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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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3]
2020 재회의 밤 후기 : 비록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지난 9월 29일 열린 2020 재회의 밤에 참석했습니다. 친구사이 회원으로서 아직 한 번도 참석해본 적 없는 행사였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추모 경험이 드물어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인사하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득한 사람들과 희미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떻게 재회할지 미처 몰랐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에 능숙하다는 게 더 부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 재회의 밤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서 부담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핑계일지도 모르나 저 같은 경우는 온라인으로 오히려 익숙하게 참석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함께하고 싶어도 멀리 떨어져 있던 분들의 경우도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날 약 20명의 회원들이 함께 했습니다. 얼핏 화면 속을 보니, 집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종로의 게이바 안에서 다양한 공간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함께 했습니다.
재회의 밤은 대표 킴의 사회로 진행됐습니다. 사무국장 종걸 님이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천천히 공유해줬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회원들의 전하고 싶은 말을 나누는 것으로 행사를 마쳤습니다.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할지 고민을 하는 와중에 제 차례가 와서 정돈되지 못한 말들을 했습니다.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이 품었던 용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이제는 친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지만 제게는 늘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그 친구에게 발견되어 인연이 되었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친구가 2016년 발행한 게이 매거진 <뒤로>에 낙타와 함께 커플 인터뷰이로 참여했습니다. 동성혼인을 주제로 화보와 글을 펴낸 아주 멋진 기획이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크고 작은 일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기약 없이 남겨진 이야기들을 보며 친구가 과연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상상하게 됩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삶 속의 용기들을 모아 세상에 전한 이야기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재회의 밤을 통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분들의 용기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것이 추모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입니다. 애석한 마음을 이날 함께 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친구사이 사무국에 감사드립니다.
친구들에게 소중한 용기를 남기고 떠난 故 이도진 님을 추모합니다.
친구사이 회원 / 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