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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살친구
2003-10-30 오후 19: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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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친구'의 사전적 어원은 '남색의 대상이 되는 친구'다.

문청이거나 한때 문학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소위 '단어 노트'라는 걸 한두 번 묶어 봤을 것이다. 빈약한 언어 구사력을 보강하기 위해 사전 속의 비상용 단어들을 베껴놓은 노트.

살친구는 한 십 년 전쯤 단어노트를 만들다 사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단어였다. 오호라, 이런 게 있었군!

가끔 난 그때 그 노트에 적어놓은 '살친구'라는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다시 되살려 그 단어의 질감을 되씹곤 한다. 씹을수록 맛이 나는 단어다.

아마도 '살친구'는 개항 이후에 만들어졌을 공산이 크다. 살친구는 말 그대로 '남색의 대상이 되는 친구'를 지칭하는 대명사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근대 이전까지 한반도에서는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대명사는 존재하지 않은 걸로 보아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계간鷄姦' 혹은 여성이 동성끼리 하는 '밴대질' 같이 성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존재했다. 세종대왕 며느리 봉 씨에 관한 세종실록 기록에도 봉 씨를 비롯해 궁궐의 무수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동성간 성 행위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만, 어디에도 '동성간 성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는 없다. 물론 중국에는 고사 성어에서 비롯된 미동(美童), 연동(戀童), '면수(面首)처럼 직접적으로 '행위자'를 지칭하는 개념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널리 쓰인 것 같지도 않고, 설령 쓰인다 해도 남사당패의 '미동(美童)치기'처럼 행위를 표현하는 걸로 변형되곤 했다.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남사당패에서의 '미동치기'는 암묵적인 것으로 인정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한반도 역사에서 '동성 간 성 행위자'를 지칭하는 명사가 없는 것은 동성애의 감정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적인 성 모랄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인간을 특정 개념으로 유형화하고 분류짓는 근대성의 '에피스메테'(인식론적 지층)가 부재한 까닭이다.

서구에서도 사정은 이와 비슷해서 소년애가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에서도 '에르멘느eromenos(섹스에서 수동적 역할을 하는 자)'와 '에라스테erastes(능동적 역할을 하는 자)'처럼 항문성교를 중점으로 놓고 행위의 측면으로 사람을 갈라놓는 언어 활용이 존재했다(이해하시라, 이 놈의 자판은 그리스 문자가 적용 안되고 있음 -.-). 또한 중세에서도 소돔에 대한 중세적 편견에서 비롯된 소도미sodomy, 불가리아 지역의 이단을 지칭하다가 변형되어 사용된 버저bugger는 행위자를 단독으로 의미하기보단 '행위'의 가부를 따지기 위해 동원된 단어들이다. 실제로 소도미 범주는 매우 광범위해서 이에 속하는 행위들은, 근친상간, 임신을 겨냥하지 않은 모든 낭비의 섹스, 자위, 그리고 남색 등으로 그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우리가 최근 사용하고 있는 호모라는 단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동성애homosexuality란 말은 1860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 옥스포드 사전에 기재된 것은 1890년에 이르러서였다. 또, 성향으로서의 동성애와 행위로서의 동성애 구별은 1955년 Baily에 의해 조심스럽게 처음으로 도입된다.

호모, 라는 말의 의학적 구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20세기 초엽에 만들어진 'gay'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말들이 많다. 동남아시아 지역, 특히 태국의 전통적 단어인 '가투이', 일본의 '게이샤' 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19세기 일본 미학이 유럽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 때 '게이샤'도 폭발적인 관심을 얻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간human이 남성man을 의미하듯 남성과 여성 동성애자 둘 다를 포함하는 'gay'라는 모호한 단어에 반기를 든 여성 동성애자들이 그리스 외곽의 레스보스 섬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차용한다.

어쨌거나 사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살친구'는 '남색의 대상이 되는 행위자'를 지칭하는 근대적 대명사이며 그리 역사가 길지 않은 개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살친구'에는 가부장제 속성이 슬며시 스며들어 있다. 왜 하필 '남색의 대상이 되는 수동적 행위자'를 지칭하는 단어만 존재할까? 능동적 행위자는 어디 갔을까?

최근에서야 우리는 바텀이네 탑이네, 부취네 팸이네 하며 역할을 굳이 구분하여 행위자를 지칭하는 외래어들을 남발하면서 사용하고 있지만, 개항 이후에 슬며시 한반도에서 자생한 이 '살친구'의 짝패는 어디로 간 걸까?

시선을 동남아 쪽으로 돌려보자.
동남아와 인도에서도 '가투이', '조가빠'처럼 수동적 역할을 하는 행위자들의 이름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곧 가부장제와 동성애가 기묘하게 타협하는 지점인데, 태국의 '가투이'와 인도 사원 주변의 '조가빠'는 비록 경멸의 눈초리를 받긴 했지만 半공개적으로 매춘을 하거나 유혹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고, '수동적인 역할'만 아니라면 결혼을 했든 결혼을 하지 않았던 '일반 남성'은 가투이와 조가빠와 섹스를 해도 지탄을 받지 않거니와 특별한 시선으로 범주화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태국에서 이와 같은 구분은 아직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섹스 관광 지역 안에 남창들이 버젓이 명함을 내밀고 영업할 수 있는 원인의 한 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역시나 우리네 '살친구'의 짝패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호모라는 단어로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두 다를 포함해 비아냥거리기 시작한 것은 6.25 남북전쟁 이후였다. 그렇다면 개항 이후와 6.25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이 '살친구'라는 개념은 생명을 부지했다가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마치 반쪽짜리 근대성을 상징하듯, 살친구는 그렇게 쉽게 단명하고 말았다.


[200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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