블라인드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직장인 커뮤니티로, 한 어린 직원이 팀장과 여성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을 처음 다녀온 후 느낀 공허함에 대한 글을 남겼다. ‘가정이 있으신 분일수록 더 열정적’으로 '더듬기' 바빴던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작성자라면 헬스를 해서 외모를 가꾸거나 가족들과 식사를 했을 그 돈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어필하려는 그들을 보며, 혹여 자신의 미래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과 상실감이 뒤섞여 있었다.
해당 게시글은 또다른 고백으로 이어지며 업무환경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불행히도 모두가 위로의 뜻을 전한 건 아니었다. 영업부서는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은데 이제라도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한다며, 같이 가놓고 뒤통수치는 행태가 더 문제이니 이러한 사람들은 두고두고 다른 일로도 문제를 일으킨다고 글쓴이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 뒤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 전에, 거절할 경우 불이익이 없도록 인사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먼저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 전에 일주일도 안돼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며, 누가 죄인인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게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윗사람들과 유흥업소에 드나든 적이 있다. 낮에 아내와 자식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말하던 그들이 어둑한 조명 아래서 ‘자신의 남성성을 어필’하는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겪게 되니 구역감은 생각보다 심했다. 시간이 갈수록 역함은 잦아들지만 대신 거절하지 못한 수치심은 늘어났다. 그 시절 나는 ‘내가 이성애자 남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고 수없이 되물으며, ‘보통의 사람’이 되려 몸부림쳤었다. 그로부터 많이 시간이 흘렀지만, 블라인드가 불러들인 과거의 구역감은 그들이 '도우미'를 더듬던 손 마냥 나를 주물러댈 뿐이었다.
나는 아직 회사에 남아있다. 어느덧 10년차에 접어든 나의 소명은 분명하다. 가능한 많은 거절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부터 실천해오고 있는 목표이지만, 거절할 때의 두려움은 그리 작지만은 않다. 비록 거절로 인해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이라 치부될 수 있고,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파이어족’이나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10년차에 접어드니 어느덧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되면서 내려놓게 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이러한 거절이 쌓이면, 회사에서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작은 바람과 함께.
* 파이어족 : 40대 초반까지는 조기 은퇴하겠다는 목표로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며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이들을 뜻한다.
* 조용한 사직 : 직장을 그만두지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방식을 뜻하는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