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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들
2004-02-08 오후 21: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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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8 Femmes
감독 : 프랑스와 오종
배우 : 카트린느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뉘엘 베아르
개봉 : 2003년 2월 예정



2002년 베를린영화제의 최대의 화제작을 꼽으라 한다면 프랑스와 오종의 '8명의 여인들'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만 하더라도 금세 눈이 휘둥그레질 판이다. 카트린느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누엘 베아르 등 정말로 쟁쟁한 최고 여배우들이 총출연한 이례적인 캐스팅이었으니. 거기다가 '머리 끄댕이' 쌈박질을 하던 카트린느가 남편의 여동생과 갑자기 뜨거운 키스를 하거나 품위는 온데간데 없이 완전히 망가진 이자벨 위페르가 코믹하게 눈을 깜박이는데는 여느 관객이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야말로 몇 십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스타들의 총천연색 야단법석이다. 게다가 '사랑은 비를 타고'의 전형적인 미국식 뮤지컬이 아니라 프랑스와 오종의 특별난 재주인 뜬금없는 뮤지컬의 맛이 독특하게 첨가된 이 기묘한 뮤지컬 영화는 코메디, 미스터리, 신파를 골고루 섞어 우리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붙잡아 두고 있다.

프랑스와 오종은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의 연극, 'Huit Femmes'를 각색해서 부르조아 가족 안에 매장당한 섹슈얼리티, 계급, 여성들의 연대를 날카롭게 해부하는데 주력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 가부장 남편이 살해당하고, 그에 딸려 있던 8명의 여자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좌충우돌하는 사이 가려져 있던 진실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씩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도발적이지 않다. 아니 적어도 기존에 프랑스와 오종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핵으로 내장된 오종의 시선이 밋밋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흑인 하녀와 고모의 레즈비언적 관계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카트린느와 고모의 키스는 폭소를 자아내 그 의미가 되려 빛바랜 것처럼 보이며, 의붓 아버지의 애를 밴 큰 딸 수종의 이야기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조금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프랑스와 오종이 자주 사용하는 반전들은 이미 눈에 익어 몇 커트 이상 예상가능할 정도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이제 그의 영화 언어에서 '도발'이라는 수사를 제거해야하는지 조심스럽게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난 이 영화가 좋다. 특히나 이자벨 위페르의 뮤지컬 장면은 최근 본 어떤 비쥬얼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고, 아름다운 화면들 속에서 반짝이는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체증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2003-01-18

오래 전에 쓴 글입니다. 전 영화제에서 봤습니다만, 참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기 어렵네요. 이번에 세 번째로 개봉 시도가 되고 있는 건데,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되면서 또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4-08 20:1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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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2004-04-09 오전 03:03

1. 영화
영화의 줄거리는 일견 추리영화의 외양을 띤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가? 하지만 영화는 범인을 찾는 데에 별 관심이 없다. 아무도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고, 누구도 아버지를 죽일 수 있었다. (얼굴도 대사도 없는 아버지. 그의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야기는 허구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숨겨져 있던 구성원(8명의 여인들)간의 관계, 욕망의 작대기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영화평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와중에 동성애와 근친상간적인 요소가 ‘프랑스와 오종’ 영화답게 들어갔다고 평하였지만, 동성애를 실현시키려는 욕망을 가리는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허구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영화의 주 내용에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했다.

2. 아버지라는 허구의 쇠사슬: 쇠사슬을 차고 춤을 추다
내용을 이끌어가는 동기는 아버지와 그의 돈(힘)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질투와 반목, 갈등이다. 그리고 그 질투와 갈등은 동성애를 실현시키기 위한 욕망으로 인해 추동된다.
극 초반 모든 여인들 간의 관계를 묶어주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이다.(흔히 가장이라고 불리는) 아버지의 부인, 아버지의 동생, 아버지의 딸, 아버지의 정부 등등.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정리할 수 있다. 흔히 아버지는 가족 성원들에 대해 강제력을 지니며, 가족을 지배한다고 말해진다. -처음부터 아버지는 막내딸 ‘카트린느’(귀여운 '뤼드빅 사그니어'분)의 노래에 의해 조롱의 대상이 된다.(아버지는 틀렸어요. 온 가족이 함께, 신나게)- 가부장제 가족의 시스템은 이 틀을 넘어서는 동시에 이러한 틀을 문제시하는 욕망의 여러 형태들을 미리부터 배제한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망의 형태들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된다. 아버지의 부인도, 동생도, 딸도, 하녀도 모두들 그의 사랑을 놓고 싸우는 듯. 하지만 사실은 곧 드러난다.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 욕망의 형태들을 말로 표현하자면 얼마나 복잡한지. ‘게비’는 ‘피에르트’를, ‘샤넬’도 ‘피에르트’를, ‘카트린느’는 ‘스종’을, ‘루이즈’는 ‘게비’를. 또 등등. 또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상의 다양한 형태로) 8명의 여인들은 아버지라는 허구의 쇠사슬을 차고 신나게 춤을 춘다. 노래하며, 엉덩이를 씰룩하며.

3. ‘어거스틴’ 이모
‘오거스틴’ 이모는 극중 가장 극적인 캐릭터 중의 하나이다. 그녀 욕망의 방향은 마지막까지 혼란스럽다. 초반 B사감 이미지로 묘사되는 그녀는 극 중반 돌연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안경을 벗는다. 히스테리도 사라진다. 왜일까? 그녀 행동 변화의 동기는 무엇일까?
변화 이전의 ‘오거스틴’의 행동은 쉽게 설명된다.(상투적인 단어들로) 그녀는 ‘마르셀’(말하자면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고, ‘게비’에 질투한다.(돈을 비롯한 이유 등등으로) 그녀의 감정은 대체로 이렇다: 나는 그 여자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에게 내 자리를 양보했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그녀는 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욕망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의 자기애-이기적인 욕망-을 약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애... 규범적 이성애 사회에서 자기동일화 과정은 이원적인 틀을 넘어서는 자기동일화와 욕망의 복잡한 교차형태들을 미리부터 배제한다. 이곳에서 히스테리로 이름 붙여진 ‘오거스틴’의 반응.)
‘오거스틴’의 변화를 둘러싼 사건. 외할머니(말하자면 ‘오거스틴’의 어머니)가 할아버지(‘오거스틴’의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알게 된다. ‘루이즈’(하녀)의 노래를 듣는다.(영화에서 노래 부분은 대체로 진심이었다. ‘오거스틴’의 변화 즈음에 ‘루이즈’도 하녀 역할을 그만두고 더욱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진다.) ‘오거스틴’ 욕망의 방향은? 영화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사실상 ‘무’이고,(그는 없는 존재이다. 모두에게 처음부터. 그는 모든 영화의 내용에서 배재된다.) 그를 향하는 욕망의 작대기가 사실은 모두 다른 욕망을 가리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녀가 ‘마르셀’을 욕망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결론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그녀 행동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오거스틴’ 변화의 결정적 요소가 무엇인지는 고민되는 부분이다.(뭐라고 생각하세요?) 별도로 영화 도중에 우연히 옆 사람의 중얼거림을 들었는데. 꾸미고 나오는 ‘오거스틴’을 보며, ‘잰 또 왜 저래? 남자도 없으면서.’ 응. 그랬던 것이다.

4. Fin: 마지막 장면. 아버지의 죽음이 새삼 밝혀지고, 외할머니는 그를 동정하는 노래를 하지만, 그야말로 동정. 슬픔이나 아쉬움 따위가 아니다. 처음 그를 둘러싸고 가족간의 갈등이 밝혀지는 듯 했던 영화는 그가 없이 다른 8명의 가족이 다정히 손을 잡으며 끝난다. 어쨌거나 해피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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