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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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7
브라네 모제티치, 마야 카스텔리츠, <첫사랑>
"읽은티"는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갖는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독서 모임 후기를
매월 친구사이 소식지에 기고하는 연재 기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이님의 감상>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걸 처음 발견했을 때는 중학생 때였고, 인정하기로 한 때는 대학생 때였습니다. 고등학생 때도 그 느린 인터넷 속도를 극복하고 해외 게이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무료 클립을 다운로드하느라 바빴지만, 나의 이 성향이 그저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 겪고 지나가는 무엇일 것이라고 믿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대학을 가고 군대까지 다녀오면서 저는 바뀔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거의 6년에 걸쳐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나를 그대로 긍정하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소극적으로나마 세상을 향해 나를 긍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좀 더 당당해지고 싶습니다. 그 때까지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걸 처음 발견한 건 남자 애와 섹스하는 꿈을 꾸고 몽정했을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 남자 애들에게 가졌던 호감은 사실 누구나 우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제가 남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소위 야한(?) 컨텐츠를 볼 때에도 남자 없이 여자만 있을 때는 별로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컨텐츠는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나오는 영상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만 나오는 영상을 힘들게 찾아보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요.
그 때 느낌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어떤 문제의 답을 찾은 명쾌함이 있었지만, 그 동안 저조차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놀렸던 '게이'가 바로 저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성교육 시간에 '사춘기에는 잠깐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저 나도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안심했습니다. 누가 나의 이런 성향을 혹시라도 알게 되면, 사춘기라서 잠깐 지나가는 게 아니겠냐고 말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내 인생을 뒤흔들 만큼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자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자위하면서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터넷이 제법 커졌을 시절입니다. 저는 이 정보 저 정보를 찾아다니면서 알았습니다. '사춘기에 잠깐 지나가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2학년이 되어도 3학년이 되어도 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만나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 넌 남자도 만나보지 못했잖아.' 저는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이 게이를 놀리고, 여성스러운 친구들을 왕따 시키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교육 시간에 여전히 같은 말만 들었지만, 이 애들과 성교육 수업을 만드는 훨씬 더 많이 배운 어른들은 인터넷 검색을 할 줄 알았습니다. 게이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관심만 있다면 말이죠. 이 세상이 원래 이런 세상이고, 나는 더 감추고 부정해야 놀림받거나 왕따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치료'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감추고 부정하는 일은 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 순간 긴장하고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 시절 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것들은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이런 성향을 드러내고 조언을 구해 볼 엄두가 나는 어른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자꾸 발기가 되어 목욕탕에 가기 싫다던 저의 뺨을 때렸습니다. 너는 이상하다고 화를 내면서요. 그런 아버지에게 제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가 이번에는 어떤 곤욕을 치르게 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에게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언제나 무조건 아들이나 손자 편을 들어주셨지만, 조선시대부터 살아오신 분이 하실 말씀이야 눈에 훤했으니까요. 어머니는 무서웠습니다. 어릴 때 절 목욕시켜주다 때를 덜 불리고 생살을 밀려 아파서 우는 저를 알몸인 체 집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와 비슷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무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고민을 말하겠어요. 서로가 사춘기라서 누나와도 사이가 서먹했습니다. 누구와도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남은 건 친구뿐이었어요.
어느 날 같이 학원을 땡땡이 친 친한 친구에게 내가 혹시 남자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나를 좋아하지만 않는다면.' 그냥 뭐 동경 같은 건가보다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 뒤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를 영원히 속이기로 했습니다. 죄책감이 종종 저를 괴롭혔습니다.
안타깝게도, 대학이나 군대에서도 저는 '치료'되지 않았고, 더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숨기는 법을 더 훈련했습니다. 처음엔 능숙하지 않았지만, 갈수록 무덤덤해졌습니다. 여성스러운 점도 많이 고쳤습니다. 가끔 숨기지 못하고 끼가 조금 드러나면, 우스개로 눙치는 기술도 익혔습니다. 더 뻔뻔하게 숨겼고, 속인다는 죄책감도 옅어졌습니다. 드러나면 저는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질 게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정당방위였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살아온 저에게도 성적으로 매력을 느낀 남자들은 늘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요. 하지만 저는 고민해야했고, 감춰야했고, 속여야했습니다. 그들과 무언가 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생존이 걸린 일이었으니까요. 물론, 나이가 찼을 땐, 종종 성욕을 이기지 못해 술번개에 나가 남자들을 만났습니다. 개 중엔 잠깐 연락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서로가 오래 연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기엔 감추고 속일 것들이 서로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관계들에 염증을 느꼈습니다. 자주 보는 일반 친구들이나 학교 선배가 있었지만, 거의 매 순간을 눈치보고 연기하는 일은 아무리 능숙해져도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의외로 게이들만 모이는 모임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도 물론 잠깐 만나고 흩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나중에 동갑 친구들 모임에 나가고, 그 모임에서 사귄 친구를 통해 게이 인권 운동 단체인 친구사이에도 나갔습니다.
점차, 오래가는 관계를 맺다보니, 과거 시도하지 못했거나 짧았던 관계들은 이 관계와 어떤 것이 달랐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점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건 주변에서 들리는 목소리였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게이가 아닌 사람들처럼 사회 속에 적응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그 안에서 마음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주변에서 게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이들을 대변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물론, 어딘가에는 있었겠지요. 다만, 그 목소리가 제게 닿지 않았습니다. 혼자 꾸역꾸역 정보를 습득하고 뒤늦게 찾아 겨우 만난 게이들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갈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나 오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공허함을 겪은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좀 더 소중히 하고 진심을 다하면, 어느 새 주변이 게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찹니다. 내가 있어야할 곳을 찾았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 모임들이 서로 교류하기 시작하면 커뮤니티가 됩니다. 더 많은 게이들의 목소리가 주변을 빈틈없이 메웁니다. 일반들의 사회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모습이 되고, 구성원들은 더 오래 지속가능한 게이들의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권리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이 잘못 되었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결국 주변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은 조금씩 변합니다. 그렇게 저도 변했습니다.
물론, 게이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더 깊은 곳으로 숨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밖에 저마다 모두 다른, 셀 수 없이 많은 개인의 모습이 있겠지만, 어떻게든 주변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목소리에 게이들에게 긍정적인 목소리가 다수 섞여있었다면, 그 영향도 받았을 겁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이런 목소리의 영향력은 우리에게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가 왜 필요한지 말해줍니다.
'첫사랑'에서 작가가 표현했던 아이들의 감정은, 어쩌면 아직 말로 정의되지 않은 순수한 어떤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사랑이 사랑인지 아닌지, 어떤 관계가 정말 사랑인지를 논쟁하기 전에, 그건 그냥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책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 이야기하는 화자는 그게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화자는 그 순간들을 선생님의 목소리, 부모님의 목소리, 그런 선생님과 부모님을 만든 사회의 목소리 때문에 안타까운 결말을 맞은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억지 상황을 만들어서 억지 교훈을 전달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화자에게 잠시만 깊게 이입해보세요.
그러면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남자 둘이 서로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며, 그걸 감추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종종 눈에 보일 때, 그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동등한 법적 권리가 있는 세상이라면 말입니다. 그런 목소리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선생님과 부모님의 목소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리고 '첫사랑'의 주인공들은 어떤 모습의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어서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남자 둘이 서로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며, 그걸 감추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종종 눈에 보일 때, 그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동등한 법적 권리가 있는 세상이라면 말입니다. 이전부터 그런 목소리로 가득했던 나라였다면, 저의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저의 어린 시절들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리고 저는 지금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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