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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23호][참관기] 공연 '이야기 해주세요'
2012-05-10 오전 10: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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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 

[참관기] 공연 '이야기 해주세요'

 

샌더 (소식지 팀)

 

이날은 한국의 일부 기독교계가 동성애 전도사로 둔갑시켜버린 레이디가가의 내한공연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지_보이스 단원인 나는 사실, 레이디가가와 그의 퍼포먼스를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다.
  나는 이 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 모금 공연, 이야기 해주세요'의 공연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나는 서둘러 피부 톤을 정돈해줄 비비크림을 바르고, 명색이 미술전공자라는 장점도 살려야겠기에 입체적인 얼굴 표현을 위한 하이라이트 메이크업도 했다. 그리고는 공연 때 입을 망사의상의 신경쓰여, 생존에 필요한 정도 외에는 있지도 않은 숨겨진 근육을 찾겠노라며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벅차게 해댔다. 프로뮤지션들 사이에 선다는 사실 자체가 적잖이 압박이었기에 계속해서 노래와 가사를 외우고, 안무 순서를 외우기 위해 연습을 했다. 그렇게 대기하다가 곧 지_보이스의 순서가 되었고,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너그러운 관객들의 좋은 반응에 안도했다. 조금씩 우리들의 영역을 넓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분도 좋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소식지에 실을 공연참관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고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홍대 여신들이라 불리우는 뮤지션들과 공연을 치르고, 무탈하게 레이디가가도 영접하고 온 마당인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다. 그것이 이 참관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반성문이 되어버린 이유이다.

  그것은 바로, 여성뮤지션들의 컴필레이션 앨범 제작을 위한 모금 공연 '이야기 해주세요'의 진짜 주인공들이다. 이 공연은 공연에 참여한 여성 뮤지션들도, 그리고 지_보이스도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공연이다. 나는 이 공연이 어떤 공연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감동하거나 그 정황들을 살피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의 콧날이 더 오똑해보이길 원했고, 나의 똥배에 실낱같이 희미한 복근의 존재가 더 드러나길 바랐다.
  지금은 고령이 되어버린 피해 여성들은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뱃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직접 꺼내는 경험을 해야했고, 초경을 시작하기도 전에 남성들의 성노예가 되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모두들 분개하고, 그 상처와 피해에 동감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이든 채 살아있는 연약한 증인들은 하나 둘씩 줄어들고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을 공연 당시에 느꼈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미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수 없이 해냈다. 내가 반성하는 것은 나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나의 이 감정은 나의 노래에 앞서 그들의 고통을 먼저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때늦은 후회이고, 좋은 일에 동참했다며 내심 뿌듯해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두서 없이 이대로 산으로 갈 것 같은 나의 참관기를 서둘러 정리하자면, 나의 개인적인 부끄러움과 관계없이, 지_보이스는 조금씩 게이들만을 위한 위로에서 벗어나 세상을 위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집단에서 노래를 하는 나는 우리의 위로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그들의 고통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이야기 해주세요' 공연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지_보이스에서 노래한지도 벌써 4년인데 나의 깨달음은 어째서 이리 늦단 말인가. 하지만 불쌍한 이 영혼에 대한 자책에 앞서, 조금 더딘 성장이라도 늦게나마 이해의 중요성을 깨달은 스스로를 토닥이면서, 그리고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지_보이스에 감사를 전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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