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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커버스토리 '세계의 퀴어 문학'] 슬로베니아 게이 작가 브라네 모제티치(Brane Mozetič) 인터뷰
2022-11-30 오후 15: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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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커버스토리 '세계의 퀴어 문학']

슬로베니아 게이 작가 브라네 모제티치(Brane Mozetič) 인터뷰

 

 

2022년 11월 8일, 슬로베니아 출신 게이 작가 브라네 모제티치 선생을 모시고 작가님의 책을 번역 출간한 바 있는 움직씨 출판사 대표 노유다·나낮잠님과 통역을 맡아주신 서울드랙퍼레이드의 Heezy Yang님과 더불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작가님의 인권활동과 퀴어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더불어 미간행 원고 중 일부를 전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움직씨 출판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터울 : 친구사이 소식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입니다. 1976년부터 수십권의 퀴어 관련 문학 작품을 발표하신 슬로베니아(Slovenija) 출신 게이 작가이자 활동가이신 브라네 모제티치(Brane Mozetič, 이하 브라네) 님을 인터뷰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우선 지난 일요일(2022.11.6.) 프라이드 엑스포에서 시집의 낭독회 하시면서 어떠셨는지 소감이 궁금합니다.

 

브라네 : 많은 나라들에서 낭독회를 많이 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사람이 많이 올 때도 있고 적게 올 때도 있었지요. 유럽에서는 이런 행사가 많다보니까 사람이 안 올 때도 있고, 그리고 더구나 먼 곳에서 온 사람의 낭독회이다보니 사람이 안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지난 프라이드 엑스포의 낭독회 때에는 관객들이 꽤 찾아주셨고, 그리고 그 분들이 끝까지 낭독회를 경청해주셨고, 질문까지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아마도 프라이드 엑스포에서 시 낭독은 제가 유일하게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1970년대에는 LGBT 활동이 서점이나 문학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요즘은 점점 문화가 상업화되면서 유럽의 경우에도 LGBT 서점이 몇 개 안 남은 상황이고, LGBT 문학 서적을 발행하는 출판사도 많지 않아요. 그런 변화들이 섭섭하고,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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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프라이드 엑스포, 브라네 모제티치 X 김목인 낭독회, 2022.11.6. 16:30~18:00, @메가박스 성수

 

 

 

유고슬라비아 구 연방 시절

 

터울 :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59년에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전역에서 남성 동성애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1977년에 비범죄화됩니다. 청소년기 때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경험하셨던 셈인데요. 청소년 시절 겪으셨던 게이/퀴어를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브라네 : 일단 남성 동성애를 불법화하는 법은 있었지만, 실제로 시행은 잘 되지 않았어요. 다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성직자 등을 잡아갈 때, 그 사람이 실제로는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악용해 동성애자라고 점찍어 잡아가고는 했습니다. 물론 공직자나 중요한 인물들 중에는 실제 게이 남성도 있었고, 당시 경찰들이 그걸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인물들이 정부의 노선에 충실했다면 신고하거나 잡아가지는 않았어요. 

 

제가 10대였던 1970년대에는 성해방의 물결이 일던 때였기 때문에, 오히려 리버럴한 시대였어요. 저는 12살 때쯤에 내가 게이인 걸 알았고, 그 때 학교 친구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는 내가 게이인 것이 잘못이거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고, 다만 문제였던 건 내가 좋아했던 남자애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었죠. (웃음) 그리고 내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글을 쓰는 것도, 어렸을 때 내가 깨달은 동성애 성적 지향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에서 죽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터울 : 낭독회에서 짐 모리슨 등 다양한 음악가의 노래를 듣고 자라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릴 적 주로 들으셨던 게이 앤썸(anthem)인 곡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라네 :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자라지 않고 할아버지랑 자랐어요.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자랐기 때문에, 이후에도 권위자나 권력자의 명령이 익숙하지 않고 거기에 저항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사촌 중에 저보다 8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어릴 때 제가 들었던 노래는 그 형이 가르쳐준 거였어요. 그 당시에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랑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 유명했던 시대였는데, 저는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의 음악을 더 좋아했어요. 'ABC' 같은 노래들. (웃음) 

 

그래서 게이 앤썸을 들었냐고 묻는다면, 사실 게이라는 걸 딱히 신경쓰지 않고 그냥 느끼는 대로 음악을 들었어요. 그리고 생활 안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어떤 남자에 대해 신경썼지, 내가 게이라는 것을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 청소년들이 보는 잡지에 고민을 써보내면 답변을 써주는 란이 있었는데, 그 때도 거기에 동성애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실리기도 했어요. 아까 말했듯 그 때는 리버럴한 시대였기 때문에 거기에 긍정적인 답변이 실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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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인터뷰, 2022.11.5. @프렌즈, 종로3가

 

 

 

 

류블랴나의 LGBT운동과 슬로베니아 독립

 

터울 : 슬로베니아의 퀴어 문화 및 운동의 중심지는 수도인 류블랴나(Ljubljana)인 듯한데요. 이곳에 게이클럽과 바, 운동단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곳이 슬로베니아 내에서 어떤 지역인가요? 

 

브라네 : 사실 류블랴나에 그렇게 다수의 게이 클럽이나 업소가 있지는 않아요. (웃음) 작은 나라의 작은 도시여서 그런 것 같아요. 1984년에 열린 성소수자 운동 단체가 연 공간이 있는데, 그 클럽이 198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활동의 일환으로 열었던 곳인데, 이 곳은 류블랴나의 중심에 있는 곳은 아니고 다른 지역에 있어요. 1980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통치자 티토(Josip Broz Tito) 대통령이 사망하자 연방이 흔들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고슬라비아군이 철수하면서 류블랴나 내의 여러 공간들이 비게 됐어요. 활동가들이 그곳을 점거한 거죠. 아무튼 LGBT 단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체들이 그곳을 한군데씩 점거했어요. 2년간 물과 전기가 끊긴 상태였는데도 그곳에 머물렀어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제 시인 '혁명Revolution'에서도 다루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유고슬라비아 시절 때 유년기를 보내서, 어떻게 보면 슬로베니아가 내 나라같지 않고 류블랴나가 내 도시같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1991년 슬로베니아로 독립하게 되면서 나라가 군사화되고 보수화되고,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흐름이 시작되었어요. 저는 그런 변화의 흐름을 당연히 싫어했고요. 그러다보니 나의 활동은 어떻게 보면 슬로베니아의 독립과 함께 시작된 셈이에요. LGBT 활동을 하면서 항상 정부와 싸웠는데, 그 정부는 슬로베니아 정부였으니까요. 그래서 이 싸움은 결국 공간에 대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죠. 내가 있을 공간, 나를 위한 공간, 나를 위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슬로베니아 독립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터울 : 1984년에 만들어진 그 클럽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브라네 : '티파니(Tiffany)'예요. 그곳은 게이 클럽이고, 그곳과 이어진 다른 공간에 레즈비언 클럽도 있는데, 그곳의 이름은 '모노클(MONOKEL)'이에요. 

 

터울 : 이 티파니와 모노클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 류블랴나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해요. 

 

브라네 : 저는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게이와 레즈비언이 함께 협업을 해서 어울렸으면 했는데, 활동을 하다보면 그러지 못하고 주변의 게이와 레즈비언이 항상 싸우는 일들이 있었어요. (웃음) 오히려 요즘은 게이와 레즈비언 사이의 싸움이 좀 덜해진 것 같은 게, 스스로를 게이와 레즈비언으로 딱 구분하지 않고 트랜스젠더퀴어, 논바이너리, 젠더 플루이드 등 다양한 정체성 스펙트럼이 만들어져서, 그 경계가 예전보다는 뚜렷하지 않고 서로 섞이는 듯한 느낌인 것 같아요.

 

터울 : 한국도 사실 비슷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죠. (웃음)

 

브라네 : 제가 보기에 젊은 세대들은 정체성 간의 대립이 좀 덜해지고 보다 다양해지고 섞이게 된 장점이 있는 반면에, 요즘은 잡지라든가 단체 소식지라든가, 찾아가서 질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들이 오히려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 좀 아쉽고 그렇습니다. 

 

터울 : 아까 말씀하셨던 1984년에 '티파니' 클럽을 열었던 단체가 아마도 ŠKUC(류블랴나 학생 문화 예술 센터) 내의 게이 그룹 'MAGNUS'인 것 같은데요. 이후에 1987년 레즈비언 그룹(LL)이 창설되고, 이 둘이 힙을 합친 레즈비언·게이 캠페인 조직인 Roza Klub이 1990년 설립됩니다. 그리고 1984년 류블랴나 게이·레즈비언 영화 페스티벌이 처음 열린 이래 매해 12월 개최되고 있고, 2001년 7월 6일 제1회 류블랴나 프라이드가 개최된 이래 매년 6월로 계속 실시되고 있지요. 선생님의 인생에서 이 류블랴나에서의 일들이 어떤 의미이신지 궁금합니다. 

 

브라네 :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자 중심지이고, 인구가 30만명 정도 돼요. 주변의 다른 도시와 거리도 짧아서 전국의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고는 했죠. 그런데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클럽도 가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데이팅 앱이나 인터넷이 있고 거기로 사람을 만나면 되니까 굳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게이 바나 클럽같은 공간들도 그만큼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건 슬로베니아뿐만 아니라 특히 유럽에서 많이 보여지는 현상 같아요. 

 

 

40

사랑하는 안나, 류블랴나는 악몽이야. 네 마음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손목을 
긋고, 올가미를 묶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거지. 그걸 감당하려면 너는 계속 술이나 약에 
취해야 할지도 몰라. 친구들은 친구들이 아니고, 지인들은 지인들이
아니고, 연인들은 연인들이 아니고, 엄마는 엄마가 아니고 
아빠는 아빠가 아니고, 아내는 아내가 아니고, 땅은 땅이 
                      아니고, 
모든 게 끝나지 않는 허공에서 맴돌지, 환각들, 유령들, 
                      괴물들, 
물은 물이 아니고 공기는 공기가 아니고, 불은 불이 아니야. 
사랑하는 안나, 너의 도시는 세상의 끝이야. 
어떤 형태의 희망도 없는, 그건 무기력한 삶이고, 
고통이고, 그건 네 뱃속의 꽉 조이는 느낌이고, 모든 
부정적인 힘들의 농축이야, 너에게서 백치, 불구자를 
끌어내려고 그들의 힘으로 모든 걸 하지. 류블랴나, 
달콤한 이름의 그 뱀은, 그 자신을 네 몸에 감지, 
부드럽게, 감정을 지닌 채, 그래서 너는 공기를 다 써버리고 그 뱀을

떨쳐낼 수가 없지, 항상 너를 따라다니고, 네 뒤를 미끄러져 오고,
다채로운 색깔에 위험하지 않은. 사라져, 늪으로 
뛰어들어, 진흙으로 돌아가, 영원히, 
우리를 구해줘.

 

- 브라네 모제티치, 김목인 옮김, 「시시한 말」 中 (미간행 원고)

40

Love Ana, Ljubljana is a nightmare. The first
thought that comes to your mind is to cut
your wrists, to tie a noose, or to leap
from a buliding. You’d have to be constantly drunk or stoned
to take it. Friends aren’t friends, acquaintances aren’t
acquaintances, lovers aren’t lovers, a mother isn’t a mother,
a father isn’t a father, a wife isn’t a wife, the ground isn’t the ground,
all hover in the never ending emptiness, hallucinations, ghosts,
freaks, water isn’t water and air isn’t air, fire isn’t fire.
Love Ana, your city is the end of the world
without any form of hope, there’s vegetating, there is
torment, there is a pinching in your stomach, a concentration
of all the negative forces doing everything in their power
to make an idiot out of you, an invalid. Ljubljana,
the sweet sounding snake that wraps itself around your body,
softly, with feeling, so you run out of air and can’t get rid
of her, always follows you, slithers after you
so colourful and un-dangerous. Disappear, plunge into
the swamp, return to the mud,
save us.

 

- Brane Mozetič, 「Banality」 中

 

 

 

슬로베니아의 성소수자 혐오와 성소수자 인권 법제화 현황

 

터울 : 작가님께서 오랫동안 활동해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여쭙고 싶습니다. 

 

브라네 :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굉장히 안 좋은 순간이 많았지만, (웃음) 일단 제일 최악의 순간을 꼽자면 2001년의 일이었어요. 이게 그 해 게이 프라이드가 시작된 일과 연결되어 있거든요. 제가 낭독회나 LGBT 행사를 많이 주최했었는데, 2001년 6월에 한 낭독회를 주최했고, 그 때 캐나다 퀘벡에서 오신 분이 오픈리 게이로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시를 낭독하고 거기에 드랙 퍼포먼스를 섞은 행사를 했어요. 그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 그 작가와 함께 비공식적인 뒷풀이로 LGBT 친화적인 공간, 게이 바에 한잔 하러 가게 됐죠. 

 

그런데 그 분이 뭐랄까 좀 댄디하고, 소위 '이쪽'인 게 티가 나는 스타일이셨어요. 그래서 게이 바가 있는 건물의 안전요원이 '여기는 게이들이 들어올 수 없다'고 입장을 거부한 거예요. 먼 곳에서 작가님을 초청해서 행사에 초대한 후의 뒷풀이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이 굉장히 모욕적이고 창피했어요. 그래서 다음날 이 사건을 다른 활동가분들께 널리 알리고, 시위와 프라이드를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미디어를 만나고 뉴스 인터뷰도 진행했죠. 보통 이럴 때 다수는 문제점을 성찰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에게 더 굴욕을 주고, 마치 소수자의 탓인 것처럼 책임을 돌리려고 했고, 그 때도 비슷한 걸 겪었는데 그 과정이 또한 매우 모욕적이었어요. 

 

터울 :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장소가 정확히 어떤 곳이었어요?

 

브라네 : 류블랴나의 한 센터 건물이었어요. 갤러리가 입점해있고, 지하에는 게이 바가 있는 건물이었죠.  

 

터울 : 슬로베니아가 2006년에 시민결합이 법제화되고, 2016년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근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었고, 2022년에 동성결혼 법제화와 동성커플 자녀 입양 법제화가 달성되었습니다. 한국은 저것들 중 아직 아무 것도 달성된 것이 없는 상태인데요. 슬로베니아는 동유럽 국가 중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가장 진보적인 국가로 평가되고 있고, 그래서 부러운 점이 많은데요. (웃음) 이런 진보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브라네 : 아무래도 유럽연합(EU)에 소속되어 있다보니까, 거기로부터 부여받는 국제적인 규범을 의식하게 되는 측면도 분명 있을 거예요.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기본적으로 LGBT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국가였고, 슬로베니아로 독립한 후에도 LGBT 활동이 멈춘 적이 없이 강력하게 존재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진보가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이 싸움, LGBT 활동은 절대 멈추지 않고 끝나지 않을 것이, 당장은 좀 나아보일 수는 있어도 사회의 다수는 소수자를 차별하고 짓누르려는 의도와 관성이 있고, 만약 전쟁이 닥치거나 국가주의가 휩쓰는 어려운 상황이 되면 소수자가 더욱 핍박받고 차별받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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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프라이드 엑스포, 브라네 모제티치 X 김목인 낭독회, 2022.11.6. 16:30~18:00, @메가박스 성수

 

 

 

활동가와 문학가 사이의 정체성

 

터울 : 작가님께서는 이때까지 많은 수의 시집, 산문집, 동화책 등을 발표하셨는데요. 그럼에도 지난 낭독회에서 마지막으로 낭독하셨던 글에서, 퀴어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글을 쓰는 일을 하시면서 여러 피해를 입으셨다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리고 작가님께서 쓰신 글이 퀴어 관련 내용이란 이유로 문학으로 대접받지 못한 경험도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그 때의 경험을 여쭙고 싶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브라네 : 저의 위치가 활동가 중에서의 작가이고, 작가들 사이에서의 활동가인 셈이에요. 작가와 활동가라는 두 개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어느 한쪽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슬로베니아는 작은 나라고 그 속의 커뮤니티가 작기 때문에, 퀴어 작품을 썼을 때 퀴어가 아닌 사람들은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퀴어 당사자라 해도 그 수가 적은데 그 중에서도 퀴어 문학과 글을 읽는 사람들은 또 적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슬로베니아 내에서는 독자층이 얇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선보이려고 했고, 그럼으로써 그나마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끔 하려고 노력해왔어요. 그리고 나는 이미 퀴어 작가, LGBT 작가로 알려져있기 때문에, 이제 LGBT랑 관련이 없는 동화책을 써도 어린이들이 있는 낭독회나 학교에는 지금까지도 초대받지 못하고 있어요. 

 

노유다 : 만약 작가님이 타이완에 초대된다면, 퀴어 프라이드에 가고 싶으신지 도서전에 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둘 중에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웃음)

 

브라네 : 퀴어 프라이드요. (웃음) 우선 나는 LGBT 사람들을 위해 글쓰는 사람이니까요. 그들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터울 : 활동을 하시면서 문학 활동을 하시는 셈인데요. 이 글쓰기를 통해서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브라네 : 4년 전 『혁명에 대한 미완의 스케치(Unfinished Sketches of a Revolution)』(2018)로 미국 람다(Lambda) 문학상 최종 후보까지 올라갔던 경험이 최고로 보람있었던 순간이었어요. 슬로베니아 안에서의 상이었다면 퀴어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상은커녕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을 텐데, 미국에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만을 보고 나를 최종후보로 올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참 보람있었어요.

 

노유다 : 2020년 피터팬 상(Peter Pan Prize) 대신 람다 문학상을 꼽으시는 것도 이색적이네요. 그 상에서도 『Landet Bomb』(2019)로 최종 후보에 오르셨거든요. 

 

* 람다 문학상(Lambda Literary Award)은 세계를 빛낸 LGBTQ 작가들을 발굴·시상하는 상으로, 람다문학재단에 의해 1989년에 처음 제정되었다.

* 피터팬 상(Peter Pan Prize)은 IBBY Sweden과 Göteborg Book Fair에서 2000년에 제정한, 아동·청소년 관련 서적에 수여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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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당 읽은티 #7 - 브라네 모제티치, 마야 카스텔리츠, <첫사랑>, 친구사이 소식지 110호, 2019.8.31.

 

 

 

한국 독자와의 만남

 

터울 : 2018년 움직씨 출판사와 처음 『첫사랑(Prva Ljubezen)』(2018[2014])의 번역을 작업하셨습니다. 그 때의 기억을 여쭙고 싶습니다. 

 

브라네 : 너무 좋았죠. 처음에 움직씨 출판사와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혹시 기억나세요?

 

노유다 : 슬로베니아 영화제에 참가한 한 관객분이, 작가님께 한국에도 이런 출판사가 있다고 움직씨 출판사를 소개해주셨던 걸로 기억해요. 그분이 누구신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그렇게 소개가 돼서 작가님이 저희에게 메일을 보내셨는데, 그게 저희에게 너무 행운이었던 거죠. 처음에 『첫사랑』 번역 출간 계약을 한 후에 번역된 원고를 읽고 제가 너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브라네 : 그렇게 슬픈 책은 아니었는데, (웃음)

 

노유다 :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었어요. (웃음)

 

터울 : 한국에는 일전에 잠깐 경유하신 적은 있지만, 서울에 며칠간 체류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요. 한국을 방문하시면서 흥미로웠던 기억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브라네 :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는 겨울이라 지금보다 더 추웠어요. 그때는 책 때문에 온 거라 일정이 계속 바빠서 쉬지 못했고, 이번에는 프라이드 엑스포 일정에 맞춰서 한국을 방문했어요. 제가 슬로베니아에서 퀴어 영화제 조직도 하고 있는데, 프라이드 엑스포랑 같이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도 열린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유다님이 말씀을 안 해주셔서 섭섭했어요. (웃음) 슬로베니아에서 영화제를 열 때도 한국 영화를 많이 상영했거든요. 그래서 미리 알았으면 영화제 관련 준비도 단단히 해왔을 텐데 그걸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웃음) 

 

그래도 김승환 프로그래머님을 만나 최근 한국·외국 영화 동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영화제 대표님을 만나서 서로 콜라보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서 나름의 소득이 있었어요. 다른 LGBT 문화 활동, 이를테면 잡지, 라디오, 책같은 미디어는 다 없어져가는 추세인데, 그에 반해 영화제만큼은 여전히 많고 전세계에서 잘 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유일하게 남은 어떤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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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씨 노유다 대표와 브라네 모제티치 작가, 2022.11.5. @프렌즈, 종로3가

 

 

 

신간 『시시한 말/혁명에 대한 미완의 스케치』

 

터울 : 곧 한국어로 번역될 작가님의 시집 『시시한 말/혁명에 대한 미완의 스케치(Banality/Unfinished Sketches of a Revolution)』(2022[2011/2018])에 대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라네 : 두 시집이 이번에 같이 한국어로 묶여서 출간되게 되었는데요. 『혁명에 대한 미완의 스케치』는 LGBT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아까 말씀드렸던 2001년의 사건 관련한 내용도 이 시집 안에서 찾아보실 수 있어요. 반대로 『시시한 말』은 저의 사랑과 성적인 경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그러다보니 다소 선정적인 내용도 들어가 있어요. 사람들이 흔히 게이의 작품은 다 선정적이기만 하다고 평가절하하고는 하는데, 그런 선정적인 걸 문학작품 안에 표현하는 것도 평등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터울 : 제가 작품 목록을 죽 봤는데 굉장히 많은 시집을 내셨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다음에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집이 있으실지, 

 

노유다 : 움직씨에서 곧 『나비들(Butterflies)』[2004]이라는 시집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올 예정이에요. 

 

브라네 : 이 시집은 앞에서 소개한 두 시집과는 사뭇 다른 것이, 두 시집은 내러티브를 내세운 산문시의 형태를 갖고 있다면, 『나비들』은 좀더 함축적이고 운문적인 시를 담고 있어요. 유고슬라비아 전쟁(1991~2001)의 경험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시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터울 : 마지막으로 친구사이 소식지의 독자, 내지는 작가님의 새 책을 곧 접하게 될 한국의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라네 : 저는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인 편인데, 최근 유럽의 정치상황을 보고 다소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젊은 층의 LGBT 사람들이 LGBT 문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공부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걸 알 필요가 있는데, 그런 게 있어도 그걸 더 이상 읽지 않는 것 같거든요. 커뮤니티를 이어나가고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LGBT 작가든 영화배우든 뭐든 자기와 같은 정체성의 롤모델이 있어야 하고, 그걸 접할 수 있어야 해요. 인터넷에서 젊은 퀴어 사람들이 그냥 몸매가 좋네, 너랑 자고 싶다, 이런 것만 전부라 생각하지 않고, 좀더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커뮤니티를 찾고 활동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퀴어들의, 퀴어적인 이야기를 찾을 필요가 있어요. 

 

터울 : 글을 직업으로 삼는 커밍아웃한 퀴어 연구자이자 작가로서 너무 공감되는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으로 긴 시간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라네 :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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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시시한 말/혁명에 대한 미완의 스케치(Banality/Unfinished Sketches of a Revolution)』에 대한 텀블벅 후원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관심있는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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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