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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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니콘을 찾습니다 EP4 :
제도와 문화
이 일은 내겐 특별했다. 돈이 곧 목숨인 사기업이 사회문제를 고민한다는 ESG는, 희미하지만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다. 언젠가,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이 사기업에 요구될 때, 시대의 큰 흐름이 사회 곳곳에, 특히 사기업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서사를 미리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사실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다. 크게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한 번, 그리고 선전할 나팔수를 만드는 것에 한 번이었다. 특히나 당근과 채찍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고, 알맹이보단 껍데기를 포장하는데 급급한 나 자신을 보면서, 이것이 큰 흐름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 아니면 본질을 잃어버린 것인지 고민할 때가 많았다.
* ESG :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투자의사결정시 기업의 재무적 요소들과 함께 고려한다는 개념.
그러던 찰나에, 본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사업 전반에 있어 ESG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한 홍보물을 배포할 터이니 잘 활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과거 업무 중에서 ESG에 부합한 내용을 찾아 쓰고, 없다면 외부사례를 들어 모아놓은 사례집이었다. '차카게살자'는 막연한 구호에서 다양한 사례로 구체화하여, 임직원들이 업무를 함에 있어 한 번쯤은 이윤 외에 다른 부분들을 고려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네비게이션처럼 일일이 어느 쪽으로 가라고 말해주진 않지만, 이정표처럼 방향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혹자는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는 회사가 이러한 부분을 신경 쓰고 있다고 감지하기도 하였다.
아쉬운 건, 이 책을 활용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높으신 분의 지시'라고 말하며, 임직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읽도록 권유하고, 협조 여부를 확인하였다. 적극적인 호응을 바라진 않았다. 나 역시도 다른 문제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산업안전보건교육, 장애인인식개선교육, 성희롱예방교육, 직장내괴롭힘예방교육, 개인정보보호교육 등 사회에서 중요시 여겨지는 것들은 현재 법정필수교육의 형태로 사기업에 자리 잡았고, 적극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강제적인 형태로 이러한 내용을 노출하는 것이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필요하다고 답할 수 있으나, 교육으로 충분하냐는 질문에는 물음표이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방법으로 어떤 것이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능선을 넘은 기분이다. 지금 ESG는 회사 내 제도로 들어왔고,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라는 내 마음과 결과물은 도출하기 급급한 내 모습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과연 지금 나는 큰길을 가기 위한 과정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면 피상적인 업무 속에 묻혀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