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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2019-05-31 오후 15: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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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 

 

[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4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읽은티"는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갖는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독서 모임 후기를

매월 친구사이 소식지에 기고하는 연재 기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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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기"님의 감상

 

 

1.

 

소설의 매력적인 첫 문장을 모아 정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서점에서도 언젠가부터 책의 첫 문장을 부러 소개한다. 책 또한 첫 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은 내게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첫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계기로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가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는 <그 여름>의 도입부. 길지만 꼭 인용하고 싶다. 이 한 페이지만으로도 작가 최은영의 특별한 역량을 짚어내기에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시작은 사고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이경이 수이가 찬 공에 얼굴을 맞았다. 안경테가 부러지고 코피가 날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경은 쩔쩔매는 수이와 함께 양호실과 안경점에 갔다. 고친 안경을 쓰고 수이의 얼굴을 봤을 때 이경은 처음 안경을 맞춰 썼던 때를 떠올렸다.

뿌연 갈색인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는 회색의 가느다란 줄무늬와 흰 동그라미 무늬가 있었고, 가지 위로 돋아난 이파리들은 흐리멍덩한 녹색이 아니라 여린 잎맥이 뻗어나가는 투명한 연둣빛이었다. 모든 게 또렷하게 보였지만 바닥이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때의 기분을 이경은 수이의 얼굴을 보면서 똑같이 느꼈다.

 

『내게 무해한 사람』, <그 여름>, 9p.

 

 

 

나는 이미 최은영 작가의 앞선 단편집에 수록된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 매료된 바 있다. 84년생 작가가 묵직하게 인혁당 사건을 다루고, 콩나물과 치킨에 담아내는 너절함과 시큰함에 많이 놀랐다. 첫 책을 구매하며 두고 볼 작가다 싶었는데 2년도 안되어 단편집을 새로 내었다. 독자에게 가장 고마운 작가는 이처럼 좋은 글을 성실하게 쓰는 작가가 아니겠는가.

 

여성인물간의 미묘한 관계를 저미듯 예리하게 풀어내는 최은영 작가의 감성과 문장은 미려하기 이를 데 없다. <고백>, <손길>은 작가가 성의를 다해 빚은 인물들의 내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는 이전에 확신할 수 없었던 최은영 작가의 약점을 두드러져 보이게도 한다. 남성에 대한 이해만큼은 염려스러울 정도로 빈한하다는 것이다. 공들인 여성인물에 비견될 만한 구체적인 인간으로서 남성은 그녀의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존재한다면 그는 외국인일 때 가능하다(한지와 영주, 아디치에서)-다.

 

 

2.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유일한 유의미한 남성인 공무조차 남성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무는 ‘남성성’의 희생자로 ‘남성성’은 주변의 기계적 인물들에게 철저히 외주화 되기에 그 이름만큼이나 창백하고 파리하다. ‘남성성’은 공무를 억압하는 아버지와 형에게 있으며, 모래한테 집착하는 모래의 나이든 남자친구에게 있다. 이 두 인물군은 아침드라마에 올리기도 민망할 만큼 전형적이며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피상적이다. 작가에게 남성은 충분히 고민되지 않는다. 단편집의 여러 작품에서 여성의 불행은 무의미하고 무성의한 남성에 의해 비롯되는데 지나치게 편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 여름>에서 수이의 삶은 익명의 남중생에 의해 전환되고, <지나가는 밤>에서 주희보다 열두 살 많은 남자친구는 초장부터 결혼식을 생략하며 주희의 불행을 예고한다. 이러한 남성인물들은 어떠한 배경이나 설명 없이 악의적이며 손쉽다.

 

그 절정은 <601, 602>이다. 이는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혐오의 실천이며 조장이다. 토악질이 일어 읽기 극도로 거북하였다. 오빠가 여동생을 무조건적으로 구타하고 이를 용인하는 부모를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여성을 살해하거나 피해자의 신분으로 놓는 소설의 클리셰가 편의적이라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 인물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작가가 보다 많은 남성들을 마주하며 남성성에 대해 한층 나아간 문학적 성장을 도모하기를 바란다.

 

 

_________

 

 

"황이"님의 감상
 

 

저는 이 책의 제목이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어구는 실제로 이 책에 실린 다수의 작품들 중에서도 크게 부각되지 않은 "고백"이라는 작품에 딱 한 번 나옵니다. 이 어구가 누가 보기에도 "고백"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서였던가 하면, 그렇다고 쉽게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작가는 왜 하필 수록작의 제목도 아닌 이 어구를 제목으로 이 많은 이야기들을 엮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누구 하나 서로에게 무해하지 못합니다. 연인을 살뜰하게 보살피지 못하는 연인이 있고, 그래서 배신하는 연인이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섬세하게 헤아리지 못한 상태로 도우려고 하는 친구가 있고, 도우려는 선의를 무시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를 핑계로 번거로운 가족의 곁을 떠난 언니가 있고, 존재만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해 누구에게도 집중하지 못하면서 서로의 곁을 맴돌기만 하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믿었던 친구들에게 거부당한 친구가 있고, 그 친구의 부재로 어딘가 깊은 곳이 고장나 서로에게 다시 상처주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자식같던 아이를 떠난 여자가 있고, 다시 마주한 여자를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가 있습니다. 상처를 피해 도망간 곳에서 만나 곁을 내주지만, 결국 서로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에게나 완전히 무해할 수 없습니다. 나도차도 나에게 무해하지 못한 세상에서 어쩌면 그런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허황된 시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욕심을 버리고 "무해하다"는 기준을 더 관대하게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의 어떤 점은 나를 어느 정도 힘들게 하지만, 그 정도를 해롭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 어느 정도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빙빙 돌리지 않고 비유마저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문체와, 담담하게 자기를 평가하는 인물들의 감정 묘사 덕분인지, 이들이 서로를 해롭게하는 정도를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수록된 이야기들을 가만히 읽다보면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무해한 사람은 어차피 없다. 그런 건 정말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이 "내게 무해한 사람"인 이유가, 그런 거 없으니 정신 차리라는 걸로 결론 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 보다는, 좀 더 희망적인 몇 마디를 덧붙이고 싶네요.

등장 인물들이 서로에게 주는 해로움은 서로에 대한 "해롭지 않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 여름'의 연인들은 서로에게 아픈 시절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습니다. '601, 602'의 친구들은 서로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쉼터였습니다. '모래로 지은 집'의 세 친구는 한 명이 빠져도 다른 두 명이 서로 함께할 수 있고, 다시 다른 한명이 빠져도 이번엔 다른 두 명이 함께하며 살아가는 삼각 동맹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밤'의 두 자매는 생각보다 길었던 어린 시절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애틋함을 간직한 가족이었습니다. '고백'의 세 친구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에게 서로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단짝들이었습니다. '손길'의 여자와 아이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멋진 엄마,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습니다. '아치디에서'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피처에서 우연히 마주친 위안이었습니다.

 

어쩌면 본래 해롭지 않았기에 서로에게 더 해로웠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에 해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면, 그 와중에 해롭지 않은 어떤 것을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특별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등장 인물들도 알고 책을 읽는 우리도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놓친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깝고, 상처가 다시 여물지도 모르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소중합니다.

작가는 어쩌면 이 책, 그리고 제목을 통해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무해한 사람은 없다. 그런 건 정말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그러니 내게 해롭지 않은 어떤 것을 주는 사람을 놓치지 마라."

 

 

 


책읽당 참석 문의 : 7942bookpar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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