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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소모임] 문학상상상 당선작 : '주위에 널린 아주 흔한 슬픈 애'
2020-12-31 오후 15: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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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소모임]

문학상상상 당선작 :

'주위에 널린 아주 흔한 슬픈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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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덜컥 장원이 됐네요. 여타 소설 공모전 당선자처럼 멋들어지는 소감을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깊이가 없어서 실패입니다. 그러면 오랜 기간 연습생 생활을 거쳐 뮤직뱅크에서 1등 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아이돌처럼 해볼까요. 하지만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은 게 채 1년이 되지도 않았거든요. 울만큼의 서사도 가지고 있지 않네요. 감동 즙 짜기도 실패입니다. 

 

저에게 글은 배설의 수단이었습니다. 고작 그만큼의 감정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냐는 핀잔을 피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글이었거든요. 하지만 세상에는 슬픈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제 글을 좋아해 줬어요. 그러다가 문득, 내 슬픔을 떼어다가 파는 건 아닐까 싶어 더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쓰면서도 슬프고 후련했습니다. 나를 얼마큼 부셔서 넣을지 고민했습니다. 많이 쓰고 지우면서도 보탰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누군가 위로받았다면 쓸모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 배우고 더 다듬고 더 쓰겠습니다. 쓰는 것 말고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뮤직뱅크에서 1등 한 아이돌 그룹만큼의 감동은 아니더라도, 그들처럼 감사했던 사람을 열거할 수는 있겠죠.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거든요. 멋진 취지의 공모를 열어준 문학상상, 형편없는 초고를 쓸 수 있는 동기가 됐던 보안소설클럽, 끝까지 응원해 준 모쿠 님, 카페에 앉아 제시어로 문장 쓰기 놀이를 같이 해주었던 기표 형, 내가 쓴 글이 재밌다고 소울리스 한 멘트를 쳐주는 것에 도가 터버린- 하지만 언제나 글 쓰는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지수, 좋은 심사평을 써준 동료 참가자들, 소설 공모에서 장원 탔다고 자랑했더니 앞에서는 츤데레였지만 뒤에서는 기프티콘 메시지에 자랑스럽다고 써준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제 소설을 읽어준 분들도 고맙습니다. 아, 무엇보다 이 소식지에 실린 나의 글을 강제로 읽고 어떻게든 멋진 감상평을 쥐어짜 내야 할 미래의 애인께도 성급하게 감사드립니다. 

 

이들 덕분에 저는 안전합니다. 제 글도 여러분께 안전하게 읽히는 글이기를 바라봅니다. 여러분도 부디 안전한 일상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진심으로 또 봐요, 안녕!

 

 

 

 

주위에 널린 아주 흔한 슬픈 애

 

 

ㅡ 상대의 마음을 독점적으로 소유해도 된다는 건,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회계약 같은 거 아닌가.


나는 경일이 알려준 대로 라켓을 쥔 채 ㅡ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주먹 쥐듯이 잡아야 한다는ㅡ 휘둘렀고 셔틀 콕은 겨우 네트를 넘겼다.
 

ㅡ 글쎄, 난 그 계약 같은 거에 동의한 적 없는데.
 

경일은 내가 쉽게 스윙할 수 있도록, 셔틀콕을 내 근처로 쳐주었다.
 

ㅡ 어쩜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비겁할 수 있을까? 자기가 비정상이라고 생각 안 해봤어?
 

난 조금 격양된 마음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라켓을 크게 휘둘러 서브를 쳤다. 
 

ㅡ 범아. 형이 말했지. 랠리 할 때는 오른발을 절대 앞으로 내밀지 말라고. 셔틀콕을 더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오른발을 내밀면, 상대가 쳐낸 스윙을 받아내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말아.
 

경일은 오늘도 이 말을 해버리고야 말았다. 경일은 내게 배드민턴을 가르쳐주면서 매일 이 말을 했다. 내 공을 멀리 보내려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버리면, 상대가 쳐낸 스윙을 절대 받아내지 못할 거라는 말. 완전히 헤어지자고, 오늘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합의한 오늘도, 경일은 앞서 가지 말라는 말을 내게 해버리고야 말았다.
 

*
 

난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겁쟁이인 게이 새끼 두 명을 아는데, 한 명을 더 추가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낀 적 있었다. 나의 데스노트, 아니 더 정확히는 섹스노트에 경일의 이름을 추가해서 영원한 앙갚음을 하고 싶었다. 내가 옛 애인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징벌인 섹스노트에 경일, 그 자식의 이름을 적어버려야만 내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았다. 섹스노트는 내가 나를 지키는 수단이었다. 가장 손쉽고 간편하게 미워할 수 있고 탓할 수 있는 대상은 나였기에, 난 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고는 했다. 하지만 알약 몇 개에 조울을 오가는 나 자신이 싫었고 그냥 누군가를 탓하기로 선택했다.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섹스노트였다. 난 노트에 잡문을 휘갈기듯 블로그에 내 실패한 연애사를 적곤 했다. ‘바람피운 애인한테 헤어지지 말자고 무릎 꿇었던 썰’ 게시물은 아주 찌질한 나의 첫 연애를 정말 적나라하게 그려낸 글이었는데, 이게 몇 십만 조회 수를 터뜨리며 대박이 났다. 


나의 첫 애인은 40대 형이었다. 그를 사귀는 내내 아빠랑 사이가 안 좋냐느니 돈을 보고 만나냐느니 하는 주변의 의심을 감내해야 했다. 첫 번째로 사귄 A형은 술번개 모임에서 만난 마흔 살에 S전자 마케팅본부 과장이었고 돈을 많이 벌었다. 기껏해야 스팸을 굽는 날이면 엉덩이 춤추며 좋아하던 스무세 살 자취생에게 A형이 사주던 안심 스테이크나 호텔 레스토랑은 나를 자극했다. 그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거나 호텔에서 섹스를 하는 동안에는 곰팡이 핀 내 자취방을 잊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돈 보고 만난 거 아니냐는 아주 전형적이지만 빻은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기 어색할 지경이었지만, A형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고 얼굴도 제법 동안이어서 육체적 관계를 맺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와 나는 아빠한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갖은 폭력을 당하며 컸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자주 울고는 했다. 나는 그때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안아주면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A는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에게도 안심 스테이크를 사주고 있었고, 나는 3개월 만에 차였다. 두 번째로 사귄 B형은 독서모임에서 만난 소설가였다. 나는 지성이란 것이 허황된 상념이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공부를 많이 하거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내가 모자란 부분을 터놓으면 그 빈틈을 잘 채워줄 거 같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별 볼 일 없는 문장력으로 그에게 자주 편지를 써서 줬고, 끊임없는 매력 어필 끝에 그와 연애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판단에 무척 공격적이었고, 남을 주저앉혀서라도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받으려는 나르시시스트적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었다. B는 나의 고민에 대해 항상 정답을 주려고 했는데 그것에 공감해주지 않거나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난 타인의 기분에 맞춰 그가 좋아할 만한 리액션을 해주는 것에 아주 도가 튼 사람이었으나 연인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꽤 잦은 언쟁을 했다. 다섯 권의 소설책을 써낸 마흔한 살짜리 소설가 ㅡ그의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전부 헤테로였고 아주 뻔뻔하게도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헤테로로 치환해서 서술했다ㅡ 와의 연애는 결국 그가 멋들어진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걸로 끝이 났다. 그 카톡은 전체보기를 눌러야만 다 읽을 수 있는 정도의 길이였는데, 누가 직업 글쟁이 아니랄까 봐 고작 연인에게 ‘넌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서 나와는 맞지 않으니까 헤어지자’라는 이별 통보 용으로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말하는 용기 없는 놈이었고 난 카톡으로 차인 키만 컸지 가난하고 못생긴, 아주 흔한 슬픈 게이인 건 변함없었다. 


나의 이런 비루한 연애 이야기는 애인의 외도로 이별하게 된 사람들의 폭발적인 댓글을 이끌어냈고 나를 스타 소셜 미디어 작가의 반열에 올려주었다. 나는 갈수록 더욱 자극적인 묘사와 아주 조금의 과장을 섞어 온갖 연애 이야기를 써댔다. 몸은 근육질이지만 그곳이 너무 작았던 썸남과의 잠자리, 300만 원 빌려 가고 갚지 않은 채 환승 이별을 해버린 어린 썸남 이야기는 아직도 최고 조회 수를 유지하고 있고, 인스타, 페이스북에 불펌돼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한 번은, 그 게시물을 본 썸남이 불쑥 연락해 300만 원을 갚을 테니 한 번만 더 그런 비겁한 짓을 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전화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숱한 협박을 받아도 섹스노트를 지혈제로 사용하고는 했다. 난 매력 없는 한낱 고깃덩어리일 뿐일까- 그래서 애인들이 바람피워 떠나가는 건가- 자괴해버릴 것만 같을 때면, 섹스노트를 지혈제 삼아 외로워 미쳐버릴 거 같은 밤들을 견뎌냈다. 그 뒤틀린 지혈제만이 내가 나에게 스스로 단죄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내가 게이라는 걸 가족에게 말한 날은 스물네 살의 5월, 음 그러니까 셋째 누나가 결혼식을 끝낸 날의 저녁 식사자리였다. 사실 식사라기보단 아빠와 큰 매형, 작은 매형이 막내 매형의 간을 술독에 적셔버리는 그런 자리였다. 아무리 장인과 형님이라지만, 그들이 주는 술을 족족 받아 마시는 막내 매형은 큰 눈에 진한 쌍꺼풀을 가진 육군 대위였다. 그는 예비역 원사였던 아빠와 처음부터 환상적인 케미를 터뜨렸다. GOP에서 북한군을 봤다는 얘기나 멧돼지를 만나서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안줏거리였다. 우리 집 남자들은 뭐가 재밌는지 술 마실 땐 나 빼고 항상 화기애애했다. 누나들과 엄마는 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대화로 각자의 술잔을 비웠다.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나의 적정한 입대 시기를 자기들끼리 논의하거나 나의 두 번째 유학 요청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의견 교류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가 갑자기 TV에 홈쇼핑 광고가 나오면 자연스레 해당 제품에 관한 품질 및 가격 정보를 나누는 이야기로 흘러가고는 했다. 나는 여자들의 대화와 남자들의 대화 그 어느 곳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난 종로의 어떤 술번개 자리에서 스물한 살짜리 게이가 서른세 살 형에게 기갈을 부리다가 참이슬 싸대기를 맞아 울면서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나, 틴더에서 만나 사귀었던 파트너가 사실 나이와 직업, 심지어 이름까지도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3주째 술만 마시다가 그만 위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스물네 살 게이의 이야기 같은 것에 흥미를 느꼈다. 


물론 이만큼의 자극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맥주 효모가 머리숱을 늘려준다는 첫째 누나의 말에 엄마가 자신의 머리숱을 걱정하며 은근한 위로를 바라는 듯한 이야기를 할 때는 나름 괜찮았다. 
 

ㅡ 엄마는 엄마 나이치고 머리숱 엄청 많은 거지 뭐. 하나로 마트 사장 아줌마 알지, 그 아줌마는 딱 봐도 가발이던데? 


처럼 엄마의 아파트 부녀회장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 아줌마와 비교해 우위성을 들춰주는 간단한 스킬만으로 엄마는 환한 웃음을 지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그 환한 웃음을 좋아했다. 누나들은 여느 남매가 그렇듯 자주 나를 부려먹고 괴롭혔지만, 아주 다행히도 엄마의 미소를 닮아서 환하게 웃는 모습은 비슷했다. 난 그 미소를 보면 항상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나를 향한 그 환한 미소만이 내가 가진 전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미소를 잃어버리면 영원히 안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그 미소를 받을 수 있는 행동만 해오며 발버둥 치는 삶을 살았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저들의 사랑을 잃지 않아야 했기에 끊임없이 그들에게 맞장구를 쳐줘야 했다. 엄마의 슬픈 과거 이야기나 ㅡ대부분 시집와서 자신의 꿈도 접은 채 아이들만 키우며 살아야 했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처량한 지에 관한 이야기였다ㅡ 아빠의 충고 ㅡ남자는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남자는 대기업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어야 가슴 펴고 살 수 있다는 말의 반복이었다ㅡ를 들을 때도, 난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공감하는 리액션을 끊임없이 해오며 살았다. 물론 그날도 연신 리액션과 갖은 대화 스킬을 사용하며 그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 집 남자들의 이야기는 도통 그 어떤 스킬을 쓰고자 하는 의지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증권회사 6년 차 대리인 큰 매형은 자신이 얼마나 사내정치를 잘하는지 자랑하는 걸 좋아했다. 중간 연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서 내에서 목소리가 높은 건 자기가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항상 나에게 일을 잘하는 것보다 남들의 눈치를 잘 봐서 그가 원하는 대로 잘 행동해주면 사람 다루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작은 매형은 맞다며 맞장구를 쳤고 자신도 ‘끝내주는 말발’로 고속 승진한 거라며 큰 매형과 자신을 동시에 치켜세우는 화법을 쓰고는 했다. 그에게는 그런 화법이 발버둥이었을까.


그날은 늦봄이었고 낮이 조금씩 길어지는 때였다. 저녁이 창문 끝에 걸쳤을 무렵, 아빠는 갑자기 둘째 누나의 복직에 반대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대뜸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 해도 성공한 인생이라며, 워킹맘 아래서 자란 애들이 성격이 무뚝둑 해진다고 말했다. 그런 논리면 엄마는 아빠 때문에 일도 못한 채 날 키웠는데 난 왜 성격이 이 모양이지- 라는 생각을 짧게 했다. 그리고 저 낡아빠진 생각이 얼마큼이나 아빠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을까 생각했다. 맞다. 사실 아빠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항상 가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했다. 혹여나 무시당할까 항상 가시를 세우고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주말 연속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버지 역할이 떠올랐다. 그 인물은 양육 내내 자식들에게 무심하다가, 은퇴하고 나서는 자식들이 자신을 돈 벌어오는 기게로 생각하더니 이제는 늙어빠진 노인네 취급한다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는 했다. 나는 아빠가 그렇게 흔한 중년 남성이 되지 않기를 아주 맹렬히 바라고는 했다.
 

둘째 누나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가지게 됐는데 ‘좋은 태교’가 건강한 아이를 만든다는 시댁의 암묵적 압박에 회사를 그만둬버렸다. 심지어 아빠는 아이가 배속에 있을 때 잘 케어하지 못해서 건강이 안 좋은 채로 나오면 평생 미안할 것이라며, 누나의 죄의식을 묘하게 자극하고는 했다. 아들을 낳은 누나는 딸도 있으면 좋겠다는 시댁의 추가적인 묘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와 셋째 누나가 나서서 변호해줬다. 엄마는, 당신이 매일 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그러냐- 애들 어릴 때 기저귀 한 번 안 갈아준 양반이 말이 많다-고 융단폭격을 했고 셋째 누나는, 아빠가 매달 생활비 내줄 거냐-하면서 아빠를 향해 총공격을 했다. 그 사이에서 첫째 누나는 아주 시크하게, 그렇게 갖고 싶으면 본인이 하나 입양해서 키우던지-라는 멘트를 날리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아무리 목소리 큰 아빠지만 이렇게나 환상적인 팀플레이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막내 매형이 자신의 진급 얘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급하게 돌렸다. 곧 진급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아 한껏 예민해진 막내 매형의 처지 비관은, 그래도 우리 셋째 사위는 남자다우니 무조건 진급할 것이다-하는 아빠의 우렁찬 응원을 불러냈다. 난 정말 그놈의 ‘남자다움’에는 도저히 발버둥 쳐줄 수가 없었다. 아빠의 기준에 나는 전혀 남자답지 않은 아들이었고, 나 또한 아빠가 만들어 낸 ‘남성성 진한 남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학사경고를 달리는 내 학점의 소수점 자리만큼도 없었다. 


어느 집단에도 제대로 끼지 못한 나는, 술자리가 지겨워져서 안방 화장실을 가는 척 침대에 누우려고 일어섰다. 핸드폰을 켜니 경일이가 오랜만에 게시물을 올렸다는 인스타그램 알림이 떠 있었다. 나는 아주 익숙하게 그의 프로필을 눌러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나 피드를 살폈다. 넓은 어깨와 이두근과 삼두근이 확연히 드러나는 반팔을 입은 채,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이 새로 올라와 있었다. 수천 개의 좋아요와 수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스타그램 속 경일의 모습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난 안방에 가던 걸음을 돌려 술상 뒤 소파에 앉아 그가 어플로 보정한 게 아닌가 싶어 괜히 근육에 착 달라붙은 반팔을 입은 그의 사진을 확대해 살폈다. 그때 소파 건너편 술상 앞에 가부좌 자세로 앉은 채 술에 취한 막내 매형이 나를 보고 말했다.


ㅡ 우리 처남은 언제 결혼하려나. 유학 갔던 런던에는 괜찮은 교포나 유학생 없었어?


ㅡ 동서, 처남이 지금 스물넷이야. 아마 십 년은 더 기다려야지. 근데 절대 서양 여자는 안 된다! 한국인이랑 해 할 거면~


ㅡ 형님 우리 처남은 키도 크고 잘 생겨서 사고 안 치는 게 중요해요. 선임 중에 속도위반 해서 얼떨결에 결혼한 대위님이 계시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들을 만들었던 그 밤을 후회한다더라고요.


자신의 가정을 우스갯소리로 소비해버리는 저급한 농담에, 가족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아빠는 한술 더 떠서 요즘은 여자들도 돈 없는 남자랑은 안 만나준다는 둥, 너무 잘난 여자랑 만나면 골치 아프다는 둥 도통 50대 중년 남성에 대한 인류애를 상실케 하는 발언을 뽐내듯이 이어갔다. 그러다 ‘요즘 애들에 관한 결혼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고 나는 그 자리에서 신랑감으로 재단당하며 점수 매겨지기 시작했다. 대상화되는 느낌이 꽤나 더러웠던 건지, 아니면 경일이가 나 없이도 잘 지내 보인다는 게 짜증 났던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참을 수 없는 뭉턱한 무언가가 내 식도를 막아버린 기분을 느꼈다. 그 대화를 계속 듣고 있자니 울기 직전 목에 울음주머니가 응어리져 있는 그런 느낌이 지속됐다. 난 그 울음주머니를 터뜨려버리기 위해, 내가 게이라는 걸 말해버렸다.


ㅡ 난 어차피 결혼 못해. 게이니까. 우리나라에선 못하지만, 뭐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로 이민 가면 할 수도 있겠지. 이참에 런던 말고 그런 나라로 유학 갔다가 이민이나 가버려야겠다. 


난 그날의 아빠 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 남매는 11살까지 아빠한테 매를 맞았는데, 아빠는 본인만의 교육 철학이 있었던 건지 12살 이후로는 절대 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빠는 바로 술상을 엎어버리고 굴러가는 참이슬 병을 집어 들었다. 아빠는 금방이라도 그 병으로 나를 내려칠 기세였다. 매형들은 재빨리 아빠를 붙잡고 말렸다.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병은 아빠의 손 안에서 깨져버렸고 아빠 손은 찢어져 피범벅이 됐다. 난 아빠의 팔뚝을 타고 흐르는 피를 보자 너무 무서워졌다. 아빠가 아플 거 같다는 생각, 저 피를 당장 멎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무서움에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꺄악-하는 엄마의 외마디 비명에 내 몸은 제멋대로 튀어나가 수건을 꺼내 상처 입은 아빠의 손을 눌러 지혈했다. 그런데 아빠는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듯 내 손을 쳐내버렸고 아빠의 피가 묻은 수건은 땅에 버려졌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가 아빠의 손을 지혈했던 그 수건은 아빠의 피를 조금 머금고 버려졌다. 나는 그게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슬퍼졌다. 그리고 나는 곧장 집을 나와버렸다. 어디 가냐는 누나의 외침과 저런 호모 자식 다시는 집에 오지 말라 그래-라는 아빠의 외침, 흐느끼는 엄마의 울음이 등 뒤에서 뒤섞였다.


난 핸드폰도 꺼버린 채 그냥 무작정 앞으로만 걸었다. 걸으면서 아,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화살세례라고 그랬나. 하지만 왜 내 가슴엔 달라붙은 과녁이 이토록 큰 걸까-하고 주절거리는 타블로의 노래를 떠올렸다. 과녁에 묻은 내 피를 닦아주는 건 가족이나 애인이 마땅히 해줘야 할 일이었지만 나에게 둘 다 없었던 것과 같았기 때문에 난 스스로 흘린 피를 닦는 법을 찾아야만 했던 내가 안쓰러웠다. 난 이런 자기연민에 스스로를 저주하며 걸었다. 아빠는 왜 저 모양일까 원망하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 같은 거 보면 쿨하게 인정해주고 잘 지내는 부모들도 많던데, 우리 아빠는 왜 저러는 걸까 생각했다. 이내는 인정해주고 말고가 어딨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어쩔 거야 자기네가-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난 결국 아빠가 너무 늙고 옛날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시대의 흐름조차 따라오지 못하는 아빠를 영원히 안 보면 그만 아닐까 생각했다. 난 그렇게 청소년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눈물이 코끝에 다다르면 손으로 훔치고 또 흐르면 다시 훔치고 하며 일곱 개의 지하철 역을 지났다. 도착한 곳은 경일의 자취방이 있는 구의 역이었다. 난 이 세상에서 나의 슬픔을 알아줄 사람은 아마 경일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일에게 연락하기 위해 핸드폰을 켰고 누나들의 카톡 몇 개와 전화 두 통이 남겨져 있었다. 난 연락처에서 경일이를 검색해 찾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기를 망설였다.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갑자기 불러내는 것도 이상하고, 심지어 얘가 오늘 이 동네에 있는 지도 확실치 않았으니까. 난 핸드폰을 끄고 경일과 내가 자주 가던 카페 앞 편의점에 들어가 블루문 네 캔을 샀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두 캔을 연달아 마셨다. 세 번째 캔을 따려는 찰나, 나이키 후드티에 나이키 모자를 쓴, 조던 트레이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경일이 파리바게트 봉투를 들고 지나갔다. 난 그를 보자마자 이름을 외치고 싶었지만 무언가 속을 콱 막고 있어서 하지 못했는데, 경일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왜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정말로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나를 봤다. 나는 이런 상황마저도 그가 나와 사귀어야 할 당위성의 근거로 생각했다. 우린 결국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둘도 없는 운명의 단짝, 뭐 그런 거.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있을 때 즈음 경일은 내 앞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나의 세 번째 블루문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모자의 그늘에 조금 가려진 그의 얼굴은 여전히 잘생겨 보였다. 경일은 들고 있던 파리바게트 봉투에서 빵을 쏟아내 먹으라고 건넸다. 그가 나에게 베푼 아주 드문 친절이었다. 나에게 내민 그의 손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내게, 경일은 오늘은 어떤 일로 슬프냐고 물었다. 


ㅡ 홧김에 집에다가 커밍아웃하고 왔어. 아빠한테 참이슬 병으로 대가리 터질 뻔한 거 겨우 도망쳐 왔잖아. 형이 보고 싶어서… 그냥 별생각 없이 형 집 쪽으로 걸었어.


경일은 잠시 눈을 감고 블루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내게 배드민턴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중학생 때 후로는 쳐본 적 없다는 말에 경일은 내게 언제 한번 같이 배드민턴을 치자고 말했다. 그는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고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보채기만 했다. 난 그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다시 들어간 집은 조용했다. 불이 다 꺼져 있었고 거실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는 아빠의 손을 만졌다. 아직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 손 위에 올라가 있던 본인의 손을 탁 치워버렸다. 아빠가 깨어 있는지 잠자고 있는지 몰랐지만, 난 그게 너무나도 서운했다. 아빠는 고작 아들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에 자신의 성을 못 이겨 소주병을 손에 쥐는, 그리고 결국 그것에 베여 피를 쏟고 마는, 그런데 그것에 대한 손길도 거부해버리는 못난 사람이었다. 아니 AI가 인간과의 두뇌게임에서 이기고 가상현실이 어쩌고 하며, 인간의 목소리를 담은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나 외계인을 만날지도 모르는 이런 세상에서, 아빠는 고작 내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과 남을 아프게 만들어버리는 사림이었다. 난 아빠처럼 자신이 당연하다 믿었던 것이 부정당했을 때 소주병부터 쥐고 보는 볼 품 없게 늙어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집에서 자는 걸 포기하고 곧장 학교 앞 나의 자취방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에서 나와 낡은 나의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 너무 어두웠다. 그날따라 도로에 택시조차 없었다. 저 신호등 너머 아주 멀리서 작은 주황빛이 가까워지는 거 같았다. 그런데 그 빛이 선명해졌다가 흐려져버리고, 다시 선명해졌다가 이윽고 완전히 흐려져버렸다. 저 택시를 타고 내 자취방에 가면, 이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감정을 느낄 게 아주 분명했다.


*


그즈음 나는 아무렇게나 섹스를 하고 다녔다. 나는 단 두 번의 연애만에 원나잇을 하러 이태원과 종로를 거니는 흔한 20대 중반의 게이가 되어버렸다. 일주일 중 평일은 내내 술번개 모임을 찾아다녔고 눈이 예쁜 사람이 있으면 모텔로 끌고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테이블을 기웃거리거나 만남 어플을 켜서 가까운 사람에게 무작정 쪽지를 보내 어떻게든 원나잇을 했다. 금요일은 종로 술집에서 아주 열심히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하면 택시를 잡아 이태원 클럽으로 넘어갔다. 짐은 보관소에 맡기고 S클럽과 K클럽을 팔찌를 모두 손목에 끼고 맥주 한 병을 마시며 적당히 리듬을 타는 척했다. 걸그룹 춤에 아주 진심인 남자들 사이에서 과하지 않게 이 분위기를 즐기는 척 그루브를 타고 있으면, 뒤에서 슬쩍 내 손을 잡는 남자가 한 명쯤은 있었고 난 그와 소주를 마시러 갔다. 토요일은 정기 독서모임을 갔다. 퀴어소설을 읽고 쓰는 모임에서 나는 채워지지 않던 나의 작고 귀여운 지성이란 것을 뽐냈다. 문학에 대해서 아는 것도 쥐뿔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가 특별할 게 있을 리 없었다.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인물을 평가하고, 모임 멤버들 중 누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로 또 그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아주 흔한 지성교류의 탈을 쓴 사교모임이었다. 그렇게 뒤풀이에서 전 애인 욕이나 이상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셨다. 


일요일엔 이틀 간의 숙취를 이기기 위해 자취방에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소주 향이 묻은 숨결로 책상 하나 둘 곳 없을 정도로 좁아터진 자취방을 채웠다. 난 술기운에 머리가 빙빙 도는 와중에도 천장 모서리에 핀 검푸른 곰팡이를 관찰했다. 그 곰팡이는 내가 두 번째 애인에게 차였던 즈음에 생겼는데, 아주 느리게 하지만 정말로 분명하게 커져갔다. 나는, 언젠가 그 곰팡이가 천장에서 내려와 벽을 타고 내 방을 전부 삼켜버릴 거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곰팡이를 당장 닦아내고 싶진 않았다. 저 곰팡이가 더 커지지 않고 확장을 멈출 거라는 확신이 들 때. 그때 닦아내고 싶었다. 아주 확정적으로. 하지만 다시 월요일이 되면 난 똑같이 아무렇게나 술을 마시며 살았다. 어차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다시 유학 갈 때까지 이렇게 살아버리자고 생각했다. 술만 취하면 ‘사내 같지 않은 아들을 낳았다’며 혼잣말을 하던 아빠의 튼튼한 간을 물려받은 건지, 주량과 숙취 회복력이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활을 이어나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이렇게 엉망으로 살다 보니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난 결석을 숨 쉬듯이 했고 가끔 제시간에 수업에 들어갈 때면 맨 뒷좌석에 앉아 헛개수로 해장을 했다. 그러다 나는 우리 과에서 혁명의 씨앗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스펙 쌓기는 물론 과제도 제대로 해오지 않는 나는 이 ‘세상 내일 따위 없는, 다시 런던으로 유학을 가버릴 아이’ 정도로 불렸다. 그런데 우리 학과장 범 교수는 자신이 내주는 과제도 하지 않고 시험도 엉망으로 보는 나를 아주 못마땅해했다. 범 교수는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 교수였다. 하지만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머리숱은 아주 풍성했고 은발과 흑발이 적절히 혼합돼 있었지만 윤기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찬 안경은 왠지 모를 그의 지적인 이미지를 형성시켰다. 평소에 범 교수는 자신을 교수자, 우리를 학습자로 칭했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게 편하면 그래도 된다고 했으나, 이왕이면 선생님 정도로 부르면 좋겠다고 했다. 동기들은 그를 두고 꽃중년이라고 치켜세우며 범 선생님-하고 부르곤 했지만 난 그를 교수님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타고난 반골 기질을 조절하는 법을 몰랐던 시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범 교수는 사회과학대 교수들 중에서도 가장 권위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권위주의적인 꼰대로 낙인찍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강의실에 입장하면 무조건 맨 뒤에 앉는 걸 좋아했던 나를 출석을 부른 후 꼭 집어서 맨 앞에 앉혔으니까. 내가 지각해서 수업 중간에 들어올 때는 나를 콕 집어서 질문까지 했다. 난 항상 이상한 답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범 교수는 이내 집중하길 바란다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하며 무안을 줬다. 난 그를 보면 묘하게 아빠를 떠올리고는 했다. 범 교수는 우리 아빠처럼 머리숱이 적지는 않았지만 나의 친가 남자들에게만 부여됐던 돌림자인 ‘범’이 그의 이름에도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고리타분해 빠져서 대화 자체도 하기 싫은 중년 남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보기 싫어 잦은 지각과 결석을 하니, 중간고사 직전에 학과 사무실에서 F학점 위기라는 문자가 왔다. 난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왠지 중간고사는 봐야 할 거 같았고, 시험 날 받아본 시험지에는 역시 내가 답을 할 수 있을 만한 문제는 한 개도 없었다. 그래. 나는, 내가 바로 모두가 똑같이 자라길 바라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온 청소년의 아주 안 좋은 표본의 인간이다-라는 생각으로 여백의 미를 자랑하는 답안지를 범 교수에게 제출했다. 범 교수는 여백의 미가 넘쳐흐르는 내 답안지를 보더니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대뜸 이따 오후에 면담을 하자고 했다. 함부로 나를 호출하는 그의 일방적 소통에 기분이 나빴지만, 사실 F를 받지 않으려면 일단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야 할 거 같았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난 시험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강의실 옆 로비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저 사람은 나한테 무슨 말을 할까- 그냥 잔소리를 하려고 부른 걸까- 하며 불안했다. 시험 시간이 끝나자 범 교수는 답안지를 들고 로비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커피 한잔 하자며 말했고 엘리베이터를 불러 5층을 눌렀다. 그와 같이 있는 엘리베이터의 분위기는 정말 불편했다. 자신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얇은 갈색 양복 재킷을 입은 그에게서는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난 범 교수가 부인 없이 혼자 사는 거 같다던 동기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이 사실인 거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가본 범 교수의 연구실은 무언가 눅눅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작은 테이블 쪽으로 가, 커피 드리퍼 아래에 받아진 핸드드립 커피에 뜨거운 물을 조금 탔다. 나머지 뜨거운 물은 다시 드리퍼 위에 부었고 그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다. 나 또한 앉으라고 말하며 내 앞에 그 커피를 내려놨다. 난 커피잔을 잠시 만졌고 꽤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범 교수기, 머리숱이 많지만 하얗게 새버린 모습으로 전공 서적들 사이에 파묻힌 모습이, 아주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는 답안지를 책상 한 구석에 두었고 ㅡ조교를 시켜 채점을 하지 않고 자신이 전부 직접 하는 모양이었다ㅡ 안경을 고쳐 썼다. 나는 말없이 마주 보며 앉아 있는 시간이 어색했고 드리퍼에서 떨어지는 커피 방울의 소리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듯했다. 


ㅡ 저는 진한 커피를 잘 못 마셔요. 항상 처음 드립 한 커피는 누군가에게 가져다주고는 하죠. 요즘은 학과 조교 선생님께 드렸어요. 아침에 커피를 전하면서 조교 선생님이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참 재밌죠. 이렇게 별 거 아닌 일의 반복이 하루를 버틸 힘을 만들어주고는 해요.


범 교수는 무슨 유치한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대사 마냥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ㅡ 오늘은 시험 때문에 바빠서 조교 선생님께 못 전했는데, 대신에 범 학생에게 전하게 됐네요. 


범 교수는 있어 보이는 듯한 분위기로 갖은 말을 했지만 다른 어른들과 다름없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게 앞으로 어떤 진로로 나갈 거냐고 물었다. 아주 뻔한 질문이었다. 그래, 이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들으나 마나 취업이 잘 되는 길로 가라고 하겠지. 나는 일부러 최대한 까칠하게 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화장실 가는 것도 선생님께 허락 맡고 가야 했던 애들한테 무슨 인생의 진로를 정하라는 건지… 나는 그냥 적당히 영국 유학을 가서 영어 공부 좀 하다가 번역 관련 일이나 하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에 범교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번역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차차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나의 시건방진 태도에 질렸는지 그는 결국에야 아버지는 뭐 하시냐는 아주 진부하게 무례한 질문을 했고, 나는 연락 끊고 산지 꽤 됐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자 범 교수는 은발과 흑발이 뒤섞인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눈을 감았다. 그의 뒤에 있는 창문 너머에는 점점 주황빛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ㅡ 젊었을 때는 항상 빠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죠. 그렇지 않으면 완벽하지 못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는 항상 느려요. 오랫동안 아주 늑장 부리며 살 생각입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너무 빨리 일어나잖아요. 예상치도 못하게. 세상도 그만큼 너무 빨리 변해버리고요. 저는 항상 제자리걸음인데 말이죠. 그걸 따라가려고 애쓰기보다는, 나는 그냥 조금 천천히 걷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범 교수는 드리퍼에서 떨어지는 커피방울을 잠시 보더니 이내 안경을 벗어 내려놨다.


ㅡ 조금 솔직해져 볼까요. 비밀 얘기를 하나 해보죠. 


그는 아주 조금 어눌해진 말을 이내 삼키더니, 책상 위 작은 액자에 끼워진 아기 사진을 잠깐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나의 눈을 아주 명확히 바라봤다.


*


사실 경일은 첫인상부터 아주 재수 없었다. 경일과는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는 첫 모임부터 지각을 했고 ㅡ하지만 얼굴에는 티가 덜 나는 남성용 파운데이션이, 머리에는 빳빳한 왁스가 발려져 있었다ㅡ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졌기 때문에 다른 모임 멤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어딘가 반반한 얼굴에 약간 슬픈 표정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난 범일 같은 스타일을 딱 싫어했다. 전형적으로 관심을 받기 좋아하는 타입인 게 뻔했다. 주인공처럼 늦게 등장하고 왠지 모를 신비함을 풍기면서 자신에게 묻는 타인들의 호기심을 즐기는, 뭐 그런 흔한 나르시시스트일 게 뻔했으니까. 그는 영문 번역투로 말했으며 나무위키에서나 나올 법한 잡지식을 끌어다 문장 사이사이마다 집어넣어 인문학적 지식이 넘치는 척했다. 혹시나 자신의 의견에 말꼬리라도 잡는 멤버가 있으면 그와 단독으로 15분간 설전을 벌이는 등 ㅡ심지어 그건 AI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소외시키는 것이냐 하는 아주 모호하고 추상적인 논쟁이었다ㅡ, 아주 당돌하지만 애매하게 무례한 태도를 선보였다. 그의 화려한 데뷔는 우리 모임 단톡방에서 단연 가장 큰 가십거리였고 그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경일이 걔 네모아 화장품 그룹에서 일을 했대. 근데 경일이 SNS 팔로워가 워낙 많으니까 브랜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했다는 거야. 그렇게 좀 회사에서 입지를 많이 쌓았나 봐. 그런데 차장 승진 경쟁 기간에 누가 아웃팅을 한 모양이야. 2년 후배한테 차장 자리 뺐기고 직무도 옮겨졌대나? 인사팀이었는데 느닷없이 시설관리 쪽으로. 그리고 회사 상대로 2년 동안 소송했는데, 언론에서 조금씩 다뤄지기 시작하니까 적당히 위로금 받고 퇴사했다더라고.”


어쩜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면서도 타인의 불행에는 이토록 열정적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도 모임 멤버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난 검색창에다 그 화장품 그룹의 이름과 성소수자 단어를 붙여 검색했고, 해당 기사의 길이는 아주 사소한 일인 듯 5줄을 넘지 않았으며 조회수는 134, 댓글은 0, 화나요 표시는 2개였다. 경일이의 사건을 다룬 기사는 채 10개가 되지 않았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경일이의 일은 아주 작은 쓸쓸한 소동에 불과해 보였다.


경일은 첫 모임 이후로 독서모임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답게 이틀에 한 번씩 자신의 셀피를 업로드했기에, 나는 그의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만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내가 책을 선정하고 발제문을 쓰는 날, 경일이 모임에 참석했다. 내가 발제한 책은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라는 시집이었는데, 소설이나 비문학을 읽을 만큼의 시간도 없었거니와 ㅡ물론 남자와 술을 마시거나 원나잇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ㅡ 모임의 중심 멤버로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중압감과 귀찮음, 묘한 억울함에 모임을 그만둘까 고민했던 시기라, 적당히 분위기 있을 만한 걸 고른 거였다. 웬일로 모임에 참석한 것인지 연유를 몰랐지만 여전히 경일은 SNS 셀피와는 반대로 슬퍼 보였다. 역시나 모임 멤버들은 전부 그에게 관심 없는 척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여전히 키가 컸지만 전형적으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고,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꽤 반반하기도 했으며 패션도 과하진 않았으나 부족하지도 않은 스타일이었다. 여전히 영문을 번역해놓은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지만 처음처럼 광활한 지식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담백하게, 시집 수록 작품 중 ‘소년’을 읽고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했다. 내내 슬펐다고, 


‘우리가 키스하게 놔줘요, 단지 키스뿐이에요.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나요.’


라는 문구에 일주일 내내 슬프게 살았다고 말했다. 적적하게 말하는 그의 낮은 목소리는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그의 반반한 모습은 어딘가 퇴폐적으로 보였다. 나한텐 그게 은근하지만 아주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저런 눈빛과 목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난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고 같이 울어버리고 싶은 나의 아주 안 좋은 버릇을 그에게 마음껏 발산하고 싶었다.  


그날 뒤풀이는 3차까지 이어졌다. 난 그를 어떻게든 가까워지고 싶었기에 그에게 술을 몇 잔이고 권했다. 3차 즈음되니 모두가 술에 취했고 각자의 술버릇을 아주 잘 행했다. 누군가는 나오는 노래에 춤을 추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며 다른 테이블의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경일은 술에 취하면 한쪽 눈만 느리게 감았다가 뜨는 버릇만 있었다. 워낙 느리게 반복해서 윙크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그에게 관심이 커지는 나에게 그 모습은 아주 묘하게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경일이 만큼 취해버려 그만 팔꿈치로 소주병을 넘어뜨려 술병을 엎지르고 말았다.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모임 멤버들은 내가 넘어뜨린 술처럼 흘러 흩어졌다. 누군가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갔고 누군가는 처음 보는 다른 이와 손을 잡고 어딘가로 갔다. 남은 건 나와 경일 뿐이었다. 난 지금껏 그래 왔듯 새로운 누군가를 어플로 찾지도, 다른 테이블의 누군가를 스캔하지도 않았다. 난 그저 내 옆자리에 앉아 나와 허벅지를 아주 조금 마주 댄 채, 소주잔을 향해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경일이의 모습에 집중했다. 이내 경일은 넘어뜨린 소주병에서 나오는 소주를 검지에 묻히더니 나의 팔뚝에다 글씨를 썼다.


“범아.”


무언가 간지러우면서도 흥분되는 느낌이 팔뚝에서부터 뒷목으로 전해져 왔고, 그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내 팔뚝에 묻은 소주를 슥슥 닦아줄 때는 부딪히는 살결에서 느껴지는 묘한 짜릿함이 내 사타구니로 이어졌다. 나도 이내 책상에 고인 소주에 검지를 찍어 그의 팔뚝에다가 글씨를 썼다.


“왜 형.”


나는 내 손등으로 그의 팔뚝에 묻은 소주를 슥슥 닦았다. 그러자 경일이는 입을 내 귀에 가져가더니 속삭였다.


ㅡ 형이라고 불러도 돼?


나보다 10살은 더 많은 사람이, 어깨는 내쫓기 듯 나왔던 자신의 전 직장의 이름 따나 태평양처럼 넓으면서, 이두근과 삼두근이 금방이라도 반팔 소매를 찢고 나오게 생긴 사람이 내게 형이라도 불러도 되냐니. 하지만 난 어처구니가 없는 마음보단 그에게 형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다. 


ㅡ 그래, 경일아.


그는 아주 희미하게 웃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등에서 시작된 정맥이 손목을 지나 팔뚝까지 이어졌다가 이내 이두근을 타고 올라가 그의 달라붙은 반팔 아래로 사라졌다. 저 핏줄에 아래에는 많은 피가 흐르고 있겠지- 얼마나 흐르고 있을까- 궁금해서 만지고 싶었다. 그는 핸드폰을 켜더니 택시를 불렀고 자신의 구의동 자취방으로 날 데려갔다. 도착한 그의 방은 좁았다. 방문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무언가 고통스러운 표정의 목재 예수상이 걸려 있었다. 침대 옆 까만 철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액자 속에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와 어깨동무를 한 채 찍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경일과 똑같이 생겼지만 체구는 훨씬 작았다. 경일처럼 근육질의 체형이 아닌,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표정은 뭐랄까… 경일의 표정이 묘하게 슬퍼 보였다면, 그 사람의 눈 주위는 굉장히 어두워서 오히려 경일이가 더 행복해 보이게 만들 정도의 분위기를 가진 모습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묘하게 슬퍼 보이는 사람이 또 있다니, 난 액자를 들고 유심히 사진 속의 인물들을 유심히 봤다. 경일은 양말을 벗으며 말했다.


ㅡ 내 쌍둥이 형이야. 


ㅡ 형 쌍둥이였어?


ㅡ 응. 형은 아빠랑 살아. 난 혼자서 도망쳐 나왔고.


한쪽만 느리게 깜빡이던 그의 눈이 역시나 어딘가 슬퍼 보였다. 그는 반팔 티셔츠와 바지를 벗더니 침대에 누워버렸다. 나도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 그의 옆에 누웠다.


ㅡ 경일이 크리스천인 줄 몰랐네.


ㅡ 아빠가 목사야. 어렸을 때부터 교인들 틈에서 자랐고. 


ㅡ 형은? 쌍둥이 형은 왜 따로 살아?


ㅡ 걔는 아무 데도 못 가거든.


이 말을 하곤 경일은 침대 옆 베드 테이블에 놓여있는 빼빼로 봉지 사이에 파묻혀 있던 알약 봉투를 꺼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ㅡ 어디 아파?


ㅡ 몸보다 마음이 아픈 애지. 그래서 아빠가 걔를 절대 밖으로 안 내보내.


난 그를 향해 물은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형에 대해 물은 줄 착각하는 거 같았다. 그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오로지 경일 뿐이었는데.


ㅡ 왜?


ㅡ 아빠한테 나는 게이라서 회사에서 쫓겨난 아들이었고 형은 교인들에게 어떻게든 숨겨야 하는 골칫덩이 정도라서. 


술과 잠에 취해서일까. 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무거움을 직면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ㅡ 한 번은 형이 칼로 자기 배를 그었어. 난 어쩔 줄 몰라서 구급차를 부르려고 하는데, 아빠가 수건으로 열심히 형 배를 지혈하더니 남은 수건을 땅에 던지더라. 피를 닦으라는 뜻이었겠지. 그리고 내가 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말하더라. 교인들이 알게 하면 안 된다고. 나는 그때 알았어. 이 집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하지 않겠구나. 이러다 죽고 말겠구나. 그래서 그냥 무작정 도망친 거야. 매일을 자해욕구와 싸우던 형을 버리고 말이야. 


ㅡ 형네 아빠 참 비겁하다.


ㅡ 근데 난 이해해. 아빠… 밉지만 그래도 이해해.


난 그 말을 듣고 그가 아주 주체적으로 당사자성을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경일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뜬 지 오랜 후였다. 볕은 블라인드를 간신히 넘어와 우리 침대에 스며들었다. 침대 옆에 버려진 듯 서있는 베드 테이블 위에는 우리가 먹다 남긴 빼빼로가, 어젯밤 우리가 내뱉은 숨결을 다 빨아먹은 듯 눅눅하게 뭉쳐져 있었다. 경일은 이내 일어나더니 무작정 나를 근처 카페로 데려갔다. 그리고 자기는 책만 읽었다. 이제 우리 사귀는 거냐는 나의 물음에 


ㅡ 불편하다면 가도 돼. 하지만 난 네가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고는 몇 시간 동안 내리 책을 읽고 틈틈이 메모를 했다. 그러다가 이제 가봐야 한다며 하루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그 후로도 경일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를 구의동 그 카페로 불러내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 일정이 있냐며 내게 묻고, 일정이 없는 날에는 자기 방으로 데려가 섹스를 했다. 그저 원나잇으로 끝나는 건가 하며 짜증이 났다가도, 어쩌면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않을 이야기를 나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모종의 우월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난 그와 보내는 시간 자체를 좋아하기로 했고 유학을 무기한으로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취업이 안 돼서 도피적으로 결정한 것이기도 했기에. 나는 그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과제를 했다. 그 자식은 카페 좌석에 앉을 때 항상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했다. 그럴 때면 하체의 길이에 비해 유난히 툭 튀어나온 엉덩이ㅡ난 그 엉덩이가 그 자식의 챠밍 포인트라고 생각했다ㅡ에 깔린 민트색 방석의 모양이 아주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그 자식은 민트색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호르몬을 분비시켜주기 때문에, 책이 잘 읽히고 글이 잘 써진다고 했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그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난 그와 무조건적으로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나도 과제가 잘 풀린다고 했다. 숨차는 삶에서, 그와 보내는 카페에서의 시간과 원나잇은 흥분되면서도 슬펐다. 난 경일과 잠자리를 가질 때면 그를 힘껏 안아서 숨을 들이켜 냄새를 맡고는 했다. 그의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내가, 나의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건 그의 냄새 말고는 없었으니까. 언젠가 나는 술에 취한 채 경일의 자취방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금방 헤어져도 좋으니까 잠깐이라도 사귀어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일은 


ㅡ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없어.


ㅡ 뭘 꼭 줘야만 해? 


ㅡ 응. 난 주고받지 않는 관계는 하지 않아. 그런 관계는 결국 내 속에서 죽어버리고 말거든 


ㅡ 나는 믿어도 돼. 진짜로.


ㅡ 지금까지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 


ㅡ 함부로 예측하고 판단하네. 


ㅡ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는 걸. 그리고 그 판단이 대부분 다 맞으니까. 


ㅡ 오만해. 그런데 난 형의 그 오만함마저 좋아. 


ㅡ 바보네. 


ㅡ 난 형만 있으면 유학 안 갈 수 있어. 형이 나랑 사귀면 난 한국에 그냥 계속 있을 수 있어. 


ㅡ 진짜 바보네.


하며 나의 유치한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도통 짜증 나고 비겁한 소리만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경일은 나를 카페로 다시는 불러내지 않았고 독서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경일을 보지 못하니 날이 갈수록 슬퍼졌다. 난 그때 알았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그리움의 대상보다 아픔이 더 커진다는 걸. 경일보다 그를 그리워만 하는 나 자신이 애처로워 아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연락하는 걸 끊어낼 수는 없었다. 답이 없는 연락을 계속하며 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징벌이었다. 그러다가 경일에게 일방적 연락을 한 지 3개월째가 돼서야, 그에게서 미사 역 근처 배드민턴 체육관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가 날 불러냈다. 구의동 카페로 무작정 불러냈던 그때처럼. 오랜만에 만난 그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이제 책을 읽지 않고 배드민턴을 친다며, 내게 배드민턴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배드민턴이 쉬워 보이지만 까다롭다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너무 앞서 나가지 않고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배드민턴을 배웠다. 라켓을 잡는 것부터, 상대의 서브를 잘 받아치려면 허리를 숙인 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


가족과 연락을 끊은 지 ㅡ정확히는 아빠와 끊은 지ㅡ 4개월 즈음, 매형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남~ 아버님 없이 집안 남자들끼리만 같이 한잔 하자! 매형들이 소고기 사줄게~”


엄마와 누나들한테는 끊임없이 연락이 왔기 때문에 가끔 밥도 몇 번 먹고는 했다. 엄마와 누나들은 구태여 그날의 일에 대해 꺼내지는 않았다. 난 그 자리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티를 내면 무언가 더 어색해질 거 같아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했다. 물론 아빠에 대해 묻지도 않았고. 하지만 아빠와 매형들에겐 따로 연락이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형들과의 술자리는 더욱 불편하게 다가왔다. 본인들이 스스로 마초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들 사이에서 난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불안한 마음이 컸다. 


고깃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막내 매형이 진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ㅡ 그래,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점까지 한번 찍어봐야지. 나는 우리 동서가 무조건 진급할 수 있을 줄 알았어!


큰 매형은 소주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하며 말했다. 나는 소주잔을 부딪히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소주를 들이켜고 큰 매형은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ㅡ 처남. 아버님한테는 언제 연락드릴 거야? 아버님 집안에서 목소리도 가장 크시고 활기차셨던 분인데… 요즘은 말도 잘 안 하신다더라.


ㅡ 얼마 전에는 앞이 잘 안 보이신다고 병원에 다녀오셨어. 의사 말로는 노안이 꽤 진행됐다고 하던데… 요즘은 핸드폰 화면 글씨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신다고 문자도 제대로 못 치시더라고.


작은 매형은 큰 매형의 말을 이어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무언가 마음이 턱 막혔다. 매형들이 나에게 아빠의 노안이 나 때문이라는 은근한 죄의식을 심으려는 거 같았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빠가 눈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지금 꺼내는 이유는, 아빠와의 화해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매형들이 무기로 사용하려는 의도였을 게 뻔했다.


ㅡ 그래 처남. 아버님이 워낙 옛날 분이시잖아. 처남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지. 원래 어른들이 다 그래. 자기가 아는 것만 다 믿으려고 해.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 사과드려버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얘기는 안 꺼내고 지내면 되지.


막내 매형은 나를 달래듯 말했다.


ㅡ 그래! 오늘 집에 다 같이 들어가서 남자답게 사과하고 끝내자!


큰 매형은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대충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법이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남자답게 끝낸다는 건 무엇인지…


ㅡ제가 왜 제 얘기를 안 하고 지내야 하나요. 제가 왜 가족한테 나에 대한 이해를 구걸해야 돼요. 집이 이딴 식인데 어떻게 저한테 안전할 수 있겠어요. 아빠가 눈이 침침해졌다는데 뭐 어떡하라고요. 전 그 집에서 지금껏 불안하게 살아왔어요. 제가 느낀 위협감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난 말을 끝내고는 곧장 내 자취방으로 가버렸다. 다음 날 나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렇게 이기적이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냐’는 큰 매형의 카톡을 받았고 역시나 만나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


범 교수는 전 부인과 이혼하고 나서 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딸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며 딸에게 전달할 편지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했다. 마침내 범 교수가 딸을 만나게 된 날은 편지를 지니고 다닌 지 24년 하고도 4개월째 된 봄이었다고 했다. 


ㅡ 이른 봄이었죠. 제 딸도 영국으로 오랜 유학을 간다고 했어요. 떠나기 전, 그래도 한 번은 보고 싶다면서 저를 먼저 찾아줬죠. 그간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제가 한눈에 딸을 알아보는 상상도 많이 해보기는 했습니다만…


ㅡ 이십 년을 넘게 떨어져 살았는데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저희 아빠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평생을 같이 살았는데도. 


ㅡ 어쩜 사람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요? 저도 제 딸아이에게 그런 무심한 아버지였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 딸은 어릴 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있었으니까요. 다만 그 눈과 웃는 모습은 나의 기억 속 모습과 비슷했답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아빠라는 존재를 보면서요. 


범 교수는 다시 은빛 머리칼을 위로 쓸어 넘겼다. 


ㅡ 선생님이 따님과 무슨 말을 나눴는지 들어도 전 아마 이해하지 못하겠죠? 어땠어요. 난생처음 딸의 말을 듣고, 무슨 감정이 드셨어요.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에게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ㅡ 많이 떨었습니다. 당황스러웠고 자괴감이 들었고요. 오늘 이후로 영원히 못 만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들었고, 후회도 했습니다. 차라리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가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결국에는 살면서 꼭 마주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 짧은 이야기를 마친 범 교수의 눈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해 보였다. 범 교수는 드리퍼에서 다 내려진 커피 잔을 가져와 자기 앞에 내려놓더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별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는 결석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수업 때마다 한 줄이라도 좋으니 편지를 써서 나와 교환하자고 했다. 범 교수 뒤로는 노을이 청문에 쏟아진 듯했다. 나는 대충 알겠다고 했고 연구실을 나왔다.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비밀을 듣고 나서 무언가 가까워진 듯하면서도 멀어진 거 같은 아주 양가적인 감정. 나는 알 수 없는 어색함에 범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았다.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써버리기엔 두려운 마음이 컸으니까. 편지지를 따로 구해다 쓰지도 않았다. 노트를 아무렇게나 찢어서


‘오늘은 구름이 적네요. 저번에 면담했을 때 교수님 뒤로 노을이 졌는데 오늘은 그날과 비슷해요.’ 


라고 적고는 두 번 접어서 주거나, 아예 써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범 교수는 매 수업 때마다 나에게 편지를 써서 줬다. 그리고 편지의 끝에 나를 생각하며 써주는 글을 꼭 첨부했다. 


‘이십 대, 그리고 가을이라니.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행복하겠군요.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물론 나는 몇 번의 답장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편지를 항상 기다렸다. 결국 나는 출석을 전부 하면서 그의 편지를 받아 내고야 말았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 난 그의 마지막 편지를 받았고 범 교수는 수고했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아주 부드럽게 나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에게서 무언가 포근한 냄새가 났다. 경일이처럼 사타구니 쪽을 강하게 자극하는 그런 느낌과 전혀 달랐다. 저번 면담에서 그가 줬던 커피잔의 온도처럼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포근한 그런 느낌이었다. 난 자취방으로 가면서 범 교수가 준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얼마 전에 영국으로 유학 간 딸에게 작은 소포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엔 영국의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가 들어 있었고 메일 주소를 적은 쪽지도 있었다고 했다.


‘저번 면담 때 저는 천천히 걷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걸 인정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완벽하지 못하고 빠르지 못한 나 자신을 수습하느라 너무 오랫동안 정신을 놓아버렸죠. 그 때문에 전 아내와도 관계가 나빠졌고요. 그땐 몰랐습니다. 내가 정신을 놓아버린 그 시간들이, 내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가시가 돼서 피 흘리게 했다는 걸요. 왜 그땐 몰랐을까요. 왜 꼭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범 학생도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을 거예요. 추신, 그날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서 고마웠습니다.’


난 편지의 마지막 단락을 읽고 나서 기분이 슬퍼져 버렸다. 아빠가 범 교수 같은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과, 세상은 이렇게 미쳐 돌아가고 온갖 나쁜 사람들 투성인데- 나도 그래서 아무렇게 살고 나빠지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나 대가 없는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그리고 나의 온갖 구부러진 욕망과 못생긴 마음, 혐오 범벅인 섹스노트가 부끄러워졌다.


난 자취방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소주를 사서 왕창 마셨다. 자취방에 들어가서는 남은 소주를 휴지에 부어 천장의 곰팡이를 닦아버렸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빠, 내가 나여야만 하는 이유를 누군가에게 설득하는 건 너무 비참한 일이야. 그렇기에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아주 천천히 가볼까 해. 어쨌든 나는 지금껏 잘 살아냈고 앞으로도 잘 살아나갈 거니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는 마시던 소주병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내 손을 떠나 굴러가는 소주병을 보며, 저 단단하고 차가운 병에 아빠의 손이 긁혔다니- 피가 쉽게 멎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눈을 떴다. 곰팡이는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시 곰팡이가 생겨버린대도 저것이 내 방의 벽을 타고 퍼져버리지 않게, 꾸준히 잘 닦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을 켜니 아빠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ㅅ ㅏ렁한다 만히 보고 싶구나


그때처럼 또 식도에 눈물주머니가 뭉턱하게 막혀버리는 거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하나뿐인 아들을 보고 싶다는 말도, 문자로 제대로 입력하지 못하는 늙어빠진 우리 아빠. 걸음이 너무 빠른 세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우리 아빠. 그리고 난 아빠의 메시지를 캡처했다. 24년간 딸에게 전달할 편지를 지니고 다니던 범 교수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ㅡ 범아. 라켓의 뒷면으로 쳐야 할 땐 엄지를 검지 위로 올려서 가볍게 눌러주듯이 쳐야 해. 그래야 셔틀콕이 적당한 속도로 날아가거든.


ㅡ 형. 셔틀콕이 빨리 날면 좋은 거 아니야? 그럼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잖아.


ㅡ 너무 빨리 보내려고 힘을 줘서 치면 라인을 넘어버려서 후회하지. 난 너무 멀리 날려버리기 일쑤였어. 너무 멀리 날아간 셔틀콕은 버려야 해. 라켓에게 세게 부딪히면 꼭 어딘가 망가지거든. 난 그간 너무 많은 셔틀콕을 버려야만 했지.


ㅡ 형, 나 유학 계획 확정됐어. 다음 달에 가기로.


ㅡ 잘했어.


그의 말을 듣자, 아마도 난 그를 섹스노트에 절대 적을 수 없을 거 같다는 모종의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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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상 / 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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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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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희 2021-02-05 오후 21:31

넘나 재밌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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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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