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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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원解寃, 해학諧謔.
-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관기 -
나는 특별한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 앞에서 선택지에 놓일 때면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일을 하기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야 하는가. 평소 이상의 에너지와 공력이 필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야 하는가. 다른 중요한 일과 시간이 겹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의 전후에 놓인 대립되는 요소, 문구의 앞에 놓인 저항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외면하지 않으면서 뒤에 놓인 당위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실행하는 작업. 이것은 나의 삶을 직조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2019년 8월 31일 토요일. 인천 부평역 북부광장에서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첫 퀴퍼 참가인 나에게는 두 번째 퀴퍼가 되겠다. 당일에 선택해야 했던 두 가지 일 가운데 그나마도 일정 시간만 허락되었던 내가 인천행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제2회” “인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8년 여름의 인천을 기억한다. 인천이 가지게 된 첫 퀴퍼였던 그 날 그 장소.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혐오가 짐승처럼 발톱을 드러낸 채 습한 공기를 찢어발기고 형형색색의 상징과 깃발은 박살나고 가려졌으며, 분노와 눈물이라는 단어로 다 설명되지 않는 깊은 생채기 같은 트라우마가, 존재를 부정당한 존재 안에 낙인된, 광기와 슬픔이 뒤엉킨 그 날 그 장소를 우리는 생생히 추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일 여러 상황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연대”의 마음을 제2회 인천 퀴퍼에 경건히 헌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스케치 (2018.9.8, 기록 : Pep Choi님)
미리 처리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다소 늦은 오후에 부평역에 도착해서 네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대로 출구를 나온 내가 당도한 곳은 개신교인 분들의 집회 장소였다. 거대한 스크린 전광판과 엄청난 인원수,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소리에 잠시 위축되었다. 퀴퍼가 열리는 광장이 어디인지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간신히 경찰버스가 쭉 둘러있는 곳을 보고 광장이라 추측하고 그곳을 향해 갔다. 가는 길 내내 부평역 주변을 둘러싼 반대세력을 뚫고(성경의 여호수아기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나 사용했을 법한 뿔나팔을 부는 아주머니의 근엄한 표정은 매우 드라마틱하고 인상적이었다) 광장에 도착했을 때도 위축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 때와 달리 석재 바닥의 광장은 너무나 협소했고, 구조상 지대가 다소 낮아 반대세력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관람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다소 늦어 많은 부스들도 운영이 끝나고 퍼레이드를 시작하기 직전 산만한 분위기라 분명 서울 퀴퍼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위축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자니 사람들도 어쩐지 긴장되어 보이고 반대세력들은 멀리 높은 지대에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어 마치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여러 모로 열악하고 힘든 환경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 그건 잠깐의 스쳐지나가는 감정일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가 그 순간 가장 또렷이 떠올랐다. 수적 물적으로 반대세력에 열세이고 환경 역시 좋지 못했지만 우리는 작년의 그 광기를 겪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을 당당히 살아내어 다시 이 광장에 섰던 것이다. 광장 안에서 광장 밖을 바라보니 이 험난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좌절하지 말고 당당히 살아내야 하는지, 우리 안에 왜 사랑과 강인함을 더욱 키워야 하는지, 우리가 왜 연대하며 손을 맞잡아야 하는지가 너무나 분명해졌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다른 이념과 주의주장 앞에서도 존재는 부정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존재보다 우위일 수 없으며 심지어 그 존재는 아름답고 큐티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므로. 그리고 혼자서 나약한 듯한 존재가 함께 할 때 강해지는 역사가 이루어졌으므로.
다행히 조직위의 철저한 준비와 많은 외국대사관의 지지와 참여, 그리고 작년의 그 난리 덕분(?)인지 경찰들도 작년과 다르게 축제를 잘 보호하고 대처했기에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퍼레이드에 앞서 사회자가 멘트를 하면서 울컥 눈물을 쏟았다. 아마도 작년의 기억 때문이리라. 함께 가슴이 메어 왔다. 그리고 시작된 퍼레이드. 좁은 광장을 벗어나 인천의 대로를 연대의 깃발과 몸짓으로 걷는 기분이란. 무한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 거의 서울 퀴퍼 때와 방불했던 것 같다. 인천의 대로를 당당하고 즐겁게 여러 사람들과 깃발을 흔들며 신나는 음악 속에 걷는 느낌. 그리고 그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님을 주변 사람들의 얼굴과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작년의 광기를 딛고 우리가 살아서 당당히 존재함을 온몸으로 외치고 싶어 하는 열망들이 모두의 얼굴에 가득했다.
특이했던 건 퍼레이드 내내 흘러나온 트럭 음악이 복음성가였다는 사실이다. 댄스뮤직과 CCM을 결합해서 활동하는 DJ JINHO가 퍼레이드 트럭의 디제잉을 담당했기 때문인데, 개신교 세력의 혐오에 맞서 즐겁게 풍자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믿는 사랑의 하나님에게 회개하고 돌아가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이 풍자적으로 인천대로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서울 때와 같은 해방감이었지만 서울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 그 느낌은 아마 해원解冤과 해학諧謔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작년의 한과 원망이 음악에 실려 올올이 맑은 하늘을 향해 풀려나가고 우리의 웃음과 풍자로 대로가 물드는 한판의 흥겨운 굿마당 같았다고나 할까. 다분히 퀴어적이었다.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마시라. 신기한 광경인 듯 바라보던 인천시민들과 높은 오피스텔 창가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가족들이 생각난다. 물론 우리의 행렬을 맞이해주기 위해 인도 곳곳에 배치되어 피켓을 들고 함께해 준 반대 세력 분들도 너무너무 수고하셨다는 사실. 우리가 웃으며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던 건 당연지사. 퀴어는 사랑이니까.
퍼레이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광장에서는 클럽 디제잉으로 뒷풀이가 펼쳐질 즈음 나는 일정상 다시 혐오세력을 뚫고 부평역으로 향했다.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광장에는 수많은 깃발들이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살아서 사랑하고 있노라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퀴어답게. 광장을 빙 둘러싸고 얼굴을 찡그린 채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이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매우 사랑스럽게. 당연하게. 그 순간에 천국은 어디였고 지옥은 어디였을까.
인천 퀴퍼에서 나는 세 가지를 보았다. 세상이 변하기만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불편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발랄한 “해원”과 신나는 “해학”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음을.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 사람들' / 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