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엔 그랬다. 2월 말쯤, 친구사이에선 게이 키스 시위대를 조직할 계획이었다. 집회 신고가 가능한 곳, 그곳이 국회 앞이든 청보위 앞이든 또는 국세청 앞이든, 다른 동성애자 인권 단체와 함께 게이 키스 시위를 벌일 참이었다.
그 계획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소란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렇지! 퀴어스러움까지를 동반한 즐거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적잖은 친구사이 회원들이 동의하고 나섰다. 그리고 우리가 벌일 그 뻔뻔한되 괜스레 詩적인 체 할 키스 시위 위로 남실댈 피켓에 이렇게 적을 생각이었다.
"청소년시행령, 동성애 조항 삭제하라!"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부정도 모자라 동성애까지 유해한 성적 지향으로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시행령은 청소년을 볼모 삼아 청소년의 정체성을 난도질하는, 아울러 우리의 표현의 자유과 행복추구권에 위배되는 명백한 위헌의 조잡한 프로파간다였다.
2003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시행령에서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하고, 지난 엑스존 행정소송에서 재판부가 위헌 소지가 있음을 지적한 후 청보위는 결국 청소년시행령개정안의 '동성애 삭제'에 관한 입법을 예고했다.
환영한다. 그리고 지지한다.
국민일보 등의 보수 언론이 삐딱각을 세우고 한기총 등 보수적인 종교 단체 등에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조짐이 보이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그간 동성애자 시민들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박탈하던 당신들의 프로파간다를 조용히 거둬들일 순간인 것이다.
모름지기 이것은 쾌거다.
그간 3년 여 동안 지칠 줄 모르고 싸워왔던 엑스존 운영자를 위시한 동성애자들의 노고가 빚어낸 빛나는 성과일 것이다. 동성애를 불법의 영역으로 추방하려했던 법 조항 하나가 영구삭제되는 것이며, 이는 다른 영역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소년과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링크시켜 동성애를 불법화하던 다른 나라의 전사前史에 비추어봤을 때도 이는 값진 쾌거임이 분명할 터다. 아니나다를까, 청보위의 입법 예고가 나간 이후 남한의 거의 모든 언론들은 일제히 그 독소 조항의 부고를 서둘러 돌렸다.
그 동안 힘들게 싸워왔던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그들 모두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다.
물론 아직은 예고다. 2월 23일까지 단체, 개인의 의견을 거쳐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2004년 4월부터 '동성애' 조항이 삭제될 것이라 한다. 그사이 한기총 등의 보수 단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시위를 벌일 공산이 큰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벌일 예정이었던 키스 시위에 관한 야릇한 열기, 길거리에서 쪽쪽거리며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였을 그 붉은 볼의 열정만 간직하고 있다면, 언제든 그런 악법이 귀환한다해도 언제든 키스원정대를 꾸릴 것이라 믿는다. 게이 키스 시위대는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