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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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아르바이트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운영위원회의 참여 권고 전화를 받은 것은. 나이도 어리고 활동 경력도 얼마 안 되는 내가 운영위원회의 같은 자리에 앉아있어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 친구사이에서 누린 것은 많은 데 도움 준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열심히 활동하자는 생각은 했지만 총무라는 직함은 내게 너무 무거운 직함이었다. 일감을 줄여주셨다고 하셨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운영위원회의 참여는 내게 약간의 부담이었다.
2월 17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약간 늦은 시간에 사무실 문을 여니 운영위원들이 모여 열띠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곧 다가올 후원의 밤 행사와 사무실 확장 이전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할 말도 많고 시간도 오래걸린 회의였다. 각자가 맡은 분야에 대해,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주고받으며 계획을 짜고 세부사항을 조율했다. 특히 상담게시판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 성 정체성으로부터의 혼란 때문에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여러 사례를 듣고 담당자의 고충을 들을 때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일인지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집단이 행동할 의의를 갖게 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는 많은 이들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변방의 굴레에 갇힌 남성 동성애자로써 활동의 터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의 수고는 오죽했을까. 내가 참여했던 운영위원회의에는 이 단체와 생고락(존속되고 있으니 ‘사’는 빼기로 한다)을 함께한 형들과 한참 뒤에 뛰어든 회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늦게 가서 이야기를 따라가야 했던 이유도 있지만 이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프로그램을 짜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광경이었다. 그들은 모두 게이로써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수많은 역경들과 부대끼면서 투쟁하고 있었다. 단체를 위한 행동이지만 곧 스스로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움직임과 노력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게이 프라이드’라는 싹이 자라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향유만 할 때는 몰랐던, 이 단체를 지탱하기 위해 힘쓰는 운영위원과 다른 여러 회원들의 모습에서 주제넘게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고나 할까. 아직은 어리고 미숙하고 생각 없는 회원이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성숙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물론 그 전에 지난 달 입,출금 정산부터 제대로 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