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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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다'는 화제가 되고 있는 시사 상황을, 친구사이 회원을 중심으로 한 퀴어의 시각으로 짚어보는 칼럼입니다.
존재의 이유
군 시절 인기 있던 노래들은 참 많았다. 군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예쁘거나 섹시한 여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이 주로 인기를 끌었는데 그 중 특이하게도 김종환이라는 가수가 부른 ‘존재의 이유’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부속품처럼 취급되는 군대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게 이 노래가 히트한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발족하고 초창기 때, 한 달에 한번 소식지를 만들어 게이바 등에 뿌렸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많은 게이들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한다. 예전에는 남자 둘이 여관엘 들어가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렇게 자꾸 들쑤시면(?) 게이들의 존재가 들어나 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좀 지났지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송창의(극중 태섭)가 집에 커밍아웃하는 장면이 종로 커뮤니티에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게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제 맘 놓고 어머니랑 TV도 못 보겠다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사이’가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내용을 요약하자면 4명의 게이가 어려운 과정인 커밍아웃을 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이다. 즉 스크린에 나오는 행위 자체가 커밍아웃을 ‘하고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게이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권으로 이야기되는 시대이다. 지난 몇 십 년이 그래왔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이 그럴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최대한 빨리 누구나 주변의 ‘게이’에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날이 오는 게 되겠지만 그런 날은 앉아서 기다린다고 저절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방심하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린 요새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활동을 마땅히 지지해줘야 하는 게이들이 불편함을 호소할 때면 잠시 황망해진다. 존재하는 우리를 존재한다고 말하는 게 불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무지개 그늘에 안주하며 햇볕이 내게 오기를 바라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일 거다.
그늘과 햇볕 사이는 바로 한걸음 차이다. 그 한걸음의 용기가 자신의 상황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