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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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매개행위죄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접하고
태어나 처음 방문한 법정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이었다. 2010년 6월 10일 구 군형법 제92조 위헌제청건 공개변론 때문이었다. 중학교 사회교과 담당 선생님이 모름지기 헌법을 줄줄 외워야 한다고 했던 그 시절부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무게감은 컸다. 그러한 법정에 처음 방문한 것이 군형법 제92조 관련 경험이었고, 그리고 12년만에 지난 11월 10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 예방법) 제19조 위헌제청건(이하 전파매개행위죄) 공개변론으로 두번째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들어섰다. 군형법 제92조는 그 사이 군형법 제92조의6으로(이하 군형법상 추행죄) 바뀌어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2건의 위헌제청과 여러 건의 헌법소원이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겨울 에이즈 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에 대한 서울서부지법 위헌제청건이 받아들여졌고, 2년여의 시간이 지나 공개변론이 열렸다. 헌법수호를 위한 최고 기관의 법정에서 에이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공개적으로 열린 역사적인 날이었고, ‘감염인의 섹스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우리의 구호가 더 이상 우리만의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었다.
이 두 공개변론 사건의 주된 이슈는 국가가 남성 동성애자의 성관계에 형사처벌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군대라는 특수성이 있는 공간에서 군기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다른 하나는 HIV를 전파할 수 있어 공중 보건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다. 군형법상 추행죄 변론에서 재판관들의 질문 중에는 동성애에 대한 찬반의 견해를 묻는 질문들이 있었다. 계간 및 항문성교 그리고 추행이라는 용어가 결국 남성 동성애자간의 성행위 만으로 인지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재판관은 그 이유를 넘어 이성간의 성행위에서도 소위 말하는 추행이 있을 때 이러한 법적용이 가능한 것이냐 질문을 이어갔다. 당시 국방부측 참고인이었던 정연주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늘어나는 여성 부사관의 현실을 들어 위험성이 있다면 이론적으로 이성간의 합의하의 성행위라 할지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가가 기본권 침해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를 만들었던 현장이었다.
*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조항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추행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92조의3 강제추행죄를 통해 따로 규정하고 있다. - 편집자 주 제92조의3(강제추행) 폭행이나 협박으로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92조의6(추행)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지난 전파매개행위죄 공개변론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동성애 찬반을 묻는 류의 그러한 질의는 없었다. 의학의 발달로 꾸준하게 약을 복용하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참고인의 진술에 대해, 약물을 꾸준하게 복용하지 않은(재판관 중에서는 ‘불성실한’으로 표현함) 감염인에 대해 병원에서는 어떻게 감시하고 추적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참고인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자신은 의사로서 감염인들의 건강을 위해서 돕는 사람이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무엇보다 건강이 저해되므로 치료를 저해하는 사회적인 요인에 대해서 상담하고 함께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료인으로서 공중보건을 위해 감염인의 치료를 위해 사회적 요인을 개선하고자 이렇게 헌법재판소에 나와 재판관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국가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감염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답하는 듯했다. 개인의 성관계에 국가가 함부로 개입하면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결국에 사회의 해악으로 남아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을 헌법재판관들의 질의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느리지만 그러한 과정과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야 변화의 과정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군형법상 추행죄 변론 때나 전파매개행위 변론 때의 헌법재판관 구성을 보면 ⅔ 이상이 남성이며 나이는 50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성적 지향을 알 길은 없으나, 재판관들의 질의를 보았을 때 이성애자로서 혼인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운동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남성 동성애자의 삶의 이야기를 말해왔지만, 공개변론 때 재판관의 질의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꾸준하고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의 삶의 현실을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하는 사람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그로 인해 겪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것이 왜 중요하고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과제인지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견해를 전달하는 것을 통해 설득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다.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를 위해 종로 이태원의 게이 커뮤니티 업소에 방문하여 서명 캠페인을 진행했을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저 이제 군인 아니에요.’ , ‘아니 군대에서 당연히 안되는 것 아니에요?’라는 질문들이었다. 전파매개행위죄와 관련해서는 ‘아니 불법이잖아요.’ ‘감염인이 고의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라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결국 힘을 잃어가고 있다. 꾸준하게 군형법 추행죄 문제를 이야기하고, U=U 캠페인을 하면서 전파매개행위죄의 문제점을 이야기해왔다. 내 문제가 아닌 것 같았지만, 이러한 법조항들이 결국 남성 동성애자들의 차별을 더 공고히 하고 있고, 같은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배제와 차별을 만들고 있다는 현실을 매번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기에, 커뮤니티 안에 여전히 문제적인 말들은 존재하지만 이에 대응하고 맞서는 언어들 또한 힘을 얻고 있다.
여전히 두 사건은 헌재에서 논의 중이다. 군형법상 추행죄건은 2010년 이후로 공개변론이 없었다. 전파매개행위죄건도 이제 첫 공개변론이 시작된 것이다. 결정을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의견을 낼 수 있고, 말걸기를 시도해야 한다. 여러 단위들이 의견을 내어 전달했고, 그것을 토대로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무엇이 문제인지를 말하고 알리고 있다. 군인 간 합의하에 항문성교하는 것을 국가가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를 알리고, 감염인은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하게 치료받고 원하는 사람과 관계맺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그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또 그래야 모두가 질병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널리 잘 알리는 것이 필요한 지금이다. 그리고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우리가 여전히 갖고 있는 질문들은 무엇인지, 나누지 못하고 있는 말들은 어떤 것인지 들여다 보는 것도 필요하다. 성관계에 동의시 우리는 무엇을 동의하고 있는지, 우리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에 대한 조건들을 평등하게 나누고 있는 것인지를 묻고 나눠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논의 속에서 국가와 사회도 고민들을 더 이어갈 것이고, 우리도 그 고민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 2022년 11월 10일의 공개변론의 더 자세한 방청기는 아래 글을 보시면 좋습니다.
: 전파매개행위죄 위헌소송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방청기 (나영정/타리)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