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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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기획] <Seoul For All> #10 :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도시’란 어떤 모습일까요 ②
매년 10월이 되면, 제 SNS는 #LGBTHistoryMonth 라는 해시태그로 도배가 되고는 합니다. 아, 물론!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LGBT 역사의 달’은 우리에게 축제의 계절로 익히 알려진 6월 LGBT Pride Month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 달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제목의 해시태그 참조).
그림 1. 1994년 'LGBT 역사의 달'의 필요성을 주장한 (좌)로드니 윌슨(Rodney Wilson)과 (우) 관련 연혁
그렇게 그 어디에서도 교육받을 수 없었던 LGBT 커뮤니티의 역사를 스스로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LGBT History Month는 LGBTQ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이제까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멀리 떠나야만 하는지를 잠시 생각해보는 달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최근 서구권 도시에서는 이러한 LGBT의 역사를 기리고자 하는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림 2. TATE MODERN에서 전시된 '영국의 퀴어 예술'
첫째로, 성공적인 도시재생사례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런던의 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는 2017년 영국 최초로 LGBTQ+와 관련된 예술작품들을 함께 감상하는 <Queer British Art 1861-1967>를 전시하고, 2018년에는 이에 뒤이어 퀴어 공동체에 뿌리를 둔 다양한 사람을 초대하고 그들의 의견들을 들어보는 <QUEER AND NOW>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림 3. Stonewall의 국가기념물 지정당시 발표한 백악관의 영상 캡쳐
둘째로, 2016년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날 세계화된 퀴어축제의 시작점이라고 알려져 있는 스톤월 항쟁이 이뤄진 뉴욕시 그리니치 빌리지의 스톤월 인과 크리스토퍼 공원 일대를 국가 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당시 크리스토퍼 공원에서는 올랜도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총격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열리기도 했죠(Seoul For All #5에 소개되었던 하이라인은 Stonewall Inn으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답니다).
물론, 학계도 이러한 움직임에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런던에서는 <Queer Beyond London : Sexualities and Localities 1965-2010>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지리적인 맥락에서, 인구통계적인 맥락에서, 사회경제적인 맥락에서 LGBTQ의 삶 그리고 공동체는 1965년부터 2010년까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간학문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자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러한 프로젝트에 발맞춰 다양한 행사와 함께 저작물이 출간되기도 했답니다.
그림 5. OUT UCL에서 진행한 ‘Hide & Seek: A Queer Tour of Bloomsbury’ 행사의 한 장면.
경제학자이자 바이섹슈얼이었던 케인즈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Bloomsbury Park는 Seoul For All #6에서 잠시 다뤄지기도 했다)
# 단 하루의 광장을 넘어라.
그들은 왜 그들의 공간을, 역사를, 기억을 기리고 있을까. 현재 Stonewall을 운영하고 있는 Lentz와 Kelly는 2018년 미국 허프포스트와의 인터뷰(전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림 7. Stonewall의 운영진 Lentz와 Kelly
Q : 당신에게 스톤월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Lentz : 저에게 스톤월이란 ‘게이의 교회’와 같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에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스톤월이라는 게이바는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스톤월은 사회 변화와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죠. 바로, 이 점이 제가 이 스톤월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열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저에게 스톤월은 운동이자, 살아있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스톤월이란 숨쉬는 퀴어 역사의 한 부분이자, ‘우리의 권리와 평등을 쟁취하자’라는 발상의 근원지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Kelly : 저에게, 스톤월은 또 다른 시작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모두에게 도전이었을 거에요. 바로, 퀴어커뮤니티가 Stonewall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도전말이죠. 이러한 점이 오랫동안 근처 술집에서 일하면서도 화가 났던 지점이었어요. 아무도 Stonewall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자체요. 1969년, 자유를 위해 싸웠던 그 시대가 있었기에 오늘날 공공공간에서 자유롭게 키스할 수 있다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중요성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
저는 이 인터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퀴어축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KBS에서 진행된 <엄경철의 심야토론>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에서 진중권씨는 퀴어축제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퀴어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당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대명제일지도 모릅니다.
“동성애 축제가 출발한 것은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매일 단속해 참다 못해 길거리에 나온 거다. 그런데 다시 골방으로 들어가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한편, 저에게는 아직도 궁금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종로와 이태원과, 홍대를 버리고 광장으로 나가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 말이죠. '버렸다'는 단어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나요? 안타깝게도 여러분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홍대와 이태원 그리고 종로3가에 있는 퀴어상점들은 가파른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 속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광장으로 나가게 되면서 퀴어축제가 지닌 또 하나의 의미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지 적어도 저는, 궁금합니다.
“종로를 게이의 거리로 선포한다” 제4회 퀴어 문화축제/5백여명 퍼레이드 펼치며 ‘동성애 차별 금지’ 외쳐
“많은 동성애자들이 종로를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종로는 한번도 동성애자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러나 종로는 어제도 동성애자의 거리였고, 오늘도 동성애자의 거리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동성애자의 거리로 남을 것이다. 종로를 동성애자의 거리로 선포한다” |
표1. 시사저널. 2003. "종로를 게이의 거리로 선포한다"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여러 부분에서 그 누구보다 자랑스로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는 홍대, 이태원, 종로3가와 같이 문화와 역사가 축적된 지역들과 괴리된 퀴어축제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봐야할 때는 아닐지, 우리의 퀴어문화축제는 무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인지 이제는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요. 과거 홍대, 이태원, 종로3가에서 이뤄진 퀴어축제와 오늘날 광장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퀴어축제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요.
그림 8. KBS에서 진행된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
어쩌면 ‘이제는 퀴어문화축제를 고척돔에서 열자’라는 의견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지금의 서울광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사실상 일부 기독교 혐오세력에 기반한 혐오범죄 뿐이니 말이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제는 퀴어축제에 삼성이 들어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이제는 퀴어축제에 미국 대사관이 왜 들어오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저는 이런 질문이 던져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질문 하나를 더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퀴어축제는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한, 무엇을 기리기 위한, 무엇을 보이기 위한 축제인가요?'
그림 9. LGBT 집단 내 인종차별과 트랜스혐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런던 프라이드
해외의 퀴어축제가 지금과 같이 확대되고 지역 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에는 우리의 공간이 지닌 문화가 자랑스럽거나, 혹은 부끄럽다거나를 떠나서(물론 논의는 필요하겠죠), 차별과 낙인을 피해 도망친 공간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임을 다양한 주체들이 스스로 기념해왔다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차별이 심한 지역일수록, 혐오가 짙은 지역일수록 지역에 기반한 퀴어축제는 참여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독립적인 광장에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 어떤 축제가 세상을 혼자서 바꿀 수 있을까요.
(계속)