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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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28
: 책읽당 MT 이야기
장대비가 내렸던 지난 16일, 저는 서울광장에 나서지 않고 종로에 머물며 여러 친구사이 회원과 함께할 뒤풀이를 준비하였습니다. 혹시라도 회사에 드러나 불편한 일이 생길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저만한 사람도 맡을 수 있는 역할이었습니다. 주문해둔 수육을 찾아 어깨에 메고 우산을 받쳐 든 채 지하철역을 향하는 길이 제게는 나름의 퍼레이드였습니다. 그리고 들인 노력 이상으로 기분 좋고 즐거운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밤에 책읽당원 가운데 가장 돋보였던 사람은 단연 플로우였습니다. 삼 년 전, 처음 만난 플로우는 조심스럽고 지적인 남자였는데, 지금은 지적인 남자가 되었습니다. 그날 가장 밝은 머리를 한 플로우는 지금껏 살아온 충실함 그대로 짧은 시간에도 열심히 게이로 살아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습니다. 플로우는 이제 책읽당원일뿐 아니라 소식지 팀원이기도 합니다. 제가 7월의 소식지를 더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플로우가 새로운 꼭지를 맡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플로우는 지난 23일 책읽당 MT에서는 수상 레저를 즐기러 선발대를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이 문장에는 (책읽당을 아는 분들이라면) 놀랄 만한 사실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책읽당에서 넷이나 수상 레저에 나섰으며 MT 장소가 수상 레저가 가능한 가평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책읽당의 MT는 홍대, 이태원, 서울역 등 서울의 번화한 지역에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늦게까지는 놀아도 함께 자는 것을 어려워하는 당원을 배려한 까닭인데, 그렇지 않으면 또 충분한 인원이 참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의 결과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책읽당 행사를 기획하는 묵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지난 소풍을 과감히 경기 남부로 이끌었던 묵이는 MT를 경기 북부로 잡았고 어느 때보다 많은 당원이 호응해주었습니다. 저는 내심 불안해하였는데 이런 장면에서 사람의 크기가 드러나는 모양입니다.
묵이는 무엇보다 스무 명의 당원(숙소 최다 수용 가능 인원)이 어우러져 즐길 게임도 완벽하게 준비하였습니다. 팀을 나누어 몸으로 말해요, 고깔로 눈 가리고 공 주고받기 등 다섯 가지 게임은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빠짐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게임 후에는 역시 묵이의 계획에 따라 이긴 팀과 진 팀이 메뉴를 나누어 음식을 조리하였습니다. 저는 많은 당원이 새벽 늦게까지 쉬지 않고 마셨음에도 누구 하나 취하지 않았던 비결이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과 조리로 호흡을 맞추며 충분히 시간을 들여 서로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음주의 시간도 적당히 늦춰주었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만일 비가 추적였던 그 날, 그저 앉은 자리에 배달 음식을 깔아두고 별다른 과정 없이 술만 퍼부었다면 다음날 깨어 자괴감이 드는 사람이 속출하였을 것입니다.
MT의 숨은 주역은 또 있었습니다. 종로에서야 한껏 먹다가 몸만 빠져나와 자리를 옮기면 그만이지만 MT에서는 중간에 한 번씩 상을 치워내는 것으로 환기를 대신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스무명 분량의 설거지는 정말 대단한 것인데 이를 태원이가 다 맡아주었습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소리 높여 수다할 때보다 함께 궂은일을 하며 깊은 친밀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저는 다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빼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아왔고 그런 이를 성의 있게 싫어합니다. 반대로 묵묵히 자기 일 이상을 해버리는 사람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태원 외에도 하룻밤 사이에 믿고 의지할 당원을 여럿 보았습니다. 책읽당이 이어나갈 문집 발간과 낭독회까지 성공적으로 해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MT였습니다.
책읽당 총재 / 공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