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에 세상을 향해 포문을 열어젖혔던 버디는 한국 동성애자의 눈이 되고 귀가 되려 했습니다. 지난 5년간 출판사의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발간되어왔던 버디가 결국 2003년 겨울 24호를 마지막으로 종간을 선언했습니다.
오프라인의 종이 잡지 폐간이 인터넷 시대의 쓸쓸한 뒷풍경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버디 초창기 편집위원이었다는 개인적인 회한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동성애자의 한 명으로서 버디 폐간에 부친 아쉬움과 그 고단한 노고에 대한 경의는 여러분 모두 느끼실 거라 믿습니다. 모쪼록 더욱 활성화된 인터넷 잡지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버디 종간에 부친 편집장의 말에서 발췌했습니다.
1998년 2월 20일, <버디>는 한국 최초의 동성애 전문 잡지로 태어났습니다. 자본금 단돈 300만원으로 시작한 말도 안 될 만큼 열악한 시작이었지만 동성애자들에겐 자긍심과 정보를 주고 소외 받은 커뮤니티 역사의 기록자로서, 이성애자들과의 편견 없는 소통을 잇는 다리 역할로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왔습니다. 당시 PC 통신과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발하지도 대중적이지도 않았던 시절, <버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에 공식적인 출판물로서 동성애 잡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1998년도의 <버디>의 탄생은 분명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변화를 몰고 오는 계기였습니다.
<버디>의 활동은 출판 작업에만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이든 달려가 차별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 했고, 글을 썼고,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동성애자 단체의 연대를 모색하고, 문화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버디>였고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하게 했던 근본은 종이책 <버디>였습니다.
이제 그 종이책 <버디>가 종간을 선언합니다. 월간지로 시작해 계간지로 바뀌었다가 한때는 연간지도 되었다가 다시 계간지로 정착하기 위해 새로운 편집위원과 편집 체계를 보강하기도 했습니다. <버디>는 항상 잠시의 휴간은 있을지언정 폐간은 없을 거라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이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디>는 힘든 여건과 고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중도에 버리고 '포기'하게 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2004년입니다. 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들이 변화했습니다. 한국은 인터넷 중심의 사회로 변화했고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동성애 관련 서적을 사서 집으로 들고 가기를 어려워합니다.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여건과 너무나 변해버린 분위기 사이에서 <버디>는 처음 품었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보다 진지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종이책 <버디>를 접어야 함을 깨닫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국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동성애자들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빠르게 한 눈에 알아보고 싶다면 24권의 <버디>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 <버디>의 자부심입니다. 언젠가 지하철 가판대에 시사 주간지들과 함께 나란히 동성애 잡지도 놓일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 다시 <버디>가 복간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버디> 종간호를 냅니다.
종이책으로서의 <버디>는 이것으로 끝나지만 <버디>의 정신과 가치와 목표를 계속 새로운 길로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 길 역시 순탄한 항해가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버디>는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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