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
[칼럼]
내 불필요한 경험들 #6
: 나의 드래그
그러면 언제 게이가 된 거에요? 그럼 당신은 언제 이성애자가 됐나요? 말 안 되는 질문에는 그렇게 되묻는 게 상책이라고. 근데, 그러게요... 저는 언제 이성애자가 됐을까요? 학창시절에는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요. 꽤 늦었다고 해야 할까요?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때 발렌타인데이고, 빼빼로데이고, 옆반 누구 남자애가 복도에서 고백을 했는데 차였다느니, 고백 받은 여자애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느니, 다 같이 요란 떠는 게 저한텐 어색했던 것도 같아요... 이러고 답하는 이성애자가 못해도 세상에 한둘은 없을라고. 물론 당신이 이성애자가 된 게 아니듯, 나도 게이가 ‘된’ 게 아니라고 대충 답하고 넘겨야 할 때가 있다. 어쩌다 내 아들이 이렇게 됐을까 하며, 박권사님이 울먹이기 시작할 때? 완벽한 답은 아니고, 일상을 지키기 위한 빠르고 편한 대답이다.
전역하고 마침내 처음 이쪽모임에 나갔다. 소위 끼 떨고 논다, 고 하는 게 다 새롭고 신기했는데. 웃겼고. 어쩌다 나온 GV배우 얘기에, 한 형이 누가 우리 오빠 얘기해!!!! 라며 소리를 지르기에, 놀라며 웃었었다. 그러자 건너자리에 앉은 다른 형은 뭐야, 얘 왜 혼자 게이 아닌 척해, 라는데, 좀 무안했다. 모든 게이가 게이문화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익숙한 게이도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고.
오랜 내 앨라이 여사친은 아직도, 누가 주변 게이에게 언제 게이가 된 거냐고 묻기라도 하면, 곧바로 그러는 너는 언제 이성애자가 됐냐며, 자동응답 수준의 빻음질문퇴치술을 시전! 고맙다. 그런데 고마운 마음과 별개로 나는 자꾸만 그 질문에 답을 하고 싶다. 저는 언제 게이가 됐냐면요... 아무 생각 없는 질문을 멋대로 할 수 있다는 게 불공평한 권력이란 것도, 그런 질문들 참 무례하단 것도 안다. 그런데 ‘게이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써온 시간이 있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역지사지의 기회를 주겠다고 내 얘기할 기회를 다 날려버리긴 싫다.
대AI시대에 나한테 왜 스트레잇데이팅앱 광고가 뜨는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동네친구가 필요할 때, 라니. 이게 무슨 반도의 호모가 J에서 동게 찾는 소리. 이성애자들 쪽은 남녀칠세부동석이 오랜 컨셉 아니었나.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나, 없나를 두고 이념전쟁도 불사할 듯 보였는데... 광고의 동네친구, 라는 게 결국 자만추를 가장하기 위한 컨셉이란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근데 아무리 뻔한 거짓말이래도, 속아 넘어가는 인간(나)이 있기 마련이고. 데이팅앱으로 친구 만들겠다고 헛발질하는 데에 스트레잇들까지 합세하면. 그러면 멍청한 애들 중에 제일 똑똑한 애가 어쩌다 유레카 외치는 일도 있지 않을까.
어플을 하는 내 맘가짐은 언제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였다. 자신이 원앤온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어플썸남은 날 다시 안 보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거기다 대고 좋은 형동생으로 지내면 안 되냐고 했다. 네게 마음이 있는 이상 그럴 수는 없다고. 형과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말도 잘 통하고 형동생으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가, 쓰레기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너 같으면 좋아하는 사람하고 친구로 지낼 수 있겠냐는데. 나라고 어플에서 짝사랑해본 적이 없을까요? 졸라 많습니다. 밤을 새고 다음날 새벽, 사과를 하겠다고 그 분이 산다던 동네를 찾아갔다. 연락은 당연히 안 됐다.
해가 떠서 정신을 차리고, 근처 여사친집에 갔다. 그 앨라이 여사친. 여사친의 애인은, 아니 헤어진 다음날 연인집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형이 그 썸남?이랑 사귈 것도 아닌데 굳이 여기까지 찾아 오냐고 의아해했다. 그러게, 헤어지고 연인에게나 하는 절박한 행동을 난 왜 엉뚱한 포인트에 하고 있나... 고작 친구하기 싫단 건데. 제 애인과 내 대화를 가만 듣던 여사친은 이해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 대체 뭘? 게이에게 남자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할 게 같은 게이들 안에 속하는 일이란 걸? 찾아오는 건 그렇다 쳐도, 그 사람 딱히 오빠랑 엄청 잘 통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트레잇이었음 이 정도 갖고 통하네 뭐네 안 했을 거라고. 집으로 헛걸음해 돌아오는 동안 내가 먼저 좋아했던 어플남들 생각도 났다. 친구되겠다고 어쭙잖게 굴다 그 사람들만 좋은 일 시켰지 뭐...
세상엔 얼마나 많은 게이가 있을까. 우리 소식지 팀장 형은 은둔의 규모는 커뮤니티에 나와 활동하는 게이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할 거라고 하던데. 커뮤니티 안에서 밖을 보면 그렇게도 보일까. 멀찌감치서 SNS를 중심으로 하는 게이 커뮤니티를 바라보면, 꼭 나 하나 겉도는 것 같기도 했다. 비겁한 마음이지만 팀장형의 말대로라면 마음이 놓인다. 정말 그런 거라면, 근사한 SNS계정 같은 거 없는 게, 셀카에 예쁘다고 몇십 개씩 댓글 달아줄 수 있는 벅찬 인맥이 없는 게, 좀 덜 초조할 수도 있었겠지. 종로3가가 어딘 줄 몰라 헤매는 게이는 몇이나 될까. 게이 맞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모임에 나가 보릿자루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도 얘기 좀 해~ 네, 나도 싫어서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뒤풀이 때 노잼테이블 앉으면 괜히 내 잘못 같고... 아무튼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쪽단체 강의?세미나?였는데, 모임장소 자체를 찾지 못했다. 뙤약볕에 종로3가역 근처를 빙글빙글 돌다 행사 끝날 시간이 다 됐다. 혼자 서성이던 길목에 스친 무리 중에는 모임에서 한두 번 뵀던, 눈에 익은 분들도 있었던 듯 싶다. 염치 생각말고 붙잡고 물었어야 했을까. 다신 없어, 다신 없어, 하며 집에 돌아왔다. 이쪽친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일, 다신 없어, 하면서. 동아리, 소모임, 동갑모임, 인권단체, 대학퀴동. 막말로 그룹플만 빼고 이쪽사람 모인다는 데에는 거의 한 번씩 기웃거려본 것 같다. 유명한 게이바라는데, 게이인 나는 그게 어딘지 편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구글맵은 또 무슨 소용. 알아야 할 걸 몰라서 고생한 게 처음도 아니었는데. 광역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이제 좀 포기가 됐다. 이쪽생활이란 게 영 내 자리는 아니구나.
나 은둔이자나~ 라는 농담을 하거나 듣고 나면 좀 마땅찮다. 진짜 은둔이 저런 말을 할까. 안 한다.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없으니까. 나은둔이자나-니가무슨은둔이야-농담은 주로 소셜한 게이들이 하고, 거기엔 소셜한 자신에 대한 은근한 자긍심이 깃들어 있다. 사람이 모여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일단 힘이다. 은둔은 차라리 종태원혐을 한다. 종태원안가요. 안 가는 걸까, 못 가는 걸까. 이쪽생활은 안 하세요? 라고 물으면, 그렇게 됐어요, 라고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은둔은 선택이 아니다. 은둔은 선택이 아니고, 게이소셜로의 이행도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새로운 게이모임에 가면 누굴 알고 왔냐고 물었다. 다들 경력직을 찾으면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내 일북은 변하여 게북이 되고. 북만 빼면 일반이 게이가 된 일인데... 거기서 북을 왜 빼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냥 말장난이다. 스물초반에, 일북에 썼던 책 리뷰를 저자가 공유해준 일이 있었다. 신이 난 나머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유된 글에 댓글은 누가 달았나, 좋아요는 누가 눌렀나... 보는데, 눈에 띄는 프사가 있었다. 한 사람의 사진을 클릭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날부터 파도를 타고타고 또 타고. 어쩌다 친구가 된 이름을 둘러댔지만, 처음 가봤다는 이쪽모임도 실은 그렇게 알게 된 거였다. 어떤 게이들이 게북을 너무 많이 걸어 잠그지 않은 덕이었다.
내 인생 너무 노잼이라 우울하다고 하면, 일반친구들은 얼마나 재밌게 살고 싶길래, 라며 어이없어 했다. 딱 SNS의 게이들정도? 군대에서 어느 날 뭐에 홀린 것 마냥 일북을 켜 친구들을 막 끊었다. 허핑턴이나 닷페이스에 마음 놓고 좋아요를 누르고 싶기도 했거니와. 넷상의 게이들을 넘겨다보는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인간관계가 좀 덜되게 느껴졌다. 몇 명 남은 가까운 친구들은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근데 그 때 내 눈에 게이들이 가진 건 가족 말고 패밀리였다. 조금은 유난스럽게 ‘우리’를 드러내보여도, 다 같이 웃어넘기는. 나도 게이니까 전역을 하면 내 주변도 그런 모양일지 모른다고 쉽게 기대했다.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나갔다가, 종종 들락이던 이쪽분의 계정이 추모계정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는데. 함부로 놀란 마음이 나도 당황스러웠다. 일반들은 시시때때로 넌 다르다고 일깨워주니까, 아, 나는 게이들하고 같은 거구나, 저쪽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생각하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부대에 복귀해 간소해진 일북에 공개 커밍아웃 글을 올렸다. 차별이 이래서 해롭다. 게이들도 그냥 사람인데, 그들의 공간에 무연고인 날 무작정 환영해줄 이유는 없다. 게이들끼리 모이면 게이라는 건 별 게 아니고, 그래서 서로가 일반들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불편하고, 오히려 더 경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쪽친구 거의 없긴 한데, 일반친구들하고 커밍하고 지내요, 랬더니. 일반들한테 뭐라고 커밍해?ㅋㅋ 막 안녕하세요, 게입니다, 이래?ㅋㅋ 거의 조롱에 가까웠던 게이들의 문법에 지금도 다 적응했다고 선뜻 말 못한다. 전역 전 기대했던 대로 인생이 재밌어지려면 사람을 만나야 했는데, 막상 사람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진지노잼인지 확인해야 해서 난감했다. 난감해 하는 새에 내 계정은 일북도 게북도 아닌 혼수상태가 되었다.
간신히 숨만 붙은 게북으로 할 수 있는 건 눈팅이 다였다. 글은 남들 읽으라고 쓰는 것, 이라하면, 뭐 혼자 쓰고 읽을 수도 있지, 라며 건방을 떨었었다. 그런데 정말 보여줄 사람이 없게 된 후로 글을 안 썼다. 다시 꾸준하게 쓰고 있는 건, 작년 이맘때쯤 들어갔던 이쪽동아리사람들 덕분이다. 친구는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생기는 거란 말도 맞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맞다. 번번이 이쪽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게, 너무 애써서였는지, 노력이 부족해서였는지. 알았으면 잘 지내고 말았겠지. 내가 아는 건, 어디가 물이 좋고 어디는 안 좋다거나, 여기서도 적응 못하면 인권단체 가야 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농담을 들을 때, 맘이 조급해졌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말 한마디를 꺼내는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을 내리면 그 얘긴 지나가고 없고. 이제 낯선 공간에서, 먼저 말 한마디 걸어주는 게 다 고마워진다. 누굴 알고 동아리에 간 것도 아니었는데, 나한텐 처음으로 환영받았다고 느낀 이쪽모임이었다. 내가 했던 노력은 거길 찾아간 것뿐이었다.
얼마 전 동아리생활을 마무리했고, 사람들은 마지막 인사차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아쉽다, 또 보자, 하는 흔한 말들이었는데. 엉뚱하게도 그게, 사람들 속에 있구나, 느끼게 했다. 말이 뭐가 됐든,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가끔 게북에 공유한 글들이 너무 길어 읽지 않고 반응을 주는 동아리 팀원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은 같았던 이유다. 물론 내게 상냥했던 이 동아리가 누군가에겐 큰 어려움이었을 거고, 내가 곤란해했던 공간이 누군가에겐 이 동아리 같은 곳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들었던 모진 농담?에 쉽게 쩔쩔맸던 건, 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기 때문일 거고.
정말 창피한 건 말로 꺼내는 게 주저될 정도로 창피한 것들이다. 내가 커밍아웃한 일반은 몇 명인지 셀 수도 없는데, 꼭 모여 있는 게이들을 상상하면 날 비웃을 것만 같았다. 게이들하고 지내겠다고 애쓰다가, 살면서 처음 말수 없는 사람이 된 걸, 일반친구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거다. 게이인데 게이들 사이에서 부자연스러워지는 게 맘에 들지 않기도 했다. 사실 동아리 사람들과 둘도 없이 친해져 날이면 날마다 파티를 하고 사진찍어 올리는 사이가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같은 게이들 사이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인터넷으로 넘어다보기만 하며 부러워했던 시간을 이제 말할 수 있다.
게이바에서 동아리 공연을 했었다. 아 여기가 그 게이바구나... 그날 한사코 끼스런 옷을 안 입겠다던 내게, 동아리 형이 어휴 너도 정말 ‘소녀’다, 했는데, 정곡을 찌르는 말에 뜨끔했었다. 좀 부끄럽기도 했고. 그 날은 결국 고집대로 했지만, 나도 팔리든 말든 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를 그럴 듯하게 내보이는 데 뭐 하나 득될 것 없는 이야기인데도.
(사진_ji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