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7일 일요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름이라는 계절은 사람을 지치게도 만들지만, 묘한 흥분을 안겨다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게이들의 인권 모임이라는 친구사이 사무실 전화번호를 거침없이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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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신아산빌딩 3층에 자리 잡은 친구사이 사무실.
똑똑똑… 가슴이 떨리기도 하지만, 왠지 침착해진다.
게이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나도 게이면서…. 웃기다….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테이블 위에 낙서장이라고 적혀있는 노트가 눈에 띈다. 조심조심 한 장 한 장씩 넘겨보는 나. 도둑질하는 것처럼 가슴이 떨린다. 가슴에 와 닿는 글도 있지만, 끼가 넘치는 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문화적 충격의 시작…. ‘컬쳐 샥’이다.
조금 있자, 상담원이 캔으로 된 포도주스를 달랑 한 개만 사가지고 들어온다. 나 혼자 먹기가 좀 그렇다.
상담원 : 일요일에는 원래 상담원이 없습니다.^^
갈라 : 그럼 오늘은…?
상담원 : 아~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일하러 사무실에 잠깐 들렀습니다. 운이 좋으시군요. 허허허.
조금 있자 세 명의 무리들이 와락 사무실로 들어온다. 영화를 보러 종로에 나왔다가 잠깐 들렀다고 한다.
시끄럽다.
끼를 떨고 있다는 것을 그땐 전혀 몰랐기 때문에 무척 당황스럽다. 나를 보고 아무 거리낌 없이 이것저것을 묻는다. 무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보고 무례하다고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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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해 겨울.
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진다. 3명씩 조를 짜서 활동 후원금 모금함을 들고 종로 거리로 나선다. 지하의 어느 게이바에 도착한 우리조는 들어서지도 못하고 괄시를 당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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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눈물이 핑 하고 돈다.
서럽다. 분하다.
왜 이다지도 어려운 걸까. 나와 게이들이 삶이.
그날 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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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이 흐른 지금…
나 자신이 많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문득 해본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게 되고, 사고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곤 하는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특히나 이런 사고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친구사이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얻었다.
친구사이 활동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는, 용기와 인내와 격려가 밀려와도 이내 주저앉고 싶은, 그래서 포기하게 되기도 하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 이다. 변질되지 않고 변화 할 수 있는, 그런 삶이 그저 부럽고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은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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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는 열린 사고와 진취적인 행동에서 오는 화려함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내 삶에 더할 나위없는 보탬과 기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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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종로의 밤거리는 이렇게 열어젖힌 활기로 가득 차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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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 어머~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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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입니다. 친구사이의 ‘맏언니’(라고 썼더니 옆에서는 ‘마담’이라고 해야 한다고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만 써도 갈라 언니에게 ‘너 커서 뭐 될래?’라며 혼난다. 젊은 언니라고 해 두자.)급으로 동생들을 다독거려주는 회원이자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게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