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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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3]
구금시설과 성소수자/HIV감염인 인권 토론회 참관기
2019년 12월 18일, HIV 감염인과 트랜스젠더 구금시설 수용자의 인권을 논의하는 '구금시설과 성소수자/HIV감염인 인권'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10층 배움터에서 개최되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의 발제는 총 세 순서로 구성되었다. 첫번째로 레드리본인권연대 대표 김지영 님께서 대구교도소 HIV 감염인 인권침해 및 이에 대한 국가인권위 권고 결정에 대해 다루어주셨고, 두번째로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배진교 님께서 대구구치소 성소수자 수감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해주셨다. 끝으로 세번째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인 박한희 님께서 2010년대에 있었던 구금시설 내 트랜스젠더 수용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를 발제해주셨다.
세 발제 중 두 사례가 대구교도소, 대구구치소에서 발생했던 만큼, 올해 대구는 한국퀴어운동사에 남을 법한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먼저 대구교도소에 수감된 HIV 감염인의 경우, 감염사실이 무분별하게 시설 내 인원들에게 누설되었고, 그것이 시설 내 분리수용 등 실질적인 차별로 이어졌으며, 이에 대해 시설 측이 무대응으로 일관한 상황이었다. 이에 맞서 당사자는 레드리본인권연대 측과 논의하여, 인권침해 규탄 집회 및 기자회견을 전개하고 피해 사실을 국가인권위에 진정하였다. 이에 2019년 7월 17일 국가인권위가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권고를 인용 결정하였고, 2019년 11월 법무부가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인권위 권고 결정에 따라 법무부 교정본부가 내놓은 이행 계획에 따르면, 2019년 올해까지 교정시설 수용자 정보를 다루는 '보라미시스템'을 통해, 수용자의 수번을 입력하기만 하면 당사자의 HIV 감염사실을 포함한 병력, 성적 지향 등을 시설 내 누구나 열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법무부 스스로 막대한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었던 것을 서면으로 인정한 만큼, 이번 시민사회 단체의 활동과 인권위 권고를 통해 HIV 감염인 수용자의 인권 상황이 향상되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발제 내용 중 고무적이었던 것은, 대구 지역의 감염인 당사자들이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고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이 문제에 활발히 결합하여 활동했다는 대목이었다. 또한 발제자는 국가인권위 권고가 인용된 후, 시설 내에서 운동과 샤워를 같이 할 수 있게 된 등 피해 당사자의 처우가 일부 개선되었고, 면담 당시에 실제로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는 후문을 전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시기도 한 두번째 발제자의 브리핑은 더욱 놀라웠다. 대구구치소 독거방에 수용된 게이 수감인이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며 혼거방 수용을 요구하자, 구치소 측에서 갖가지 이유로 이를 거부한 사건이었다.
먼저 구금시설의 독거수용에 대해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바로 처우상(處遇上) 독거수용과 계호상(戒護上) 독거수용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보통 구금시설 수용자들은 혼거수용보다 독거수용을 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의 독거수용은 대개 처우상 독거수용으로, 주간에는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야간에만 독거방에서 지내는 것을 뜻한다. 반면 계호상 독거수용은 주·야간을 통틀어 항시 독거방에 있거나, 다른 재소자와 분리된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구금시설 안에서 대개 징벌의 의미로 사용된다.
대구구치소 내 게이 수감인의 경우, 징벌의 의미에 준하는 이 계호상 독거수용을 당한 것은 물론, 심리적 위축을 호소해 혼거방 수용을 요구했음에도 시설 측에서 이를 거부한 이중적 문제가 있었다. 발제자에 따르면, 구치소 측에서 피해자에게 정신병원에서 지급되는 신경안정제를 먹으라고 수차례 강요했다고 한다. 또한 이 사실에 대해 인권단체가 항의하자, 구치소장은 “혼거방에 수감하면 다른 제소자들이 그를 폭행할 수도 있고, 그가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으며, 그가 혹여나 자살하지 않게 하기 위해 CCTV가 설치된 독거방에 수감하여 그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성소수자를 '정신질환자'나 '자살할 것 같은 자', '성폭력 가해자'로 치환시키는 형태는 다소간 귀에 익은 형태였으나, '성폭력 피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분리수용이 필요하다는 변명은 일견 생소한 것이었고, 이는 그것대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낙인이었다. 더불어 발제자는 발표 막바지에 다음과 같이 당부했는데,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해서는 진전된 합의 내용을 가진 반면, '시설수용자 인권'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합의가 미진한 것이 아닌지 우려되고, 이에 대한 담론 형성이 절실함을 재차 강조했다.
끝으로 트랜스젠더 수용자 인권침해를 다룬 발제가 이어졌다. 먼저 앞서 언급되었던 HIV 감염인에 대한 계호상 독거수용의 피해와 유사한 형태로, 트랜스젠더 여성 수감인이 이발을 거부하였다 이와 같은 징벌을 받은 사례가 지적되었다. 또한 트랜스젠더 여성 수감인의 남성수용동 수감을 비롯하여, 여성 속옷 착용 불허 등 다양한 인권침해의 내용들이 언급되었다. 이는 모두 수감인 당사자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처우상 고려"가 시설 측에 의해 이행되지 않은 사례들이었다.
이렇듯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에 대한 구금시설의 무지를 지적하는 대목에 이르러 발제자는, 성소수자 수용자에 대해 진전된 법정책을 시행 중인 몰타의 사례를 들었다. 몰타에서 시행되는 성소수자 수용자 정책의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1) 기본 원칙 교정 서비스는 인권과 수용자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해당 정책은 존엄과 자기결정권, 공정함, 사회정의, 다양성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2) 교정시설 입소 및 배치 교도소 규정에 따라 교도소는 남성과 여성이 분리 수용된다. 제공되는 수용시설은 공문서 상의 성별 또는 당사자의 신청을 반영해야 한다. 수용자의 성별정체성 등으로 인한 독거수용의 필요성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나, 다른 수용자와의 격리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남서 수용동에 배치되어야 한다. 다만 수용자가 안전상의 우려로 여성 수용동에 배치되기를 희망한다면 관리자의 자문과 결정을 거쳐야 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경우 여성 수용동에 배치되어야 한다. 이 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성적 가해자로 간주되거나 다른 수용자와의 소통을 제한당해서는 안 된다.
- 「트랜스젠더, 다양한 젠더 및 인터섹스 수용자 정책(Trans, Gender Variant & Intersex Inmates Policy)」, Ministry for Home Affairs and National Security of Malta, 2016.8, 박한희,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구금시설 내 인권침해와 법제도적 개선방안」, 『구금시설과 성소수자/HIV감염인 인권』 토론회 자료집, 2019.12.18, 35-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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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감염인 수용자와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경험하는 낙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성매개 감염질환, 성별 정체성과 관련하여 당사자에게 몹시 중요한 정보들이, 구금시설과 일반 사회의 시선 속에서 몰이해되고 희화화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성병에 대한 비이성적 공포,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 등은, '섹슈얼리티'라는 의제를 두고 성소수자인권운동이 지속적으로 지적해오고 싸워왔던 사회적 인식이자 폭력이다. 더불어 섹슈얼리티가 포함된 인권의 개념은 구금시설 속 성소수자 또한 예외가 아니며, 그를 위한 시민감시와 투쟁이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삼 환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왠지 그런 걸 보장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존재에 이르러 비로소 본래의 의미로 빛나곤 했던 '인권'의 원의가 다시 한번 두드려 넓혀지는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