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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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epilogue
: 어떤 120%의 인생
- 故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1.
2005년 군대 상병 때 몸무게가 71kg였다. 그 시절 나는 어깨죽지를 한껏 들어올리고 뱃구레의 살을 더 빼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거의 해골 지경이었는데 감량을 생각하는 스스로가 그 때 처음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평생을 찐 몸으로 살다가 헤로인 쉬크가 어울릴 체격을 처음 가져본 해의 일이었다.
작년에 이르러 어깨 신경이 심각할 정도로 닳아 오른팔로 식기를 들어올릴 수 없을 즈음에 와서야, 나는 그간 축적된 몸에 해로운 운동습관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가슴근육을 들어올리고 스트레칭을 제때 하지 않는 습관으로 인해 어깨와 상체의 각도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94kg의 몸으로 예전의 운동 수행량을 무리하게 반복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왜 이런 기이한 자세를 취해왔는가를 되짚으면서, 나는 그것을 내깐에 남들에게 '팔리기 좋을' 몸으로 상상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은 크고 허리는 잘록한, 여성 독자들 앞에서 성기가 삭제된 채 즐거이 성애를 나누는 야오이의 주인공같은 몸매가 내 어렸을 적엔 호모판의 트렌드였고 나는 그걸 간절히 갖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이상한 도착이었는지 깨닫기 전에 이미 내 몸엔 살이 붙었고, 누가 봐도 아름답지 않은 몸이 되고서야 나는 내 몸에 붙은 코드가 심폐소생 장치처럼 하나둘 떼어지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과 불화하며 산다. 내가 원하는 몸과 나의 몸은 언제나 다르고, 남들 눈에 그럴싸할 법한 몸과 실제 내 몸은 더더욱 다르기 일쑤다. 위에 써놓은 내 경험 또한 따지고 보면 내 몸에 대한 '위화감'의 일종이다. 더불어 생각해보면 그 핵심에 있던 건 결국 '남들에게 팔리고 싶은' 몸이었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그런데 남이 문제가 아니라, 무려 수술을 통해서라도 비로소 '내가 되고 싶은' 욕망에 자기 성기를 수술하거나 그럴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다니, 그 깊이는 차마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내 사소한 위화감을 트랜스젠더가 겪는 위화감에 빗댈 생각은 전혀 없다. 이것은 다만 시스젠더로서 내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인생에 대해, 내가 선 위치에서 내 경험을 통해 조금이라도 닿아보고 이해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남자 좆을 빨고픈 남자인 점을 제외하고는, 성소수자 가운데 남성이자 시스젠더로서 짐짓 지배적 위치에 있는 인간일 따름이다. 그리고 오늘 들른 게이바에는 드랙을 한껏 차린 게이 수명이 옆테이블을 차지하고 놀았다. 나는 그 광경이 묘하게도 그 옛날부터 이어져온, 여기 오늘의 변 하사에 대한 종로 버전의 추모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게이커뮤니티가 과거든 현재든 성별 비순응과 끈질기게 연결돼있다는, 입에 올리기도 새삼스런 사실 말이다.
2.
변희수 하사는 2019년 11월 복무 중 국외 휴가 승인을 얻고 태국에서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았다. 6군단장 이하 소속 상관들이 사전이든 사후든 그녀의 결정을 어느 수준까지 인지했는지는 모르지만, 정황상 그녀의 성별 정체성과 수술 결정에 대해 부대 내에 어느 정도의 지지 그룹이 있었으리라는 합리적인 추측은 가능하다.1)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성소수자들은 보통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의 인간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나만 해도 30살에 게이로 정체화하고 커밍아웃한 이후 기존 인맥의 70%가 썰려나갔다. 거기엔 내가 알던 인간이 실은 호모였다는 그들 입장에서의 당혹감도 있겠지만, 내 핵심에 대해 끝내 침묵하거나 거짓말을 해온 채 꾸려온 관계에 대한 내 입장에서의 환멸도 있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특히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그 격절이 더욱 심각하다.
우선 많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비용적·신체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군대다. 내가 원하지 않는 성별로 고된 군생활을 버티길 달가워할 당사자는 많지 않기에, 많은 경우 "고환 제거 및 음경 훼손"이라는 군 면제 요건을 입대 전에 어떻게든 수용하게 된다. 나아가 외과적 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수술 이전, 소위 '남자' 시절의 자신과 실명을 내가 원하지 않은 맥락으로 입에 올리는 것은 대단한 무례다. 세상에 무신경한 인간들은 먼지처럼 존재하기에, 트랜스젠더들은 대개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을 수행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인맥을 알아서 정리하게 된다.
물론 이론가들의 말처럼,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의 인생은 말처럼 그리 딱딱 나눠지지 않고, 실제 경험을 비추어봐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를 스스로 분절적인 것으로 상상하고, 나아가 당사자들 스스로가 이를 '원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그 분리를 '원하여' 커밍아웃 이전의 인간들에게서 작별하는 성소수자의 결정은 당연히 당사자 한 명의 의지로 요약될 수 없다. 이는 일견 사소해보이는 커밍아웃이 왜 그리도 중요한 선언이 되는지, 성소수자 스스로 드러난 삶을 사는 데에 어떤 권력이 작용하는지에 대한 또다른 증거다.
그 모든 걸 몰랐을 리 없는 변 하사가 군복무 중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놀라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휴가 전에 만난 부대원과 휴가 이후에 만난 부대원이 서로 같은 인간들이라는 점 말이다. 직군은 아니고 사병으로 만기 전역한 터이지만, 나는 군복무 시절 어떤 인간과도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에 비해 그녀는 수술 이전 군대에서 자신이 맺은 어떤 관계와도 작별하려 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커밍아웃한 게이가 드문 것은 물론이고, 수술 전과 후를 모두 아는 직장 동료들과 계속 얼굴 보고 지내기로 마음먹는 트랜스젠더는 더더욱 드물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그녀를 둘러싼 사람과 조직을 얼마만큼 사랑했는가에 대한 방증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성별 정체성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이 맺은 인간관계를 허투루 잘라내지도 않은 셈이다. 그런 용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대원 중 일부가 그녀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했다는 것만큼이나, 그녀 스스로 그렇게 마음먹고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곱씹을수록 대단하다. 그녀는 그렇게 성소수자로서 그녀에게 주어진 삶을 120% 살아낸 사람이다. 그리고 국방부는 그 모든 걸 하루아침에 뒤집었다.
3.
성소수자들이 게토에 모이는 이유는, 그곳에서라도 스스로 자연스런 존재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처음부터 거기에 그러고 살았던 사람처럼, 그게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동네가 이 하늘 아래 애석하게도 그 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길가의 돌이 스스로 돌임을 설명하지 않고, 이성애자들이 스스로 이성애자임을 설명하지 않듯이, 애써 남에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그저 하나의 자연으로 놓아두어도 되는 숨통이 그들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 그 자체로 운동이 되고 선언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그 모든 걸 뚫고 남에게 또다른 '부자연'으로 받아들여질 스스로를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커밍아웃으로 이성애 사회의 구조적 억압이 사라질 리 없음에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허물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쏟아질 여러 불편과 시선을 감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반이 성소수자 곁에서 나는 준비됐는데 왜 내게 터놓고 살지 않느냐 묻는다면, 슬프게도 이 사회는 한낱 당신의 선의로 구성돼있지 않고, 나아가 그것은 높은 확률로 선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답할 수밖에 없다.
부대 내에서 부사관의 몸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그토록 집요하게 부대원들에게 설득시켰던 고인의 심중을 생각한다. 그녀 또한 자신이 길가의 돌처럼 원래 그 자리에 그런 형태인 것이 당연한 존재이고 싶었을 것이다. 게토가 아니라 자신의 직장에서 그런 자연을 꿈꾸는 사람은 드물기에, 그런 그녀의 강단이야말로 "기갑의 돌파력"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성소수자라면 자기 인생의 120%를 산 사람도 이렇게 죽을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해낸 듯이.
이 넓은 도시에 마치 정붙일 곳이 이 곳 하나뿐인 듯 종태원을 드나드는 스스로를 보며, 이곳의 커뮤니티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자연인가를 생각한다. 여기의 농축된 즐거움이 성소수자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호조건이 아니라 악조건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 존재조건의 실체를 새삼 직시하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고 괴롭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그런 일련의 것들을 모르고 싶은, 차마 드러나고 싶지 않은 욕망도 때론 자연일 수 있을까. 그렇게 거듭 나를 잊어가면 비로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연에 다다를 수 있을까. 자기를 잊지 않으려던 한 사람을 잔인하게 타살하는 사회 앞에 모골이 송연해진 채로 생각한다. 잊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 이 숱한 존재의 피로를 더는 안 겪어도 될 세상으로 간절히 가고 싶다고.
4.
2018년 8월 4일, 성소수자의 임신·출산 등 재생산권 관련 사례 및 주요 쟁점을 다룬 <Once and Future Feminist>가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이 책은 이듬해 『재생산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발간되었다. 이 책의 편집인인 옥스퍼드대학 교수 머브 엠리(Merve Emre)는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는 재생산"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며, "재생산이 정치적 문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 도움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쉬운 재생산에도 다양한 층위의 사회적 구성물이 개입한다고 주장하였다.2)
이에 대해 뉴욕대학교 비교문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트랜스젠더 여성 앤드리아 롱 추(Andrea Long Chu)는, 자신이 성확정 수술의 전단계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기 전 지인들의 권유로 자신의 정자를 은행에 보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였다. 또한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재생산 관련 욕망에 대해, “나는 애초부터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고, 성확정 수술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기대보다는 못할 것”이며, 스스로 “절대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고 다만 “그렇게 애쓰다가 죽을 것”이라 술회했다. 더불어 머브 엠리의 글에 대해 “모든 재생산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그녀의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스러움을 포기”하는 것 또한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고, 우리는 “자연이 참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자연을 믿는 것이라고 언급했다.3)
“자연적인 것을 욕구의 한 대상”으로 바라본 그녀의 주장에 대해 머브 엠리는 “거칠고”도 “매우 설득력 있”는 “평가”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녀를 비롯한 여러 필자들의 화답에 논평하면서 머브 엠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그녀가 인터뷰한 여성 성소수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마음 아파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며, 그 이유로 “슬픔”이란 “너무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4)
1) 생전 변 하사의 성별 재지정 수술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군단장·여단장 등 소속 상관의 인지 내용 및 지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가 참고된다. 김형남, 「변희수는 왜 그렇게도 군을 믿었나」, 『오마이뉴스』 2021.3.17.
2) 머브 엠리, 「포럼 :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편, 『재생산에 관하여 :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 마티, 2019, 40~41쪽.
3) 앤드리아 롱 추, 「답글 : 극단적 임신」, 머브 엠리 편, 『재생산에 관하여 :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 마티, 2019, 86~87쪽.
4) 머브 엠리, 「답글 :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편, 『재생산에 관하여 :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 마티, 2019, 90~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