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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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의 서른
디오
삶에서 서른은 조금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 청춘을 대표하는 20대가 끝났기 때문일까? 서른이 되면, 젊음이라는 특권은 사라지는 것 같고, 책임감만 늘어나는 것 같다. 숫자가 그저 1 더해졌을 뿐인데,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인데, 세상은 나를 다르게 보게 되는 나이. 세상이 그렇게도 곱씹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온다.
한 사람의 삶에서 서른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하는데, 성소수자로서, 게이로서의 서른은 더욱 특별한 것일까? 서른 살의 게이가 되는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요청이 왔을 때, 나는 좀 난감했다. 여태 서른이 된다는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었기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서른이 되면, 대체 나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 걸까?
[ 이제 다시 미칠 시기... ]
게이의 서른
게이, 서른. 바쁜 성생활을 영위하는 20대 게이들에게, 서른은 곧잘, 지금까지의 삶과 단절을 선언하는 마일스톤이 되는 듯 하다. 막연하게 서른 쯤 되면, 안정적인 사회생활과 동시에 안정적인 성생활로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 혹은 선언.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느 것도 안정될거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도 지금의 생활이 지속해야하는 이상적인 형태는 아니니, 서른이 되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 것이라는 막연한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같은 케이스도 있다.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겨우 정체성을 받아들여 데뷔를 하였는데, 마음은 20대 초반인 마냥 사람 만나기가 무서워 가뭄에 콩 나듯이 종로에 방문하곤 했다. 얼떨결에 시작된 100일간의 첫 연애를 통해서 게이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배웠으나, 이별 후에도 종로는 여전히 불편하고 삶은 방황하고 있었다. 정신차려보니 27살이 되어 있었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박함에 한발 내민 친구사이와 지보이스가 지금의 애인을 만들어주었다. 2년 반동안 신나게 연애하고 배우다보니 벌써 서른. 어헛! 나의 20대는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20대에서 반성할 거리도 찾지 못한 채, 멋지게 변할 30대의 삶을 기대할 여유도 없는 채로, 서른은 덜컥 내 앞에 와 있는 것이다.
10년 단위 연말정산
10진수의 세상에 살다보니, 스물, 서른, 마흔... 이렇게 10년마다 이전 삶에 대한 정산의 시기가 온다. 단순히 숫자 변화에 불과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는 "계기"는 될 수 있다. 이제 다음 10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한번 생각해보자. 나의 이전 10년이 다음 10년을 어떻게 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난 10년을 서투르지만 충실하게 살아온 것이다. 후회도 좋고, 만족도 좋다. 다음 10년에 대하여 기대할 거리를 줄 수 있는 지금을 살고 있다면, 그래도 인생을 충실히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겨우 5분의 1만 남아버린 나의 20대 게이 생활을 아쉬워하며 서른을 맞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