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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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게이코러스의 공연기획' #1]
연대를 노래하는 법 : 2018 지보이스 기획공연 '폭풍공감'
1. 처음 경험한 지보이스 12. '폭풍공감'에서 '선게이서울'로 13. 커밍아웃하고 무대에 선다는 일의 의미 14. 개인의 커밍아웃과 지보이스의 커밍아웃 15. 지보이스 스토리북 '선게이서울' 16. 지보이스 간담회 'G'story : 게이 게토의 역사와 의미' 17. 가볍지만 납작하지 않은 공연 기획 18. 지보이스 정기공연 상영회 19. 종로, 낮고 투명하고 유연한 울타리 20. 코로나 시대의 지보이스 21. 지보이스와 게이커뮤니티에게 바라는 점 |
터울 : 반갑습니다.
석, 오웬 : 반갑습니다.
터울 : 친구사이 소식지 121호 커버스토리 '게이코러스의 공연기획'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두 분이 전·현직 지보이스 단장이신데, 정식으로 자기 소개해주시죠.
석 : 네, 전직 지보이스 단장이고요. 지금은 집에서 살고 있는 활동적 집순이입니다.
오웬 : 이름이 뭔가요?
석 : 닉네임을 활동적 집순이로 바꾸려고요. (웃음)
오웬 : 닉을 바꾸신다고, 아아 그렇구나, (웃음)
석 : (웃음) 석이입니다.
오웬 : 저는 2020년 올해부터 지보이스 단장을 맡고 있는, 지보이스 7대 단장 오웬이라고 합니다.
터울 : 여러분들을 초청한 이유는, 재작년·작년의 지보이스 공연 기획을 글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공연기획이라는 게 단장이 전적으로 알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의 협업과 논의 끝에 이루어지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시 음미하면서 앞으로 어떤 계승과 극복이 필요할지를 논의해보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전·현직 단장 두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1. 처음 경험한 지보이스
터울 : 인터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진행할 텐데, 첫번째로 2018년 지보이스 기획공연 '폭풍공감'을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그 전에, 지보이스에 들어오시게 된 경위라든지, 지보이스를 언제 처음 알게 되셨는지를 알고 싶어요.
석 : 저는 지금으로부터 바야흐로 11년 전, 스무살 때였죠. 2009년이었고, 네이버 검색창에 '게이'라고 검색했다가 지보이스 공연 '삔 꽂는 날'을 알게 됐어요. (웃음)
오웬 : 네이버가 큰일하셨네요.
석 : (웃음) 거기에서 보고 공연을 보러갔죠. 되게 좋았고, 이런 커뮤니티가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친구사이에 가입했습니다. 처음엔 지보이스를 바로 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뭔가 소모임을 하라 그래서, (웃음) 그러면 지보이스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가입하게 됐습니다.
터울 : '삔 꽂는 날' 공연 때 기억에 남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석 : 그해 공연 때 기억에 남는 건 일단 식되는 분의 얼굴, (웃음) 지금은 안 계시고요.
터울 : 늘 매해 그런 사람이 있다가 그 다음 해에 나가시잖아요. (웃음)
석 : 가면 그 사람을 볼 수 있겠거니 하고 가면, 그 사람 없고. (웃음) 그리고 지보이스 특유의 연출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게 그 때도 지금이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약간 홈메이드 같은 느낌? 그런 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어떤 공연이 아니라 같이 노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터울 : 그게 오히려 친숙하고, 색다른 의미로 해석됐다는 얘기군요.
오웬 : 나도 뭔가 저기에 끼어서 놀고 싶다, 이런 느낌?
석 : 맞아요. (웃음) 나도 저렇게 공연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웬 : 저는 2014년. 제가 좀 늦게 나온 편이에요. 2014년에 지보이스를 알게 됐는데, 저는 종로 데뷔가 지보이스 데뷔예요. 그래서 그 전까지는 사실 은둔게이로 살고 있다가, 연애도 한번 안해봤어요. 남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스쳐간 사람 한두 명 외에는. 그런데 2014년에 제 직장이 종로에 있었는데, 그 때 같이 일하던 친구가 지보이스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였어요. 지금 친구사이 대표님이신 킴님인데, 딱 서로 게이라는 걸 알아봤죠. (웃음) 아무튼 그 친구가 저한테 먼저 노래를 좋아하면 같이 노래해보자 그래서 끌려나온 게 지보이스였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활동하고 있네요.
터울 : 그래서 그 때 지보이스를 가입하게 되셨군요.
오웬 : 그날 바로 가입해서 지금까지 쉰 적이 없어요, 지보이스를.
터울 : 지보이스 가입 이전이나 이후나, 지보이스 말고 다른 공연예술 관련 활동 경험을 여쭙고 싶어요. 그런 경험이 지보이스에서의 활동과 아예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석 : 저는 약간 유전자에 흐르는 게이의 피가 있는 건지, (웃음) 그래서 무대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도 연극부 했었고, 고등학교 때도 사물놀이 했었고.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무대 올라가는 게 좋았던 거지. 그래서 지보이스에서 공연을 선다는 것도 무대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거부감이라든가 부담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거기 가서 사람들이랑 같이 노래부르는 게, 그것 자체가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오웬 :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지보이스 전엔 게이커뮤니티의 경험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전까지 공연을 해봤던 경험도 딱히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지보이스의 모든 게 저한테는 신세계였고 처음이었죠. 그런데 한번 무대에 서보니까 무대가 너무 좋은 거예요. 떠날 수가 없어. (웃음) 지보이스에 나오고 나서는 그래도 커뮤니티 활동을 나름 활발하게 하고 있죠. 지보이스나 친구사이 이외에도 친목 모임을 계속 하고 있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공연은, 2018년에 퍼플리안이라는 공연팀에서 제가 사회를 본 적이 있어요. 그게 지보이스 외에 무대에 올라간 첫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석 : 다른 게이커뮤니티 경험은 저는 딱히 없어요. 저는 그 때도 사람 별로 안 만났고 지금도 사람 별로 안 만나요. (웃음)
2. 지보이스 단장이 되기까지
터울 : 보통 지보이스에 들어오자마자 단장을 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단장 이전에 지보이스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 쭉 훑어주실 수 있을까요.
석 : 저는 지보이스에서 악보장을 했었고, 베이스 파트장을 했었어요. 이전까지는 보통 단장하기 전에 총무를 한번씩 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마 총무 출신이 아닌 첫번째 단장이었던 것 같아요.
오웬 : 그런 구도가 현식(6대 단장)때부터 정해진 것 같아요.
석 : 다들 뭔가, 종걸이형도 그렇고 단장은 안하셨지만 재경이형도 그렇고, 총무를 안했을 것 같은 사람이 아냐. (웃음) 그래서 제가 단장을 맡았을 당시에는 뭔가 지보이스에서 단장을 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오웬 : 무슨 소리예요. 여기 있잖아요. (웃음)
터울 : 지나친 겸손의 말씀이시군요. (웃음)
오웬 : 너무 화나. (웃음)
석 : 제 전 단장님이, 원래는 추천제로 단장을 뽑았었는데, 선거제로 바꾸면서 제가 그 때 약간의 푸쉬를 받아서 올라갔죠.
오웬 : 누가 푸쉬했어?
석 : 사람들이. (웃음)
오웬 : 화나. (웃음)
석 : 님도 푸쉬받으셨잖아요. (웃음) 받으셨으니까 단장 후보에 올라갔죠.
오웬 : 2017년 12월에 단장 선출 방식이 바뀐 거예요. 저는 그 전에 총무를 했었고, 약간 나름 단장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를 밟고 있었어요. (웃음) 그래서 당연히 내가 다음에 단장이 되겠구나, 우리 5대 김현식 단장 이후로. (웃음) 그렇게 생각하면서 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거제로 바뀌면서 뒷통수를 맞은 거죠. 그래서 선거인 등록을 하라고 해서 제가 제일 먼저 등록을 했는데, 가만히 있던 석이가 슥 나온 거예요. (웃음) 석이한테도 그전까지 나 뽑아줄 거지? 이러고 다녔는데, 갑자기 나와서 자기 캠프를 꾸리는 거예요. 저는 뭐 그런 거 없었는데. 거기에 다른 멤버들이 붙는 걸 보면서 약간 경쟁 구도? 그런 게 생겼죠.
터울 : 그럼 그 때 단장 선거가 경선이었어요?
석 : 네.
터울 : 오.. 모시기 힘든 분들을 한 자리에 모셨네요. (웃음)
오웬 : 그래가지고 아무튼 제가 참패했죠. 약간 득표율이 석이가 60%, 제가 30%로 참패했어요.
터울 : 지보이스에서 단장은 정확히 무슨 역할을 하나요?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석 : 사실 되게 애매한 직책이죠. 왜냐하면 보통 합창단이라 그러면 음악감독이 있고 지휘자가 있고, 그걸로 리더쉽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단체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때 정했던 단장의 위치는, 여기서 어떻게든 뭔가 균형을 잡아야 된다, 균형의 수호자? (웃음) 예를 들어서 단원들과 음악감독과 지휘자님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 다를 수 있잖아요. 다른 합창단의 리더쉽에서라면 지휘자님이나 음악감독님이 쭉 끌고 가시면 되겠지만, 저희는 단장이 없는 게 아니라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뭔가 역할을 해야 되는 거죠. 그게 의견 제시가 됐든, 음악감독이나 지휘자가 하고 싶은 것에 힘을 밀어주고 단원들을 설득하든,
오웬 : 듣기만 해도 되게 피곤하다. (웃음)
석 : 이런 것들을 단장이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죠.
오웬 : 제가 생각한 건 그거예요. 다른 합창단이나 공연 단체들은 수직적인 문화잖아요. 지휘자가 됐건 음악감독이 됐건 누군가 한 명이 디렉팅하면서 단원들을 시켜가면서 하는데, 지보이스는 그런 문화가 아니에요. 지보이스는 되게 수평적이고, 모두의 욕구를 아무튼 모아야 되는 거죠. 그런 욕구를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게 단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단장으로 지내면서 제가 단장이 되면 이런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고, 저는 그런 헤드맨의 역할보다는 약간 의장같은 느낌?
석 : 체어보이? (웃음)
3. 기억에 남는 지보이스 활동
터울 : 듣기만 해도 되게 고된 직책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어쨌든 경선까지 갈 정도로 뭔가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것은, 지보이스 내에서 일정하게 본인들이 얻었던 경험들이나 고마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보이스 단장을 하기 전에 지보이스 활동을 하면서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순간이 각각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오웬 : 너무 많아요. 하나를 굳이 꼽기가 너무 어려운데… 지보이스를 하면서 저는 지금 단장이니까 지금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데, 단장을 하기 전에 그래도 제가 지보이스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게 Hand in Hand였거든요. 2017년 서울에서 제2회 Hand in Hand가 열렸을 때, 그 때 당시 단장이 현식님이었는데, 제가 맡은 역할이 Hand in Hand의 지보이스 대표 팀이었어요. 그 때 각자 서울의 공동주최 단위인 언니네트워크의 아는언니들 팀이 있고, 지보이스 팀이 있고 그랬는데, 그 때가 지보이스로서 가장 품을 많이 들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행사를 다 치르고 나서 마지막 뒷풀이를 하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눈물 진짜 안 흘리는 스타일인데,
터울 : 거기가 클럽 Trunk였죠, 현재 위치로 이사오기 전의 Trunk.
오웬 : 맞아요. 그래서 펑펑 울면서 친구들과 같이 얼싸안으면서, 나 원래 이런 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웃음) 그 순간이 아직도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터울 : 아시아 퀴어합창단들 다 불러놓고 나쁘지 않게 행사를 잘 치러냈던 게 굉장히 대단해 보였던 기억이 저도 있네요.
석 : 전 사실 큰 행사를 치렀던 기억은 그렇게 크게 남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 했구나, 하고 좀 끝난 느낌이었고. 오히려 지보이스에 대해서 기억에 더 많이 남는 건 소소한 일상들?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일화를 짚어드릴 수는 없어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제가 팔 수는 없으니까. 다만 그런 순간순간들이 감동을 주는 게 많았었고,
터울 : 예를 들면 어떤 순간들이 있었을까요? 구체적인 인명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도로,
석 : 음, 예를 들면 저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처음에 생일 노래 불러줄 때 너무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오웬 : 그 때도 약간 너무 벅차.
터울 : 노래동아리에서 되게 많이 하는 문화이긴 한데, 그래도 게이코러스다 보니,
오웬 : 게이코러스가 이소라의 <생일 축하해요> 노래를 불러주는 게,
석 : 그런데 그런 것도 있긴 한데, 사실 더 큰 건,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부분은, 주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을 같이 공감하고 나누고, 같이 웃고 울고 하면서 보낼 수 있다는 거? 이런 것들은 사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지보이스는 뭔가 더 끈끈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단장하고 나서는 못 느껴서 너무 아쉬웠고. (웃음)
오웬 : 그치, 단장하면 그런 걸 느낄 새가 없어요.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터울 : 그런 멤버쉽과 어떤 활동이 같이 가는 게, 이쪽 바닥, 특히 친구사이 내 모든 모임들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4. 지보이스의 연대공연
터울 : 지보이스는 연대공연을 참 많이 한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어쨌든 게이로서 다른 집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셈인 거고, 어떤 의미에서는 처음에 낯설 수도 있는 주체들과 무대에 같이 서는 일도 많을 텐데, 각자가 첫 연대공연을 했을 때가 언제였고 그 때의 기억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석 : 저는 첫 연대공연이, 제가 기억하기로는 노들야학 졸업식에서 했던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언제였어요?
석 : 2010년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게이코러스를 하게 됐다고 생각했을 땐 상상을 못했죠, 그런 곳에서 같이 공연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을 못했는데, 그 때 공연한 경험이 저의 교차성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고, (웃음)
오웬 : 야 나 그런 말 못해, (웃음)
터울 : 전문용어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웃음)
석 : 그 전에는 굉장히 '래디컬'했던, (일동 웃음)
터울 : 이거 살려야겠다, (웃음)
석 : 그런 경험을 통해서 되게, 인권이라든가 그 자리의 이슈를 노래로 부른다는 것에 대한 느낌이 많이 바뀌었죠. 이전까지는 우리는 게이 얘기만 하면 된다,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게 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해야 되는 이야기들이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됐죠.
터울 : 연결돼 있다는 감각, 게이커뮤니티의 이야기들이 바깥에도 비슷한 형태로 있다는 그런,
석 : 처음엔 어떤 느낌이었냐면요, 약간 품앗이? (웃음) 우리 얘기 너네랑 할게 너네 얘기 우리랑 하자, 약간 이런, (웃음) 이런 거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참여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거기서 조금 더 확장된 감각을 느끼고 있기는 한데, 그 때는 그랬던 것 같아요.
터울 : 그 감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장되었을까요?
석 : 뭐랄까,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품앗이라고 얘기한다면, 이건 반드시 타자화의 감각이 들어가는 거잖아요. 너는 나의 타자고, 나는 너의 타자고, 이런 감각이 들어가있는 건데, 그렇게 더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건 있죠, 그 때에 비해서 지금은. 집단과 집단에 대해서, 우리는 게이 집단, 너네는 장애인 집단, 여성 집단, 이런 생각을 조금 덜하게 된 것 같고, 그게 2018년 기획공연 '폭풍공감'과 이어지는 것 같아요.
터울 : 그런 변화의 정체가 뭔지 탐구하고 알아가고 싶은 게 인터뷰 전반부의 핵심이기도 해요.
오웬 : 제 기억에 남는 첫 연대공연은 그거였을 거예요. 2015년 아이다호 공연 때 저희가 서울역광장 야외 무대에 섰는데,
터울 : 쌍용자동차 노래패랑 같이 섰었죠.
오웬 : 네, 쌍차 노동자분들이랑 같이 연대공연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 때는 저는 몰랐어요. 이런 분들이랑 같이 노래를 해? 이런 느낌이었는데,
터울 : 지보이스 입장에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노조 조합원분들이랑 같이 노래를 한다는 게.
오웬 : 네, 그런데 이게 결국은 공통적인 소수자성을 갖고 있는 거니까, 그게 점점 이렇게 이렇게 무리가 나중엔 합쳐져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걸 그 때 좀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내가 내 목소리만 내가지고는 지금 이 판도를 뒤집기 어려운데, 우리가 함께 얘기하면 이걸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생기겠구나-라는 느낌? 그런 걸 그 때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터울 : 퀴어가 어쨌든 이런 연대판을 꾸려왔던 이유와 사정을 빠른 시간 내에 흡수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이기도 할 것 같아요.
오웬 : 그게 연대공연이라는 자리죠.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스스로 부딪쳐서.
터울 : 공통적인 소수자성이라고 말씀하셨던 그런 부분들이, 아까 얘기했던 품앗이 너머의 어떤 감각인 것 같아요.
석 : 그게 보통 뭔가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노래하고 감동받고 그러면 이제 흔히 '뽕'이라고 하죠, (웃음) 그런 걸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터울 :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어렵게 풀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 감각을 통해서 함께 하는 느낌을 받는 게 되게 중요한 일 같아요.
터울 : 2018년 공연 얘기로 들어가 볼게요. 저는 이 공연을 지금 떠올려도 초현실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아요. 기획공연이었고, 게이코러스와 퀴어페미니스트 비혼여성합창단과, 이주민 합창단과 장애여성 노래모임과 남역배우님이 같은 무대에 올랐던,
오웬 : 그 해의 공연은 정기공연이 아니었죠.
터울 : 네, 정기공연의 의미를 뛰어넘은 기획공연이었고,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역사상 이렇게 다양한 그룹들이 한 기획을 통해 한 무대에 올랐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중요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것도 이 공연 때 느꼈던 저의 감정과 연결돼 있거든요. 이런 공연이 어떻게 기획됐는지 궁금해요.
석 : 제가 단장이 되고 나서 첫 달에 운영진 LT를 했어요.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왔던 것 중에 운영진들 몇 명이랑 같이 열심히 준비를 해서 '서울을 바꾸는 예술'에 기획서를 냈죠. 일단 우리 돈 문제부터 빨리 처리를 하고 올해의 일을 시작하자,
터울 : 거기가 무슨 재단이었어요?
석 : 서울문화재단이죠. 서울문화재단에서 하는 '서울을 바꾸는 예술'이라고 해서, 그 해에 처음 생긴 거였어요. 사회적 예술이라는 걸 테마로 지원금을 주는 게 처음 생긴 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지보이스가 받기 좋은 단체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때는 되게 자신이 없었죠. 왜냐하면 우리는 뭔가 우리가 하는 게 예술인가? 약간 이런 느낌의,
오웬 : 그런 고민이 항상, 지금도 있죠. 지보이스가 하는 게 예술인가?
석 : 그래서 최대한 뭐랄까, 게이가 아니라 더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해보자, 그래야 우리가 더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 지원금을 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웃음)
오웬 : 그 얘기를 하려다 말았는데 하셨네요. (웃음)
터울 : 처음에 그러니까 사업 선정 때문에 만들었던, 어찌보면 조금 외재적인 동인이 있었던 거네요.
석 : 그렇죠. 왜냐하면, 여기서 선행되는 고민이 이거였어요. 지보이스는 항상 지원금을 받아 공연을 올렸었거든요. 그런데 지보이스가 하던 이야기를 하는 단체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다른 단체들, 가령 이반시티가 퀴어문화기금을 열면 그 기금을 받을 수 있는 단체가 점점 더 많이 늘어나는 거죠.
오웬 : 지보이스는 그 전에 이미 그 기금을 많이 받았었고요.
석 : 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되는 이야기는, 거기서 더 뭔가 다른 이야기가 돼야 했던 거죠. 그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지원금 규모에서 더 큰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된 거였었고. 그래서 지원금 심사에 통과했죠. 그런데 처음부터 기획공연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정기공연에 그 분들을 초대손님으로 불러서 찬조공연을 하자,
터울 : 예전에도 그런 찬조공연 형태의 기획은 있었잖아요. 가령 언니네트워크의 아는언니들은 2013년 지보이스 10주년 때 같이 공연했었잖아요.
석 : 네, 그런데 그 형태를 벗어나서 다 같이 만들어내는 공연, 뭔가 이 집단이 게이가 중심이 되고 다른 분들이 초대손님으로 온 느낌을 최대한 덜 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걸 계속 강조했던 것 같아요, 제가.
5. 아는언니들, 일곱빛깔무지개, 지구인의 노래
터울 : 어쨌든 이런 기획들이 지원금이라든가, 외재적인 이유 때문에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전에 만들어왔던 관계 없이는 갑자기 만들기 어렵잖아요. 아는언니들 같은 경우는 2013년 공연 이전에도 스탭으로 계속 참여하셨던 비혼여성 페미니스트분들이 계셨고, 또 장애여성공감 측과도 2018년 초에 장공감 30주년 창립공연 때 지보이스가 일곱빛깔무지개와 함께 공연에 섰던 인연이 있잖아요. 그 때 공연도 기억에 많이 남거든요. 단장에 부임하고 나서 첫 연대공연이었는데, 그 때 어떠셨어요?
석 : 그 때 굉장히 난리가 났었는데요. 그 때 한창 '지보이스=여혐게이합창단'이란 말이 트위터에서 돌던 시기였어요.
오웬 : 아 그 트위터 좀 그만하라고. 나 그런 얘기 그냥 안 보고 산단 말야.
터울 : 전 아직도 기억나요. '퀴어남성공감'이라는 그 워딩이. (웃음)
석 : 지보이스가 여혐게이코러스라는 소문이 난 건 사실 전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그것 때문에 장애여성공감이 퀴어남성공감이라면서 조롱을 당하게 된 타임라인 플로우가 있었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약간 단원들 내부에서도, 트위터 하는 단원들한테 동요가 좀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무대에 올라갔고, 제가 단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발언을 하는 상황이 찾아와서 되게 긴장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엄청 떨면서 얘기했던 것 같아요.
오웬 : 저는 올해엔 그런 연대공연 경험이 없어요. 코로나 때문에 다 취소됐어.
터울 : 그 공연 보고 많이들 울었던 기억 나요. 그래서 어쨌든 인연이 있었던 팀들과 기획공연을 하게 되는데, 저는 해왔던 사람들 말고 안 해왔던 팀과도 함께 공연했다는 게 흥미로웠거든요.
터울 : 이주민 노래팀 '지구인의 노래'와는 어떻게 관계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석 : 이분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는 않았었어요. 헌데 저희가 그 당해랑 전 해에 3.21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공동행동 때 연대공연을 했었거든요. 보신각 앞에서 공연했었는데, 그 때 거기서 행사 진행하셨던 선생님께서 되게 여러모로 많이 알아봐 주셨었어요.
오웬 : 지보이스 섭외를 해주신 분이었죠?
석 : 네, 그 분이 지구인의 노래를 연결해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함께 하게 됐죠.
터울 : 그러니까 아예 인연이 없었던 건 아니군요.
오웬 : 같은 행사의 무대에 올랐던 경험이 있는 거죠.
석 : 네, 그 팀이랑 보신각 앞에서 같은 무대에 올랐었죠.
터울 : 지구인의 노래에 손을 내밀게 된 것도 공연 기획의 영역이잖아요. 그 계기가 궁금하더라고요. 이주 이슈에 지보이스가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해요.
석 :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 당시에 이주 문제가 핫한 이슈였던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 우리가 연대를 한다면, 함께 손잡고 노래한다면 어떤 사람들이랑 해야 할까,
오웬 : 저희가 그것에 대한 회의를 몇 번 했어요. 그럼 우리가 노래를 같이 할 수 있을까, 거기서 각자 나왔던 의견들이 이제, 아무튼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노래를 할 텐데, 거기에 우리가 생각했던 게 게이/성소수자로는 지보이스가 있었고, 비혼여성으로서 아는언니들이 있었고, 장애인으로서는 장애여성공감 일곱빛깔무지개가 있었고, 남은 게 우리가 생각했을 때 그 당시에 이주민·난민 이슈가 있었어요. 그럼 이쪽 이슈로 노래하는 분들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지구인의 노래에게 연락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6. 2018 지보이스 공연연습 '폭풍전야'
터울 : 섭외공연이 아니라 함께 무대를 꾸미는 감각을 가져가고 싶었다는 석님의 말씀이 그냥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던 계기가 '폭풍전야'라는 행사였던 것 같아요. 기획공연 연습을 한 달 전에 마련해서, 사전에 모여서 같이 사진도 찍고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그런 기획을 부러 안배를 한 것 자체가 어찌보면 공연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공연 연습 '폭풍전야'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석 : 사실 그것도 외재적인 요소에서 출발하게 되는데요. (웃음) 저희가 그 내용을 기획서에 썼어요. 저희가 애초에 하겠다고 한 거였고, 왜냐하면 최대한 멋있는 걸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아무튼 주최 단위가 연합팀 형태가 아니라 지보이스가 주최하는 공연이었던 거고,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행사 구성을 어떻게 해야 되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엄청나게 많은 의견이 오갔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폭풍전야였었죠. 그런데 행사 당일까지 되게 걱정이 많았던 부분은, 사람들이 귀찮아하면 어떡하지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와서 노래연습하고 공연 때 리허설하고 공연하고 끝내고 싶어할 수도 있잖아요.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서로 즐기지 않을 수도 있고요.
오웬 : 나도 낯 많이 가려.
석 : 그래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런 것들도, 최대한 뭔가 우리들이 나누고 있는 소수자성이 어떤 것인지, 그런 것들을 같이 돌아볼 수 있고 공감대를 만들고, 이런 것들을 최대한 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하기로 한 거니까 하자는 것보다는,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자, 하기로 한 걸 주어진 한계 안에서 최대한 멋있게 만들어보자,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같이 합창곡을 선정해서 부르는 것도 부르는 건데, 같이 프로그램을 했었잖아요. 부르고 싶은 노래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거기에 대해 함께 얘기해 본다든지, 친구사이 회원들끼리 늘 하던 형태의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석 : 네, 사실 거기서 많이 빌어온 거죠. 그걸 기획한 사람들이 다 친구사이 회원들이니까. 지보이스 단원인 만루형이 기획했던 걸로 기억해요.
터울 :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게, 그 해 기획공연 때 <그날이 오면>을 전체 합창곡으로 불렀었잖아요. 그 때 1절 가사 중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을 '내 자매'로 바꾼 게 언제였었죠?
오웬 : 그걸 아는언니들의 뽑이 말했던 게 기억나요.
석 : 네, 그걸 바꾸자고 제안해서 바로 가사를 바꿨었죠.
터울 : 그게 폭풍전야 때였죠?
석 : 네, 그랬던 걸로 기억해요.
오웬 : 그 때 약간 리허설 같은 개념으로 연습을 같이 했었죠.
석 : 네, 거기에서 노래연습 한번 처음 맞춰보고, 그런 자리였죠.
터울 : 그게 되게 인상적인 거예요. 게이코러스 안에서만 있었다면 누가 그걸 신경썼겠어요. 어쨌든 퀴어페미니스트와 같이 있으니까, 뒤 가사는 또 형제라고 나오고, 앞은 자매라고 바꾸고, 가사 바꾸는 걸 금방 결정해서 바로 다시 연습하고, 이런 광경들. 그런 게 인상깊었고요.
7. 인간관계란 원래 조금은 어려운 것
터울 : 그런데 저는 지보이스 스탭은 오래 했지만 단원은 아니니까, 그래도 게이가 아닌 그룹들이 낯설 것 같거든요. (웃음) 저는 그 폭풍전야를 보고 서로 떠드는 풍경이 초현실적인 거예요. 왜냐하면 소식지 독자들 중에는 정말로 게이만 보고 사는 게이도 많을 거고,
석 : '래디컬'하시네요. (일동 웃음) 게이만 챙겨!
오웬 : 아냐, 그건 아냐, 왜 그래. (웃음)
터울 : 아무튼 그냥 게이들끼리 있는 것보다 어쨌든 다른 감각과 경험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거든요. 그날 어떠셨어요? 그 분들과 같이 있으면서.
석 : 저는 사실 그 때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그 때 뭐가 없고 누구 안왔고 해서 엄청 뛰어다니느라.
터울 : 그 때 같이 했던 경험이 낯설지는 않으셨어요?
오웬 : 글쎄요, 사실 별로 낯설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던 팀들이었고, 한 팀만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어쨌든 평소에 이주민분도 살면서 항상 얼굴 보니까 별로 낯설진 않았어요. 그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 그 때 약간 프로그램 주제로 나왔던 게 각자가 가진 소수자성이었어요. 그런 얘기를 서로 공유할 때, 내가 게이라서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실은 누구라도 갖고 있을 문제겠구나, 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어요. 그래서 경험 나누기를 얘기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석 : 저같은 경우는, 조에 들어가서 잠깐 있었을 때, 어렵냐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셨지만, 그냥 저는 사람 만나는 게 어려워요.
터울 : 그것도 맞는 말이죠, 사실은.
석 : 그래서 그냥 똑같은 어려움?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랑 한 조에 앉아서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라고 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사실 뭐 똑같았죠. (웃음) 오히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으니까, 오히려 저 말을 같이 잘 하게 될 수도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게 기억나요.
터울 : 게이들끼리 모여있을 때 갖게 되는 편함이나 안온함이 없지 않고, 되게 중요한데,
오웬 : 네, 아무래도 다르죠.
터울 : 그런데 그것이 너무 과장되거나, 그게 삶 속에서 너무 중요하게 자리잡으면, 사실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게이들에게 더 크게 실망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인간관계라는 게 원래 좀 데면데면하고 원래 좀 공포스럽고, 원래 말을 좀 고르는 게 맞는 것일 수 있는데,
석 : 게이들끼리도 말 좀 조심해야죠. 너무 안하더라. (웃음)
터울 : 너무 서로가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허들이 내려가는 건데, 사실은 게이들끼리도 다 같은 게 아니잖아요. (웃음) 뭔가 그런 일정한 긴장은, 커뮤니티가 안온하고 포근한 것과 별개로 좀 갖고 가야 되는 것 같아요.
석 : 그렇기 때문에 약간 외부 커뮤니티랑 얘기하게 되면 말을 조심해야 된다, 이런 신화? (웃음) 그런 오해랄까요, 뭐 어느 정도 말조심해야 되는 건 맞긴 하지만, 그런 인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터울 : 실은 저도 그런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폭풍공감 같은 자리에서 다 말을 조심하는 상태에서 뭔가 데면데면하게 있지나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이 주어져서 거기에 들어가면 의외로 인간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사람이 사람을 처음 알아갈 때의 조심스런 배려와 사려 속에서 사람처럼 친하지게 되는 게 새삼 놀랍기도 했어요. 사실 놀랄 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되게 인상깊었던 것 같아요.
8. "꼴페미, PL, 약쟁이, 술꾼"
터울 : 기획공연 때의 곡 가사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죠, "You're the TOP, 너는 실업자에 고집불통, 뻔한 얼굴 몸매, 너는 꼴페미," '꼴페미'가 나오네요. 이건 '래디컬' 페미 얘기는 아닌 거죠? (웃음)
석 : 이건 그 때 당시의 '메갈' 얘기였죠.
터울 : 그쵸, '메갈' 얘기였죠. "PL, 약쟁이, 술꾼, 나도 참 특이하지, 그런 네가 최고라니"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해의 공연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가사가 이거였거든요. 이 가사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보통 지보이스 공연 때 선곡과 창작곡 가사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석 : 일단 '꼴페미'는 그 때 '메갈' 맥락에서 나온 거였죠.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낙인을 그렇게 찍는 것에 대해서.
터울 : 누군가는 지보이스를 '꼴페미'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웃음)
석 : 그렇죠. (웃음)
오웬 : 이 개사가, 음악감독 코러스보이님이랑 킴, 백퍀, 무지개집 입주자분들에게서 나온 거예요.
터울 : 그렇군요, 무지개집에 게이 말고도 다양한 주체들이 있으니까요.
석 : 네, 무지개집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들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내부적으로 조금 거부감이라기 보다는, '무슨 가사야?'라는 반응이 좀 있었죠. '이게 누군데?' (일동 웃음)
오웬 : 저는 이 공연에서 이 메들리가 제일 좋았어요.
석 : 이 노래는 결국에는 단원들이 제일 좋아해줬던 노래였던 것 같아요, 그 공연에서. 되게 연출 같은 것에도 힘을 많이 썼고, 다들 좋아하니까. 그래서 약간 이 폭풍공감 공연의 지보이스 파트의 하이라이트 아니었나,
오웬 : 뮤지컬 같은 노랜데, 단원들이 뮤지컬 좋아하니까.
터울 : 지보이스 공연 때의 개사곡이나 창작곡 가사가 뭐랄까, 과감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여성스런 게이라든지, 게이커뮤니티 내에서 타자화된 주체들이나, 다소 금기시되는 성적 경험을 과감하게 집어넣는 게 지보이스 공연 기획의 중요한 전통 중 하나 같거든요. 그런 게 지보이스 단원들의 동의 하에 공연곡이 될 텐데, 그 안에서 그걸 환영한다든지, 거기에 따른 진통이 있다든지, 그런 것들이 좀 궁금했어요.
석 : 저는 지보이스의 이런 가사에 대한 문화가 친구사이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친구사이 조직문화 자체가 끊임없이, 게이의 정상성이나 정상규범이라든가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해온 단체였고, 지보이스가 노래하는 맥락도 거기랑 분명히 닿아있다고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잘 받아들여지는, 요즘 영어로는 게이트웨이 게이(gateway gay)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어떤 게이가 엄마랑 같이 데리고 가서 퀴어영화를 봤는데, 엄마가 '어, 저 정도 게이면 괜찮다'라고 할 법한 게이, (웃음)
터울 :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굉장히 용이할 것 같은 게이의 상을 얘기하는 거군요.
석 : 네, 그런 백인 커플들이 나오는 퀴어영화들 속 주인공들을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보이스 안에도 그런 게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고. 그런 규범 외의 호모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힘이 되겠죠? 그건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터울 : 친구사이에서 온 문화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깊어요. 또 어떤 의미에서는 친구사이도 그런 지보이스의 재현이나 공연에 힘입어서 친구사이의 문화로 되먹임되는 게 있을 것 같고요.
9. 남은진 남역배우와의 인연
터울 : 그럼 폭풍공감 공연 당일에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해요. 그 때의 에피소드가 어떤 게 있었는지,
석 : 일단 저는 되게 정신이 없었어요.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고.
터울 : 일하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죠.
오웬 : 저는 그 날 리코더를 불었어요. (웃음)
터울 : 대기실은 각 팀이 따로 썼나요?
오웬 : 네, 팀별로 따로 썼어요.
석 : 거기가 마포아트센터였잖아요. 따로 썼었고, 대신 동선이 되게 겹쳤었어요. 대기실이 마포에 몇 개 없어요. 그래서 지휘자님 대기실이 없어서,
오웬 : 남은진 배우님과 같이 쓰셨어요.
터울 : 남은진 배우님과 지보이스가 같이 공연했던 게 2016년 정은영 작가님의 '변칙 판타지'였잖아요.
석 : 그 때 처음 같이 공연했었죠. 그리고 2018년 폭풍공감 땐 남은진 배우님이 특별공연 형태로 함께 하게 됐죠. 그냥 기계적으로 함께 한 게 아니라, 사실은 남은진 배우님이 하고 계신 예술이 폭풍공감과 잘 맞아서 함께 하게 된 거였죠.
터울 : 성별 비순응이라는, 남자가 남자스럽지 않고 여자가 여자스럽지 않은 것만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규범을 위반하는 것만으로 도저한 소수자성을 갖게 되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국악풍의 곡이었는데 남은진 배우님이 남역을 멋있게 소화하시고, 그 옆에서 오웬님이 치마를 입고 추던 춤사위가 기억나요. 세상 우아한, (웃음)
석 : 맞아, 잘했어.
오웬 : 왜 이렇게 띄워줘, 또.
터울 : 어머니합창단 같았어요. (일동 웃음)
오웬 : 뭐? (웃음) 그래 우리 엄마의 우아함이야, 이게. 물려받은 게 이거다. (웃음)
터울 : 2016년엔 지보이스 정기공연이 그 해의 '변칙 판타지' 공연이랑 한달 상간으로 겹쳤었잖아요.
석 : 네, 현식 단장님이 그 해에 고생을 많이 하셨죠.
오웬 : 그리고 2017년에는 Hand in Hand의 환영식 때 남은진 배우님이 오셔서 축하공연을 해주셨어요. 그러고보니 남은진 배우님과 매년 뭔가를 했군요. (웃음)
터울 : 맞아요, 환영공연 때 오셨었죠.
오웬 : 그 때 두 팀이 오셨었어요. 한 분이 남은진 배우님이었고, 한 분이 킹클럽의 차세빈님이었죠.
석 : 그런 인연으로 2018년 기획공연 때 함께 해주셨던 거죠.
10. 소수자와 친구가 된다는 것
터울 : 저는 그날 공연도 공연이었는데 뒷풀이가 너무 인상깊었거든요. 뭔가 퍼블릭하게 연대해서 공연하는 것과 별개로, 뒷풀이 때 흔히 말실수가 나오기 쉬운 술자리에서 함께 잘 어울려 놀고 공연을 잘 끝낸 걸 축하하고, 이랬던 분위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게 진짜 뭔가, 공연을 했다는 것 이상으로 이들이 이렇게 엮여서 놀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오웬 : 글쎄요, 저는 별로… 제 입장에선 남같지가 않고 이미 친구였어요, 그냥. 아는언니들 사람들은 너무 친구였고, 장애여성공감 분들은 그 때 못오셨었죠 아마?
석 : 네, 아쉽게도 그 날 뒷풀이는 함께 하시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사실 처음에 기획할 때는, 리셉션을 하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리셉션이 하고 싶어서, 끝까지 알아봤던 것 같아요.
오웬 : 마포아트센터 로비에서 하려다가 센터 측의 허락을 결국 못 받았죠.
석 : 다른 공간을 잡아서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여의치가 않아서 결국은 뒷풀이가 됐는데, 아쉬운 건 많죠. 완벽하게 포용적인 공간이라고 말하기 힘든 곳이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긴 했는데,
오웬 : 아무튼 뒷풀이 자리는 이미 너무 그냥 공연을 같이 겪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 때 너무 잘했어, 그 때 너 틀렸지, 막 그런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자리였어요.
터울 : 저는 개인적으로 지보이스 뒷풀이 때 사진을 만지고 있으니까 대화를 하기가 어려운데,
오웬 : 맞아요, 그날도 열심히 사진을 만지고 있었죠.
터울 : 지금 생각해보면 다음 날에 작업하더라도… 물론 단원이 아니니까 그렇게 어울리기 애매했던 것도 있는데, 어쨌든 그 때 그렇게 친구로서 같이, 게이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과 함께 노는 게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나요. 어쨌든 그 말씀이 되게 인상적이네요. 이미 친구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라는 말.
석 : 맞아요. 사실 우리가 말조심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것도, 말이 말조심이지 결국은 타자화 조심하라는 얘기잖아요. 우리가 무슨 말을 들었을 때 얘가 이 말을 했구나, 이 자체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지금 얘가 나를 호모로 보고 있구나, 호모같다- 약간 이런 느낌으로 보고 있구나, (웃음)
터울 : 내가 납작하게 인식되고 있구나, 이런 것들,
석 : 그런 것들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우리가 딱히 그런 걸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웬 : 그리고 친구랑은 그런 얘기 안하잖아요. 또 그렇게 격식있게 너무 굴지도 않으니까.
11. 연대의 의미, 안전망 바깥의 안전망
터울 : 자연스럽게 1부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두 분에게 지보이스의 연대공연, 내지는 연대가 갖는 의미는 뭘까요.
오웬 : 연대공연은 저한테는 잔치상같은 느낌이에요. (웃음)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데, 연대공연은 뭔가 푸짐한 잔치상 같아요. 너무 좋아하는 음식만 다 차려놓은 잔칫날같은 느낌. 그리고 사실 연대공연이 아니면 그런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나는 내 게이 친구들만 일단 자주 만나게 되니까. 그런데 정말 이럴 때 보면 너무 반가워요. 오랜만에 사람들 보는 동창회같은 느낌?
터울 : 그런 계기가 된다는 말씀 되게 인상적이네요.
오웬 : 네, 그리고 저희가 연대를 한번만 하고 마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 그런 관계를 지속시키는 노력들이 있고 하니까, 그런 게 좋네요.
석 : 저도 좀 비슷한 맥락에서, '안전망을 깨고 나왔는데 안전하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요. 게이커뮤니티 안에 있다보면, 커뮤니티라는 걸 안전망으로 해서 자기 감정을 지키잖아요. 이 밖에 나가면 위험해, 이렇게 되는데. 연대공연을 하면 약간 좀 그런 느낌이죠. 안전장치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 안으로 뛰어내리는 느낌? 가볍게 만나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소수자성을 가지고 만난다는 건 결국에는 서로가 가진 피해들이 있는 거고, 고통들이 있는 거고, 이런 것들을 직면할 수밖에 없고, 서로 그런 감각들을 아무리 낮춰서 표현하다고 해도 그런 것들이 없을 수 없는 거죠.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뭐랄까… 내 외연의 확장이 일어나죠. (웃음)
오웬 : 어려운 말 쓰지 마 진짜. (웃음)
터울 : 그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안전망을 풀고 난 다음에 느끼는 안전망이라는 게,
오웬 : 안전망을 점점 넓혀가는 그런 느낌이죠.
터울 : 바깥 세상이나 이성애 사회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니까 계속 우리가 게토에 머무는 거고, 일단은 거기만이라도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 건데, 사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안전해지려면 게토 바깥도 안전해져야 하는 거잖아요.
석 : 그리고 물론 거기서 더 이어지는 고민들도 있죠. 내가 여기서 편함을 느끼는 것도 또 어떤 권력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추가적인 고민이 이어져야 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터울 : 이제 자연스럽게 2019년 공연 기획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