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반이라는 단어를 언제 처음 알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내 중학교 시절은 무관심과 어둠뿐이었고, 고등학교에서는 여자를 보며 느끼는 감정들에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었다. 항상 스스로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하던, 그리고 평범함만을 추구하던 나에게 다가온 이 혼란은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처음 접해 보게 된 커뮤니티는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평범하고 편안했다. 올라와 있는 여러 글들을 읽어보고, 생소한 단어들도 하나 둘 알아가고, 그 사람들이 나와 전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내 안에 녹아들었을 때, 힘들고 전혀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스스로 이반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진 것 같다.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들이 하나 둘 생겼고, 지금까지도 날 살짝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반에, 포비아적인 그녀에게 받은 상처를 그 공간에서는 위로 받을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심적 편안함을 즐기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내 마음이 안정이 되었을 때 가장 친하다 하는 친구에게 긴장하며 슬쩍 말을 했는데 내 우려와 다르게 그럴 것 같았다고 하며 날 토닥여 주는 그 친구가 정말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무엇이든지 처음만 잘 넘기면 내 안에서 작은 용기가 피어남을 느끼고는 한 명 또 한 명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고, 처음 그 친구와 같이 그들은 내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게이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굉장히 먼 곳에 살고 있는 친구였는데 나이는 나보다 몇 살이나 아래였지만 참 성숙하고 말이 잘 통했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그런 친구였다. 사실 게이와 레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 게이친구와의 만남은 또, 한 번 시야를 넓혀 줄 수 있었다. 고맙게도 내안에 얇게 자리 잡고 있던 또 하나의 선입관을 지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힘든 일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 일들은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나는 확실히 그때보다는 조금 스스로 당당하게 ‘이반이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까지 나와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들을 보낼 테지만 그들 또한 언젠가는 당당한 모습으로 게이임을 인정 하고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나 자신일 것이다. 삶의 가치는 내가 게이이냐 아니냐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어떤 형태의 사랑을 하든, 그 자체가 편협한 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든 받지 못하든 스스로 존중해주고 스스로 당당해 진다면 행복이란 녀석도 슬쩍 곁으로 다가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